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사건(누가복음 4:31-44), 김덕선 목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 역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서는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 최대의 명령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절하는 고향 나사렛 사람들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으시고, 갈릴리의 수도인 가버나움 동네로 찾아가십니다. 사람이나 사탄의 반대에 부딪힐 때 중단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사랑을 나누십시오.
나사렛(구릉지대)에서 가버나움(해변도시)까지는 북동쪽으로 300킬로 떨어져 있습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나사렛에서 해변의 평지에 이르는 길이 내려가는 경사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복음을 필요로 하는 지역을 찾아가십니다. 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복음 전도는 한 지역이나 한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이 구원받은 후에 다른 나라로 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19절에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민족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시는가 하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에 독특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그냥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이 현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치유의 말씀을 전하면 치유의 역사가, 귀신에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얻는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더러운 영들이나 귀신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귀신들린 상태는 그 사람의 영혼과 육신이 귀신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보는 순간 큰 소리로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너무 잘 압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요일 3:8).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들어있는 귀신을 꾸짖습니다. 잠잠하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 나옵니다. 귀신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지병인지 귀신이 들린 모습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기이한 힘을 발휘하는 것,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것 등입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도대체 이 분의 말씀은 어떠한 말씀인가?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갔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날에 헤드라인 뉴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나오셔서 베드로의 장모집에 들어가십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중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에 찾아온 열병은 위험한 신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셔서 열병을 꾸짖을 때 그 열병이 떠나갑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그 여인의 손을 만지십니다. 마가복음은 그녀를 일으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병 고치심은 주술적 행위나 무속적 행위에 의해서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학적 판단에 근거한 정확한 진단과 완전하고 즉각적인 치료를 하십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병이 떠나고 곧 일어나 수종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육간에 우리이 모든 병든 것을 고치사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섬기에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한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봉사해야 합니다.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왜 해질 무렵에 환자들이 몰려왔을까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안수는 주님의 능력이 환자에게 전가되어 고침을 받게 하고 환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을 뜻합니다.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소리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