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창조의 질서를 지키라(신명기 22:5-12), 김덕선 목사

liefd 2024. 12. 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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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동안 서울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일년 중 1월과 2월이라고 합니다. 푸르던 잎이 지고, 공기가 가장 나쁜 시기라서 그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물은 모두가 한 번씩은 땅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구 쓰고 버리는 모든 것은 결국은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람도 흙으로 돌아가듯이 물이나 공기에 오염된 모든 것이 결국은 흙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음식은 흙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물이나 공기. 흙이 오염되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몸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 공해로 인해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라.”

 

1.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구별된 의복을 통하여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복은 단순히 옷뿐만 아니라 장신구를 포함합니다.

 

당시 가나안 종교에서 여신을 숭배할 때 제사장이 여자의 옷을 입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는 동성연애자들이 옷을 바꾸어 남자가 여자 행세를 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음으로 인해 남녀의 구분이 없어짐으로 생길 수 있는 변태적인 성행위와 음란한 우상제사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입니다. 남녀가 서로를 구별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만큼이나 싫어하고 역겨워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6-7절입니다.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2.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동물과 식물까지도 창조의 작품인 줄 알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새들에게 조차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어미와 새끼간의 사랑어린 애정관계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할 때 복을 누리고 장수하게 된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할 때 주시는 본과 같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대할 때 하나님께 하듯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동물을 친절하게 대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물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는 동물에게도 유익하지만, 먼저 자신의 인성에 유익합니다.

 

바닷가의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해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가꾸려는 자연 사랑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자연과 가까외지도록 해야 합니다. 일 주일에 두 번 이상 흙을 만지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초와 채소를 심고 가꾸게 합니다. 비 온 뒤 모종을 하게 합니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도와주게 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도와주는 습관을 통해서 자녀의 인성이 풍부해집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초등학교부터 남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는 깡패가 많다고 합니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은 여학생 깡패가 남힉생 깡패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동물이나 무생물을 학대해도 심성이 거칠어지는데 하물며 사람을 해치면 얼마나 심성이 거칠어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자연을 훼손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마구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자연생태계를 잘 관리하며 보호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인류를 미래를 보호하는 길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하여 자연을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23:19;22:18).

 

본문 8절입니다.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3. 하나님께서는 사소한 부주의나 실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사소한 것에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태만과 게으름으로 이웃에게 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습니다.

 

팔레스틴의 가옥은 대개 지붕이 슬라브 형식으로 평평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붕은 종종 휴식이나 취침, 기도의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10:9). 따라서 자칫 실수할 경우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난간을 설치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건축법에도 난간의 높이가 1미터로 해서 근로자의 안정을 지켜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건축업자는 건축현장에서 만약의 경우에 위험과 사고를 대비하여 철저한 점검과 보안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지나치게 점검하고 또 확인하고 보안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질서에 역행하여 종자를 섞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본문 9절입니다.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배앗길까 하노라.” 다 빼앗긴다는 것은 부정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순수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본주의와 섞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불신자와 전혀 만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본받지 말고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5. 소와 나귀는 보폭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멍에에 묶는다면 일이 제대로 안될 것입니다. 소는 정결한 짐승이요 나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동화되거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불신자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6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본문 11절입니다. “양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

 

이방의 우상숭배 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고, 혼합주의 신앙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합시키지 말고 성도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유지하라고 촉구하는 규례입니다(19:19).

 

마태복음 516절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6. 교회 안에서의 행실과 사회 속에서 행실이 달라서는 안됩니다. 신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사회에서 비난을 받거나 지탄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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