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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회에서 신앙생활 어떻게 할 것인가?(룻기 4:7-12),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6.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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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외국어대학 네덜란드 학과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박윤선 목사님의 성경 주석의 풋 노트를 보면서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인물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이 ”영역주권“이란 단어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이란 단어를 좋아합니다. 영역 주권(souvereiniteit in eigen kring)이란 하나님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과학과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주인되시며 만물의 창조주로서 주권적인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영역이 교회 안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어니라 가정, 사회, 정치, 과학과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애굽에 내려가면서 사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너무 예뻐서 나를 죽이려고 할테니 거기서는 오빠라고 부르라고 부탁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애굽의 바로의 고관들이 사라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왕에게 칭찬하자 사라는 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바로 왕과 그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 왕이 왜 당신의 아내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책망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왕 바로에게는 신앙적인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방식을 택하고 세상에서는 세상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룻기 4장에 보면 사회에서 신앙생활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땅을 기업으로 무를 자 두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 순위로 보면 보아스가 2순위이고, 기업 무를 자가 1순위 입니다.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를 불러 성읍의 장로들 열 명 앞에서 나오미가 판 엘리멜렉의 땅 값을 무를 것을 요구합니다. 장로 10명을 청한 것은 당시에 재판 판결의 성수입니다. 신앙은 순수한 동기와 열심도 필요하지만 법적으로 공정한 절차를 거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업 무를 자는 세상에서 신앙 생활 어떻게 하는 사람일까요?

 

신자는 세상에서 욕심을 추구하다가 비난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보아스는 기업무를 자에게 나오미가 팔려고 한 땅을 무를 것을 요구합니다. 만약 당신이 무르지 않으려거든 내게 말하면 내가 무르겠다고 보아스는 말합니다. 여기서 '무른다'는 표현은 나오미가 팔려고 한 땅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가난하여 자신이 소유한 땅을 팔려고 할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고 친족, 기업 무를 자에게 먼저 팔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그 땅이 계속 그 가문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기업 무를 자가 나오미에게 내가 무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오미가 상속자가 없으면 그 땅이 희년이 되어도 돌려줄 사람이 없으므로 영원히 그 무른 자의 소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다른 조건을 붙이는 순간 자신은 무르지 않을 테니 당신이 무르라고 부탁합니다.

 

이 사람이 어떤 조건의 말을 듣고 마음이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이 땅을 무르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룻과 결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룻과 결혼해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의 이름으로 그 기업의 땅을 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듣고 나서 이 사람은 나는 무르지 않을 테니 보아스가 무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손해를 입으면서 기업을 무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율법의 규례를 지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오미의 가문을 회복시키고 룻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을 구할 뿐 손해 보는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약 신자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이익과 손해의 개념에 움직인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룻기 4 7, 8절에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당신을 위하여 그 땅을 사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을 벗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업무를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엄 무를 자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디모데전서 6 5절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런 사람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디모데전서 6 5절입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경건을 신앙과 성공의 도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특징은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조건없이 섬기려고 하지 않고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는 일에 민감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신자들을 향하여 오히려 걱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정말 멋있게 하는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 손해나 이익의 계산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손해보고 당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 유력한 자, 강하고 힘이 있어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다만 자신의 위치에서 사람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썩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며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썩으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하고 썩는 것처럼 시간을 보낸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정말 잘 해보기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썩는 것 같은 신세로 된 것 같아서 억울한 분들이 있습니까? 제대로 썩기만 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반전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씨는 땅 속에서 썩어야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법입니다. 봄날이 되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자신이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땅을 산 일에 대하여 여러분이 증인이 되었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고 죽은 자의 이름, 즉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룐의 이름으로 자신이 무른 땅을 상속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보아스는 율법에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신실하게 이행한 것입니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가 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자신에게는 물질적인 손해가 있습니다. 그 땅은 룻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는 보아스를 통해서 기업무를 자의 예표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기뻐하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기쁘게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희생과 손해를 보셨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손해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려고 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희생하고 손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잘 적응이 되지 않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명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신자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 가운데서도 신자가 사회에서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 8계명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웨스터민스터 대요리문답해설에 보면 우리 각자에게 요구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도 도둑질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장물취득, 사기 거래, 저울과 치수를 속이는 것, 사람들과 맺은 계약이나 신탁에 있어서 부정한 것을 말합니다. 또 억압 강탈, 고리대금, 뇌물, 부당하게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것, 이웃에게 속한 것을 억류하거나 빼앗는 것, 재물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산란한 마음으로 재물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는 것, 게으름, 방탕, 낭비성 게임 등을 말합니다.

 

체스의 여왕 우간다 카트웨 지역의 슬럼가에 사는 10살 피오나는 가족들과 생계를 하루하루 이어나가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선교 프로그램에서 로버트 카텐데 선생님을 만나게 되며 체스를 접하게 됩니다. 피오나의 뛰어난 체스 실력을 보고 카텐데 선생님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피오나를 대회에 출전시킵니다. 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피오나! 그런 피오나는 점차 체스 그랜드마스터를 꿈꾸게 되고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점차 그랜드마스터가 되기까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느끼는데.. 과연 피오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집트에서 열리는 그랜드마시터 대회에서 챔피온을 만나서 힘겨운 경기를 하게 됩니다. 힘들어 하는 피오나를 바라보면 카텐데 코치는 퇴장을 각오하고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여기야라고 소리칩니다. 이에 힘을 얻고 피오나는 이 경기에서 챔피온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있는 곳에서 기대가 무너지고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될 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이곳입니다. 지금 있는 이곳에서 자신의 소명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 일을 하기 위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여기가 아니라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므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오체 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입니다. 그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반드시 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그 일을 하자라는 말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는 절차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들이 보아스를 향하여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지역 사회에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을 배출하는 가문이 될 것을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룻으로 말미암아 상속자를 주셔서 베레스와 같이 축복의 집이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이는 보아스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에 대해 거룩한 영향력을 끼친 결과입니다. 한 사람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신앙의 영향을 끼칠 때 놀라운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역의 리더들이 보아스에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베레스를 축복하신 것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오벳입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기를 찬송합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오벳은 누구일까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입니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야가 탄생하는 구원의 대서막이 시작된 것입니다.

 

룻의 신앙의 결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먼저 룻은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되었습니다. 룻은 새 남편 보아스에게 축복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룻은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축복된 인물이 되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축복의 가문이 되었습니다. 룻은 온 세상에 축복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건 세상 일이고 저건 하나님의 일이라는 이분법을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을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SCAR)는 나중에 별이 됩니다(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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