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의 자랑이 무엇인가?(시 90:1-17), 김덕선 목사
지난 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정권사님의 환한 웃음과 인사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 수요일 정권사님은 소천하셨습니다. 정권사님은 1937년 태어나셨기 때문에 우리 나이로 71세이십니다. 권사님은 언제나 자가용으로 손수 운전하셔서 교회에 오실 만큼 건강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아쉬움과 허전함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로 인해 상실감은 있지만 상처는 받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 대한민국 시간으로 3월 11일 오전 11시 15분입니다. 미국 LA 시간으로 3월 10일 18시 15분, 하와이 호놀로루 시간으로 3월 10일 16시 14분입니다. 영국 런던 시간으로 3월 11일 02시 16분입니다. 모스코바 시간으로 3월 11일 05시 18분입니다. 소위 말해서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시차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미국 LA에 도착하면 시계를 다시 17시간 앞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LA는 한국보다 17시간 느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 90편 4절 말씀에 보면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 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영원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은 다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좀 더 사셨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10년을 더 산다면 20년을 더 산다면 어떨까요? 물론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천 년이 하루과 같다면 10년은14분 40초가 됩니다. 더구나 영원의 시간표에서 본다면 우리의 연수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수의 자랑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가 자신의 나이를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수고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90편 10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전도서 1장 13절입니다.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2장 22-23절입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전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즉 사람이 이 세상을 알아가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뻐하며 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전도서 2장 24절 말씀에 보면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어떤 쾌락보다 심령의 낙, 곧 영혼의 기쁨이 최고의 낙이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혼의 기쁨은 역시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선은 창조의 목적이요, 구원의 목적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장 14절 말씀에 보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디모데전서 6장 18-1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이 세상에서 70-80년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여기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자세가 180도로 달라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으로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지만, 실제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당신은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요한복음 6장 47절 말씀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당신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당신은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참된 생명을 취하기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은 영혼이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90편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도서 3장 2절에 보면 날 때가 있다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 27절에 보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가지고 자기의 택한 백성을 심판하실까요?(히 10:30)
전도서 12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창조의 목적대로 살았는가에 따라서 당신이 어디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낼 것인가? 결정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제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반드시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심판의 부활을 맞게 되는 비극이 없기를 소원합니다.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말라기 3장 18절에 보면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하리라.” 즉 우리는 자신의 시간과 지식, 재능과 물질, 명예와 경험을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기회로 사용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당신은 죽음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돠어야 합니다. 당신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죽기 전에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였습니까? 언젠가 당신은 예수님께 당신이 행한 바를 직고해야 할 것입니다(벧전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