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신 메시야(메시야의 탄생, 생애, 교훈, 인성과 신성)
서 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관계를 맺으셨는데 그들을 통해 인류를 위한 그분의 뜻을 계시하고자 하는 특별한 목적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다음 시내산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전체 이야기, 그들의 신적 소명, 출애굽 ,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심,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를 섬김, 성전의 건립, 바벨론 유수의 비극, 그리고 시온으로 남은 자들이 살아서 되돌아감 등은 모두 예수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주어진 보다 위대하고 최종적인 구원의 예표들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떠나서는 이들 예표들은 그 자체적으로 항존적 의미를 갖지 못하며 충분히 이해될 수도 없다. 이는 예수님 자신의 태도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는 거룩한 자이며, 마음과 생활을 통하여 진정으로 그의 아버지의 모든 말씀에 복종하신 분이시다. 수세시에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즉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루며, 언약의 모든 조항을 지키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언약의 머리로서 그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의 대표자요, 중보자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우리의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언약을 지키신 것을 근거하여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와 하나되게 하시며, 새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여기 땅 위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곧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엡 4:15).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서 이미 오신 메시야의 탄생과 생애, 교훈, 그리고 인성과 신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Ⅰ.예수의 탄생
예나 지금이나 희의주의자들이 어떤 이유를 들어서 기독교를 공격할 때 대개 그 공격의 근거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성경의 교훈을 꼬집어 낸다. 사실 유물론자들이 이 교훈을 거부하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숱한 자유주의적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부인하니 이것은 현대의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대개 그 교훈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성육신 사상이나 그리스도의 탄생의 영적인 의미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사실적으로 강조하여 인간들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의 필요불가결한 부분임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최초로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저주를 선언하신 직후에 바로 장차 오실 구속자를 약속해 주셨다. 이 구속자에 관해서 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요”(창3:15). 장차 올 구속자는 사단을 정복할 것인데, 그는 남자의 씨가 아니라, 여자의 씨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생물학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남자의 씨라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이 예언은 훨씬 후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더 명시되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원문에는 “그 처녀”라고 하여 정관사 “그”가 있다. 이것은 특수한 처녀를 암시하고 있다. 즉 “그 처녀”는 창세기 3장 15절의 “그 여자”를 가리킨다. 그 탄생은 또한 독특한 것이다. 더욱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 되리라 하셨으니 평범한 출생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처녀”는 성경 다른 곳에 6회만 나타난다. 그 용법은 항상 “처녀”라는 의미와 일치하고 있다. 구약을 70인경으로 번역한 학자들은 이사야 7:14을 번역할 때 정확한 헬라 표준어 “처녀”로 번역했다. 마태도 역시 이 예언을 인용할 때(마1:23) 이것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게서 성취될 것을 지적했다.
이사야 9장 6-7절은 “태어난 아이”가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미가서 5장 2절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자는 그 근본이 ”상고에“, 태초에”라고 말한다. 이런 예언들은 분명히 절대적으로 독특한 종류의 출생을 요구한다.
장차 올 구속자가 셈의 자손(창 22:18), 이삭의 자손(창 26:4), 야곱의 자손(창 28:4), 유다의 자손(창 49:10),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의 자손(삼하 7:12-13)이 될 것이 약속되었다,
또한 그 누구도 마태와 누가의 탄생 기록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마태는 그리스도 동정녀 탄생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먼저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된”것이 나타날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마 1:18), 또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는 마태의 말 속에서 “처녀”로 번역된 헬라어는 “parqeno”이다. 이 단어는 항상 처녀-순결하고 결혼하지 않은 소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마태의 인용은, 이사야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누가도 동정녀 탄생에 관한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 :30-35).
요한복음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신”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요 1:1, 14). 이것은 임마누엘의 예언된 탄생을 언급하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복음서에서는 동정녀 탄생에 대해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동정녀 탄생이 사실인 것은 그것이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명, 그리고 상실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계획을 미루어 볼 때 동정녀 탄생이 불가피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전 생애를 통해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이 독특한 생애가 독특한 탄생 방법으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가의 예언(미 5:2)대로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정치사(史)상의 한 사건을 이용하셨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국 안의 모든 사람은 호적을 하라고 칙령을 내렸다. 이것은 아마도 이후 14년마다 한 번씩 시행하게끔 되어있던 정기적 인구조사의 효시였을 것이다. 주전 8년에 퀴리시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당시에 칙령이 최초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어떤 인구 조사든 유대인들은 신앙적인 이유(삼하 24장)로, 그 외의 다른 이유들 때문에 그의 영토 안에서 이 등록 작업은 이삼년이나 지연되었다. 마침내 주전 5년애 이르러서야 이 칙령은 시행되었다. 헤롯의 왕국에서는 가문의 본관에 따라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인구 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인구 조사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정확한 문서자료를 만들 필요를 느꼈던 아우구스투스가 명한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던 것이다. 이방의 인구 조사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도록 준비 역할을 한 셈이다. 메시야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누가는 인구 조사가 실시될 때 수리아를 통치하던 구네뇨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예수가 탄생할 때에 팔레스틴의 통치자는 헤롯대왕이었다. 헤롯대왕은 로마 제국의 승낙 하에 유대 나라를 통치하였던 고로 유대인들은 그를 미워했을 뿐 아니라, 그가 이두메 사람과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더욱 모멸하고 있었다. 그가 성공은 못했지만 유대인들에게 인망을 얻으려고 사치스러운 유대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가 정책에서 종교에는 개입하지 않는 관대함을 보였으나 예언자라고 하는 자가 나타나면 예의 주시하곤 했다.
마리아가 인구 조사를 위해서 요셉과 반드시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베들레헴을 생각하며 기다려 왔을 것이다. 당시에 숙박이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은 당연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금방 가득차게 되었을 것이다. 요셉이 결국 찾아낸 곳은 마굿간이었다.
두 복음서 기자는 메시야 탄생을 매우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이 놀라운 사건을 가득 찬 여관과 구유만을 언급하는 다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고 만다. 목자들의 이야기와 마태가 언급하고 있는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메시야 탄생 사건의 기이함을 한층 더해준다. 이 기록들에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화려하고 웅장한 장면이 전혀 없다. 그러나 메시야 탄생의 비천함은 오히려 구약성경의 사상에 부합하는 적절한 것이다.
Ⅱ. 예수의 생애
주전 166년 바벨론에 나라를 잃은 이래로 처음 유다가 독립을 하게 된다. 그때 형명을 일으킨 지도자가 마카비 가문이다. 이 승리로 마카비 가문은 100년 동안 독립을 하게 된다. 주전 165년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데 이를 기념하는 명절이 신약에 나오는 수전절입니다. 그때 이래로 마카비의 후계자들이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제4대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예루살렘 동남쪽의 이두메(에돔지역)까지 정복하게 된다.
이때 이 지역을 다스리기 위하여 총독을 두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안티파스”라는 사람이다. 그는 본래 에돔을 다스리던 왕이었다. 바로 이 사람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헤롯대왕이다. 이렇게 해서 유다 역사에 등장하게 된 헤롯 가문이 후에는 점점 로마세력이 커진다는 정세를 파악하고는 자꾸 친 로마정책을 편다. 그러다가 로마를 등에 업고 마카비 왕조에 반역한다.
로마와 손을 잡고 출발한 헤롯왕조는 후에 유대의 왕 자리를 빼앗아 왕이 된다. 그러니 헤롯가문은 유대인이 볼 때는 반역자인데 그 밑에 복종해야 하는 기가 막힌 관계를 갖고 출발한다.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 탄생하시는 그 시각에 유대의 왕으로 에돔 사람 헤롯대왕이 있었고, 그 위에 로마라는 큰 지배세력이 버티고 서 있게 된 것이다. 이와같이 유대인들은 이중지배구조의 틀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 예수는 성장해 갔다.
1. 예수의 어린 시절
복음서 기자들 중에는 누가만이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몇 가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비록 누가의 기록이 매우 간결하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장차 계속될 예수의 사역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점이 있다. 누가는 예수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정에 대한 기록으로서, 예수는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누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예수의 신앙생활의 일면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생활을 하였다. 누가의 기록에 나타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부모님에게 순종한 점이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의 교육에 대하여 이렇다 할 분명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예수의 사역보다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소년들은 누구나 종교적 의식들과 그 밖의 중요한 유대인 생활양식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그 지방 회당에서 회당 관원 출신의 선생님으로부터 성경본문을 암송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에는 레위기부터 시작하는데, 나중에 성경해석까지 배운다. 특별한 소질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보다 높은 단계의 교육으로 구전 율법의 상세한 내용이 가르치고, 그들 중의 몇 명은 율법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아마도 예수는 유대교육의 초급과정은 거쳤지만 상급교육은 받지 않은 듯하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받은 사람들로부터 종종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들이라고 멸시를 받았다. 예수도 어른이 되기까지 그런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예수는 가정생활에서 소와되지 않았다. 마리아는 다른 자녀들도 낳았다, 즉 예수에게는 요셉, 시몬, 야고보, 유다와 같은 형제와 그리고 자매가 있었다(막 6:3). 앞의 두 형제에게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뒤의 두 형제는 신약의 두 권의 서신을 기록하였다. 그들은 처음의 불신을 버리고 예수의 부활 후에 믿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형제들이 그를 믿지 않앗다는 말을 제외하고는 그의 가족에 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소년 예수가 열두 살 때 성전에 올라가는 사건(눅 2:41-52)이 예수님의 탄생사건과 공생애를 시작한 30세 경 사이에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모든 유대 소년이 하던 대로 예수는 열두 살 때 성전을 방문하였다. 이렇게 성전을 방문하는 것은 통상있는 일로서 한 소년이 유대법령을 지키기 시작하는 기점이 된다. 이 순례여행은 공식적으로는 소년이 13세 때 하도록 되어 있지만 약 1년 가랑 먼저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누가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기록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 방문은 예수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열두 살 된 예수는 부모님이 다른 일행과 함께 고향을 향해 출발한 후에도 계속 성전에 남아 있었다. 서둘러 돌아온 부모님이 다급하게 예수를 찾는 모습에서 그들의 동요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예수의 부모님은 그가 성전에 있는 선생들과 토론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다. 부모님의 은근한 꾸중에 예수는 질문을 던진다. “제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이 질문의 뜻을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누가의 설명은 메시야와 그의 세상적 보호자 사이에 커다란 영적 간격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예수는 어린 아이인데도 육체적 정신적으로만 자란 것이 아니라 영적차원에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예수는 자기 생애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한다는 깊고 독특한 자각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였다. 이 관계는 그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하였다.
2. 예수의 공생애
예수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공생애가 시작되었고 3 년가량 진행된다. 예수는 3년 동안 유월절을 네 번 맞게 된다. 그런데 예수의 공생애는 정확하게 첫 번째 유월절부터가 아니다. 첫 유월절이 되기 전에 일어난 몇 가지 일들이 있다. 먼저 예수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마 3:13-17),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하시고(마 4:1-11), 또한 세례요한의 집회장소 지역에서 다섯 제자를 만나시고(요 1:19-51),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시고(요 2:1-11), 그리고 가버나움에 며칠 내려가 계셨다(요 2:12).
예수는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기도하신 두 사건으로 공생애를 준비하셨다. 세례요한을 인도하여 복음선포를 시작하게 하신 바로 그 성령은 또한 예수를 인도하여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도록 하셨다. 예수가 회개의 세례를 받으려고 나섰을 때 세례요한은 세례 베풀기를 꺼려했다. 세례요한의 반응은 예수의 우월성을 알고 있었다-“내가 오히려 당신께 세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예수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세례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써 온전한 의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어떻게 죄 없으신 분이 회개와 갚은 관련이 있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예수는 세례란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에 대한 복종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에는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 요구가 만족되었으므로 이 세례식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즉, 그것은 메시야의 사역과 사명에 대한 그 자신의 헌신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예수가 세례받으실 때 독특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세례요한이 많은 세례를 베풀었지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강림하신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사건은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임을 알았다(요 1:33). 이 사건의 주된 목적은 예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의 특별한 사명 위에 인을 치시는 사건이었다. .
공생애 사역의 첫발을 내딛는 예수의 마음속은 메시야의 임무에 관한 전체의 계획과 전략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메시야로서 수행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생각은 그가 40일 홀로 있을 때에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갈등과 투쟁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예수는 그의 묵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려고 음식을 거부했다. 영적현실이 육체의 요구보다 우선되었다.
첫 번째 시험은 음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광야에서 받은 시험은 바로 이런 배경 하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주리신 메시야는 그의 능력을 사용하여 육체를 위해 물질을 공급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유혹하는 마귀의 말 가운데는 한층 더 날카로운 가시가 있었다.“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시오.” 이 유혹자는 예수의 아들 되심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의 특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두 번째 시험은 예수를 거룩한 성 꼭대기로 데리고 갔다.
만약 예수가 이 지점에서 뛰어내리고 기적적으로 구출 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시험은 마귀가 예수의 유일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만약 메시야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가장 빠른 성공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이렇게 멋진 묘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 시험은 실제였다. 이번에 마귀가 내민 낚시 바눌의 미끼는 자기의 제안을 정당화하기 위한 성구 인용이다. 그는 시91:11-12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특별한 보호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마귀는 이 조건을 빠뜨렸다. 예수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하는 성구를 들어 반격을 가했다( 신6:16). 사단이 제안한 것과 같이 초자연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은 메시야의 사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되는 일이다.
세 번째 시험은 세상 왕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메시야 사역의 범위는 성전이나 예루살렘, 또는 유대주의보다 더 넓은 것이었다. 그가 나중에 지적하신 것처럼 예수는 온 세계가 악한 자의 세력 아래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세 번째 시험의 제안은 만일 예수께서 마귀에게 경배하면 세상 왕국을 예수에게 주리라는 것이었다. 메시야기 마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예수에게 있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다시금 성구를 인용한다. “너는 너의 주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길지니라.”메시야는 하나님의 종이며 마귀의 종이 아니다.
이와 같이 마귀의 시험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귀가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 마귀의 특징이다. 마귀는 줄 수 없는 것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예수는 바로 세례요한의 집회장소에서 다섯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십니다. 즉 안드레, 베드로, 요한, 빌립 나다니엘, 다섯 사람이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다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이 다섯 제자는 갈릴리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행한다. 목적지는 가나 혼인잔치이다. 그곳에서 첫 번째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은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요2:11). 이렇게 혼인잔치를 마치시고는 가버나움에 며칠간 내려가 계신다(요 2:12).
예수는 가버나움에 다녀오신 이후 첫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가신다. 이때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좇으신다. 이 성전을 청결케 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된다(요 2:13-15). 즉 예수의 본격적인 사역은 갈릴리에서가 아니라 예루살렘 유다지역에서 시작하신다.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각 분야의 중심지였다.
그 예루살렘 가운데서도 “성전”은 중심 중의 중심이다. 그것도 남자들이 모이는 유월절에 성전에서 판을 뒤엎는 일을 감행하므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 이 판은 당시 기득권 세력들이 돈을 벌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해서 형성된 조직이었다, 대제사장 안나스가 로마로부터 제사장권을 돈을 주고 샀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 뽑기 위해서 제사용품 전매청을 만들어 장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전을 숙청한 사건 이후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군중 앞에서 하신 일은 “이적”을 행하심이다(요 2:23). “예수 그는 누구인가?”하고 호기심으로 쏘아보고 있는 많은 백성들로 하여금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로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도록 한 것은 “이적을 행하심 때문이다. 이렇게 이적을 행하며 말씀을 전하시는 사역을 약 8개월 동안 하시면서 예루살렘에서 머무르신다.
당시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으로, 또한 바리새인으로서 덕망이 있는 니고데모가 예수를 방문한다(요 3:1-21). 니고데모와 몇몇 사람들은 표적을 보면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예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구원의 가장 중요한 교리인 “거듭남”, “영생”을 설명하셨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거쳐 가시면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게 됩니다. 사마리아는 B.C.721년경에 여러 민족들과 피가 섞여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 취급을 했다. 그런데 지금 막 예루살렘, 유대를 거쳐 사마리아 에 들어가 그것도 개인 전도를 하시며, ‘예배’개념을 말씀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기억할 수 있다.“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여기서 부터가 예수의 공생에 1년 말경이다. 예수는 아틀 후에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 가나에 도착하신다. 세례요한의 사역이 그친 시점이다. 예수는 갈릴리에 도착하자마자,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어떤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쳐 주신다. 이 일이 갈릴리에서 두 번 행하신 기적이다. 지난번에는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이번에는 가나에서 병을 고치신다.
예수는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후 어느 안식일 날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신다. 예수는 이사야 61:1-2 본문을 선택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목했다. 그를 목수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에 말에 놀랐다. “오늘날 이 성경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 말은 메시야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다. 처음에 예수에 대한 반응은 매우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배척하는 사란들도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예수님의 가족들은 나사렛(높은 산지)에서 가버나움(낮은 해변가)로 이사하신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 4:13~17)..
예수는 제자들을 다시 부르심으로 본격적으로 갈릴리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신다. 지금까지 제자들이 파트타임처럼 자기 일을 하면서 예수를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예수가 그러지 말고 모든 자기 직업을 놓고 풀타임으로 전문적으로, 본격적으로 이 복음전파의 사역만 하기를 원하셔서 다시 부른 것이다. 예수는 이 시점에서 완전한 헌신을 원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 이들은 이제 풀타임 전문사역자가 되었다.
그 이후 예수님은 어느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복음서의 기록들은 그의 가르침심이 아주 권위가 있어서 청중들이 모두 놀랐다. 그의 말씀의 능력은 행위에 의해 보다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또한 예수가 시몬의 장모의 열병도 꾸짖는 순간 떠나갔다. 회중 중에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아 깨끗해졌다. 그리고 예수가 가버나움의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에게 나아가 손을 얹는 순간 그들의 병이 즉시 나았다.
이어 예수의 갈릴리 순회전도가 시작된다(막 1:38-39). 이렇게 순회전도하신 후 가버나움에 들어가서 병을 고치신 일(눅5:17-26), 그 후에 제자 마태를 부르신 일(뉵 5:27-32)이 있다. 여기까지가 공생애 1년 말엽 갈릴리 사역이다.
갈릴리로 오신 후 잠시 계시다가 예수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시려고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다. 여기부터가 공생애 2년 봄 두 번째 유월절 즈음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이다. 요한의 거의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만을 기록한 특징이 있다. 38년 된 환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일, 그뿐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을 안식일과 관련하여 설명하신 것이 화근이 되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이제 또 갈릴리로 다시 돌아오셔서 12제자를 확정하시고 임명하시다. 비로소 예수의 공생애 2년쯤에 와서야 열두 제자를 확정하셔서 부르신 것이다. 함께 있게 하시고, 귀신을 내어좇게 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을 주신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주시는데, 이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약의 십계명과 같은 것이 산상수훈이다. 산상수훈 설교 후에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다. 여기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고 그 후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눅 7:2-17).
바로 이때쯤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두 제자를 보내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라며 질문을 한다. 이 두 제자들이 보는데서 예수는 많은 질병과 고통과 귀신에 들린 자, 맹인들을 고쳐 주셨다.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거는 분명했다. 그들은 메시야의 권능을 드러내는 증거를 목격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세례한의 제자들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예수는 세례요한과 자신의 대조적 사역에 대한 당대인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비유를 들러 말씀하셨다.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어떤 놀이(눅 7:31-35)-혼인놀이냐, 장례식 놀이냐-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투는 것을 비유로 들으신다. 세례요한은 먹지 않고 금욕한다고, 귀신들렸다고 욕하고, 예수는 너무 먹고 마시는 죄인들의 친구라고 폄론하는 당시 지도자들의 세태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최초의 비유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예수는 곧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게 되었고 그의 초청을 거절치 않으셨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았을 때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붓는다. 이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흠을 잡으려고 하자 두 빚진 자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통하여 예수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재고하도록 유도하신다. 보다 많이 용서받은 자와 적게 용서받은 자 중 어느 편이 용서한 분을 사랑할 것인가?
그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심에 대하여 사람들은 놀랐으나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비판적이었다. 사람들은 예수가 진정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과 결탁하였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성령의 사역을 왜곡시키는 것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셨다. 모든 종류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훼방하는 죄만은 용서받을 수 없다.
예수께 나아와 표적을 보이라고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의 십자가의 사역을 예고하고 있다. 예수가 군종 속에서 말씀하고 계실 때 그의 어머니와 형제와 자매들이 예수를 만나려고 한쪽에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들이 식구들이 기다린다고 했을 때 예수는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라고 질문하셨다. 예수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영적인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예수는 13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모두 천국의 어떤 면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세 가지의 비유는 성장에 관한 것으로서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이다. 가라지의 비유는 다른 목적을 지녔다. 일꾼들에게 추수할 때까지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가라지와 알곡은 비슷하기 때문에 알곡을 뽑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씨앗의 바유는 천국의 급격한 성장에 대해서 말해준다. 네 개의 짧은 비유들은 같은 범주 안에 속한다. 한 비유는 천국의 보이지 않는 성장을, 그 다음에 나오는 두 비유는 천국을 보물에 비유한다. 마지막 비유는 그물 비유로 의인 가운데 악인을 갈라낸다.
예수가 비유로 천국을 설명해주시는 즈음에 몇 가지 큰 이적이 일어난다.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혈루증 여인을 고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다.
이제 예수의 공생애 사역 3년 갈릴리 사역이 시작된다. 요한복음 6장 1-16절에 나타나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개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심을 표적으로 보이신 사건이다. 요한복음 6장 이후부터 마지막 장까지가 6개월간 일어난 사건이다. 오병이어 사건 이후 벳세다에서 되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타고 떠납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남아 기도하시다가 후에 바다를 걸어오신다. 물위로 걸으시는 예수를 본 베드로는 바다에 뛰어내렸다가 빠져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다음에 예수는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셨다. 거기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셨는데 그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셨다. 그들은 많은 무리를 먹이신 이적과 같은 이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 3년 유월절이 지나서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지적한다.
예수는 갈릴리 지방을 떠나 서북쪽 해안가에 있는 두로와 시돈, 즉 베니게 사람들이 사는 국경지대로 올라가신다. 갈릴리 지역의 많은 민중들을 떠나 제자들을 훈련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셔서 거기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신다.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귀신들린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다.
예수는 이방인들이 많이 와서 살고 있는 데가볼리 지역에서 보리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로 4,000명을 먹이신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사건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것 이상의 갚은 진리가 들어있다. 예수의 마음에는 영적인 것이 훨씬 더 중요하였다. 데가볼리 지역에서 배타고 서쪽으로 건너와 막달라 지역에 오니 그곳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있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하늘로 오는 표적을 요구하였다.
갈릴리 바다 서쪽 막달라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서 헬몬산 자락에 있는 휴양도시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으로 가신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랴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후 따로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 가셔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신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보이시는 사건이다. 예수와 세 제자가 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치료하지 못한 실패로 인하여 완전히 풀이 죽어 있음이 분명하다. 예수는 귀신을 꾸짖으시고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명하셨다.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 간에 ‘누가 크냐?’하고 싸움이 일어나자, 예수께서 앉으사, 12제자를 불러서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신다. 예수는 드디어 공생애 3년,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이 떠남은 갈릴리가 고향인 그분으로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떠남이었다.
갈릴로 출발하시면서 예수는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로 작정하셨다. 사마리아 지방의 주민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유대인들에 대해 비호의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행 중에 메시야가 계심을 알지 못하였다. 제자들은 이 적대감을 그들의 선생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으로 간주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의분이 끓어올라 요한이 불을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자고 한 곳이다.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결심한 후 얼마 안되어 예수는 열 두 제자 외에 70인의 전도단을 세워 앞서 가서 길을 준비하게 하였다. 그들은 출발하기 전에 행동절차에 대한 특별한 지침도 알려 주셨다. 그들은 두 명씩 짝이 되어 가야 했다. 이런 방법으로 예수는 메시야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봉사의 양식을 세우셨다. 예수는 세 도시(고라신, 벳세다, 베레아)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삽입하셨다. 70인 전도단을 둘씩 짝지어 베레아 지방에 파송하신다. 70인 제자들은 사역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크게 기뻐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귀신을 좋아내는 것보다 하늘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초막절 중간과 끝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신다. 유월절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지 않으시다가 초막절에 드디어 예루살렘에 나타나신 것이다. 예루살렘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임무를 맡겨 파송하실 때 상대방의 영접 여부에 주의하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습은 향후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영접하는 집에서 집중적으로 일하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특별하게 예수를 영접한 집 가운데 하나는 베다니의 마리아와 마르다 집이었다.
예수는 비교적 생애 말기에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다. 수전절에 예수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해석하신다. 수전절이란 주전 165년 더럽혀진 성전을 수리하고 께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이 때 이후로 이 날을 기념하여 수전절로 지켜 왔다. 수전절은 구약시대의 명절이 아니라 마카비시대(신구약중간기)의 명절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12월 25일에 지키는 하누카가 그날이다. 이 수전절에 예수는 자신이 진정한 목자라고 설교하시며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다. 유대인들의 진정한 지도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의 모습이다.
예수가 죽으시기 3개월 전에 나사로를 살리신다. 이 사건으로 유대에서는 예수가 더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제사장들은 회의를 하여 예수에 대한 체포령을 내린다. 그래서 예수는 더 이상 유대에 다니지 않으시고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제자들과 은둔해 계시기도 하였다. 예수는 이방 땅에 계시는 것이 좋으셨다. 이곳에서 18년간 꼬부라진 여인(눅13:10-17), 고창병 든 사람을 고치시는데(눅14:1-6) 역시 안식일이 이슈가 된다.
허다한 무리가 좇았는데 십자가의 도에 대해 설교하셨다. 또한 그 유명한 잃은 양, 잃은 은전, 잃었던 아들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등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비유들은 이 베레아 지역의 세리와 죄인들에게 베풀어주신 비유들이다(눅15:16장)
베레아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는데 이제 죽으러 들어오시는 것이다. 체포령이 내리고 약 3개월이 지난 것이다. 베레아에서 서쪽방향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려면 여리고를 지나는데 그곳에서 삭개오를 만난다. 삭개오는 예수의 생애 거의 말기에 새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된다. 유월절 엿새 전 토요일에 베다니 마리아의 집에 유하시는데, 마리아가 극진한 예우로 예수님께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붓는다. 일요일에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다. 이는 그가 승리의 왕이심을 보이시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대로 겸손한 왕이 되어 백성들을 위하여 죽으러 들어오시는 것이다.
월요일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도 성전을 청결케 하셨는데, 이제 마무리 할 때도 성전 청결로 끝을 맺는다. 모세 시대부터 성막(성전)은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었다. 화요일 교지도자들의 마지막 질문 공세와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있으신 후에 성전을 나와 감람산에 올라 오셔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다보시며 우신다. 목요일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그 날 밤에 잡히신다. 그리고 밤새 심문을 당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