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지금 벧엘로 올라가자(창 35:1), 김덕선 목사

liefd 2024. 10. 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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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데도 삶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선택을 할 때 멀리 내다보지 못합니다.

선택을 할 때 미래를 파악하고 정보력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눈앞의 이익 때문에 미래를 망치고 맙니다.

 

둘째, 인간관계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간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격이나 살아가는 방식 혹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너무 몰입하여 분노나 우울함에 쉽게 빠지고 행동으로 표출하며 헤어 나오지 못하면 인생이 뜻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넷째,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모호하거나 계속 바뀌고 혹은 목표조차 없으면 힘든 일에 쉽게 흔들리고 재미에 쉽게 빠져 삶의 페이스를 쉽게 잃어버립니다.

 

다섯째, 자존심이 너무 강합니다.

 

자아가 너무 강해 절대로 아쉬운 소리 못하고 자신의 실수나 부족을 인정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협력과 팀워크가 필수불가결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1. 신앙은 좋은 것 같은데 삶이 꼬이는 이유

 

야곱이 정든 고향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날 때에 야곱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요? 그의 나이 70세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왕 앞에 있을 때가 130세였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는 39세였습니다(41:46, 47, 54, 45:11). 야곱이 하란에 도착한 지 14년후에 요셉이 태어났으니 91에서 14를 빼면 77세가 되는 것입니다. 라헬이 임신이 되지 않아 요셉이 늦게 태어난 것을 감안하면 70세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하나님이 야곱이 장자권을 에서로부터 빼앗고 축복권까지 빼앗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요? 에서는 이미 결혼한 상태이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고생문이 훤하고 에서는 좋은 조건에서 부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사닥다리의 꿈을 보면서 축복의 약속을 받은 이후에 서원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세기 2820-23절에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가는 길에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셔서 평안히 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개 주신 모든 것 중에 십분의 일을 드리겠습니다. “에서는 이미 누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야곱이 처지와 형편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야곱이 훗날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지나온 날이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곱의 생애가 어디서부터 꼬이게 된 것일까요?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속여서라도 얻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인생이 꼬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상태에서는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화됨으로 이상하게 꼬이게 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생은 했지만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7년동안 라헬을 얻기 위해 7일처럼 여길만큼 열심히 일했습니다. 드디어 결혼 첫날 밤을 지내고 깨어보니 옆에 있는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야곱이 첫 번째 속임을 당한 케이스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삼기 위해 또 다시 7년을 일해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10번씩이나 속였습니다(31:42). 야곱의 생애는 어쩌면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 삶이 무려 20년 동안이나 연속되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이 요셉을 재회하기 까지 22년 동안 속고 살았습니다. 자녀들의 대까지 이어서 속임의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2. 벧엘로 올라가다가 지체할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지금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113절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야곱이 아내들을 불러서 당신의 아버지의 안색이 변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이제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전해 줍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라헬과 레아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르신대로 떠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다고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야곱이 딸들을 위하여 14년간 일한 결혼 지참금은 딸들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주어야 했는데 그것을 양떼들을 사들이고 목자들을 고용하는데 다 써버렸던 것 같습니다. 딸들도 아버지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 딸들을 이용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드디어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하는데는 나름대로 생각은 한다고 했겠지만 또 다른 화근을 일으킬 뻔 했습니다. 삼일 후에 라반이 야곱이 도망한 사실을 알고 추격하였습니다. 라반이 칠일 길을 달려서 야곱이 있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서 하나님이 라반의 꿈에 나타나서 야곱에 대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일단락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야곱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야곱에게 또 다른 큰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고향 앞으로 가고 있는데 에서가 자신의 일행을 보복하지 않고 받아줄까하는 고민이 너무 컸습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납니다. 이를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 자신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심히 두려웠습니다.

 

이전에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동안 베풀어 주신 축복에 감사하면서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창세기 3211, 12절입니다. 내가 주께 간수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현실적인 고민과 두려움 앞에서 이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문제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달래기 위하여 세 가축 때 580마리를 선물로 보냈지만 사실 그 선물은 별로 필요치 않은 것이었습니다(32:13-16). 왜냐하면 20년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에서의 마음이 누그러졌고, 이미 물질적 부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해주셔서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셨던 것입니다.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는 것은 야곱이 자기 뜻대로 고집하는 삶의 습관을 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바뀌어질 때 야곱의 생애에 대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아가 너무 강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앙은 중심축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내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중에 에서가 야곱을 만날 때 자기 동생이 절뚝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에서의 분노와 미움의 마음을 녹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원수도 친구로 변합니다.

 

 

3. 지금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에서는 야곱과 재회한 후 사해 남쪽의 세일 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 가서 머뭅니다 그는 숙곳에서 비로소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습니다. 게속해서 야곱은 세겜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그곳에는 하몰이라는 사람이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값을 지불하고 땅을 매매 합니다. 야곱이 왜 세겜에 정착하려고 했을까요? 세겜이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곳에서 나태와 안일함으로 10년동안 보내며 가나안의 문화에 깊이 물들게 됩니다.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30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데 생각만 하고 아직도 올라가지 않고 있다면 어떤가? 벧엘 근처에서 다른 것에 기웃거리고 있다면 탈이 생깁니다. 결국 세겜의 지도자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함으로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빙자하여 세겜 사람들을 살육하였습니다.

 

이에 야곱은 주동자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합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들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그러자 그들이 야곱에게 세겜이 우리 누이를 창녀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적법한가 여부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어떤 동기로 그렇게 했는가, 절차에 하자가 없는가, 의도가 괜찮은가? 야곱은 다른 거주자들로부터 보복을 부려워하여 남쪽 땅으로 급히 다시 내려왔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서 벧엘로 가야만 했고 뒤늦게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가게 됩니다. 뭔가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더라면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받은 세겜의 남자들을 급습하여 만행을 저지른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가문이 몰락할 뻔 했던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의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 야곱에게 얼마나 컸던지 야곱이 죽을 때에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급하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엘은 숙곳보다(33:17) 해발 300m 이상의 고지대이기 때문에 '올라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돌아온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야곱은 자신의 집안을 번창케 하는데 전력한 나머지 아직까지 벧엘 서원(28:22)을 이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진작부터 그는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차일피일 미루었던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야곱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결단합니다. 먼저 이방신상들을 버립니다. 귀거리는 당시에 점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주위의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두렵게 함으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막으십니다(5).

 

이러한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351절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만나 주셨던 그곳을 올라가야 합니다. 너무 오래동안 주님을 멀리 떠났던 시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지 전에 몇 가지 정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3절입니다. “야곱이 이제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야곱의 가족들이 우상 숭배의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벧엘 근처에서 머뭇거라고 있었습니다. 의복까지 바꾸었던 것은 아마도 의복에 우상의 장식이나 무늬가 있었기 때문에 바꾸어 입어야 했던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시작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반응은 늦추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여건이 갖추어져지면 하겠다고 하지 마라. 지금 해야 합니다. 나는 한번 하면 확실해 해야 할기 때문에 시작이 늦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중간에 멈추는 한이 있어도 지금 반응하라. 신앙생활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냐 합니다. 다음에 하겠다고 하는 것은 안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결론을 내린 후에는 단순한 마음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게 되면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게 됩니다. 혹시 벧엘로 올라가지 못한 이유는 정리할 것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사람의 변화는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어짐을 통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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