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현실과 말씀의 갈등(신 1:29-46), 김덕선 목사

liefd 2024. 7. 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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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까지 현실과 말씀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하셨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과 말씀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였습니다(1:26-27).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낙심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신명기 129절에 보면 아낙 자손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대안이 있습니다.

 

신명기 130-3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너희 앞서 행하셨던 것처럼 너희 앞서서 모든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품에 안으셨던 것처럼 너희를 안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너희의 길을 안아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셨던 것처럼 앞으로 가는 길에서도 친히 인도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의 말씀으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현실과 말씀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어떠한 결론을 내리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연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신명기 13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비록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과 말씀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믿음의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현실의 어려운 상황이 있지만 믿음으로 그복해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현실적인 상황에 눌려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현실적인 압력에 의해 갈등하는 그 자체를 죄악시 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켜 주시면서 말씀하시는데도 그 말씀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축복의 약속을 거두어 가십니다(1:34-35).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므리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을 명하라고 하셨는데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20:12).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가나안 정탐꾼 사건입니다. 신명기 13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탐지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선하게 여겨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까지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4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여기서 홍해 길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말합니다. 그들은 다시 광야 길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자신들이 말한 대로 홍해 길로, 광야의 길에서 멸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민수기 14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원망할 때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명기 14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범죄한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상적인 회개를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근본적인 잘못을 회개하기는 커녕 이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올라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면 패하게 되기 때문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올라가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하게 됩니다. 이전에 올라가라고 하셨을 때 믿음으로 올라 갔더라면 승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뒤늦게 올라간다고 했을 때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쓰라린 아픔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지, 아니면 더 이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점검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상태에서 말씀에 순종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라갔지만 그들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통곡하며 기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여호수아에게 특별히 부탁하신 부분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신명기 138절 말씀입니다.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과업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여호수아가 담대하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주의 종이 되도록 여호수아를 담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담대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기도할 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님은 기도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담대하게 지실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17-9절에 보면 오직 너는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그렇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도할 때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리고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할 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17-18절 말씀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좇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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