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불안에서부터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안 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과 성적을 두려워합니다. 직장인들은 일이나 상사에 대해서, 부모들은 자녀들로 인하여 걱정하고 염려하며 두려워합니다. 사업의 실패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거나 취업이 되지 않아서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비극의 시작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에 나쁜 사고가 생길지 않을 까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대인관계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경제문제로 인해 두려워하고 하루 종일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는 이들이 오늘날 많습니다. 문제 그 자체보다는 그 문제로 인한 두려움과 염려로 인해 마음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쇠약한 몸으로 로마의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딤후 1:8).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다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딤후 4:7).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야 하고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딤후 2:2).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죽기 전에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신뢰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함께 15년 동안 제 2차, 3차 선교 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 초기 감독으로 사역을 맡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었습니다.
당시에 에베소 교회는 이단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교회 예배의 체계를 세우고 장로를 선정하여 안수해서 일꾼을 세워야 했습니다. 구제와 사역을 조직화해야 했습니다. 직분자와 성도로서의 사명과 도덕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디모데는 이런 중대한 책임을 맡기에는 적합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세 가지의 결정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먼저 나이의 한계입니다. 디모데는 나이가 너무 젊어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4:12). 그리고 1-2년 후에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경고했습니다(딤후 2:22).
둘째로 디모데는 자주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조금씩 쓰라고 조언합니다(딤전 5:23).
셋째, 디모데는 소심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 주눅이 들고 쉽게 낙심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세 가지 복을 받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2절).
1.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세 가지 복이 필요합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 불화로 망쳐진 삶을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각각 필요합니다.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이러한 자신의 한계 때문에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디모데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상실의 원인은 죄에서 비롯됩니다. 아담과 하와를 죄를 짓고 자신의 몸이 벗은 것을 알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즉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
사람이 두려워하는 첫 번째 원인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식 정보 사회가 되면 될수록 인간은 자신감을 느끼기 보다는 더욱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과학과 기술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대형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 깊어집니다. 오늘날 의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였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역시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두려워하는 두 번째 원인은 삶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인생은 무의미하고 목적이 없다는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태만과 게으름, 더 나아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세 번째 요인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오늘날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 각종 질병과 상실 등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두려움을 불어 넣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지치고 피곤하여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다른 데서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중독과 탐닉에 빠집니다. TV 시청으로 도망가든, 쇼핑으로 도망가든 공상의 세계로 도피하든 두려움을 피하여 그들이 마음이 다른 곳으로 숨고 싶어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과 같이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2. 사람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 원인은 인간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고, 삶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고, 장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으로 나타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두려워하면 쉽게 낙심하여 힘을 잃게 되어 포기하려고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상하게 사람을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게 됩니다. 두려움에 빠지면 절제가 안되고 통제 능력을 성실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이기심으로 이어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이기적으로 행동합니다. 두려움은 자기 보호와 자기보존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적대감을 낳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분별없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쾌락에 탐닉하거나 각종 중독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3. 두려움은 우리를 항상 (이기)적인 사람, 짜증내는 사람, 함께 지내기 어려운 사람으로 만듭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불행)해질 뿐 아니라 남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지나친 두려움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두려움을 내 자신의 연역함으로 여기고 합리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까봐, 오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사랑의 영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의 영이 원수를 사랑할 힘을 주며, 두려움이 낳는 온갖 짜증 및 적개심에서 건져줍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내좇습니다.
4.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온갖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위험의 때에 사단이 당신에게 두려움으로 공격할 때, 당신이 믿음이 약해서 두려움이 찾아올 때 당신은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기도는 두려움을 배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당신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심으로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두려움이 찾아올 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 걱정, 공포 분안 따위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나 취하는 행동은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용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성향에 더 많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게 거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람들과 장소와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m
5. 성령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내쫓고 (절제)의 힘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사람은 강해지며, (사랑)할 뿐 아니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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