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신들의 세상, 팀 켈러
"내 삶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희망 찾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허덕규가 쓰고 조성모가 불러서 크게 히트를 친 노래다.
티머스 겔러가 거짓 신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신, 구약에서는 우상이라고 불린다. 우상이란 본래 하나님이 주신 피조물로서 그 자체로는 선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인데-예를 들어 돈, 사랑, 힘. 행복, 성공, 애국심, 명예심-사람의 마음속에서 신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 것들이다.
들어가는 글
이 세상에는 실체보다 우상이 더 많다(프리드리히 니체).
슬픔과 절망은 다르다. 슬픔은 위로할 수 없는 고통이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좋은 것 하나를 잃었을 때 슬픔이 찾아온다. 예컨대 회사에서 좌천되더라도 가족의 위로를 받아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절망은 위로할 수 없다.
궁극적인 무언가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 절망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나 희망의 궁극적인 원천을 잃으면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영혼이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는 도시마다 숭배하는 신이 달랐고, 성상을 모셔놓는 사당이 들어서 있었다.
예컨대 바울이 아타네를 찾았을 때 이 도시는 우상으로 넘쳐 흘렀다(행 17:16).
탐욕은 단순히 나쁜 태도가 아니라 탐욕이 곧 우상숭배니라(골 3:5).
또한 돈이란 신성을 띠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돈과 우리의 관계는 숭배와 복종에 가까워진다고 충고했다.
톰 스페이 교수는 그 반지를 일컬어 마음속의 가장 간절한 열망을 우상숭배로 끌어올리는 심령의 증폭기라고 한다.
손에 넣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상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가져야 하기 때문에 한때 존중했던 규칙들을 어기고 다른 사람들뿐 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해친다.
우상은 톨린의 소설에서나 실제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마비시켜 끔찍한 죄악을 낳는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신들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뜻한다(출 20:4-5). 돈을 신으로 받들어 보실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성을 신으로 떠받들 수 있다는 것도 대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우상 또는 신을 대신하는 존재, 혹은 짝퉁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우상이란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당신의 마음과 공상의 세계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성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우상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우상에게 순종한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힘을 추구하는 자는 힘에 지배당한다.
인정받기를 바라는 자는 그가 호감을 사려는 이들에게 지배당한다.
우리는 스스로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에게 지배당한다.
절망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우리 마음과 문화 속의 우상을 가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짝퉁 하나님들의 파괴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참된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 1장 늘 원했던 모든 것
과도한 열망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열망하는 것을 얻을 방법을 끝없이 찾아 다닌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많은 희생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깃든 열망들이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1980년대 신시어 하이멜은 이런 글을 남겼다. 유명인사가 되는 순간은 바로 괴물로 변하는 순간이다.
명성과 유명세라는 압력에 짓눌리기 시작하면 성격적 결함과 불행이 그 이전보다 두 배로 악화된다고 말했다.
왜 마음속 깊은 곳의 열망이 그처럼 자주 재앙으로 둔갑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악의 벌은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롬 1:24).
우리의 마음은 그와 같은 열망을 우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다(롬 1:25).
인간이라면 반드시 뭔가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의미, 희망, 행복을 피조물로부터
얻으려고 하다가는 결국 실패하고 마음이 산산조각 난다, 성서의 핵심이 되는 원칙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짝퉁 하나님으로 받들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리에 자식을 대신 앉힌다면 우상숭배와 다름없는 사랑으로
이들을 숨 막히게 만들고 이들과의 관계를 망친다.
내 자신의 커리어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나의 일이 곧 짝퉁 하나님으로 변하게 된다.
창세기 22장 2절에 나타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끔찍한 명령이다. 고대에는 한 사람과 그 가족의 모든 희망과 꿈은 첫아들에게 달려있다. 첫 아들을 버리라는 명령은 의사에게 양손을 버리라거나 시각 예술가에게 두 눈을 버리라는 것과 다름없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가족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
제 2장 사랑만 있으면 되는 걸까?
아무리 좋은 것도 적절한 한게를 넘어서 지나친 집착의 대상이 되면 짝퉁 하나님이 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은 언제나 짝퉁 하나님이 될 수 있었다.
야곱은 라헬을 통해 자신의 의미와 확신을 찾으려고 했다. 야곱은 내면이 공허했기 때문에 낭만적 사랑을
우상으로 숭배하기 쉬웠다. 라헬을 얻기 위해 7년 동안 일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보통 신부를 데려올 때 치르는
대가의 7배에 달했다. 야곱이 라헬과 결혼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라반은 일부러 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약속하지'라고 말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는 것보다 너랑 짝지어 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대답했다. 야곱이 그처럼 쉽게 넘어간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야곱의 행동은 중독자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
레아는 아버지가 원치 않는 딸에서 이제 남편도 원하지 않는 아내가 되고 말았다.
라헬과 잠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나 보면 언제나 레아가 그 자리에 있을테니 말이다. 이와 같은 우주적 환멸과 실망은 모든 삶에 존재하고 있다.
마침내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네 가지 가운데 하나다.
첫째 실망을 안겨준 대상을 탓하면서 더 나은 대상을 찾는 일이다. 이는 끝없이 이어지는 우상숭배와 영적인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형이다.
둘째, 스스로 탓하고 비난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어쨌거나 실패했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난 왜 그렇게 못 되는 거지? 뭔가 나 한테 문제가 있는 거야“ 이건 자기혐오와 수치심에 빠지는 유형이다.
셋째로 온 세상을 탓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남자들)이여 저주를 받으라.“ 이 경우에는 거칠고 냉소적이며 공허한 사람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 가운데 소망에 관한 탁월한 챕터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루이스의 결론은 이렇다. ”이 세상의 어떤 경험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열망이 내 안에 있다면, 아마도 내가 다른 세상(초자연적이고 영원한 세상)에 맞게 창조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남자는 사랑을 이용해서 섹스를 얻고, 여자는 섹스를 이용해 사랑을 얻으려고 한다.
하나님이 남편이고 우리는 그의 배우자다. 여기에 우상숭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다. “내가 진정한 사랑이다. 네 마음속에 깃든 모든 열망을 채워 주고 영원히 널 기다려 주는 것은 네 품뿐이다. 그러나 내게 오기만 하면 되노라.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 마음속에서 낡은 애착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애착을 이용해서 그것을 밀어내는 것이다.
샐리는 골로새서 3장 1-4절에서 자신의 인생이;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남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꺼라든지, 경력을 성공적으로 쌓아나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무슨 일을 했고, 자신을 어떻게 사랑했는지가 중요했다.
제 3장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세상
프레드리 니체, 서구 문화에서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하나님의 자리를 돈이 대신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한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던 일도 이제는 돈을 사랑해서 한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에게 최고의 권위와 양심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