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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베푸는 사람(룻기 2:10-13),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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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하면서 우리가 갈등과 혼돈에 빠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난을 겪게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기도하고 봉사하고 열심을 내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해서 고난이 결코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빌립보서 1 29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룻기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가 주제입니다.

 

룻기 1 1절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이민을 갔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견녀내야 하는데 그들은 상황을 따라 움직이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앞에서 도피하지 말고 고통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상황을 바꾸는 것이 당신의 삶 속에 내일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다가 더 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1.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니쁜 일이든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상황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이민을 갔는데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게 됩니다. 이제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이방인의 나라, 모압에서 외롭게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야했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모압의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오르바와 룻입니다. 모처럼 화기애애한 가정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모압 땅에 거주한지 10년이 되던 해에 두 아들이 다 죽고 맙니다. 나오미는 믿음의 여인이었는데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 가운데 헤어나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고국에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룻기 1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언제나 현실적인 상황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스타일입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유대 베들레헴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민을 떠날 때에 부유한 상태에서 나갔는데 이제 모든 것 다 털어 먹고 세 과부만 남아서 돌아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나오미는 신앙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룻기 1 20절에 보면 자기 고향에 도착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나오미가 아니냐고 반가워서 떠들 때에 나를 “나오미”라고 하지 말고 “마라”라 불러달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희락”이지만 “마라”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나를 징벌하셔서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당한 고통을 사람들 앞에서 위축당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빈털터리로 돌아오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가? 절규하시던 주님의 심정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마음에 딱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였을까요? 남편을 잃고 외롭게 살아왔던 두 며느리의 장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이제는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앞으로 좋은 남편 만나서 행복한 가정 이루어 살아가라고 부탁합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모압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내가 죽는 일 이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합니다(1:16-17). 결국 나오미와 룻이 함께 유대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오르바를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여기에 계신 우리가 모압으로 돌아가느냐,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느냐 갈림길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모압으로 당연히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유대 베들레헴에서 지내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모압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 가겠다는 룻의 고백이 바보처럼 들려질 수가 있습니다.

 

룻의 믿음의 선택을 했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그렇게 좋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와 자신의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룻기 2 2절입니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앞에서 챙피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나는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내가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2. 룻은 어떤 일을 하든지 (은혜)를 입기를 원했습니다. 은혜의 가치를 알고 있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사람)의 은혜도 입기를 원하였습니다.

 

룻기 2 3절에 보면 룻이 어떤 사람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게 됩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곡식을 줍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우연히 보이는 것 같아도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룻이 은혜를 입기 원하는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는 라합의 아들입니다(1:5).

 

마침 그 날 보아스가 룻을 만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4절에 보면 마침 보아스가 곡식을 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사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인사와 하나님게 복 받기를 원한다는 인사는 같은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8-9절에 보면 보아스가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소년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러 온 것을 가지고 마시라고 합니다. 10절에 보면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룻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우쭐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겸손한 자세를 취합니다. ”나는 이방 여인인데 당신이 어찌하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돌보십니까? 룻은 은혜의 가치를 알고 은혜에 감격할 줄 아는 여인입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11-12절에 보면 네 남편이 죽은 이후에 네가 시어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것을 다 알고 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한다. 보아스는 은혜를 베푸는데 탁월한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과거의 그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행했는지 그 진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3. 보아스는 룻이 과거에 아픔과 고통 가운데서 끗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면서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인정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올라간 높이보다 헤쳐 나온 (깊이)를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룻이 (하나님)의 보상과 보호를 받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보아스의 감동적인 답변에 대해 룻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룻은 보아스를 통해서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은혜입기를 원해야 합니다. 룻은 자신이 과거에 모압의 지방에 있을 때 높은 지위에 있었고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다고 푸념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의 하녀들 중에 하나와도 같은데 이렇게 위로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감격해 합니다.

 

룻이 성읍에 들어가서 주운 것을 시어머니에게 드립니다. 나오미가 어디서 일을 하여 이렇게 식량을 구해 왔느냐고 물었을 때 롯은 보아스의 밭에서 일했다고 말씀드립니다. 룻기 2 20절에 보면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스가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느느다고 감사해 합니다.

 

보아스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한 때에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관계없이 은혜를 지속적으로 베푸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자신의 가문에 기업을 무를 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래서 다른 밭에 가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 계속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오늘 밤에 보아스가 눕는 발치에 들어가서 당신의 옷자락을 당신의 여종을 덮으라고 했을 때 룻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4. 당시에 (발치) 이불을 드는 것은 (프로포즈)할 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당신의 날개로 나를 보호하소서. 당신의 날개로 나를 덮으소서” 하는 말은 결혼해서 남편이 아내를 끝까지 (보호)해 달라는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발치에서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네가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않고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다고 칭찬합니다. 네가 현숙한 여인인 줄 성읍 백성 모두가 안다. 내가 기업 무를 자 중에 하나인데 순번이 내 앞에 다른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내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말합니다. 룻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보아스는 룻에게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로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주고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보아스는 최종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기업 무를 자가 절차를 마치고 룻과 결혼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태어난 자가 오벳입니다. 오벳은 이새를 날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즉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오벳이 이스라엘에 유명한 자 되기를 원합니다. 오벳은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낳은 자라고 찬양합니다. 오벳의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는 회복자요 봉사자입니다.오벳은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자이며, 결국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출생하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5.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때로는 (문제)는 해결해 주시지 않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이것이 (응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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