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그 이름 임마누엘(마태복음 1:23), 김덕선 목사

liefd 2024. 12. 2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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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일까요? 크리스마스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현금(21.0%)이었다. 이어 ▲태블릿PC 등 IT기기(11.1%) ▲기프티콘(10.2%) ▲명품(8.1%) ▲지갑 및 가방(7.7%) 순이었다. 현금은 전 연령대, 남녀를 불문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서로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런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네팔에서 오신 분도 계셔서 고급 영어로 인사하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탄절에 가장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만약 우리에게 돈이 가장 필요하다면 돈을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명예가 가장 필요하다면 명예를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면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가장 오래 가는 것, 빼앗기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성탄절의 가장 좋은 선물은 예수라는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나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은 죄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왜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일까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바로 죄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란 목적 상실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는 데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곧 죄입니다. 

 

성경은 또한 죄가 어떻게 해서 들어왔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죄란 인간의 욕심 때에 생긴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커져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에 대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더 이상 내가 잘못한 것 때문에 시달리거나 고통 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결박을 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인간의 죄책감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인간의 불행과 고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생각, 자기 고집대로 살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게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두렵고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생각하는 것이 어둡고 허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는데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함께 하고 싶어도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지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와 하나님이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2.성탄절에 가장 필요한 선물은 임마누엘이란 이름에 담겨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알겠는데 임마누엘은 뭐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을 나타냅니다. 어떤 사역인가 하면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역입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한채 자기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한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남 유다의 아하스 왕입니다. 당시에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공격해왔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약속을 믿지 않고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앗수르는 어떤 나라입니까? 이사야 10장 13절에 보면 나는 내 손의 힘과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 7장 14절에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남 유다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기신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나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최대의 명령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나라의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고 세례를 받고 말씀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나에게는 해당상황이 없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상황이 힘들어질 때마다 그들은 불평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어려운 상황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좋아지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될까요? 많은 경우에 인생의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 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이 사탄이 우리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 욥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많은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욥이 가진 것 다 빼앗아 가시면, 즉 상황이 어렵게 되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엄청난 위기 상황 앞에서도 자신의 믿음의 순전함을 지키게 됩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4절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무리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같이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분은 로마 군병이 아니라 당시의 종교적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못 박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우리의 죄로 인해 버림 당하는 고통에서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에 살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신의 힘으로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요?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똑똑한 것 같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시편 14편 1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아십니까? 어느 날 대형병원에 가서 엘리베이트를 탔는데 이런 성경 구절이 눈이 띄였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나갈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너 고통 당할 때라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너 고통 당할 때 너 고통 당할 때 주님이 너와 함께 고통을 당하시고 너 짐 지고 갈 때 너 짐 지고 갈 때 주님이 너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너 슬플 때에 너 슬플 때에 주님이 위로의 눈길로 너와 동행하신다. 너 의로울 때에 너 외로울 때에 너 어찌 홀로 있다 하는가 너 괴로울 때에 너 괴로울 때에 너 어찌 혼자 있다 하는가 너의 모든 것을 동참하시는 주님을 너 바라보라.”

 

우리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습니까? 두 가지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여덟 살 때 새벽 두 시경에 배를 부여잡고 떼굴떼굴 구르면서 5분 건격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 모권사님이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장로님 지금 바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당신이 아들이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소식이었습니다. 택시를 잡타고 부랴부랴 메리노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간호원이 저에게 코에 호수를 꽃고 저는 의식을 잃었습니다. 다섯 시간만에 대수술을 마치고 아버님이 저게 의사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순산 하나님이 함께 하셨구나 깨달았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비교적 근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저희; 집 사람이 하루는 거제도의 기도원에 가겠다고 해서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날따라 집에 들어가서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빚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우리 집 사람이 탄 버스가 사고 현장이 나타나는 장면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보내면 다시 못 볼지도 부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제가 자동차로 태워 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냐는 영문도 모른 채 빔새도록 기도하면 피곤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스에 제일 안전한 자리에 아내, 그리고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좀 자려고 의자를 접어서 누워있는데 갑자기 그 불길한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는 자리를 바로 세우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청주 근처에서 운전사가 조는 바람에 갑자기 고속버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 받고 기사는 졸도하고 버스,는 갈 지라로 가면서 중앙분리대를 받았습니다.안전벨트를 풀고 있던 승객들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안정된 마음을 주시면서 네가 이 버스를 안전하게 세우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잃게 된다는 마음이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눈을 뜨고 몇 초 기도하면서 핸들을 잡고 안전하게 갓길을 대고 119에 신고해서 근처 병원으로 승객들을 부축해서 옮겼습니다. 그때 승객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저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젊은이 때문에 우리가 살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그 속으로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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