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6:54-63), 김덕선 목사
예수님이 다니시는 곳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면 배고픔도 해결되고, 불치의 병도 치료되고, 귀신도 떠나가는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24-25절에 보면 오병이어의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난 그들은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6절에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까닭이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6장 2절에 보면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찾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또한 요한복음 6장 14절에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는 말씀을 보면 이것이 표적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이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갖가지 환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고, 귀신을 내어 좇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등 책에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표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표적을 보여 주셨지만 그들은 표적을 보여 주시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즉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주시는 이유와 사람들이 표적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이 수많은 표적을 행하신 이유가 단순히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날마다 기도하며 예수님을 찾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 주세요. 큰 집에 살게 해주세요.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주세요. 등과 같이 우리는 먹고 배부른 것, 즉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많은 표적을 나타내심은 우리가 표적 그 자체를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많은 표적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육신을 위한 일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애 보면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 패턴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 패턴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그런데 이러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육신을 위한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육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그 일 자체가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의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으로 육신의 때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간혹 믿지 않는 남편들이 하는 말, 교회가면 밥 먹여 주나, 교회 가면 돈이 나오나 뭐가 나오나.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핀잔을 줍니다. 사실은 누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뭐가 쓸데없는 일인지, 뭐가 꼭 필요한 일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무의미한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면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온통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필요한 양식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여 예수를 찾지 말고 오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 예수를 찾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 먼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채운 후에 주님을 위하여 시간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즉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고 살아갈 때,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요 6:28)”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먼저 믿음의 대상이 정확하게 누구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본질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시험에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어떤 사람 때문에 시험이 들어서 믿음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 누구 때문에 나는 믿지 않겠다는 선입관을 버려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 믿는 사람 때문에 실망하여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상당히 똑똑한 것 같지만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싫어서 다시는 교회 안나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손해인지 아십니까?
마치 그 과목 선생님이 싫다고 그 과목을 싫어하는 청소년들과 같습니다. 제가 대학교 1 학년 때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서 3개월 비싼 등록금을 미리 내고 알라앙스 학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질문 한번 잘못했다가 챙피당해서 그만 그 학원을 절대로 안다니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 손해입니까? 저는 그때 얼마나 많은 경제적인 손실, 정신적인 손실, 언어적인 손실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이후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제가 대개 똑똑한 척 하면서도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6장 29-33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요 6:68)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54절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지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태복음 16장 16-18절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굉장한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장 15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인자의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를 가리킵니다(마 26:28). 즉 언약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즉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요 6:54)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을 믿고 ,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영생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주실 때 듣는 사람 가운데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반응은 요한복음 6장 60절에 보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예수를 주로 고백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 말씀에 순종해야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66절에 보면 제자들 중에 많이 물러갑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보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더욱 많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냅니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신명기 32장 46-47절에 보면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너희의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에 보면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당신은 과연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까? 썩는 양식을 위해서입니까? 썩지 않는 영생의 양식을 위해서입니까? 당신은 표적 자체를 구하는 사람입니까? 표적을 통하여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제 당신은 믿음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유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은 우리들 이제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생을 소유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