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구해야 하는가?(겔 36:36-38), 김덕선 목사
미국 보스턴의 지하 병동에 한 소녀가 격리 수용돼 있었습니다. 소녀는 마음의 어둠 때문에 심한 정신병을 앓아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괴성을 지르고 사납게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의사들은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회복 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부모도 아이를 포기해 버리고 면회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소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복 불가능''이라고 낙인 찍힌 이 아이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생애를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만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면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소녀가 그랬습니다. 은퇴한 늙은 간호사가 소녀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조차 포기한 아이였지만, 간호사는 6개월 동안 끊임없이 주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마음속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세상을 향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회복 불가능''이라던 정신 질환마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마음의 빛을 찾은 소녀는 자신과 같은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헬렌 켈러를 세상의 빛으로 이끈 앤 설리번 메이시(Anne Sullivan Macy)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면 여러분의 인생은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회복 불가능한 나라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였고, 남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초강대국의 식민지 하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마치면 이스라엘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완전한 상실감, 곧 땅과 재산의 상실뿐 아니라 존엄성과 정체성의 상실감을 지닌 채 바벨론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메세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1.회복은 조건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에스겔 36장 1-15절은 이스라엘 영토의 회복을, 16-18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의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황폐된 땅이 경작이 된다고 하셨습니다(34절).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적인 회복 뿐만 아니라 영적인 회복(26-28절)을 약속하셨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현실에 위축되지 말고 말씀을 붙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위기상황에서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잘 믿어야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잘 될꺼야! 하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신 것은 그들의 선한 행위나 회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구속해 주신 것입니다.
25-27절에 의하면 그들의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 숭배에서 그들을 정결하게 할 것이며 새 영을 부어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복된 후에 과거에 악한 길과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모든 죄악된 일과 가증된 일을 스스로 믿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거의 죄악으로 인해 다시 위축되기 쉬울 때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 말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글이 생각납니다. “사단이 나를 시험하여 절망에 빠뜨릴 내 모든 죄를 끝내 버리신 그분을 보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죄를 말할 때 나는 위를 바라보네,”회복과 구원의 은혜를 받을 때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조건부가 아니라 은혜를 깨달을 때 반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2.약속은 기대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본문 3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시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떼같이 많아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고 능력이 많으시기에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고 진행해 가시지만 우리는 그 일을 소원하고 사모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것을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를 불러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가 힘들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의 가장 큰 방해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나 기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기도를 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찾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만나서 교제하고 나누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8, 9절에서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7절에서는 사랑과 기도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기도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할수록 그분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갈망하고, 그래서 더 많이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 9장 2, 3절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이 예레미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70년 후에 회복시켜 주신다는 약속을 깨닫고 그는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인이나 교회나 민족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시 전에 먼저 우리가 특별한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목해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받아야 그것이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영적인 법칙을 정해 놓으셨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기도하고 구하지 않으면 세상에 어떤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조이스 마이어의 절실한 기도의 능력).”
열왕기상 18장 1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비를 내시리리라고 선포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극심한 우상숭배로 인해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내리게 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엘리야에게 주셨고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그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41-45절에 보면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자기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일곱 번씩이나 기도하면서 구름의 양을 체크했습니다. 나중에 손바닥한 만한 구름을 보고 큰 비가 내린다고 아합 왕에게 알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회복에 대한 약속 자체를 붙들지 않습니다. 회복에 대한 약속을 받은 경우에도 그것이 내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이시기 때문에 알아서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하면 마치 하나님께 부담을 드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깨닫게 하려는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신자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할 때 약속의 복을 얻게 됩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라도 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시는 이유는 그리할 때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을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목적을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만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38절). 그저 이스라엘의 유익만이 아니라 열방 가운데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을 알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23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인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기도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도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둘려드리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에는 온갖 정보와 기회, ‘대박’ 사건이 넘쳐나지만, 두어 달(혹은 그보다 더 빨리)만 지나면 과거가 되고 만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이 되실 때만이 우리 인생은 제자리를 찾는다(시 37:4; 73:25-26 참조). - 기도의 응답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데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어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기도와 관련된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힘들다. 믿음은 기도 생활의 호흡이요, 사랑은 그 심장 박동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거기에는 당신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네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기꺼이 믿겠는가?"라고 물어 보라. 왜냐하면, 신앙을 향한 강한 의지가 서 있으면 성령께서 커다란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당신과 환경 사이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명심하라.
모든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어디에 모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