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날개를 가진 교회(행 2:46-47), 김덕선 목사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에서 첫 번째로 부각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그들의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두 번째로 부각되는 것은 그들의 성경에 대한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가롯유다의 사건을 시편 79편과 109편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충만한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성경의 예언이 지금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세 번째로 부각되는 것은 성도들 상호간에 믿음입니다.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였을 때 그들은 언제나 한 마음이었습니다. 복음서에 살펴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요한은 마치 시인과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항상 행동가였지만 요한은 항상 이상가였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새 명단에서는 그들이 동료가 되었습니다. 야고보와 안드레 곧 예의 바른 인간과 호기심 많은 인간이 사로 동료가 되었습니다. 빌립과 도마 곧 모든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과 매사에 증거를 하는 사람이 서로 동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두 날개를 가지고 비상하는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한 날개는 대규모 그룹의 예배, 다른 한 날개는 소그룹의 공동체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는 성전과 성전 바깥 뜰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습니다(3:11; 5:12). 그들은 거기서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전에서 모일 뿐 아니라 집에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넓은 공간이 있는 집을 택해서 하루씩 돌아가면서 모였습니다. 그들은 기쁨이 넘쳐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모임을 갖고 음식을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모임이 신통치 않을 때 성도들은 다른 모임을 갖게 되거나 아예 주일예배조차 등한시 여기게 됩니다. 교회의 모임이 살아야 하고 그 모임에 불을 붙일 때 자신도 살고 교회도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신앙도 점점 병들고 충만했던 신앙의 생기도 잃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대가 바뀐다고 달라질 수 없는 철칙이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예람교회는 두 날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비상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필요를 실제적으로 채워주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주일날 대예배시에 은혜만 받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소그룹 모임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새로 발견한 진리를 하나도 실천하지 않은 채 계속 더 많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기만 한다면 신앙의 커다란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 예람교회가 주중에 소그룹 모임을 갖지 못한다면 날려고 해도 하나의 날개밖에 없기 때문에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 머물거나, 방향감각을 상실하거나 난다해도 이륙지점으로부터 멀리 날아가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소그룹을 통해서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실천할 때 우리의 영적 성장은 가속도가 붇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소그룹 활동이 점점 약화되게 된 요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생활의 템포가 너무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모임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요인은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상처받는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친교과잉 증상이라고 합니다. 서로 모이기는 하지만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 되다 보니 서로 만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큰 교회를 찾게 됩니다.
서로의 관계가 좋다 하더라도 신앙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을 매우 어려워합니다. 대개 영적 생활의 가장 깊은 일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의 대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간에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언제 가는 곳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주일에만 가는 곳으로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람교회는 SUNDAY CHURCH(주일교회)가 아니라 EVERY CHURCH(매일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끊어진 관계가 다시 한번 이어지는 관계가 되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각각 고립되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결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소그룹이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단순한 성경 공부가 아니라 삶을 진심으로 나누는 그런 관계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안고 있는 절실한 문제를 누구와 나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나누고 위로하라고 서로를 묶어 주셨습니다. 서로의 깊은 문제를 나누어도 탈이 나지 않는 그런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서로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하십시오.
신앙의 성장은 결코 독학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기도하고 성경 읽고 봉사한다고 해서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풀러 신학교 교수인 줄리 고르만은 현대교회의 문제를 개인주의 신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개인주의적인 영성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교회는 병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교수는 또한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만을 위하여”라는 이기적인 영성이 교회에 침투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성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 물론 내가 혼자 있을 때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 성장의 최소 단위는 두 사람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은 함께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충만한 역사는 120명의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갔을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도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실라가 언제나 함께 하였습니다.
신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주일대예배에만 출석할 때보다 소그룹과 주일 예배에 함께 출석할 때 개인과 교회가 8배 이상 빨리 성장한다고 합니다. 98년의 한국 갤럽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인들 중에 52%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는데 6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부족하거나 영적인 헌신이 없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대개 소그룹에 참여 없이 교회만 출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소그룹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을 보면 영적인 성장을 경험할 확률이 높습니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여기서 온 백성이란 교회 내의 사람과 교회 밖의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초대교회의 좋은 이미지는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기쁨,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인한 구제와 섬김의 모습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나누고 싶은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은 비록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조건없이 자기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좋은 이미지가 결국에는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축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소그룹의 모임이 내적인 흡인력을 갖게 되면 먼저 신자들이 그 모임에 매력을 느끼고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자랑하다 보면 불신자들도 함께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흡혈박쥐는 박쥐의 일종으로 특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데 이틀간 계속해서 먹이를 먹지 못하면 자기 체온을 정상적으로 유지하지 못하며 삽시간에 체중이 25%나 줄어들면서 60시간 지나면 죽어버립니다. 따라서 먹이 사냥에서 허탕을 치고 돌아온 박쥐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다른 동료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합니다. 그러면 그 동료는 자신이 먹은 것을 토하여 배고픈 박쥐에게 줌으로써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먹이를 풍족히 구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 생활을 통해 서로의 생명을 돌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형성된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가 하나 되기 위한 노력을 등한히 하고, 함께 나누지도 못하고, 또한 서로의 어려움을 구해주지도 않음으로써 박쥐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는 자기 자신만을 가장 중히 여기는 이기심이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참된 행복은 내가 잘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남을 잘 되게 하고 내가 잘되는데 있습니다. 소위 WIN WIN 전략을 구사해야 행복한 것입니다.
서로 이렇게 인사하기를 원합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당신이 정말 잘 되기를 원합니다. 장사하는 분이 계십니까?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우리 옆집에 장사하는 분이 정말 잘되기를 소원합니다. 혹시 옆집에 잘될까봐 겁나하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집 장사가 안될까 봐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갖지 마세요. 우리는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잘 되게 해야 우리를 잘 되게 해주십니다.
제가 2주 전에 집 앞에 빵집에 가서 빵을 7000원치 사왔습니다. 봉지에 싸서 가려고 하는제 주인 아줌마가 이것 하나 드세요 하면서 고르개 하나를 주는 것입니다. 공짜로 줘서 그런지 얼마나 좋은지. 그순간 저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예람교회의 성도들들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까지 그들에게 줄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말입니다. 단순히 목회자 한 사람이 아니라 교인 전체가 그런 마음으로 서로에게 예상치 못했던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맺은 관계 때문에 매 주일 교회에 나옵니다. 이사로 인해 교회가 멀어져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고 해도 대부분의 가정들이 자기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는 그곳이 그들의 영적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교인들간에 인텨뷰를 통해 그들이 교회에 나가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설교나 행사가 아니라 바로 교인들 간에 형성된 관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불신자들에 신자들 간에 아무런 조건이 없는 진한 사랑의 감동은 그들로 하여금 교회에 매력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절과 관심이 그들의 텅빈 마음에 참된 만족을 갖게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깨어진 관계로 인해 얼마나 마음이 상해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 줄 그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깨어진 관계를 치유해 줄 수 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보여 주기만 하면 그들은 복음에 압도당할 것입니다.
예람교회는 일주일에 한번 종교행사를 치루기 위하여 나오는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헌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되기를 합니다. 주중에 소그룹을 통해서 사랑으로 하나되어 영적으로 화합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소그룹이 살아야 우리 자신이 살고 가정이 살고, 일터가 살고 교회가 살고 사회가 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접어둔 소그룹의 날개를 이제 활짝 펴야 합니다. 교회에서 모이는 것이 더 이상 짐으로 느껴지지 않고 너무 신나고 즐거운 축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소그룹은 일 주일에 한 번 모일 수도 있고 2주나 한 달에 한번 모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그룹의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거리가 멀다고 해서 소그룹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소그룹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나눔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안식년 기간동안 미국에 가서 릭 위렉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새들백 처치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토요일 저녁 시간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콘크리이트 막사로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참 놀고 싶은 그 나이에 주말에 그많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노하우가 무엇인가? 저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가 법적으로 확정되면 우리의 삶의 패턴이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변수를 최대한 활용해서 영적인 업그레드를 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비하는 첫 시도로 우리 청년부가 정기 모임을 토요일날 모이고 있습니다. 상당히 우려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후반기에 소그룹 리더자 훈련을 실시하게 될 것입니다. 1년에 소그룹 리더를 10명만 양육하면 성숙한 교인이 100명 증가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