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인내(살전 1장), 김덕선 목사
소망은 믿음을 지속하게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소망이란 '간절한 기대감으로 고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인간이란 소망의 사람, 희망의 사람이다!" 그랬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기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망은 헛된 것입니다.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3 :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 1:8 :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시 146:5절에"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역경을 이기는 힘입니다.
야곱은 망명살이에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로 열심히 일하고 7년을 수일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을 때, 꾼 꿈이 사다리 꿈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꿈,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곳에서 말씀하기를 "너와 함께 하겠다.", "네 후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지겠다." "너 누운 땅을 네게 주리라.", "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의 줄을 끊지 않았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광풍 가운데서도 소망의 닻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소망이 있기에 이 세상의 시련과 슬픔을 능히 참아내게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반드시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습니다(6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 위에서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근거한 소망을 가졌습니다(살전 2:13)
살전 2: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재림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인사가 '마라나타'였습니다. 주님이 곧 오십니다. .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살전 1:10).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장차 다가올 미래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자는 환란이 극하고 사방에 우겨 쌈을 당했을 지라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할 때에 영육 간에 힘든 상황에서도 소망의 인내를 가졌습니다. 이 인내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인내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절대 낙심하지 않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소망이 인내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그 인내도 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성도의 소망이야말로 최대의 소망이므로 최대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지 않으면 주님 재림에 대한 소망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계 3:10절에“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 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바라며 소망으로 인내하는 모두가 됩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소망의 인내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
초대교회의 신앙은 믿음과 사랑도 충만했지만 무엇보다 재림과 부활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현세적인 문제에 거의 모든 관심을 쏟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소망의 인내 가운데서 살아가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사도 바울의 아름다운 권면의 말씀 한 마디를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