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유대인으로 주전 444년에 3차로 바벨론에서 귀환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귀환하기 2년 전인 주전 446년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가 통치하던 제 이십년 기슬르월 즉, 12월에 수산궁에 있었습니다(느 1:11). 거기서 느헤미야는‘하나니’라는 친동생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져 없어져 버리고 성문이 다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탁월한 리더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슬퍼하며 여러 날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1장 1절에 느헤미아가 금식하며 기도하던 날이 기슬르월, 즉 12월달입니다. 지금이 니산월, 즉 4월입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황폐한 상황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4개월 만에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당시에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왕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느헤미야는 평소에 이미지 관리를 잘 했던 사람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얼굴에는 수심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 수심이 없었더니.”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은 이전과는 달리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을 아닥사스 왕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다. 느헤미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자신의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고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 앞에서 먼저 만세무궁하시라는 인사를 전한 후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사실 느헤미야는 왕에게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읍이 황폐하고 불타버린 것으로 인해 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합니다.
아마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느헤미야가 왕의 술맡은 관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신뢰받는 관계였음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로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하신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탁월한 리더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의 이러한 사연을 듣고 전혀 싫어하는 내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으로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 순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묵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신앙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억지를 쓰지 않습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탁월한 리더는 좋은 상황이 전개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방법으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예우를 갖추어서 실제적인 도움을 부탁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헤미야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은혜를 입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겸손한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은헤를 입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듯한 자세는 지향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나를 예루살렘 성읍에 보내어 건축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탁월한 리더는 구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영적인 가치관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은혜를 입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구체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아무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하더라도 충동적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구체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몇 가지 프로젝터를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때에 왕후도 왕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는 먼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위하여 소요 기간을 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잘 될 수 있다고 막연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완공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위해 필요한 허가사항과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비자발급을 허락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느헤미야는 공사진행을 위하여 실무 담당을 하는 사람들의 결재를 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위하여 두 번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90 여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누구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헤미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착수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직정, 학교, 가정, 교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느헤미야의 탁월한 리더의 원리를 적용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확보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위하여 장기휴가를 허락받은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비자발급을 위한 조치를 허락해 준 것 역시 기적입니다. 게다가 성벽 재건을 위해 필요한 모든 물품을 제공받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탁월한 리더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체험하는 사랍입니다.
탁월한 지도자는 반대를 예견하고 대처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황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느헤미야는 여기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산발랏은 사마리아 지역의 통치자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비야는 아모리 사람들의 지도자였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들이 자신을 반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느헤미야는 누가 반대할 것인가 알아보기 위해서 자기보다 앞서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피로 사신 몸된 교회를 세우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예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에 대하여 신속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헤미야 2장 19절입니다.“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본문 10절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었는데 또 다른 반대자의 이름, 게셈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일이 진행됨에 따라 반대자는 점점 극성을 부리게 됩니다.
반대자들의 첫 번째 행동은 “업신여기고” “비웃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은 결코 성벽을 재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업신여겼습니다. 지난 90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일을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행동은 왕을 대적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모함”하였습니다. 이러한 모함은 이전에도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에스라 4장 13절에 성벽 재건이 중단되었습니다.
반대자들은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유대인들이 성벽을 재건하면 왕을 배신하고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모함했습니다. 그 결과 에스라는 성벽 재건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느헤미야는 반대자들과 결코 논쟁하지 않습니다.
탁월한 리더는 삶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신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며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느헤미야 2장 18절입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은 느헤미야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왜 동기부여를 위하여 개인적인 간증을 사용하였습니까? 그것이 리더십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른다. 고린도전서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당신을 리더라고 여기고 당신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손이 당신의 삶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볼 수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때입니다.
탁월한 리더는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 2장 17절입니다.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감정에 호소하는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타고....... 우리는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느헤미야는 매우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무너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무감각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에 적응해 버리고 무관심해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느헤미야는 문제를 극적으로 그리고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을 직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문제 의식이 없다면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학교나 직장, 가정, 또는 일에 변화를 시도하려 한다면 먼저 여러분들이 문제를 직시하고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직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않을 때 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한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일에 만족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 일을 어떻게 진행했을까요? 그는 두 가지를 자극했습니다.
첫 번째로 그는 자존심을 자극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나가서 성벽을 다시 세웁시다. 우리는 지금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어떻게 이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살고 있겠습니까? 도시는 훼파되었습니다.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느헤미야의 말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신선한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르구나. 이 사람은 정말 우리들을 생각하는구나. 이 사람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구나. 그는 우리를 걱정해서 이곳에 왔으며 우리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하는구나. 이것은 매우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게 됩니다. 교회는 자극을 통하여 변화를 주는 곳입니다. 무관심한 상태로 버려두면 교회는 어느 날 침몰하게 됩니다. 탁월한 리더는 성도들이 새로운 길을 가도록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는 더 고차원 적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단지 유대인들의 수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치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느헤미야는 말하기를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벽을 재건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합시다. 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광을 위해서 성을 재건합시다.” 그는 가장 효과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시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곳입니다. 느헤미야처럼 지도력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교회가 수치를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2장 17절에서 느헤미야는 “모든 것이 훼파되었습니다. 여러분 성벽을 재건합시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행동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성벽이 무너졌으며 불에 타버렸다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반대로 “여러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합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탁월한 리더는 현실을 정확히 직시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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