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코스(창 22:12-18), 김덕선 목사
성경에는 축복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축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민수기 16장 13-1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축복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실패했어’, ‘나는 망했어’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축복의 과정에 있는 거야’라고 말하십시오.
1. 당신이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축복에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축복의 약속을 이미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4). 아브라함이 축복의 약속을 받았을 때가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창12:4). 당신도 역시 믿는 순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한 아브람이 75세에 축복의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금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어도 축복의 약속을 품는 자가 되십시오. 난 지금 75세가 넘었다고 실망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100세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요 난 100살까지 살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브라함의 축복의 약속이 자녀들에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2. 축복이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은 당신의 약점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약속을 분명히 받았지만 그 축복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과정을 허락하셨습니다. 바로 그 과정은 아브라함의 약점을 훈련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약속을 믿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한계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위대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과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 2-3절에서 나는 아직까지 자식이 없기 때문에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과 아브라함이 받고 싶은 축복의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과 당신이 받고 싶은 축복의 차이는 어떻습니까?
3.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는 만큼 축복의 약속이 연기됩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받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16장 2절에 보면 사래가 아브람에게 아무리 해도 하나님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않으니 나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는 제안을 합니다. 이때가 바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창 16:16). 아브라함은 축복의 약속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습니다.
야곱 역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축복을 이루려고 했을 때 그의 생애는 험악한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만큼 많은 시간을 걸렸습니다. 자신의 간교한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얍복강에서 철저히 꺾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주시면서 축복의 약속을 진행하셨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하나님께 놀라운 축복의 비젼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고자질하는 자신의 약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가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보디발의 집에서 억을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약점을 철저하게 훈련하셨습니다. 야곱의 그의 연약한 부분이 벗어지기까지 시간이 13년 걸렸습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고 자신의 약점이 벗어지고 축복을 누리기까지 시간이 단축되는 케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훈련시키시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으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언제나 현실적인 문제가 부딪히면 그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7장 5-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바꾸어 주시면서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고 심히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5-16절에 보면 사래의 이름도 바꾸어주시면서 네게 아들을 낳아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17-18절에 보면 마음속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나이 100살이고 아내 나이 90살인데 어떻게 자녀를 낳겠는가?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약속을 누리기보다는 현실적인 유지에 급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의 말씀은 받았지마는 자신의 삶에 행동으로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으로는 축복의 약속을 믿었지만 자신의 행동은 그대로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이삭의 나이가 15세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략 40년이 걸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 40년 동안의 교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명기 8장 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낮추시는 훈련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낮아지는 훈련을 통해서 그들이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여부를 계속 확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원망 불평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비록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켰더라면 훈련의 시간도 단축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도 어떤 문제에 대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면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훈련을 지금 잘 받고 있는가? 현실이 어렵고 마음이 상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실망이 들어서 원망 불평으로 많은 시간을 끌고 있지 않은가?
이제 과거는 어떻게 해왔든 간에 이제부터 비록 현실적으로는 어렵고 지금까지 헛되이 수고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명령에 최고로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도 이 과정을 잘 통과하면 마침내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신 8:16).
4. 당신의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분을 참으로 경외하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저는 궁금하게 생각이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축복하시면 되실텐데 왜 낮추시고 축복하는 것일까요? 신명기 8:16-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은 받은 후에 자신의 노력이나 힘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까봐 두려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축복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교만해질 것을 우려하십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축복을 받은 후에 그 공로를 누구에게 돌리는가? 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분께 영광 돌려 드리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가 잘 나서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최고의 위기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저 주신 모든 축복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축복에 도취되어 결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광야의 40년동안 그렇게 낮추는 훈련을 조상들을 통해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시고 축복하는 훈련을 통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결정적인 시험을 준비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 시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100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주신 사랑하는 아들 이삭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을 요구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아끼는 것을 내 놓으라는 요구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그토록 보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아끼는 것을 요구하실 때 그대로 내어드리는 것이 전정한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대로 준행하는 것을 말합니다(16절).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을 요구하실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의 마지막 코스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준행하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축복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마음이 온통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낮추시고 마침내 복을 주신 이유를 한 순간도 놓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스스로의 공로로 돌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축복에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십시오. 축복의 약속이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은 당신의 약점을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는 만큼 축복의 약속이 연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참으로 그분을 경외하는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하십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에게 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당신이 축복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당신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순히 축복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축복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한 우리에게 바로 축복을 하시지 않고 많은 과정을 겪게 하고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