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liefd 2024. 10. 14. 23:43
반응형

 

하나님이 거룩한 말씀을 이 땅의 언어로 말하시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에게 정보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벧후1:3-9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알고는 있지만 그의 삶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온유하고, 사람들을 넘치도록 사랑하며, 온화하고, 자연스러우며, 날마다 주님께 예배드리며, 세상의 것들에 대해 균형잡힌 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는 행위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신자들은 깨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아파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그분과 진심으로 동행하지 않습니다. 늘 세상의 것들과 씨름하며, 개인적인 성장에 있어서도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은 게으르고 열매 없는 자들입니다. 사람과의 갈등으로 인한 상처는 서로 간에 존경심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서로 간에 신뢰나 자발적인 애정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뿐만 아니라 아니라 그들은 이웃과 잘 지내지도 못하고 좋지 않은 모습으로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도 최소한의 성의와 노력을 보일 뿐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하는 봉사는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의무이지, 간절히 추구하는 기쁜 노력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에 물질적인 가치가 영적인 가치를 대치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오랫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십 년 전에 서로에 대해 내뱉은 원망들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게으르고 열매 없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베드로는 본문 9절에서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시각 장애인이기에 멀리 보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옛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능력과 소망에 대해 시각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히 용서함 받았습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약속을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어떠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를 재촉하는 급한 일과 더 일찍 성공하려는 조급성, 물질에 대한 탐닉,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제, 세속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그들은 복음이 직장과 주방과 학교, 침실, 마당, 심지어 자동차 안에서도 두루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시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의 상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관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관점이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지식은 많이 알고 있지만, 복음보다는 자기 자신과 자기 업적에 더 많이 근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근거한 정체성을 상실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기 속에 있는 죄성과 그 능력에 대해서 쉽게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쳐져 있는 죄의 그물들에 대해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사로잡하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6:1). 다른 하나는 믿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전쟁의 실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7).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기 우상을 얼마나 쉽게 따라가고 있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죄 사함과 새로운 성품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신분도 주셨습니다.

 

두 번째가 주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무지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받았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베드로는 생명과 경건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경건은 생명을 유효하게 만듭니다. 경건이란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에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그 자체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공급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재의 삶을 올바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경건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선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님이 실제로 그 영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불안에 사로잡힌 채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피하고 싶어하며 쉽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주님의 공급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소망과 용기를 갖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찾아오는 갈등과 유혹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역 과정에 대한 무지가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사건은 하나님의 사역의 마침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적인 고백과 회개의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어려움이나 시련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를 버렸거나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안위나 편안함만을 위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의심의 유혹에 빠져드는 바로 그 때 주님은 우리 속에서 구속의 약속으로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의 삶을 속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