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자(롬 6:1-5), 김덕선 목사
당신이 진짜 그리스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믿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부활을 믿지 않는 신자는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부활을 믿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 자체가 헛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됩니다. 부활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지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우리는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이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기억에 떠올립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 하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면 큰 일이라고 빌라도 총독이 말합니다. 경비병을 증원해서 철저하게 무덤을 지키라고 경고합니다. 만약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 했다면 체포해서 되돌려 받으면 되는데 이런 제보가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을 때는 이미 빈 무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나셨거나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화롭게 변화된 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날 때에도 영화롭게 변화된 몸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는 변화된 몸입니다(계 21:4).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두려워 집의 문이 굳게 잠긴 상태에서 통과하여 들어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직접 말씀도 하셨습니다. 자신의 손과 발에 못자국난 상처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죽으셨습니다. 진짜로 장사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짜로 승천하셨습니다. 당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일시에 오백여형제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고전 15:6).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일 뿐 아니라 우리 개인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분명한 변화가 있습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면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로마서 6장 3-4절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두 가지 경험이 있습니다
본문 4절 하반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증거는 “죄에 대하여 죽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세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례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 지낸 바 되고 살아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게 못 박히셨기 때문에 내가 못 박힌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었기 때문에 내가 장사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내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깁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가 초래하는 엄청난 불행들에 대하여 죽었고,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6, 14, 16, 17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아직도 죄의 진액이 순간순간 우리 가운데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법적인 죽음, 죄의 형벌에 대한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속한 것이며 되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분은 의인이지만 우리의 상태는 아직 죄인입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때로는 약하여 넘어지고 죄를 짓지만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7절입니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의 종노릇하는 신분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또 다른 증거는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1절 하반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죄로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엡 2:1).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고후 4:11;골 2:20). 마치 결혼한 여인이 아직 독신인 것처럼 살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석방된 죄수가 감옥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죽음, 죄의 권세에 대한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현재에 속한 것이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자신을 어디에 내어주어야 할지를 압니다. 본문 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전에는 육신의 욕심에 순종하고 자신을 불의의 병기로 내어주었습니다. 성도는 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신자는 죄의 종이든지 순종의 종이든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며, 자신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 드리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자신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