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기술, 조제프앙투안투생디누아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논지는 두 가지 층위의 역설(逆說)을 통해 드러나는데, 하나는 침묵이야말로 말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전제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아가 침묵 자체가 곧 말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풀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침묵은 언어를 자제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언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두 번째,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닫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말과는 다른 어떤 표현 양식을 의미한다.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고 자제할 수 있다면, 역으로 말해야 할 때를 파악해 적확하게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니, 침묵은 곧 말의 전제조건이자 잉태 공간인 셈이다. 또한 인간의 침묵이 짐승의 그것과 같을 수 없어, 표정이나 제스처를 통해 침묵하는 자의 의중이 얼마든지 드러날 수 있으므로 침묵은 곧 또 다른 언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침묵을 언어 행위에 직결시켜 이해하는 이상 두 가지 해석 방법은 고전 수사학에서 소위 악티오(actio)라 칭하는 ‘몸짓의 수사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침묵을 이야기하면서 기실은 자기표현의 언어 행위를 역설(逆說)적으로 역설(力說)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나르시시즘이 갈수록 기승을 부려, 말과 글을 통한 자기표출 행위가 극성으로 치닫는 요즘 사회에 침묵을 언어의 중요한 가능태 중 하나로 조명하는 시각은 매우 중요한 설득력을 갖는다.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데 말과 글 두 가지 길이 있듯이, 침묵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혀를 붙들어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펜을 붙들어두는 것이다. 작가가 침묵을 유지하거나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할 때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놓고 이야기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는 법이다.”라는 현자의 충고를 되새겨보라.
옛 현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말을 배우려면 인간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지를 깨치려면 신을 따라야 한다.”
요컨대 지혜에서도 상책(上策)은 침묵하는 것이고, 중책(中策)은 말을 적당히, 적게 하는 것이며,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말이 아니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첫 번째 원칙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연다.
두 번째 원칙
말을 해야 할 때가 따로 있듯이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따로 있다.
세 번째 원칙
언제 입을 닫을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을 닫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고서는 결코 말을 잘할 수 없다.
네 번째 원칙
말을 해야 할 때 입을 닫는 것은 나약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입을 닫아야 할 때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원칙
일반적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닫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여섯 번째 원칙
사람은 침묵 속에 거함으로써 스스로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침묵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은 자기 밖으로 넘쳐나게 되고, 말을 통해 흩어져, 결국에는 자기 자신보다
남에게 의존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