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분노심리, 이관직
성경에 나타난 분노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분노는 살인적인 내적 행동이다(창 27:42, 마 5:22).
둘째 분노는 안색이 변하는 것이다. 가인이 분노했을 때 신체적인 증상은 안색이 변했다. 영어 성경은 고개를 숙이며 눈을 내리 깔았다로 번역한다.
셋째, 분노는 불타는 것이다(애 2:3,4, 렘 4:4,삿 14:19, 약 3:1-12).
넷째, 하나님의 분노는 항상 진노는 분노이다. 자녀들에게는 징계성 분노(애 3:1)에게 대해서는 심판성 분노이다.
마지막으로 분노는 하나님의 품 중의 하나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총이다.
분노는 파괴적이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변화와 치료를 가져 올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부여해주신 소중한 선물과 은총이며, 다양한 강도와 범주를 가진 생리적, 감정적, 심리적, 영적 반응이다.
제 1장 분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분노는 항상 죄에 대한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반응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출 34:6-7, 고전 13:5, 느 9:17, 시 103:8, 욘 4: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적으로 반역하며 목이 곧은 행동을 할 때 분노하셨다(민 14:22-23).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분노라는 감정을 선물로 주셨다. 죄 없으신 하나님이 분노하신다는 것은 분노 그 자체가 죄가 아님을 말해준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분노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부패와 강포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창 6:11-13)
하나님의 분노는 심판의 에너지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정화하는 기능이 있음을 본다.
성적 타락에 분노하시는 하나님(레 18:25, 민 25장)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반복적으로 가증한 삶을 살고 율법을 떠난 삶을 살았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멸망하는 원인들 중의 하나도 성적인 타락이었다.
언약을 파기함에 분노하시는 하나님(레 26장)
죄를 범한 인간은 어리석게도 경고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갈 때까지 가는 고집과 완악함을 갖고 있다. 징계를 받을 때 일찍 깨닫고 회개하면 파국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호 11:8-11).
종교생활과 사회생활의 괴리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사 1:4, 25)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분노하시는 예수님(눅 11:39-52)
약자를 옹호하시기 위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출 22:22-24, 렘 5:27-29)
이방 나라를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사 10:5, 13:6)
하나님은 분노를 표현하실 때 여러 도구를 사용하셨다.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은 하나님의 분노를 표현하는 도구들이자 상징들이었다(렘 14:12).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재해나 사고들 중에도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으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분노의 목적은 자기 백성이 회개하도록 하는데 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죄인가?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반드시 정죄하지 않는다(민 11:11-15, 욥 1:21-22, 7:11-21, 23:1, 렘 12;1, 합 1:13).
하나님 안에서 분노는 마침내 의의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요나의 장점은 그 분노를 억압하지 않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 점이다(욘 4:2-3).
그가 분노한 것은 엘리야의 표현을 닮아 있다(왕상 19:4).
요나서는 하나님이 요나를 분노로 질책하고 징계하는 대신 요나의 분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도록 부드럽게 직언하시는 말씀으로 끝맺는다.
제 2장 십계명과 분노
다른 신을 네게 있지 말라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는 것은 신앙적인 외도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기려는 태도에 대해서 분노하신다(렘 7:9-11).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24).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들에게 예배하며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질투하셨다. 그 죄악의 대가를 삼사 대까지 갚겠다고 말씀하실 만큼 그 질투와 분노는 강렬한 것이었다(롬 1:21-23, 26).
현대인의 삶과 연결한다면 우상숭배는 중독과 그 역동성에서 닮은 부분이 많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에게 주신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을 하나님이 아닌 것에 몰두하며 대체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알코올 중독과 마찬가지로 일중독도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분노도 중독이 될 수 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욕할 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행동이다(왕하 2:23).
지도자에 대한 저주는 곧 하나님에 대한 저주와 신성 모독과 동일시된다(롬 13:1-2). 레위기 24장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신성모독한 사람을 진 밖으로 끌어내어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쳐 죽이도록 하셨다.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표현을 하는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라
주일성수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 무시될 때 하나님은 분노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 21:15, 17절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손상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자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자녀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것이다(엡 6:4)
살인하지 말라
대부분의 살인은 분노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형제에 대하여 마음에 분노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라고 지적하셨다(마 5:22, 요일 3:15,갈 5:19-21).
분노 에너지가 외부 대상이 아닌 자신에게 향할 때 자살 위험성이 높아진다.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울증은 분노가 억압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간음하지 말라
억압된 분노가 간음의 모습으로 표출될 때 상대 배우자는 마치 살인을 당하는 것과 같은 충격과 고통을 겪는다. 외도는 자녀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자녀들은 가해자인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하여 불신과 거절감, 유기감, 그리고 분노를 느낀다. 자식이 외도하게 될 때 부모는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를 느낀다. 아내 몰래 포르노그라피를 본다든지 음란만화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포로느사이트에 접속하여 보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음란행위이며 결혼한 사람에게는 간음이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훔치는 것이 분노와 연관되는 것은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훔치는 것이다. 공평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분노를 느낄 경우 가진 사람들의 것을 훔쳐서라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의 욕구가 일어날 때 이미 도적질한 것이다. 비록 도적질 하지 않더라도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시기심 그리고 분노로 몰래 외재차 표면을 긁는다든지 타이어를 펑크 내는 행동을 하는 것도 도적질이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분노와 탐욕이 어우러질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방하여 흠집을 내며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는 죽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심성이다(왕상 21:1-16, 마 26:59-61)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여기에서 집이란 그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탐한다는 것은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것을 말한다.
시기나 질투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비교의식, 열등의식으로부터 생긴다.
지계석을 옮기는 것은 일곱 가지 치명적인 죄악 중에서 탐욕과 직접 연관되는 죄악이다(왕상 21장).
제 3장 분노의 원인
에서의 분노는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권을 상실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시간이 흘러도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치유되지 않을 수 있음을 에서의 사례에서 보게 된다.
열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버티게 했던 꿈과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은 회피형과 공격형이다. 회피형 방식이란 그들이 불안상황에서 공상과 상상을 하며 애굽 생활을 그리워하며 심지어는 애굽으로 되돌아가라고 하였다. 공격형방식을 사용한 그들은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며 분노하였다.
많은 경우에 분노는 위협과 두려움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격노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흘 전에 경험했던 홍해의 기적 사건과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다시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그들은 쉽게 분노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불평과 원망에는 분노가 담겨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원망은 탐욕이 문제였다(민 11:4-11).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를 초청하여 아름다운 아내를 통해서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그것이 거절되자 무시당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윗은 가장 절친했던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할 때 분노가 일어났습니다(시 55:12-14).
예수님은 가롯 유다로부터 배신을 당했지만 분노로 반응하는 대신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부터 세 번씩이나
배신당하셨지만 다시 그에게 사명을 맡기셨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사울 왕을 환영하기 위해 부른 여인들의 노래에 그는 다윗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은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그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왔을 때 그는 엘리사의 태도에 격분하였다(왕하 5:10-11). 기대감의 좌절이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의 하나인 포도원 비유에 등장하는 품꾼들은 잘못된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에 분노하며 원망하였다(마 20:10-12).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고통스러운 노예생활과 광야에서의 자유인의 생활을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이 비교하고 연결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하고 연결지을 때 잘못 비교, 연결하면
불평과 원망이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적인 시각은 갖고 있었지만 초현실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형제를 사랑하고 노력하는 자라면 마귀에게 속한 자는 형제를 미워하고 죽일 정도로 분노하는 자이다(요일 3:10).
제 4장 분노의 방어기제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자 하나님께는 직접 분노를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 분노를 의로운 동생에 아벨에게 투사한 것이다.
나단이 다윗에게 한 부자와 한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야곱은 라반에게 분노를 표현하거나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처리하는 대신 마음에 일일이 기억해 두고 마음판에 기록해 두는 ‘입력해 두기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을 때 그동안 억압해두었던 분노를 한꺼번에 봇물 터뜨리듯이 터트렸다(창 31:36-42). 만약 라반이 추적해 오지 않았더라면 야곱은 라반에 대한 억울한 감정과 분노의 감정을 마음에 품은 채 평생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억압한 사람음 마침내 그 억압된 분노로 인해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다말을 강간한 이복 형제 암논에 대해 압살롬의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불안과 갈등 구조 속에서의 반복적인 회피는 야곱의 삶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방어기제이다.
유다가 며느리가 행음하여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의 지나친 분노는 자신이 저지른 부정행위에 대한 과잉반응이었다. 반동형성은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 때 더 강하게 반대하거나 분노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가 문제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어기제이다.
제 5장 분노의 역동성
예수님은 그를 따른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상이었지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분노를 격동시키는 나쁜 대상이었다.
에서의 아내들은 리브가 뿐만 아니라 이삭에게도 좋은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나쁜 대상이었다(창 27:46, 28:7).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거절당함으로써 분노하여 요셉을 페기처분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분노에는 거절과 유기가 역동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여준 뻣뻣한 태도는 그들의 반복적인 불순종과 분노를 잘 표현한 것이었다.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느껴던 분노가 모든 유다인들에게 전이된 것이다. 히틀러는 성장 과정에서 유대인에게 받은 나쁜 대상관계 경험을 모든 유대인들에게 전이하여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대만행을 저질렀다.
가인의 분노는 그의 삶을 비합리적이며 비현실적으로 자기 파괴적으로 이끌고 말았다. 열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 사건에서도 비합리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가 온 회중의 마음에 분노를 야기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탈진 전문가 크리스티나 매슬랙은 탈진의 주 증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세 증상들은 감정적 소진, 성취감의 감소, 그리고 비인격화이다. 모세에게 이 세 가지 증상이 모두 나타났다. 그는 감정적으로 지치고 지도자로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며 소명감이 약해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졌던 것이다.
모세의 분노사건은 영적 지도자들이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미리암, 아론, 고라와 그를 추종한 자들이 보여준 행동은 수동공격성 성격장애의 증상이다. 이 성격 장애는 권위자에 대한 불만이 특징적인데 조그만 불만스러운 일에도 권위자를 향해 비판하거나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인이 아벨에게 느낀 분노는 나르시시즘에 기인한 분노였다. 자기애가 상처 입었다고 생각하고 분노하는 유아적인 심리구조를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질책에 대해서 가인은 진정으로 회개하며 자복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나의 등과 같은 표현에서 그의 자기애적이며 방어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창 4:13-14).
야곱은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 자기 보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창 34:30).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100% 완벽한 대상으로 인식했다가 어떤 작은 부분에서 실망하고 거절당할 때 100% 완전히 나쁜 대상으로 인식하는 불안정성 대상관계를 맺는 사람을 경계선 성격 장애로 진단한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보인 것, 홍해 사건을 겪고 나서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만 불편하면 전체를 부정적으로 해석했다. 암몬이 다말을 유린 한 후에 심히 미워한 사건.
분노가 죄가 되는 것은 균형성을 잃었을 경우이다.
첫째, 분노를 인식하는 감응장치가 너무 민감하여 분노를 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너무 분노를 둔감하게 인식할 경우에는 이웃 사랑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둘째, 분노를 표현함에 있어서 균형성을 잃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분노를 거의 표현하지 않고 억압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인하는 것은 진실한 대인관계를 맺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역으로 분노를 지나치게 분노하거나 너무 오랫동안 분노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셋째, 분노를 표현함에 있어서 실족케 할 만큼 분노하는 것은 죄가 된다.
분노가 죄가 되는지 여부는 그 분노로 맺혀지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노를 통해서 관계가 회복되고 치료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분노의 감정과 표현은 죄가 아니다. 반면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관계가 악화되고 상대방이 무너질 때는 죄가 될 수 있다.
분노는 마귀만 역사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성령이 사용하시는 감정임을 사울과 다윗의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삼상 11장, 17:36)
제 6장 어떻게 분노를 표현할까?
성경은 하나님을 노하기를 더디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억제하느니라(잠 29:11).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을 더디할 때 충동적인 반응이 가져올 수 있는 실수를 막아준다(약 3:2).
충동적인 분노는 그 분노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는 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잠 12:18). 충동적으로 분노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 깊이 상처를 입일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지도자의 분노가 조절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은 죄가 된다(시 106:33). 화를 최대한 내고 나서는 자신은 뒤끝이 없다면서 스스로 괜찮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다른 사람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분노도 적절한 타이밍과 환경에서 표현할 때 효과적이다(전 3:1-8).
일인칭 화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탓하는 분노로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출 14:10-12).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분노할 때 서로 고소할 정도로 분노하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한다(약 4:11).
특정한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희생양을 삼음으로써 집단의 분노를 잠재우는 방식이다(출 17:1-4).
분노하라 그러나 미워하지는 말라. 미움과 원한, 분노는 관계에 있어서 자기통찰이나 인식을 하는데 정확하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분노하라 그러나 죄를 짓지는 말라(엡 4:25-26).
첫째, 거짓을 버리는 것이다. 분노를 위장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과 기만이다.
둘째, 각각 진실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셋째, 분을 내라는 것이다. 화가 날 때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넷째,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다섯째, 분노하면 마귀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열어준다.
제 7장 어떻게 분노에 대처할까?
시편 37편은 분노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다(3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감찰하시며 개입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면 불필요한 분노가 줄어든다.
둘째,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3절).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피차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 5:15).
셋째,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4절). 분노를 극복하며 조절하는 좋은 해독제는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살전 5:16).
넷째,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5절).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고 약속하신다.
다섯째,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는 것이다(7절).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7).
여섯째, 분노를 그치라는 것이다(8절). 계속 분노하며 불평하면 행악에 치우칠 뿐이기 때문이다.
분노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방안
자신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과 타인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알아차리라
자신이 누구인지, 현재 무슨 생각을 갖고 사는지, 여기에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타인이 느끼는 분노를 알아차리는 것도 분노대처에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다(사 42:25, 마 24:38-39).
경청하라
상대방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청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분노를 충분히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신사적인 태도와 반응은 분노를 누그러뜨린다.
침착하게 대응하라
뷸안을 야기하는 상황에서 기드온은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함으로써 상대방의 분노를 푸는 지혜를 가졌던 것이다(삿 8;2-3,잠 25:11).
중재자/매개물을 활용하라
쌍방이 서로 분노하며 오해하고 있을 때 분노의 대처방법으로서 중재자가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분노를 완충시키며 화해할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할수 있다. 선물은 분노를 경감시킬 수 있다.
상대방에게 분노의 책임을 지도록 하라
성격이 급해서 분을 쉽게 내는 사람은 자신의 분노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같은 행동을 다시반복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다(잠 19:9).
논박하라
출애굽기 32:9-14절에 보면 모세의 논지가 하나님보다 더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마치 하나님이 분노하는 것 같고 모세가 상담사인 것 같다. 맹렬한 분노를 표현하시려는 하나님 앞에서 모세는 차분하게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를 연결시켰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스스로 분노할 때 자신내면에서 또 다른 자아가 분노하는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논박하는 것도 분노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이다.
재해석하라
요셉은 그의 말에서 하나님의 주관과 섭리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형들이 자신을 배신한 사건을 재해석하는 분노처리 방식이 나타난다(창 45:7-8).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분노 처리의 성숙함을 보게 된다(삼하 16:10-12, 잠 24:17-19, 마 5:43-45, 겔 25:3).
간과하라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드러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분노처리에서 신중한 사람은 모욕을 받는 상황에서 당장 반응하기보다는 자기를 절제하고 모욕을 마음에 담아두기보다는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원수를 갚지 말라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용서하라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의 이야기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분노와 보복 대신에
위로와 사랑을 베푸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창 45:5-8, 마 6;14-15, 18:21-22, 골 3:13).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며 마음의 태도에 변화를 받으라고 권면한다(엡 4:22-23, 골 3:8-10, 갈 5:25-26).
선한 말을 하라
더러운 말, 공격적인 말, 욕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한 말, 치유적인 말, 힘을 실어주는 말을 할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을 보라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신실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다.
자족하라
어떠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에도 감사하며 기도하며 기뻐하며 자족할 때 분노하는 횟수와 강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약자를 옹호하라
실제로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하여 약자를 압제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켰다.
지나온 삶과 현재를 연결하라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능력과 기적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억해내고 현재의 위기와 연결할 때 분노 대신에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회개하라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개인과 교회와 국가를 용서하시며 분노를 거두어들이신다(욘 3;7-9).
하나님의 진심을 읽으라
분노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하게하고 기도하게 되며 죄를 깨닫게 하신다.
중보기도를 하라
하나님의 분노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은 중보기도이다(출 32;11-14, 31-32, 민 14:13-20, 롬 8:26, 창 18:23-32, 창 19:29).
영적 싸움의 가능성을 인식하라
엡6:11-12, 분노의 역동성 중의 하나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이 역사할 수 있음에 대하여 성도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분노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에필로그
성격장애화 된 분노는 하루아침에 다루어지가 어렵다.
환경을 인식하는 사고방식, 감정처리방식, 충동조절방식, 그리고 대인관계 방식에서 분노가 성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성격장애화 되어 분노의 올부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심리학적인 방법은 온유한 대상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견뎌주고 버리지 않고 관계를 지속해 주면 분노에 중독된 사람도 조금씩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분노를 조금씩 통제하는 힘을 갖게 되어 분노의 올무에서부터 헤어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