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훈련 (딤전 1:7-8)
Try가 ‘무엇을 한번 시도해보는 것’, ‘그러다가 안 되면 말고’라는 뜻이 있다면 Train이라는 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또 한번 시도해 보다가 그만둬버리는 삶이 아닌 훈련하여 목적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딤전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은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영적으로 튼튼해지기 위해서 스스로 영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훈련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강건함을 위해서는 에어로빅, 미용체조, 그리고 여러 가지 운동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해야 할 훈련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나는 간단히 여덟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배를 통한 훈련입니다.
이사야 40:31절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 주일 당신은 많은 활동을 통하여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바쁘고 피곤하게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완전히 녹다운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적인 조정을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당신의 에너지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고,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는 엔진오일이나 기름을 넣는 장소입니다. 십계명조차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며 예배를 드리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당신의 눈은 당신 자신을 넘어 당신의 문제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을 되찾게 되고 하나님이 당신의 문제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하지 않으면 근심하게 됩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에 근심에 빠지게 되지만 주님을 바라볼 때는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예배는 당신의 힘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둘째, 기도를 통한 훈련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삶 속에서 우리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어쩔 줄 몰라 하는 두 가지 형태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삶이 힘들어질 때에 당신을 무엇을 하십니까?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십니까?
신약성경에 보면 “구하라” 또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스무 번 이상 나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네가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은 까닭이라”
나는 언젠가 죽어서 천국에 갔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큰 창고가 있었습니다. 그 창고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선물들이 쌓여 있었습니다―자동차, 집, 가정, 영적인 상황들, 여자친구, 그리고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 그가 그것들을 보고 있을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있는 이 모든 것들에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데, 그 꼬리표는 모두 다 똑같이 구하지 않은 것들이라고 쓰여 있단다.’”
챨스 스펄젼 목사는 “하나님은 당신이 입을 닫기 전에는 절대로 창고문을 닫지 않으십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이 방황 가운데 있지 않고 마음의 평안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교제를 통한 훈련입니다.
히브리서 10:24-25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몇 명의 기독교인 친구가 없이는 당신은 영적으로 건강한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본입니다. 당신은 도움이 필요하고 열정이 필요합니다. 만약에 숯이 다른 것들과 함께 불속에 두어진다면 매우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제각기 떨어뜨려 놓는다면 식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교인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다면 당신의 신앙은 차갑게 식어버릴 것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고 헌신도 잃어버릴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를 필요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짐을 져주라” 우리는 서로 강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혼자서 사역하는 그리스도인이란 것은 없습니다.
“나는 별로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 나 혼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당신 혼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교제는 할 수 없습니다. 해변, 호수, 강에 가서도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는 있습니다. 교회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삶 가운데서 예배 이상의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함으로써 기도해야 하고 교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으며, 접촉이 빈번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그들은 매일 모임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매일 함께 있었고 서로를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은 결국 그의 신앙이 메마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제는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성경을 통한 훈련입니다.
무언가를 좁게 또는 당신의 방식으로만 보지 마시고 큰 그림을 보려고 하시기 바랍니다. 개인 성경공부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시야로부터 보도록 돕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만약 네가 나의 말 가운데 있으면 나의 제자가 되며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너를 자유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유는 전체 그림을 보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당신이 단지 당신의 문제들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시편 119편 모두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성경 가운데 가장 긴장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공부하는 것에 대한 모든 유익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할 때 세 가지를 해야만 합니다.
읽고, 연구하고,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마음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육체적인 건강을 위하여 균형 잡힌 식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먹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을 위한 양식입니다. 당신이 말씀을 먹지 않고 하루를 지낸다면 약간 배가 고프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삼일을 버틴다면 당신의 영혼은 굶주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만약에 일주일을 말씀 없이 지낸다면 당신은 뒤틀려져 버릴 것입니다. 말씀은 당신의 자양분입니다.
제가 만약 다이어트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읽고 있는데 그 책에서 성공적인 다이어트를 위해 다음과 같이 권장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엿새 동안 단식하십시오. 그리고 일곱째 되는 날 실컷 드십시오.” 이것이 좋은 다이어트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생활에 수많은 소화불량을 양산해 낼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그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동안 성경을 읽지도 않고 기독교 방송이나 심지어는 설교 카세트 테잎조차 듣지도 않고 지냅니다. 일주일 내내 그렇게 영적으로 금식을 하다가 주일날 폭식을 합니다. 그들은 주일날 교회에 와서 일주일을 위한 모든 음식을 먹습니다.
영적으로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당신은 스스로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증거를 통한 훈련입니다.
베드로전서 3: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증거 하는 것”이라는 단어를 볼 때, 마음속에 어떤 생각 자연스럽게 떠오릅니까?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당신은 머리에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긴 어떤 남자가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생각할런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써 있는 간판을 목에 걸고 거리의 한 구석에 서 있는 남자를 생각할런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커다란 성경을 겨드랑이에 끼고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지금 믿고 영접하십시오!”라고 외치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얀 셔츠를 입고 말끔한 머리를 하고 자전거를 탄 두 명의 남자들을 생각할런 지도 모릅니다.
증거 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말입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입니다―당신의 이야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되었을 때,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입니까? 아니요! 변호를 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입니까? 아니요! 판결을 내리는 것이 당신의 일입니까? 아니요!
그것은 당신이 “나는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빨간색 차가 파란 색 차를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는 것을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증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나에게 생긴 일이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모든 교리와 진리 그리고 성경 구절은 알지 못하지만 내가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였을 때 나에게 생긴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증언은 아주 중요한 영적인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일입니다.
증거 하는 것은 어린아이를 가지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에 새로운 아이를 가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신나는 일입니다. 당신의 친구가 그리스도를 알고 중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에는 새로운 기쁨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디어지고 메마르고 열정이 식어버린 그리스도인을 위한 해결책이 나에게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나누는 것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는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행복했고 열정적이었습니다. 나는 기쁨으로 충만했었습니다. 정말로 좋았고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일종의 권태감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무기력하고 너무나 피곤합니다.”
나의 해결책은 언제나 “당신의 신앙을 나누시기 바랍니다.”입니다. 기도제목을 써서 성경 안표지에 붙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주님 내가 전도하고 싶은 네 친구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계획을 짤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는 시간만 있다면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하여 하신 일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호수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맨 위에 있는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그 호수에는 생기가 넘치고 많은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와 풀들이 있는 살아있는 호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맨 아래 쪽에는 사해라고 불리는 또 다른 바다가 있습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은 바다입니다. 거기에는 소금물로 가득하며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요단강은 이 두 호수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는 살아있고 하나는 죽어 있는 것일까요? 갈릴리 바다는 산으로부터 물을 받아들여 요단강을 통하여 그 물들을 흘려보냅니다. 사해는 오로지 받아들이기만 합니다. 그것은 결코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당신이 언제나 받아들이기만 하고 나눠주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말라버릴 것입니다.
증거를 통하여 당신의 기쁨을 확장시키시고 증대시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긍정적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나누는 방법을 압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증거는 나의 삶 그 자체입니다. 나는 그것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것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나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내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만 해도 사람들은 신자가 된다.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여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 완벽한 분이셨지만 사람들에게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증거 하는 것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의 방식, 모범, 태도를 통하여 증거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말함으로써 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걸을 때는 걸어야 하고 말할 때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하고 보여주는 기독교인을 원합니다.
여섯째, 주는 것을 통한 훈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과 주는 것을 분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주는 것(giving)은 같이 갑니다. 당신은 사랑 없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내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저는 항상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돈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주고 싶어 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당신은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당신이 얼마나 주느냐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의 증명이라고 말합니다. 주는 것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연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위한 에어로빅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에어로빅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을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영적으로 준다는 것은 충동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합당한 봉사로 내 마음이 움직일 때 나의 지갑을 열고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직적으로 주는 것이 더 성숙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고 조직적으로 말입니다.
고린도전서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구절은 주는 방법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조직적이 되어야 합니다.”
“매 주의 첫날에” 그것은 무슨 요일입니까? 주일입니다. 매 주일 시계가 돌아가는 것처럼 조직적으로 하십시오.
2. “너희 각각은 따로 떼어놓아야만 한다.”
이 말은 당신이 주는 것을 계획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주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안됩니다. 미리 미리 염두에 두고 예산을 짜고 계획하시기 바랍니다.
3. “당신이 번 돈의 얼마를 예물로 드리라”
그것은 당신의 수입의 얼마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퍼센트를 정해놓고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많은 수입을 올린다면 많이 드려야 하고, 적게 수입을 올린다면 적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번 주에 하나도 벌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번 것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 것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봉사를 통한 훈련입니다.
골로새서3:23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일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직업을 가진다면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적인 삶의 중심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섬김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섬기기 위해서 왔느니라. 나는 보살핌을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보살피기 위해서 왔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라고 당신이 가진 은사를 선물로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축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축복하기 위해서도 은사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모든 성도는 목양자입니다.
목사는 아니지만 그들은 모두 목양자입니다.
2. 모든 성도들은 영적인 은사를 가집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재능과 능력, 그리고 은사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로마서12:6절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믿음의 분수대로 그것들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받은 재능과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3. 모든 성도들은 봉사하고 헌신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교회들이 축구경기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22명의 선수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경기장에서 열심히 뜁니다. 22000명의 관중들은 스탠드에 서서 선수들을 위해 열심히 응원을 합니다.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몇 명의 사람들만이 모든 일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우리는 사람들이 봉사에 참여하기를 원합니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아닙니다. 당신의 은사를 개발하기 위해서? 예 맞습니다. 그것은 내가 먹기만 하고 일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날마다 성경공부를 하고 매 주 교회에 가기만 하고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얼마 안가서 너무 비대해지기만 하고 아무런 근육도 없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주고 봉사할 수 있는 장소를 빨리 찾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도전을 통한 훈련입니다.
도전이 기독교인의 삶의 부분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
마가복음 9:23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9:29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너의 삶 속에서 원하는 만큼 구하라.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4:23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근육과 같습니다. 그것은 도전해서 훈련해야만 튼튼해지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영적으로 건장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규칙적으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합니다.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기적을 믿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옆에 앉아 있지 마시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하려고 생각했던 그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위험에 맞서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습관을 개발하십시오. 사역에 참여하십시오. 신앙의 도약을 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약간만 적시며 얕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뛰어들어라!” 결코 위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곳에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선장이시라면 배가 좌초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걸음을 띠시기 바랍니다.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나가십시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더 나쁜 것은 당신이 지속적으로 그것과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실패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실패의 대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경에 나오는 이러한 이름들을 기억하십니까? 삼무아, 사밧, 이갈, 발디, 갓디엘, 갓디, 암미엘, 스둘, 나비, 그우엘, 여호수아, 갈렙. 이들은 약속의 땅을 정탐하기 위해 갔었던 사람들입니다. 정탐꾼들 중 열명은 돌아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에요!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갑시다. 자 움직이세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우리는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 갑시다! 그것을 합시다! 도전을 합시다! 자 앞으로 나갑시다. 말만 하지 말고 돈을 투자합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이 여덟 가지의 연습들은 모두 당신의 삶에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위하여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나는 시간이 없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 당신이 맞습니다!” 당신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시간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당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훈련들을 위하여 계획을 짜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을 적어서 당신의 달력에 적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당신이 수첩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적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언제 당신은 기도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까? 언제 당신은 성경을 읽기를 원합니까? 당신의 계획 속에 적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적 훈련 노트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것 안에 라벨을 부착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훈련의 각각을 표시하는 라벨을 부착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라는 라벨이 붙은 곳에는 주일 설교를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라는 라벨이 붙은 곳에는 당신의 기도제목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증거라벨이 붙은 곳에는 당신이 전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그 노트를 규칙적으로 읽을 때에 당신으로 하여금 여덟 가지의 연습들을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들은 좋은 것입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영적으로 건강한 삶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당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통하여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일련의 규칙들과 원리들에 의하여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당신은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집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기독교적인 삶의 여행에서 신앙으로의 첫 걸음은 “예수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당신이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입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당신은 성장하기 위해서 먼저 생명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