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확신(고후 3:1-5), 김덕선 목사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추천서를 받지 못한 인물이라는 것을 공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추천서를 받아서 고린도교회에 보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토로합니다. 추천서는 다른 교회지도자들의 권위를 지닐 뿐입니다. 조직과 행정적이 정차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사도들로부터 추천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직접 위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행 26:12-18).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추천서를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6장 1, 2절에 보면 바울이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매 뵈뵈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추천하였습니다. 추천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제출하는 기관으로부터 호감을 얻기 위하여 실제보다 과장되게 좋게 쓰는 것입니다.
본문 2, 3절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 알고 있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공격하는 거짓 교사들에게 고린도 교인들이 우리의 편지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편지라는 것은 한 사람의 사역을 확증해 주는 것은 사람들의 삶 속에 그 사역의 결과로 나타나 있는가입니다. 과연 나에게 살아있는 편지가 있는가? 묻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편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절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그렇지만 바울의 사도권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근거함을 강조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 자체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들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요?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심비에 기록된 것이 확실한 증거입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내세우는 추천서는 파피루스에 쓴 것이지만, 자신은 마음에 썼다고 합니다. 그들은 먹으로 썼지만 자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율법은 돌비에 쓰여졌지만 자신은 심비에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먹으로 쓴 추천서를 가지고 율법을 강요하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교회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추천서를 가지고 있고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은 하나님께서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신 옛계명입니다(출 24:12).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 즉 새 계명을 전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3절입니다.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36장 26, 27절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본문 4, 5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에든지 우리에게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의 모든 확신이나 만족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은 오작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바울에게는 이같은 확신이 있습니다. 어떤 제도나 조직이나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모슨 일을 하든지 자신에게사 나온 것으로 만족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인정받는 그런 차원도 아닙니다.
바울에게서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진정한 만족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만족은 오직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받는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