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린다(마 18:18), 김덕선 목사
꽤 오래전 한국경제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토크 콘서트에서 ”인생이 잘 안풀리는 청춘들이 놓친 것들“이란 주제하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진행됩니다.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어 절망을 희망으로 꽃피우다“는 대목에서 젊은이들에게 역경에 이렇게 대처하라고 조언합니다. ”한획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음을 끊임없이 믿어보자. 고질병에 점하나 찍으면 고칠병. 빚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빛이 된다. 마음심(心)자에 신념의 막대기를 꽂으면 반드시 필(必)자가 된다.
이렇게 부정적인 것에 긍정의 점을 찍으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다. 이처럼 희망을 피우는 순간 청춘은 꽃은 활짝 피어오르리라! 실패는 실을 감는 패 그래서 언제든 풀수 있다! 10번 실패했다는 것은 10번 노력했다는 것! 실패의 고통은 10개월 무이지 할부로 느끼고 감동은 일시불로 화끈하게 느끼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들의 성공은 결국 꿈과 희망이 만든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대처법은 세상 사람들이 일이 꼬일 때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대처방식은 우리에게 어떻게 교훈할까요? 오늘 본문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따르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땅에서 매이고 하늘에서 풀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는 표현이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나옵니다. 이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멋진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시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수장인 교황이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천국열쇠를 주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천국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에게 주신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주셨다는 의미는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전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매이고 풀린다는 첫 번째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교회가 그 사람을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범죄할 때 징계를 통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선포될 때 구원받거나 실족되는 것, 올바른 권징 시행을 통해서 회복되거나 믿음에서 떠나는 것이 매이고 풀리는 의미입니다.
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까요?
교회는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놀라운 곳입니다. 교회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될 때 하늘의 관점에서 땅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세상에 온갖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인간 관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한 사람을 비난하거나 수군거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실족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서 범죄를 행할 때 먼저 직접 찾아가서 사랑으로 권고해야 합니다(15, 16절). 편지나 이메일이나 전화같은 것들은 언제나 차선책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만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갔는데도 듣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권면해야 합니다. 잘못된 오해로 인해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래도 안되는 경우는 교회에 말해야 합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교회는 그 사람을 권면하여 회복시켜 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지를 헤아려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잘못된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때로는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 경우 징계를 할 때에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부당하게 처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땅의 문제로 인해 하늘이 닫히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계속됩니다. 사막에서 기근이 계속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어디에 막혀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무엘하 21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원인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의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친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이 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수 9:15, 20절).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이 사울 시대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징벌이 가해진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언젠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전 12:14; 고후 5:10). 그런데 사울 왕이 이 약조를 무시하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살인적인 행위였습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즉, 사울 왕의 사람 일곱 명을 죽이게 됩니다. 사무엘하 21장 14절에 보면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를 속여서 자신들이 멀리서 온 것처럼 속이는 잘못을 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과정에서 비롯 잘못되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적법적인 절차로 권면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서로에게 분노와 미움이 싹트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인간 관계의 문제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여론에 터트려서 풀어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올바른 것을 바로 잡는 것도 필요하지만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저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 20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 기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교회로 나아와서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교회 안에 관계가 불편할 때 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관계가 불편할 때 기도로 화해를 위한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동안 사단은 교회 안에 성도들의 마음을 갈라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동안에 성령께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중단하는 순간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이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1-35절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에서 언젠가 우리가 결산해야 될 것을 암시합니다(23절).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만 달라트를 빌려주었습니다. 만 달란트란 가치가 어느 정도일까요? 1달란트는 1년 연봉에 해당합니다. 만 달란트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빚입니다. 그러나 종이 주인에게 내게 참으소서 다 갚겠습니다. 주인이 종을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서 어떻게 합니까?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이 사람은 자신에게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붙들어서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위협합니다. 그렇게 엄청난 빚을 탕감받았다면 자신에게 적은 부채를 진 그 사람에게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에게 빚을 갚지 않은 동료에게 분노를 키워왔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분노는 우리를 사로잡고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용서해 주셨는지를 기억하면서 분노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분노의 불이 계속 이글거린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잘하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용서 때문에 푸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두 번 당하지 않기 위해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했는데 상대방의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린다는 것일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분노를 터트릴 수가 있고 미움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다만 그런 마음을 계속해서 풀지 못하고 적대감을 키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레미야 4장 14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18절에 보면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게까지 미치느니라.“
아모스 1장 11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하는데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네 땅으로 지나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편한 관계로 인해 절대로 만나지 않고 그 근처로 가지 않으려는 마음은 풀어야 합니다.
에스겔 35장 5절에 따르면 에돔의 멸망 원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극한의 적개심 때문입니다. 그 적대감은 야곱과 에서의 갈등 이후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끈질기고 맹렬하였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사람으로 인하여 많이 힘듭니다. 그러나 그 영혼을 향하여 긍휼을 버리면 안됩니다. 얼마동안 화를 내는 것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맹렬히 화를 내는 것은 자신에게 좋지 않습니다. 분을 참지 못하는 것 있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49장 5, 7절에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자기 누이 동생이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의 강간에 원한을 품고 그 성읍의 남자들을 살해하였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을 위해 마지막 유언과 같은 축복기도를 합니다.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7절에서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야곱 역시 자아가 너무 강해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고, 환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통해 자신의 성품이 고쳐진 후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지나친 적대감과 맹렬한 분노를 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자가 때로는 잘 하고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관계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내 쪽에서는 풀어야 합니다. 나는 앞으로 절대로 그 사람하고는 만나지 않겠다든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는 보기도 싫다든지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면 안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잘하고도 잔인한 마음을 품는 것 자체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와 미움으로 인해 우리 인생이 어딘가에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사건입니다. 신자 역시 용서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마태복음 18장 35절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이제 우리는 주님이 나를 어떻게 받아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미움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뀌어지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분노의 노예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땅에서 미움과 분노를 푸는 순간 하늘에서 풀립니다.
욥은 친구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갔을까요?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계속되는 불행한 일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밤낮 칠일동안 시간을 내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욥의 고통을 지켜봅니다. 욥의 친구들은 대단합니다.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들은 욥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회복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욥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답답하기만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욥이 자신의 생각으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 또한 욥의 친구들에게 욥에게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욥에게 찾아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겠다고 하십니다.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번제를 드리고 욥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럴 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욥기 42장 10절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소유보다 갑절을 주십니다. 욥과 친구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예배를 통해서 풀어가고 용서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시고 곤경을 돌이켜 욥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갈 때에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잘 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