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면 생기는 일(삼상 18:6-9), 김덕선 목사
ᆪ
김만풍 목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비교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다른 대상과 나란히 놓고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비교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비교의 결과를 놓고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여 건설적으로 고치고 장점을 발견하여 건전하게 발전시킨다면 비교하는 일이 인격적으로 건강한 성숙에 이르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비교한 결과로 인하여 우월의식에 빠지거나 열등의식에 빠지게 되면 그 비교는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에서 나오는 습관적인 비교는 병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비교의식은 바로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으로 빠져 들어가게 하는 파괴적인 비교의 태도” 또는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에서 나오는 병적인 비교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비교의식의 증상은 자신을 상대방과 습관적으로 비교하여 생각하고 비교하는 말을 자주하며 비교의 결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민감한 반응에는 자신이 우월하게 되기를 지나치게 추구하고, 열등하게 비교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고, 자주 분노와 증오심을 표출하며,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쉽게 하고, 돌발적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며, 신경질을 자주 부리며, 비꼬는 말을 잘 하고, 자주 좌절하며, 불합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왕 사울을 환영합니다. 탬버린과 트라이 앵글로 연주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사울이 죽인 지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여인들의 노래 속에는 분명 당시의 인기도 또는 민심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여인들의 노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널리 불려졌기 때문에, 이웃 블레셋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21:11; 29:5).
본문 8, 9절입니다.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결국에는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 생각하니 많은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전에 사무엘에 의해 하나님이 왕을 폐위시키고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웠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기심은 상대의 말과 행동과 모든 것에 지나치게 의식하고 주목하는 것을 말합니다(9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사울 왕에게 나타난 현상은 사람에 대한 비교의식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윗과의 비교의식으로 인해 생긴 시기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언젠가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불처럼 그를 집어 삼켰습니다. 일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위협으로 간주되는 사람을 무너뜨리려고 할 때, 우리는 사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씨앗을 심은 데 대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1.비교의식의 폐해를 아십니까?
성경의 인물 가운데 비교의식의 대표적인 폐해자를 예로 든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일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왕을 뽑으려고 할 때 모두 자기 지파 출신이 왕위에 오르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제비뽑기를 통해서 베냐민 출신 사울이 왕으로 발탁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게다가 베냐민 지피는 다른 지파들과 전쟁을 하다가 거의 멸절된 지파였습니다(삿 20, 21장).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입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사무엘상 9장 1절에 보면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유력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미약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겸손의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울이 자신을 높이는데 마음이 빼앗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삼상 15:12).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여인들의 노래가 사울의 자존감에 상처를 받게 됩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자신을 위기 가운데서 건져준 다윗에 대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는 대신 강한 질투심과 분노를 느꼈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승리했을 때 사울은 이미 수치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의 노래 가사가 자신의 수치심을 더 증폭시켰던 것입니다.
비교의식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보다 사람의 인정여부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4절입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무엘상 15장 26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울은 자신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 달라고 부탁합니다. 30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비교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헝거리 정신>으로 잘 알려진 영국 경제학자 찰스 핸디는 최근 그의 책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29명을 분석하고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등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을 따라하지 마십시오.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아무도 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가십시오" '자기다움'을 간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그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복사하면서 살지 말고 나 자신이 좋아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인생을 사셔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되어지는 인생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실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2.비교위식을 갖게 되면 사람을 주목하게 되고 결국 영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되고 질투심으로 인하여 자신을 파괴시키는 비극적인 삶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10절에 그 이튿날은 블레셋과의 승전을 기념하는 환영 행사가 벌어진 다음 날 사울은 질투와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설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악한 영이 내리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신 악신이 힘있게 내렸습니다(10절). 이는 사울에게 최초로 악신이 임했을 때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상태입니다. 사울이 집 안에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마구 지껄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수금을 타고 있는데 그때 사울이 두 번씩이나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피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였습니다(12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이미 넘겨주셨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두려워하게 된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울 자신은 버림받고 거절당했는데 반해(13:13, 14;15:26) 다윗은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형통하는 것을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영어 성경에 보면 He kept a jealous eye on David. 사울이 다윗에 대해 시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계속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본문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사람에게 주목하는 순간 나타나는 현상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사람을 계속해서 주목하기 시작하면 피해망상에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적인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 아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 내므로.” 다윗은 사울이 악령으로 시달릴 때마다 수금을 타면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울이 손에 창을 던져 다윗을 두번이나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피했습니다.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은 평생에 대적이 됩니다. 29절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이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따라 다닙니다. 분노감, 증오, 경쟁심, 질투심, 두려움 그리고 열등 의식으로 가득차서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사람은 가차없이 죽이려고 합니다.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에게 진설병과 골리앗의 병기를 주었다는 소식을 도엑을 통하여 듣고 아히멜렉과 다른 제사장 85명을 쳐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이스라엘의 위기 가운데 구출한 충신 다윗이 떠나갑니다. 아들 요나단도 몸은 아버지와 같이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떠난 상태였습니다. 사울의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들만 모여듭니다. 왕이 심각한 성격 장애를 갖고 있을 때 “백로는 떠나가고 까마귀가 몰려드는 것은 너무나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릅니다”(이관직, 성경인물과 심리분석).
이번 주에 [괴물 부모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괴물 부모의 특징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괴물 부모는 자녀의 성취에서 경쟁적이며 결과만 강조하고 패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히 학업 결과 혹은 경쟁의 결과를 중시하는데 결과는 반드시 좋아야 합니다. 나쁜 결과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며 만일 나쁜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학교의 질, 교사의 질 때문이라거나 다른 학생 때문이라고 치부합니다. 또한 자기 자녀가 승리하려면 학교, 교사, 다른 아이들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 자녀보다 더 잘하는 아이를 전학시키거나, 꼬투리를 잡아 퇴학을 요구합니다.
3.어떻게 하면 비교위식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의 자세가 요나단의 마음과 하나 되어 오랫동안 특별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14:6;17:32-36, 45-47).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과 같이 사랑하였고 언약을 맺는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상호 간에 우정, 신뢰, 사랑을 계속 유지하자는 약속은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러안 언약은 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이행되었습니다.
요나단은 비교의식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요나단의 입장에서 다윗의 존재는 경쟁상대가 될 수 있고, 제거해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친 사울 왕이 돌아가시면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습니다. 사무엘상 18장 1절입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아꼈는지 아십니까? 사무엘상 18장 4절입니다.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
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요나단은 언약을 확증하고 그 표징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겉옷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서 '겉옷'은 상류층 인사들이 입었던 외투로서, 이는 곧 요나단 자신이 사울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능히 과시할 수 있는 표시였습니다. 요나단은 군복, 칼, 활, 띠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는 용사들 간에 상호 우정이나 혈맹 관계를 다지고 돈독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던 풍습입니다.
요나단이 이렇게 비교의식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다윗에게 다윗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9장 4,5절입니다.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요나단은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큰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요나단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행하신 구원에 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다윗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려니와.”그러나 사울은 자신을 위하여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또 다시 창을 던져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다윗을 해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를 죽이고 싶은 분노를 다스릴 힘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요나단은 다윗에게 전해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20장 42절입니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마음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굳건합니다.
사무엘상 23장 16절에 보면 요나단은 다윗이 십 광야 수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서 다윗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관계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게 하는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만남은 인간의 비교의식에서 오는 갈등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본문 17절에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다윗의 다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도록 생명을 걸고 도와주었습니다. 요나단은 일인지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인자로서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주목하기 보다는 환경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마음이 크게 요동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가, 나에게 있는 은사와 달란트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으로 하나님과 이웃들을 섬기며, 존재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쓸데없는 경쟁 논리에 끌려 다니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소중한 색깔과 향기를 내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창조의식으로 비교의식을 극복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