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세상은 이런 지도자를 요구한다!

liefd 2024. 7. 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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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 지도자, 존 맥스웰

 

1. 꼭 필요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도자.

 

2. 비난은 자기에게, 칭찬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지도자.

 

3. 사람들은 인도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바로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

 

4. 늘 엇비슷한 해답이 아닌 최상의 해답을 찾아내는 지도자

 

5.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의 조직과 사람들에 더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지도자.

 

6. 자기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지도자.

 

7. 자신을 다루는 데는 머리를,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가슴을 사용하는 지도자.

 

8. 바른 길을 알고, 그 길을 가며, 그 길을 열어 보여 줄 수 있는 지도자.

 

9.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교묘하게 이용하지 않고,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가슴에

 

10. 동기를 심어 주는 지도자.

 

11. 사람들의 문제를 알고 그들과 함께 살며,그들의 문제를해결하기위해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지도자.

 

12. 자신의 인격을 자신의 지위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지도자.

 

13. 여론의 물결을 따라가기 보다는 바른 여론을 형성해 가는 지도자.

 

14. 직관이 인격의 반영임을 이해하는 지도자

 

15. 특별한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 외에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 위에 두지 않는 겸손한 지도자.

 

16. 큰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정직한 지도자.

 

17. 먼저 자신을 다스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다스림 받지 않는 지도자.

 

18. 실패를 재기의 기회로 삼는 지도자.

 

19. 유행에 상관없이 언제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적 나침반을 가진 지도자.

 

20. 인재를 계발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다.

 

21. 지도자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그 지도자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22.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대부분 성공한다.

 

23. 승리하기 위해서 하는 게임과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게임 사이에는 탁월과 평범 이라는 차이가 있다.

 

24. 계속적인 성공은 계속적인 진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을 발견하라!

 

-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10가지 지도력의 유형들 by Bill Hybels -

 

몇 년 전, 나는 그들 각자의 모임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다른 중요한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로마서 128절에 언급되어 있는 영적인 은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도력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각각 다르게 접근하고 있었다.(각각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에 대해 관찰하는 동안, Willow Creek 의 관리팀은 나에게 생일선물로 지도력에 관한 책을 하나 선물하였다. 그 선물은 Garry Wills가 저작한 Certain Trumpets라는 책이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정말 귀중한 것이었다. 그 책에서 Wills는 그들이 가진 특별한 지도력이 그 사회의 요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위대한 지도자들 의 지대한 영향력을 잘 기술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압박감으로 풀이 죽어 있거나 그러한 압박감들에서 자유로와지고 싶을 때, 그러한 환경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들을 요구한다. 복잡하고 다면적인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는 정치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전시에는 군사적인 지도자가 있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싸움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지적인 지도자가 가장 걸맞을 것이다. Wills 는 서로 다른 많은 지도력이 존재하고 있음과,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는 다른 종류의 지도력보다 특정한 상황에 꼭 걸맞는 특정한 지도력이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입증하였다.

 

지난 수년에 걸쳐서, 나는 교회에서 보여지는 적어도 10가지 유형의 지도력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것은 우리 스탭들이 스스로가 어떤 유형의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데 매우 유용하였을 뿐 아니라 이 지도력의 유형에 따라서 효과적인 leadership team을 세울 수 있었다. 10가지 지도력의 유형을 소개해 본다면,

 

1. 환상적인 지도자(Visionary leader)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하기를 원하는 명확한 그림이 들어있다. 그들은 아주 강력하게 비전을 제시하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지치지 않는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끄러움 없이 누구에게나 그들의 비전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한다. 그들은 그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비전에 대하여 언제나 뜨겁게 불타고 있는 사람들이며 미래지향적이고 대개 이상적이며 만약에 그 비전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제시되기만 한다면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쉽게 낙담하거나 단념하지 않으며,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면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투지를 더욱 불사르도록 만든다.

 

팀을 구성하는 일, 각 사람의 재능들을 각처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적소에 배치하는 일, 목표를 현실성 있게 정착시키는 일 또는 그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 과정들을 관리하는 일 등을 이 유형의 지도자들이 잘 해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들은 비전을 품고 그것을 제시하며 사람들을 그 비전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해 노력한다.

 

나는 John Maxwell 이라는 사람과 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John은 비전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는 비전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vision)을 상징으로 나타내기 위해 지성소의 한 부분으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믿음도 없다. 그러나 비전이 있다. 당신의 발을 한 발짝 내디디라. 그리고 그 비전이 비추어주는 빛 가운데로 걸으라....." 그는 무대를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면, 그 길을 따라 당신이 비전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믿음을, 힘을, 사람들을 그리고 물질들을 주실 것이다."

 

그가 이 말을 하며 걸을 때 모든 사람들의 눈이 John 에게 고정되었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과 그가 지향하고 있는 곳 사이에는 심는 자(planter)가 있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심는 자를 살펴보라! John은 결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비전은 아주 강력해서 그는 결코 그의 웅변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회중들을 둘러보았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점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비전을 수행해 나가는 단계에서 걸려 넘어진다 하더라도 이 유형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떠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비전을 쏟아 붓는 것 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2. 방향지향성 지도자(Directional leader)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그 지도자가 속한 단체가 "지금이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시기인가, 이 과정에 그냥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또는 새로운 구조의 판을 다시 짜야 하는가 아니면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더 심도 있게 발전시켜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을 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질문들은 방향제시적인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고 그들은 그들이 속한 단체가 요동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것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그가 속한 단체를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바꿀만한 가치, 수행할 일들, 약점들, 자원들 등)을 주의 깊게 고려하고 그 다음에 그의 지혜를 사용하여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중요한 순간에서의 잘못된 결정은 그 단체를 파선시킬 수도 있다.

 

솔로몬의 죽은 직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첫 번째 결정적인 판단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자들이 그에게 찾아와 그들의 고역을 가볍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왕상 114). 그의 아버지 솔로몬은 이전에 그들을 실망시켰었다. 르호보암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노 대신들은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지만 젊은 사람들은 "그들의 짐을 더욱 무겁게 하라"고 하였다. 왕은 결국 그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결정을 하였고 그 결과 왕국은 파선하고 말았다.

 

그러한 기로에 있을 때, 나는 그러한 유형의 지도력을 가진 우리 위원회 회원 중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인도를 따를 때마다 좋은 결정들을 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의 충고를 거절할 때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다.

 

3. 전략적인 지도자(Strategic leader)

 

어떤 지도자들은 아주 흥미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면이 부족한 비전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지도자가 속한 단체는 그러한 비전이 실현가능 하도록 하는 의도를 가지고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비전은 강력한 것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며 영감을 얻게 한다. 비전은 행동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결국 그 비전이 실행되도록 그 진행과정들을 살피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허공중에 날리는 연기와도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전략적인 지도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결국 그 비전이 성취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러한 지도자는 그가 속한 단체로 하여금 계획을 세우도록 도전한다. 그는 말한다. "분산시키지 마라. 다음 단계를 성취하기 위하여 꼭 해야 할 일들을 하라,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는 그 비전을 함께 성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인 지도자는 조직의 다양한 부서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함으로써 결국 그 조직이 한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Willow Creek의 비전은 20년 이상이나 강조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일곱 단계의 전략으로 구성해 놓았고 이러한 조치는 우리로 하여금 그 비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4. 경영자적 지도자(Managing leader)

경영(management)과 지도력(leadership)의 차이점에 관한 논의는 항상 있어온 것이다. 이런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경영자는 일을 옳은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 지도자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 아마도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승점으로 가는 길의 요지 요지에 표시를 잘 해놓는, 그래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고 되어지는 과정들을 체크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구약성경의 요셉과 느헤미야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지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이 경영자적 지도자들은 그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서 다른 사람들을 매우 놀랍게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많은 환상적인 지도자들이 사람들과 일의 진행과정, 시스템을 관리하는데 얼마나 부적합한지를 안다면 당신은 아마도 놀랄 것이다. 또한 방향지향성 지도자들과 전략적인 지도자들 역시 과업을 성취시키기 위한 목표아래 사람들과 자원들, 시스템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들에 익숙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가끔 교회에 이야기한다. "조금 이르든 조금 늦든 간에 누군가는 경영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항상 환상적인 지도자, 방향을 제시하고 전략적인 지도자들은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경영하는 지도자(managing leaders)들이 부족하다. 그점 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효과적이지 못하게 한다.

 

경영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큰 비전을 이야기하고 큰 계획을 큰 방의 탁자에 앉아서 결정하는 지도자들보다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누군가는 그 과정들을 경영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5. 동기를 부여하는 지도자(Motivational leader)

이러한 지도자들은 누가 어떤 도전이 필요한지 누가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를 잘 아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한 사람,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하는 사람 또는 적절히 휴식을 취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민감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언제 급료를 올려주어야 하는지, 언제 사무실을 바꾸어야 하는지, 또는 언제 사람들이 휴식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를 가볍게 보는 시각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팀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일을 수행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계속적인 영감과 격려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라 ! 비록 그것이 원대해 보이는 비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순간 그 시점에 있어서 그것이 가장 최선의 결정은 아니라 하더라도, 또는 경영의 효율성이 조금은 떨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나를 활활 불태워줄 수 있는 지도자, 내 속에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지도자, 내가 성취한 일들을 축하해 주고 그 과정들에 대해 기뻐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따를 것이다.

 

동기를 부여하는 지도자들은 팀 동료가 피곤해 하고 있다는 사실, 초점을 잃고 있다는 사실, 수행할 일들이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인식한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하나님께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힘을 얻는다. 동기를 부여하는 지도자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하는 때에도 비통해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때를 팀 전원에게 용기를 주고 영감을 주어야 할 기회로 인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일관성 있는 동기 부여자 이셨다. 그는 베드로의 이름을 바꾸셨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현세와 내세에 백배의 보상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가끔씩 제자들을 데리고 나가셔서 말씀하셨다. "언덕으로 가지 말고 그 아래 쪽에서 잠시 쉬며 잠을 자자, 고기도 잡으러 가지만 먹기도 하고 쉬기도 하라"

 

우리 팀 동료들은 항상 우리가 해야 할 일들 아래 얽매이는 것 대신에 잠시 일을 떠난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들의 지도자와 함께 있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때를 기억하라! "내가 너를 친구로 부르지 않았느냐?"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나는 너희들(제자들) 없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영원토록 지내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너희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유형의 지도력을 주셨다면 결코 당신 자신을 낮추어 보지 말라.

 

6. 목양적 지도자, 목자 같은 지도자(Shepherding leader)

이 유형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팀 동료들을 깊이 사랑하고 온화하게 양육하고 일관성 있게 도우며 그들의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부지런히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팀이 수행해야 할 일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30년이 넘도록 결식아동들을 보살피는 단체인 World Vision이라는 단체의 위원회의 위원으로 있었다. 여러 명의 회장들이 있었고 여러 구성원들이 누가 지도자가 되든 관계없이 이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목양적 지도자(shepherding leader)와 함께 일했을 때 또 다른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팀 구성원들은 그들의 목자를 성심껏 도왔고 그들의 지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그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이 기독교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사회를 위한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지도자를 계속 모실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하겠다는 분위기 말이다.

 

사무엘하 23장은 이스라엘왕국 초기의 다윗의 지도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윗은 외로운 사람들, 현 체제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들을 깊이 사랑하는 목자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밤, 다윗이 목이 마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와 그의 군대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때였다. 그의 부하중 세 명은 그들의 생명을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돌파하여 다윗에게 물을 떠다 바쳤다. 그들이 그 물을 다윗에게 주었을 때, 다윗은 그들이 보여준 다윗에 대한 마음에 감동되어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예배를 위한 제단에 쏟아 부었다.

 

비록 환상적인 지도자들의 영향으로 일에 뛰어들게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목양적인 지도자의 돌봄과 사랑으로 인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놀랄 만큼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사랑받고 돌봄을 받는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어떤 목적에도 기쁘게 따를 수 있게 된다. 만약에 당신이 이렇게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면, 당신은 지도자이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7. 팀을 세우는 지도자, 팀을 만드는 지도자(Team-building leader)

팀을 세우는 지도자들은 사람들에 대해 초자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통찰력(insight)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적절한 능력과 성격을 가진 지도자들을 찾아내고 훈련시키며, 또한 다른 팀 구성원들에게 잘 맞는 지도자를 찾아 연결시킨다.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가장 적절한 결과를 배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절한 장소에 배치시킨다.

 

팀을 세우는 지도자가 사람을 적소에 배치시킬 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압니다. 당신은 당신이 이 일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전의 어떤 부분을 나머지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끌어 가십시오. 열심히 일하십시오. 당신의 목표를 실현시켜 나가십시오. 당신의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을 이끌어 가십시오."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는 사람들을 잘 양육하거나 관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이러한 것이 필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적절한 사람들이 적절한 곳에 그 사람이 꼭 필요한 이유에 맞게 옳은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들은 일일이 그들을 관리해주는 지도자가 없이도 그들의 일을 적절하게 수행해 나갈 것이다. 적합한 사람들을 그들에게 꼭 맞는 적절한 곳에 배치시켜 그 팀으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재미를 느끼게 하는 일만큼 나 흥분시키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8. 창업주적 지도자(Entrepreneurial leader)

 

이 유형의 지도자들은 비전과 끝없는 에너지, 그리고 위험에 도전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이런 두드러진 특징은 어떤 임무가 시작되는 그러한 때에 굉장한 기능을 발휘한다. "이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가 그들이 가장 신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지도력을 필요로 할 때 , 일이 복잡해지고 또한 정책과 시스템 등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하여 끊임없는 토론이 지속될 그러한 때 -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초점과 자신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는 다른 곳을 기웃기웃 하면서 어떤 새롭게 시작할 일이 없는지를 살피기도 한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종종 그들이 주도하여 시작한 일에 손을 떼게 될 때 자책감을 느낀다. 그들은 "요 몇 년 동안 어떤 일을 시작하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들의 스타일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지도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 교회를 세우기를 원했다. 그는 개척자가 되어 세우고 다른 이들이 그것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또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전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9. 재조정하는 지도자(Re-engineering leader)

어떤 지도자들은 비전을 잃어버렸거나 초점을 잃었을 때, 또는 적절치 못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왕성한 의욕을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아, 이러한 상황들을 다시 바꾸어 꾸며 봐야지" 그들은 수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지금 현재 상황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발견해 낸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일들을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 성공에 이르게 할 것인지를 측정하여 결정한다. 그들은 조율하는 것, 치료하는 것, 그리고 그가 속한 상처 입은 공동체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무엇을 이끌어가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재조정된 팀을 계속적으로 관리하는 것 보다는, 세밀히 조사하여 재조정을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투지가 솟는다. " 이 기차가 선로를 이탈하여 파괴된 것이 보이십니까? 저는 이 파괴된 기차의 철판들과 부상당한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을 새롭게 재정리하여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10. 다리를 놓는 지도자(Bridge-Building leader)

이 유형의 지도자는 다양한 구성원들을 한데모아 하나의 지도력 밑에 결집시켜 거대하고 복잡한 유기체가 그 과업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은 그 지도자가 융통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타협하고 교섭하는 능력, 듣고 이해하고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교가적인 자질이 필요할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도 교류를 나눌 수 있는 은사가 필요하다.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지도자의 주위에는 그의 비전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전체적인 비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단지 그들의 관심을 끄는 어떤 부분이 잘 진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을 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는 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죽어가고 있소. 성가대는 성가대복을 만들어줄 새 디자이너를 원하고 있고 청소년들은 새로운 체육관을, 선교부는 더 많은 돈을 외부로 보내고 싶어하고 있소. 주일학교부서는 더 많은 교실을 원하고 관리부는 더 많은 장비를 요구하고 있소. 교회의 노인들은 더 크게 인쇄된 찬송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교회내의 X-세대들은 교회의 큰 강당을 그들의 교제를 위한 커피숍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소"

 

이렇게 자신들의 다양한 생각들만을 요구하는 교회의 여러 곳에 속 해있는 사람들이 이 목사님에게 있어서는 마치 적들로 보여지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bridge-building leader들에게는 그들의 일할 의욕을 더욱 뜨겁게 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들은 각각의 그룹의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고 조력자가 된다. 그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그들의 관심과 노력을 하나의 초점에 맞추는데 노력한다.

 

부러움을 넘어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다른 지도자에게 주어진 은사들에 대해 부러움(또는 질투)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분의 뜻에 맞도록 은사를 주셨다. 만약 지도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력의 스타일을 무조건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만 주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나는 세계 각국을 돌아보는 가운데 여러 유형의 지도자들과 함께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번성하고 있는 교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을 감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여러 유형의 지도력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양성이 유지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에 퍼져나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지도력의 유형이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며 사람들을 인도해 나가기를 바란다.

 

- Bill Hybels, The pastor of Willow Creek Community Church in South

 

Barrington, Illinois -

 

 

당신은 어떤 지도자인가!

 

자신은 지도자 '재목'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앞에 나가 서 말하는 것도 겁이 나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끌어갈 자신도 없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장에서도 지위가 높아지면 지도자가 되어야 하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갖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될 것을 포기해 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지도력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훈련과 개발로 독특한 리더십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듯이 지도자의 기질도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지도식의 스타일은 타고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바울과 바나바는 둘 다 위대한 교회의 지도자이지만 기질은 아주 달랐다 요한 마가의 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이 두 사람의 기질이 드러났는데(l5 : 37-38), 그러한 기질은 바울과 바나바의 리더십 스타일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구약의 왕들을 보아도 차이가 있다. 그 당시 왕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왕들이 강한 지배력을 보였지만 여호사밧 같은 왕은 비교적 민주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다(대하 l7- 20).

 

이렇둣 사람의 기질과 관련 있는 리더십의 스타일은 선천적인 것으로 그 스타일은 지도력을 발휘할 때 나타난다. 흔히 지도자를 정형화시켜서 자신에게는 리더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엄밀히 말한다면 리더십이 있다 없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어떤 종류의 리더십이 있는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압도하는 힘을 가진 카리스마형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어떤 힘을 가진 사람이다. 언변이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역사에 나타난 독재자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충이 먹어 죽었던 헤롯 왕이 좋은 예가 된다(l2 2l-23).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 교회나 커다란 기업을 이끄는 데는 이런 형의 리더십이 유리하다. 지도자에게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복종을 요구할 경우가 있는데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게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며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2. 모든 면에서 탁월한 지휘자형

둘째는 지휘자형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지식과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다. 매사에 막히는 것이 없으므로 자 신감이 있고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으며 목표를 총체적으로 보고 이끌 수가 있다.

오늘날 직장에서는 이런 형의 리더십이 가장 인정을 받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형의 지도자들 밑에서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주눅이 들거나 수동적으로 되기가 쉽고 창의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지도자들은 따르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이 자라고 세워지도록 때로는 지도력을 유보하는 지혜와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3. 솔선수범으로 함께하는 코치형

이런 스타일의 지도자는 자신이 솔선수범하며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 축구나 야구의 코치들처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도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하게 요구 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형의 지도자들이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형의 지도자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거나 사람들을 그 목표로 이끌고 가는 데는 부적합하다. 그러므로 항상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비전을 잃지 않도록 자기훈련을 해야 한다.

 

4. 뒤에서 밀어주는 상담가형

상담가형의 지도자는 앞에서 이끌어가기 보다는 따르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보살피면서 뒤에서 미는 식으로 이끌어간다. 사람들을 무리로 보기보다는 인격적으로 대해주기 때문에 소그룹을 인도하는데 적합하다. 그러나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크므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이루는데는 부적합하다 이런 형의 지도자는 개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전체의 방향이나 전체가 추구하는 목표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민주적인 위임형

이런 형의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많이 위임해서 그들을 통해서 전체를 이끌어간다. 이들 밑에 있는 유능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지도자와 팀웍을 이루게 된다.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라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런형의 지도자가 점점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와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거나 지도자가 책임감을 잃게 될 경우 조직이 크게 혼들릴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지도력의 유형을 보면 각 사람이 어떤 유형에 속할지 자신은 어느 유형에 속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한 유형에만 속하지 않고 두세 가지 유형이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유형으로 규정하기는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맞는 유형을 찾다보면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나 자기의 지도력의 유형을 이해하게 되면 지도자를 따르는 데나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다양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때 유형이 틀이 되어서 약점을 고치고 자신을 더욱 개발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타고난 기질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기질을 얼마든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발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출처: 일하는 제자들 9509

 

지도자는 만들어진다

 

성경 속의 지도들 성경에 소개된 지도자들 중에 위대한 사람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주저하지 않고 모세를 꼽을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지도자로 삼으시는 과정을 보면 본래부터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 `재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면 그는 결코 타고난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4 : l, lO, 13참고).

 

러나 그가 수백만의 무리들을 사십년간 지도했던 것을 보면 요즈음 지도자에 대한 책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듯이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는 그를 붙잡아서 지도자로 세우셨고 그를 40년 동안에 걸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만드신 것이다.

 

여호수아의 경우를 보면 그 사실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모세의 시종으로서 근 사십년 동안 모세의 비서 역할을 했다. 그는 자신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이 자기를 택해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삼으려고 했을 때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이런 초기의 그의 모습도 결코 지도자 ` 재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도자를 잃고 당황해하며 잔뜩 겁을 먹은 그에게 하나님은 확신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면서 지도자로 세웠으며(1),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과정을 통해서 그를 지도자로 만들어가셨던 것이다(4:14 6:27참고). 이 두 사람의 예를 보더라도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알 수 있다.

 

이 원리는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이제 우리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지도자로 세우실 수 있다는 사실과 우리 자신이 인식을 하든 못하든 우리 안에 지도자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도자 감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지도자로 세우실 수 있음을 인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언젠가 어떤 위치에서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대비해서 리더십을 개발해야 한다. 성경은 리더십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수많은 지도자의 사례를 통해 지도자에게 필요한 요소들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그 중에서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지도자의 모습이 가장 포괄적이며 실제적으로 도전이 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리더십의 핵심은 마 20: 25-27에 요약되어 있다.

 

이렇게 지도자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자신의 말대로 사람들을 섬기되 죽기까지 했던 것이다. 여기서 종이 된다 함은 종의 위치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자세를 가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섬겼다(2 5-7). 오늘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바로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적인 지도자 (leader)는 사람들을 자기의 뜻대로 장악하려는 통치자(Ruler)가 아니며 단순히 사람을 관리하는 관리자 (Manager)도 아니다. 섬기는 자세로 이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았던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가 이 땅에서 섬기는 지도자로서 보여준 여러 영역에서의 모습은 오늘 크리스천들이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첫째,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작은 동네에서 활동하셨지만 그의 머리에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칠 때도 질병을 고칠 때도 하나님 나라가 사역의 근거가 되었다,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그들에게 사역을 맡기실 때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근거로 하셨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커다란 비전을 추구하신 것이다. 지도자는 멀리 넓게 내다보아야 한다 직장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크리스천 직장인은 바로 이런 비전을 소유해야 한다.

 

둘째, 영적으로 늘 깨어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항상 하나님과 연합하는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새벽 미명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l :35),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6:l2).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능력을 행하실 수 있었지만 제자들에게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 9: 29).

 

영적인 생활은 항상 그의 사역보다 우선했다(5 : l5-l6). 오늘 많은 지도자들이 무언가 많은 업적을 이루려다가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는 것을 본다. 오늘날 우리가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원한다면 예수님에게서 기도의 본을 받아야 한다. 어떤 다른 능력보다도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서 얻어지는 영적인 능력을 소유할 때 지도자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셋째, 사역의 중심은 사람이었다.

 

예수님에게 사역이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섬기고,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부리고 이용하는데 비해서 예수님에게는 사람 자체가 그의 프로젝트였다. 또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데도 세상적인 기준으로 뛰어난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더 찾으셨으며(2: l7) 그 당시 사람들이 무시했던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셨다. 사업과 돈. 개인의 성취와 업적이 성공의 기준이 되는 오늘 사회에서 참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예수님의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인격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그러면서도 종교 지도자들의 불의와 죄악은 엄격하게 꾸짖으셨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 겸손의 본을 보이시고 겸손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면서 자기를 부인한 제자를 끝까지 참으시고 용서해주셨다 그가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인격적인 탁월함 때문이었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권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인격적인 결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정치 지도자들이나 기업의 지도자들은 물론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인격적인 결함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잃게 된다. 반대로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을 보면 개인의 능력이나 그가 이룬 업적보다는 인격이 남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격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

 

다섯째, 모범이 되는 생활양식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셨다. 공생애 동안에도 머리 둘 거처가 없었으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는 초라한 나귀를 타셨으며 죽을 때도 남의 무덤에 묻히셨다. 물질적인 풍요가 성공의 기준이 되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도 이런 모습의 지도자가 더 권위를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다.

 

사람들은 풍요를 누리는 사람을 부러워 하지만 그런 사람을 반드시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풍조를 거스리는 지도자는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 예수님은 이상의 다섯 가지 영역에서 온전한 지도자로서의 오습을 보여주셨다. 이제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그를 닮아가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다 목회자가 되지는 않지만 어떤 영역에서든지 지도자가 준비는 해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 직장인이 직장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을 수는 없지만 어떤 위치에서건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 다섯 가지 영역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출처: 일하는 제자들9509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엠 그리핀(Em Griffin)

 

하나님의 백성, 어떻게 이끌 것인가?

지난 사십 여 년 동안, 나는 공동체 리더십(group leadership)에 대해 다양만 각도에서 관찰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공동체와 함께 지내온 나의 인생여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지도력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감각을 개발시켜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리더십에 관한 교훈들이 풍부하다. 그 중에 내게 큰 감동을 준 성경의 지도자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리더십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당신도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 : 소수와의 친밀함

지도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경영학의 전형적인 가르침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질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또 친한 사람에게 지시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조언을 무시하셨다. 그분은 총애하는 사람을 두셨다.

 

예수님께서는 열 둘을 택해서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고 그들과 더불어 생애의 반을 보내셨다. 나아가, 열 둘 가운데 핵심적인 세 사람 즉,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셔서 변화 산의 찬란한 영광의 자리에 함께 있게 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의 절망의 심연에 그들이 함께 해주기를 원하셨다.

 

지도자가 고독하다는 것은 실존적 문제이다. 나는 고독의 문제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두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한다든지, 바란다든지, 하고 싶다는 말을 쓰지 않고 필요하다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지도자에게는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염려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약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의 강점이었다.

 

이사야: 자원함

나는 이사야가 그를 부르신 소명에 반응한 태도를 좋아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성전에 가득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셨다. 위엄에 눌린 예비 선지자는 자신의 죄와 무능에 압도당했다. 하나님은 핀 숯을 가진 천사를 보내셔서 이사야가 죄책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켜 주셨다 (다행히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 입술을 지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의 보증을 얻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이사야에게는 머뭇거림이나 체면을 차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완곡하게 저항한 흔적도 없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외쳤다. 이사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을 드렸다.

 

베드로: 수많은 실수를 덮는 열심

나는 허세를 부리는 어부 베드로를 좋아한다. 그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어색한 순간에 항상 엉뚱한 말을 했다. 예수께서 그의 발을 씻으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다음에는 온몸을 씻어 달라고 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채 언덕 위에 초막을 짓자는 어리석은 제안을 불쑥했다(9:5-6).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깊이 상처를 받으신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책망하셨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고 잠들었었다. 물론 그런 후에 큰 실수를 저질렀다. 계집종이 쳐다보는 작은 압박에 몰려 주님이 발코니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분을 부인했다.

 

이러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흥하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왜일까? 베드로에게는 주님과 주님의 일에 대한 불붙는 열심히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그물에 가득한 고기들을 내버려두고 떠났던 사람이 베드로였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베드로만이 선뜻 대답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로 결정했던 바로 그 적대적인 유대지도자들 앞에서 베드로는 대담하게 선포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4:19-20).

 

느헤미야: 조직화하는 솜씨

느헤미야는 바벨론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으로서 능력 이하의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일을 맡은 첫날 왕국의 술 창고를 정리하는 느헤미야를 머리에 그릴 수 있다. 술들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연도와 산지에 따라 쌓여지고 각 병들은 재고 목록에 대조표시가 된다.

 

느헤미야는 조직의 명수였다. 애국자였던 이 유대인은 많은 지도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비밀을 알았다. 사소한 일이지만 최선을 다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는 탁월한 봉사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왕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을 했을 때 왕은 거절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황폐한 성읍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담되어 있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조기 경계경보를 포함한 방어체제를 구성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 손에 창을 들고 한 손에 삽을 들고 일했다. 52일 후에 성벽이 완성되기까지 한시일도 일은 중단되지 않았다.

 

조직이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조직이 없으면 확실히 많은 일들이 좌절될 것이다. 담당해야 하는 일에 관련된 모든 사소한 일을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시스템을 사용할 것인가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좌우지간 하나의 시스템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사용하지 않을 때)항상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 크기의 스케줄 관리수첩 이다. 그 스케줄 관리 수첩과 일 처리해야 하는 업무목록이 내가 이용하는 조직화의 핵심이다. 우리가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일을 다루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지 해야만 한다.

 

호세아: 취약성(Vulnerability)이 가진 힘

젊은 시절에 나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비웃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 소망을 압도해 버렸다. 이러한 이중의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나로 하여금 말문을 닫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나의 약점을 드러내어 나에게 불리하게 사용하도록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무엇이 나를 변화시켰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허세를 떨지 않는 몇몇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나를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실제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뒤죽박죽된 행동의 동기를 인정하고 내 속에 일어나는 의심들을 솔직히 이야기하며, 때때로 산산이 부서진 꿈을 모두다 털어 내 놓으려고 노력했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비웃기는커녕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 내가 나를 열어 보여 남들이 내게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었을 때 첫 인상에서 잃어버린 것의 두 배나 얻었다. 나는 체면을 차리는 것보다는 마음을 열고 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세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창녀와 결혼하도록 명령하셨다. 성읍내의 모든 백성들은 고멜이 매춘부였다는 것과 결혼증서가 그녀의 기본적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호세아는 고멜에게 버림받았고 성읍 백성들에 의해 공개적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계속하여 고멜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했다. 호세아는 무조건적 사랑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님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응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모든 연약함의 흔적들을 감추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동료들이 지적하는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는 편이 더 쉽다.

 

아모스: 약한 사람들의 옹호자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공동체의 구성원 중에서 지적이고, 명확하고, 부유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필요에 더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약자를 사랑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야말로 리더십과 특별한 관심과 보호와 지도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사회의 건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탁월한 지표는 비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왕과 제사장 아마샤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백성들이 자행하는 불의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도록 도우려했다. 그는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2:7). 그는 돌려서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4:1; 6:4).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며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5:21, 24).

 

아모스는 실패했다. 이스라엘의 권력구조는 갖지 못한 자들을 돌보라는 가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에 충실한 것이 리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 때가 있다. 리더는 지도할 수 있다. 따를 의무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아비멜렉: 온전함

지금 제시하고 있는 경건한 지도자들의 목록에서 사라를 후궁으로 취할 뻔했던 아비멜렉이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랄 땅에 도착했다 (20). 그들은 왕에게 사라가 그의 누이라고 말했지만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아비멜렉은 사라를 데려 왔지만 그가 그녀를 가까이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셨다 (20:3). 그러나 아비멜렉은 강력하게 항변했다.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20:5).

 

하나님께서는 동의하셨지만 그가 사라를 급히 돌려보내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되돌릴 뿐만 아니라 그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은 천 개를 주고 사용료 없이 그랄 땅 어느 곳에나 거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이것이 합당치 않은 대접을 받은 사람들의 품위 있는 반응이라고 본다.

 

아비멜렉은 온전함으로 행했다. 온전함이란 주변의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우리가 보여주는 공식적인 행동의 진짜 이유를 숨기지 않고 나누는 것이다. 온전함은 모든 기본적인 문제들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쳐야만 한다.

 

바울: 전염성 있는 확신

사도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12:3)고 했다. 많은 지도자들이 그 말을 오해하여 공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고, 성공의 맛을 느낄 때마다 남몰래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자랑할 이유가 있으면 자랑한다. 바울도 그랬다. 나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지도권을 넘어뜨렸을 때 보인 담대한 접근 방식에 매료되었다. 바울은 아주 긴 논쟁을 통해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표지들을 과시한다(고후 10-12). 바울은 자신이 파선되었고, 죽을 뻔했고, 매를 맞았고, 예수님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받았고, 자비량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그들이 찾아갈 수 있는 어떤 영적 조언자보다 자신이 자격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소명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을 의심하는 것이다.

 

나는 리더십에 있어서 자기 확신보다 더욱 필요한 덕목을 알지 못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확고한 걸음으로 출발하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확신을 건방진 것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건방진 것은 무감각이나 상상력이 결핍된 결과이다. 확신은 당신이 어떠한 장애물이건 극복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으로부터 나온다. 확신은 온화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부터 올 수 있다.

 

확신은 매일의 과업을 잘 처리하는 경험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확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분의 뜻을 행하도록 역사하셨다는 사실과 그분의 능력 안에서 당신은 실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지 확신은 낭비되어서는 안될 귀한 자원이다. 확신을 즐기도록 하라!

 

예수님: 섬김이 극치를 이룰 때가 리더십이다.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이용한다. 그들은 구성원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득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손에 수건을 들고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3-15) .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는 말씀이 성만찬의 실천을 위한 명령인 것처럼 발을 씻기라는 말씀 역시 우리가 실천해야 할 똑같은 명령이다. 우리는 성찬식을 기념한다. 하지만 세족식은 거의 잊혀진 문화이다. 물론 우리는 먼지 이는 길을 샌들을 신고 걸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봉사에 대한 기본적이고 고귀한 상장이다.

 

우리가 우리들이 선호하는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섬김을 받는 자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섬김의 리더십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권력이 가진 특권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이것이 특히 쉽지 않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러하셨는지 궁금하다.

 

말한 것과 행한 것

 

내 사무실에 입을 쫙 벌린 하마가 그려진 포스터가 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했을 때, 이룬 일보다는 이루지 못한 말이 훨씬 더 많이 존재하게 된다(When all is said and done, there's a lot more said than done)" 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 말을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적용해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나나 다른 지도자들이 하루나 이틀 동안 공동체와 함께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것이 수 천 마디의 글을 읽는 것보다 더 낫다. 그러면 당신은 그 충고에 어떤 지혜가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친구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엠 그리핀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연극을 보았다." 내 친구가 표현한 말은 그것 자체로 끝을 맺기에 나쁜 생각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공동체를 이끌려고 애쓰고 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답을 찾기 위해 이 글을 다시 읽지 말고 당신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눈을 돌려 그들에게 물어보라. 리더십은 단독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공동체 속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그들을 움직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리더십이란 단지 공동체 구성윈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엠 그리핀은 위튼 칼리지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리노이주 글렌 엘린 제일 장로교회에서는 집사로 섬기고 있다. 이 글은 Lay Leadership, Volume 3(1989), pp 44-50에서 발줴한 것이다. -- 평신도를 깨운다 34

 

어거스틴의 리더십 모델

 

지도자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세는 자신을 살피는 것(self-watch)이다. 지도자는 항상 남에게 노출되어 있으며 자기의 것을 남에게 주는 입장에 잇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대중들의 눈에 가장 선명하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지도자, 존경 받는 지도자는 항상 자신을 살피면서 약점을 보강하려 하나 그렇지 못한 지도자는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고집하며 그것을 미화시키고 합리화시킨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음식을 잘 취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젖을 먹는 어린 자식을 위해 좋은 음식을 공급한다. 성실한 목자는 양들이 배고플 때 조금이라도 더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해 초장으로 찾아다닌다. 지도자는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양을 위한 존재다. 자고 깨로 일하는 모든 삶이 모두 양들의 양육을 위해서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필요를 양들의 필요보다 더 생각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양을 치는 목자는 그 결과로 얻어지는 자연적인 소산으로 먹고살기 때문에 양을 잘못 치면 그 소득도 역시 차이가 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히포(Hippo)의 감독 어거스틴(354-430)은 자신을 잘 살피는 지도자(selfwatch)였다. 그는 자신을 깊이 살핀 결과 하나님을 더 사랑(affection to God)하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책임 (accountability to man)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어거스틴의 서신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의 열정적인 추구가 나타났다. 첫째는 기도이며, 둘째는 성경 읽기이며, 셋째는 고백이었다. 그의 기도와 성경 읽기와 눈물의 고백이 어거스틴을 성자로, 또는 영적 권위자로 만들었다. 그는 지혜와 열정과 그리고 참회를 통해서 사랑하는 양들을 항상 돌보았다. 그는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고백과 참회, 그리고 경건한 목회와 사랑의 책임감으로 항상 양들을 돌보았다.

 

어거스틴의 두 번째 자신에 대한 살핌은 겸손한 인간관계(relationshp)이다. 그의 많은 편지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를 항상 부탁했으며, 충고, 교정, 용서 등을 부탁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양들을 위해 간절히 원했던 것은 welfare(복지, 건강)였다. 그는 목회의 범주를 교회에만 제한시키지 아니하고 그의 동료 감독(bishops)과 특별히 관심을 가진 개인들에게까진 확대시켰다.

 

오늘날 교역자들의 경향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는가? 기도는 몇 시간하며 성경은 몇 장이나 읽고 회개와 고백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기도와 성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행정, 프로그램 계획, 컴퓨터 작동, 세미나 계획 등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동료 교역자나 이웃교회 교역자, 한 지역, 한 노회, 한 지방, 한 교단 내에 교역자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이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를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의 경쟁자이기 때문이 아닌가.

 

어거스틴은 동료 감독을 위해 깊은 기도를 했다고 했다. 어거스틴의 리더십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과 둘째는 사람에 대한 목회자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 광야 9902

 

 

변화의 원리와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

 

1. 변화의 원리

올바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설정된 방향으로 마찰 없이 가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그 조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들은 그 변화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변화의 방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드러커(Drucker)"이해하게 되면 비록 일치하지는 못하더라도 연합은 할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족할 때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변화를 이끄는 사람은 불만을 비난으로 보지 말고 변화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할 기회, 참여할 기회, 정보를 얻을 기회들을 주어야 합니다. 변화를 자기의 것으로 느끼게 하고, 책임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책임의식을 가질 때 그 기관은 갱신과 변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게 할 것입니다. 변화와 혼란은 갱신과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는 변화와 혼란의 시대에 오히려 번성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변화를 주도하는 지도자의 리더십

첫째로, 지도자의 리더십은 실천을 통해 발휘됩니다.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는 항상 '솔선수범'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군대의 지휘관은 항상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합니다. 부하들에게 '가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는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항상 읽고, 듣고, 방문하고 관찰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사람들의 일터나 가정을 방문하기도 하며, 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끌어야 할 사람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강한 지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로, 변혁적 지도자는 추종자로부터 권위를 획득합니다.

 

현대의 리더십 이론에서는 권위가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따르기로 결정한 사람만을 따르는 법입니다. 권위란 신뢰이며 확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인격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예수님의 지도 스타일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 리더십 이론의 최신 경향입니다.

 

넷째로, 변혁적인 지도자는 적대적인 상황을 초월합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강해집니다. 그래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바로 적대적인 상황입니다. 번영과 평화와 안정이 보장될 때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진짜 변화는 위기와 적대상황에서 이루어집니다. 변혁적인 지도자는 적대상황을 극복합니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능동적으로 일을 주도하고, 실행하고, 위험을 감수합니다.

섯째로, 주도적인 지도자는 축적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를 통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면 문제점과 그 해결점까지 보입니다. 물론 해결점들은 성경의 기준과 도덕의 원리에 의해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관의 요구사항, 비용, 모집된 자료들에 근거해서 검토해야 합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로 들어가면서 변화의 폭풍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 변화는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격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회의론자는 '교회와 기독교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로마의 칙령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박해와 변화의 폭풍 속에서 더욱 강하게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전개 될 변화무쌍한 21세기는 교회에게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가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말입니다. 자 이제 시작하십시오. - 교회를 향한 제3의 물결 (기독신문사, 1998) 중에서

 

교회 지도자의 임무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리더십에 대하여 자세하게 일러준 일이 디모데전서 3:1-7에 기록되어 있다. 문제의 동기는 에베소 교회가 지도자부재 상태로 있는 동안에 거짓 선지자들과 이상한 교리들이 침투해 들어와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이단 사상과 사이비 신앙의 위험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제시되고 있다.

 

신약 시대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servant leadership'이다. 개 교회 내에서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기의 역할에 대해 섬기는 자의 자세를 가졌는가에 따라서 그 교회는 그만큼 건강해지고 말씀 안에서 더욱 성숙해진다. 교회의 질은 교회 지도자의 섬기는 태도에 달려 있다.

 

아래에 성서적 지도자의 임무에 대하여 소개해 본다.

 

1. 인도(lead)

교회 지도자는 목자로서 양들보다 앞장서 감으로 양들이 그 목자가 가는 곳을 따라가게 한다. 목자가 풀밭으로 가면 그리로 가고 물가로 가면 그리고 따라간다. 만약에 목자가 황무지로 간다고 해도 양들은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는 행동 하나 하나와 생각과 말들 양들이 듣고 보면서 따라간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미국 서부 활극에서 나오는 소몰이 목동들은 소들의 위에서 말을 타고 위협을 가하면서 소를 앞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교회지도자는 이런 소몰이꾼이 아니다. 신자들을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해 뒤에서 몰아치며 힘을 가하는 자가 아니다. 교회 지도자는 양을 치는 목자로서 항상 양무리의 앞에서 양들이 순종하며 따라오게 하는 앞서가는 지도자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을 둘로 구분한다면 하나는 양을 치는 목자요, 또 하나는 목장에서 소를 모는 소몰이꾼이다.

 

2. 갖추게 한다(Equip)

교회 지도자는 자신만을 위해 배우고 훈련받는 것이 아니다. 교회 지도자는 자신은 물론 신자들보다 앞서 훈련받고 배우고 영적으로 더 강하게 무장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양들을 영적으로 무장시켜 어떠한 하나님의 일을 맡겨도 해낼 수 있도록 자격을 준비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설교를 통하여 총괄적인 무장을 시키고, 성경공부, 기도회, 봉사사역을 통해 구체적인 훈련을 시켜야 한다. 신자들이 흥미를 갖지 않는다고 내버려두면 어느 사이에 모두 세상과 마귀, 이단에게 도둑 당하고 만다. 지도자는 각 개인에 맞는 적절한 도전을 주어 동기 유발을 시킬 줄 알아야 한다.

 

3. 방어(Protect)

초대교회는 거짓 선지자와 이단,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기 때문에 사도들의 중요사역 중 하나가 신자들을 이단과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신앙을 방어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도 교회 주변에는 신비주의 신앙과 각종 이단들,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그릇된 신앙을 유포시키는 자들이 가끔씩 있는 것으로 보아 교회 지도자는 순진한 교인들의 영혼을 모든 비신앙적 세력으로부터 보호할 목자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4. 목양(Shepherd)

교회 지도자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양을 치는 것이다. 양이 살찐 꼴을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충분한 휴 식을 취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양들에게 영양을 줄 수 있는 풀은 어떤 풀인가, 어느 곳에 물이 있는가, 또 사나운 짐승은 없는가, 그늘은 어디가 좋은가, 지형은 안전한가, 기후는 적절한가, 길은 험하지 않은가, 잠잘 곳은 완전한가 등 모든 면에서 전문적 지식과 기술, 경험을 필요로 한다.

 

현대교회만큼 교회가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 때 일찍이 없었다. 위와 같은 4가지는 기본적인 임무다. 목사가 이 네 가지 일에 얼마만큼 섬기는 자세로 충실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의 질이 달라진다. - 광야 9906 중에서

 

높은 사다리에만 관심 있는 지도자

 

소위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 곳에서든지 감투만을 기대한다. 거기에 사로 잡히다보면 웬만한 직책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고 크고 높은 것에만 군침을 삼키고 있다.

 

진정한 영적 지도자는 Servant leadership(종 같은 지도자)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의 리더십이 곧 종 같은 지도자이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일을 했는데 우리 인간들이 어찌하여 높아지려고 하는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한심스럽다. 오늘도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 계층들을 보면 참으로 비신앙적인 방법으로 총회장이 되고 기타 단체장이 되는 것을 본다. 이는 참으로 영적 지도자가 아닌 세상 지도자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타락한 선거를 했기 때문에 세상 지도자들이 돈 선거, 타락 선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가 먼저 바르게 서야 세상을 향하여 호된 경고를 할 수 있겠으나 교회가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부정을 보고도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으니 교회는 이미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르스 맥니콜(Bruce McNicol)이 지적한 대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사다리를 어떻게 올라갈까 하고 열망만 했지 맨 아랫단인 인격과 덕망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라간 후에 아랫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직위만 높아지려고 했지 덕망과 인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한국사회요 한국교계의 일부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직위를 얻는 것은 쉽다. 대학을 나오고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줄만 잘 잡으면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내적 인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 지도자는 모든 성도들을 섬기기 이한 직분이지 세상지도자와 같이 섬김을 받는 직책이 아니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임할 때 예수님의 비서실과 경호실장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좌우 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 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10:40)고 하셨다. 이에 대한 다른 10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대해 분하게 여겼다고 했다.

 

세상적인 권력 쟁탈과 명예욕은 반드시 적이 있고 중상모략이 따른다. 그 이유는 서로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지도자 철학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3-45)이다.

 

그러나 요즘 교회사회는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당시 12제자들은 거의 다 세상적인 출세를 엿보고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그런 마음을 품고 서로 시기 질투의 언쟁을 눈치 채시고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 한 것이 무엇이냐"(9:33)라고 물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총회가 가까워오던지 지방회나 노회가 가까워 오면 그들 제자들과 같은 토론을 여지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9:34)라고 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9:35)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지도자는 섬기는 지도자다. 그러나 제자들은 섬기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 세속적 지도자 상을 항상 생각한 것이다. 그들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오늘날 교계는 조금도 차이 없이 당시 12제자들의 권력 쟁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Servant leadership"은 하나의 학문이나 이론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교회 지도자들의 하루하루의 삶의 철학이요 신앙의 고백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다리는 올라가는 길도 제공하지만 내려오는 길도 제공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광야 9904 중에서

 

꿈을 가진 지도자와 평범한 지도자

 

미국이나 한국 교회사를 보면 목회를 특출하게 잘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같은 목사이지만 어느 구석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게 있다가 은퇴하고 마는 평범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목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과연 어떠할까?

미국에서 교회 연구가로 가장 이름이 나 있는 죠지 바나(George Barna)가 미국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을 조사한 결과 불과 2%정도만이 꿈을 가진 리더였고 나머지 98%는 그저 평범한 지도자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와 같은 평가기준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바나의 기준은 사다리로 비유해서 2%는 사다리의 제일 높은 곳에 있고 나머지 98%는 제일 아랫단에 있다고 표현했다.

 

오늘날 기독교는 탁월한 지도자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1세기에 몇 명 나오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차라리 현실적으로 필요한 지도자 상인 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탁월한 지도자는 은사와 기질에 관계되기 때문에 아무나 되지 못하지만 꿈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계는 꿈을 가진 지도자들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꿈을 가진 지도자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뛰는 사람이며 자기성숙을 위해 노력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바나는 이 조사를 통해서 탁월한 지도자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은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목사로서 2%는 꿈을 가지고 더 높이 더 많이 일하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라고 규정했고 나머지 98%는 평범한 지도자로서 그날그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만 관심을 갖는 그런 보통의 사람들의 범주로 넣었다는 것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바나의 평가기준은 계속적인 성장(Consistent grwth)에 둔 것이다. 예를 들면 100명의 교회가 어느 날 5,000명 교회가 된 것이 꿈을 실현한 지도자가 아니라 100명의 교회가 1년 후에 10명이나 120명이 되면 그는 꿈을 가진 지도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수천 수만의 교회가 이 정도로 성장한다면 1년 후에 전체적인 교인 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을 가진 지도자는 현실적인 지도자요, 이익을 남기는 지도자이지 특출한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목사에게 각기 나름대로의 지도자적 자질과 그 책임을 주셨다. 그러나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한 편은 꿈을 가지고 계속적인 노력을 하여 2달란트, 5달란트를 남기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편은 1달란트를 가지고 골머리만 쓰다가 끝나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인가 더 나은 교회 더 많은 사역을 창출하기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그런 지도자는 "Visionary"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Ordinary"이다. 하나님은 어느 편 사람을 더 지원하고 이끌어 주실까? 목사가 되었다고 다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기도하면서 신령한 꿈을 키우고 꿈의 실현을 위해 한 평생 성실하고 진실하게 뛰는 사람만이 꿈을 가진 지도자요 칭찬 받는 지도자이다. - 광야 9909 중에서

 

건강한 소그룹 지도자의 6가지 습관

 

"배가(倍加)"이라고 불리는 칼 에버렛 (Carl Everett)씨는 자신을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인도하는 소그룹을 6배나 배가시켰다.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어떻게 당신이 이끄는 소그룹을 여러 배 배가 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또 기도하십시오"

 

(Carl)과 그의 아내 게이널(Gaynel)은 루이지애나에 있는 베다니 세계 기도센터에서 소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들이 소그룹 인도를 위해 준비하는 내용에는 소그룹모임이 이루어지는 날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모임 전 그들은 나눌 음식, 통로들과 마당, 집안의 모든 방, 심지어는 그날 밤 사용될 각각의 의자들까지 위해서 기도한다. 베다니에서 에버렛 (Everett)씨와 같이 소그룹이 성장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하루 동안의 금식과 기도가 다른 소그룹들은 침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소그룹은 복음이 확장되고 새로운 그룹을 탄생시키는 유일한 이유인가? 나는 해답을 찾아 헤매며 소그룹으로 유명한 여덟 개의 교회들을 방문했다. 700명 이상의 소그룹지도자들이 훈련, 사회적 위치, 헌신, 교육, 자료준비, 연령, 영적은사,성별 등과 같은 영역에 응답하는 29가지 항목의 설문지를 작성했다. 통계학적인 분석은 다양한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건강한 소그룹

 

지도자들은 자신의 삶에 특정한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1. 하나님과 깊고도 지속적인 만남 나는 대통령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와 당신을 만나 매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하신다. 그분은 왕중의 왕이시오, 만유의 주시다.

 

건강한 소그룹 지도자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과 함께 끝난다. 하나님만이 성공을 주실 수 있다. 내가 소그룹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얻은 명백한 결론은 하나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성공적인 소그룹 지도력의 배후에 숨겨진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소그룹 지도자는 공동체 속에 있는 상처 입은 구성원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 놓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 어떻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렇다면 왜 소그룹 지도자들은 이 시간에 철두철미하게 우선순위를 두지 못하는 것일까? 적어도 세 가지의 장애물이 존재한다.

 

가장 우선되는 첫째 장애물은 졸음이다.

 

우리들 모두는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갖는 동안 졸음과 싸웠다. 나는 이른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가지라는 데이비드 조의 조언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잠자리에서 뛰쳐 일어나세요!" 잠자리에서 드리는 기도는 너무나도 쉽사리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잠자리에서 기도하는 대신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필요하다면 커피를 한잔 마시거나 조깅을 하라. 피가 흐르게 하라.

 

또 하나의 장애물은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친구는 지난 밤 내가 해준 조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세차를 언제하지?"...의 생각과 싸우다가 말아버린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주여, 나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 이 우리로 승리하게 하는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골방"에서 당신의 생각을 다스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점이다.

 

맥도날드에서나 찾아야할 인스턴트 멘탈리티를 버려라. 하나님을 깊숙이 들이키려면 깊은 묵상안에서 시간을 보내야한다. 시편기자가 노래했던 것처럼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 ( 42:7). 개인 경건의시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행복감을 느끼지도 못하며 하나님의 만져주심을경험하지도 못한 채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한번이나 두 번의 짧은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2. 균형잡힌 가정생활

모든 상황에서 성공의 기미가 보였다. 소그룹들은 배가되고 있었다.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고 구속하심과 치유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스텝들이 말했던 것처럼 많은 소그룹 지도자들이 개인적인 삶의 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져 갔다. 소그룹 지도자들은 주중의 매일 밤마다 바쁘게 섬겼다. 어떤 목사님이 물었다. "소그룹 사역은 잘 감당하지만 가정사역에서 실패한다면 모순되지 않나요?" 옳은 지적이다.

 

건강한 소그룹 지도자의 삶에서 가정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님께서는 소그룹 지도자로서의 우리의 효과성을 극대화시키기 원하신다. 그러나 가정생활을 희생시키면서 그 목표를 달성하려 하지는 않으신다. 소그룹 사역은 가정사역이며 당신의 가족을 더 친밀하게 결속시켜주는 수단이다. 당신의 가정을 당신의 소그룹 사역의 한복판에 두는 것이 가장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의 가족 중 10대 자녀는 어린이 소그룹을 지도하거나 예배를 인도할 수 있다. 당신의 자녀는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시키는 해결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아내 셀리스와 나는 소그룹에서 팀으로 함께 사역한다. 아내는 모임을 시작할 때의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감당하며 간식을 준비한다. 나는 예배와 성경공부를 준비한다. 그녀가 그룹을 이끌어갈 때는 내가 두살박이 딸을 돌보고 내가 사역을 감당할 때 는 그녀가 아이를 돌봐준다.

 

소그룹 모임 후 우리는 그날의 소그룹 모임을 분석 평가한다. 한번은 셀리스가 이렇게 말했다. "죠엘, 당신은 아이네즈에게 좀 더 너그러워야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녀가 말을 너무 많이 했지만 그 상황을 좀 더 잘 이끌고 갈 수 있었어요." 나는"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의 말은 내가 들어야할 필요가 있는 충고였다. 함께 소그룹을 목양하고, 매번의 모임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열린 토론을 하고, 각자가 관찰한 내용을 나누고 함께 이끌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부부의 친밀감은 그 강도를 더해갔다. 물론 이런 솔직한 피드백은 우리가 성숙한 소그룹 지도자로 자라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3. 리더십 개발

 

죠지 휫필드와 죤 웨슬리는 17세기 영국에서 살았던 동시대 인물이다. 그들은 옥스퍼드 대학 내에서 조직된 소그룹에서 함께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다. 두 사람 모두 야외 설교에 탁월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사역을 통해 수천 명의 회심자를 얻었다. 죤 웨슬리는 10만 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를 남겼지만 죠지 휫필드는 사역을 마감할 때 쯤 확실한 열매를 그리 많이 맺지 못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웨슬리는 훈련을 통해 소그룹 리더를 배출하는데 헌신했지만 휫필드는 설교하고 사역을 감당하는데 너무 바빴다.

 

소그룹을 이끄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당신이 소그룹을 견습 지도자에게 넘겨주고 떠날 때 당신이 이끌던 그룹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 소그룹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마무리될 것인가? 당신이 떠나온 소그룹들을 회상해 볼 때 당신의 지도력에 대해 기쁨으로 회고하게 될 것 같은가 아니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 미미한 열매를 얻었기에 당황하게 될 것 같은가?

 

우리는 모두 긴급한 일의 횡포에 대해서 알고 있다. 소그룹 모임은 세부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간식을 가져와야만 하고 어떤 사람은 차편이 필요하고, 등등 필요한 준비사항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그룹 지도자들은 예배 찬양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 전화, 방문 등등으로 인해 압도당할 수 있다. 모든 일들을 즉각적인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은가? 바쁜 생활 중에 우선순위가 세워져 있는가? 소그룹 지도자는 "이 일을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성공적인 소그룹 지도자들은 현재의 긴급한 일을 넘어서서 새롭게 태어날 소그룹들의 중요성을 내다본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성공적인 소그룹 지도자들은 새로운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데 우선적으로 시간을 투자한다. 새로운 지도력을 육성하려는 이와 같은 열정은 성공적인 소그룹 지도자들이 잠재적인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도록 이끌어진다. 결과적으로 평범한 소그룹 구성원들이 꿈을 가진 지도자들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소그룹 교회에서 지도력의 성공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선발되어 훈련받고 실전에 배치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미래의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것은 성서적인 방법이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엘리야는 엘리사를 훈련시켰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뽑아 훈련시켰다. 바나바는 바울을 훈련시켰고, 바울은 디모데를 훈련시켰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룹에 미래의 지도자들을 보내주셨다. 당신은 그들을 훈련시키고 있는다?

 

4. 새로운 구성원을 초대함

미래의 지도자들을 당신이 인도하는 그룹에 참여시키는 방법은 소그룹에 초대하는 일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그룹 지도자들은 잘 참석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내던진 선의의 약속들을 들었다. "스티브는 모임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어요". "나는 참석하지 않은 네 사람을 위해서 디저트를 준비했어요."

 

전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경험이 많은 지도자들은 15명이 참여하겠다는 대답을 듣기 원한다면 25명을 개인적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8-10명이 실제로 참여하려면 15명을 초대해야 한다. 그들 중에 5-7명만이 한 달이나 그 이후까지 정기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거절하는 말을 들어도 좌절하지 말라.

 

성공적인 소그룹 지도자들은 한 두마디의 말로만 헌신의 의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초대한다. 베다니 세계 기도센터에 있는 한 그룹은 매주 신실하게 모임을 가졌지만 그렇게 성장하지 못했다. 구성원 중 한 명은 예전에 배가하는 그룹에 출석한 적이 있었다. 또 하나의 소그룹은 새로운 그룹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 그룹을 이끈 지도자는 건조하고 어려운 시기를 통과해왔다고 말했다.

 

단 여섯 사람이 불신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바른 일들"을 감당했고 방문자들을 맞아들였지만 소수만이 방문했고, 그 중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더 적었다. 그러나 그들은 극복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하고, 초대했다. 방문자들 중 몇 사람이 출석하기 시작했고 자기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이 소그룹은 좌절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혼합비율이 조화를 이루에 되었다.

 

소그룹 지도자로서 당신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초대해야 한다. 당신이 이끄는 그룹의 적당한 혼합비율이 이제 눈앞에 다가와 있다. 소그룹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은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새로 방문한 사람들은 신선한 통찰력으로 당신이 이끄는 그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초대하라. 포기하지 말라.

 

5. 심방

루이스 살라스 (Luis Salas)는 보고타에 있는 그의 아파트 입구에 크고 닳아 빠진 지도를 걸어두고 있다. "전투용 지도"는 잠재적인 소그룹 지도자들의 이름으로 차고 넘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항상 내가 이끄는 소그룹에 초대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꿈꿔요. 하루종일 그들을 생각하고 마침내 그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하죠."

 

18개월 동안 루이스는 250개의 소그룹으로 배가시켰다. 잠재적인 구성원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잠재적인 구성원들이 방문한 이후에 그들을 양육시킨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분은 소그룹 구성원들이 되었고, 나중에 소그룹 지도자들이 되었다.

 

당신이 이끄는 소그룹이 성장하고 배가되기를 원하는가? 효과적인 소그룹 전도의 핵심적인 열쇠는 방문자들과 즉각적으로 접촉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당신의 그룹에 새로 출석할 때 곧바로 심방 할 계획을 세우고, 카드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도록 하라. "사람들은 당신이 그를 얼마나 돌봐주는지를 알기 전 까지는 당신이 그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진리이다.

 

6. 자연스런 전도

새로운 구성원들은 수용적이고 사랑스런 그룹의 따뜻한 환경에서 깊이 나눌 수 있는 자유를 느낀다. "소그룹 환경"은 불신자에게 복음의 진리를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한 번의 소그룹 모임이 진행되는 동안 에콰돌에 있는 지도자인 레네나란조(Rene Naranjo)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성전을 청결케 하셨는지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했다(2).

 

토론은 유대 회당에서 시작해서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과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으로 훌러갔다. 레네는 필요할 때마다 토론을 인도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어졌다. 한 커플은 말수가 적었지만 그들에게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이 커플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부족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복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데 자유를 누렸다. 레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와 함께 기도하고, 모임이 마쳐진 후 자기를 찾아와 줄 것을 요청하고 모임을 마무리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레네 나란조는 세 그룹을 배가시켰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 새로운 소그룹들을 관리하고 지도자들에게 제자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소그룹에서 그가 상냥하게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이끌어 가는 동안 불신자들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있어 편안함을 느낀다. 당신은 불신자들을 전도대상으로 삼고 있고, 그들을 성경공부에 참여시키고 있는가? 소그룹 전도는 판에 박힌 접근을 하도록 프로그램화 시킬 수 없다. 그보다 소그룹 전도는 예수님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죄 사함의 복음을 나누는 개인적인 과정이다. 돌봄이 일어나는 친밀한 소그룹의 환경 때문에 전도가 자연스럽게 된다.

 

이런 습관들을 개발하면 그 어떤 소그룹 지도자도 그룹을 성장하고 배가하도록 이끌어 갈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그분의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 Joel Comiskey Cell Church, 7, pp14-17, (평신도를 깨운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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