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변증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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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세대에 필요한 변중 설교
바나 그룹(Barna Group)이 미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 조사에서는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 중 33%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로 '의심하는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는 태도'를 꼽았다
. 3분의 1 이상이 가장 고민하는 문제를 교회 지도자들에게 물어보기 힘들다고 했고,
23%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상당한 지적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설교의 사명이 변증적 소명임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몰러는 근대 사회에서 후기 근대 사회로 넘어가면서 설교자들이 변증적 소명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설교의 '변증적 소명'이란 포스트모던 시대 청중이 가진 의심과 질문에 대답하는 설교를 의미한다. 청중의 질문에 대답하는 설교가 바로 변증 설교이다.
'변증'은 헬라어로 '아폴로기아'(anokoyia)이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anoloyia, give to an answer)을 항상 준비"(벧전 3:15) 하라고 베드로 사도는 명령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을 주는 설교를 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빌 1:7)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변증설교란 먼저 청중이 가진 질문을 긍정한 후, 그 질문이 가진 한계와 모순을 그들의 가치관을 통해서 보여 주고, 궁극적 해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설교이다.
제1장 “변증 설교'의 성경적 근거" 에서는 이러한 변증설교 패턴을 보여 줄 것이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는 '성경적 설교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먼저는 성경 본문을 당시 언어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찾는 것이고, 다음으로 본문에서 찾은 진리를 '민감하게 현대 사회' (Sensitivity to the modernworld)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팀 켈러(Timothy Keller)'는 좋은 설교(Good preaching)란 1차적으로 본문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2차적으로 본문의 말씀을 청중의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함으로 '청중의 마음과 삶에 ' (To the heart and life of listener)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설교는 혼자 말하기(Monologue)가 아니라 활발한 토의(Interactive discussion)처럼 설교자와 청중들이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교는 선포이기 때문에 주일 예배 시간에 켈러가 언급한 것처럼 '활발한 토의' 형식으로 설교할 수는 없다. 켈러가 말하는 '활발한 토의’처럼 설교하라는 것은 설교자가 설교 준비 과정에서부터 청중의 질문을 파악하고, 설교 가운데 청중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성경으로 대답을 하는 과정을 포함하는 설교를 의미한다.
제1장 "변증 설교의 성경적 근거
"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행 6:9-10).
스데반이 설교를 한 후,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청중은 그를 죽였다. 성공적인 설교는 '청중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결신자가 있는가'로 결정될 수 없다. 오히려 '설교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했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스데반 모두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했지만, 그 결과는 많은 결신자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해와 순교였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요한 역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행 4:7).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행 4:9).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베드로와 요한이 이 말씀을 예배당 안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소와 위협을 받는 공의회에서
그들의 믿음을 설명하고 지키기 위해서였다.
바울이 청중에게 익숙한 언어를 사용하자 소동하는 청중이 조용해졌다. 이는 청중의집중과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2:3에서 바울은 청중에게 친숙한 단어들, 즉 '유대인,' '길리기아 다소, '가말리엘의 문하,' '조상들의율법의 엄한 교훈,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등을 사용해서 변증 설교를 시작한다.,
켈러는 효과적 변증 설교를 위한 첫 번째 요소로 '청중에게 잘 설명된 단어’(Well-explained vocabulary)를 사용해야 함을 주장했는데, 바울도 청중에게익숙한 단어를 사용하여 변증 설교를 시작한다. 오늘날 설교자도 변증 설교를 할 때에는,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변증 설교의 첫 단계이다.
설교자는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청중에게 생소한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설교를 위해서 꼭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단어는 정기적으로그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특히, 신학적 단어를 설명할 때는청중이 사용하는 언어와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청중은 귀를 닫게 되고 설교의 서론 부분에서 그 흥미를 잃게 된다.
켈러는 이것을 "청중이 권위를 두는 가치를 존중하라" (Employ respected authorities to strengthen your theses)라는 변증 요소로 주장한다.
청중이 신뢰하는 자료를 인용하는 목적은 청중이 권위를 두는 자료들을 사용함으로써 청중의 마음에 성경의 진리를 강력하게 전하기 위해서이다. 물론청중에게 권위를 가진 자료가 청중이 믿음을 가지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설교자는 청중이 권위를 두는 가치를 존중하며 인용할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증 설교 도입 부분에서는 현대 사회가 동의하고권위를 두는 자료들을 사용하는 목적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행 22:4-5).
바울은 유대인 청중에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님 이야기를한다(행 22:3-4). 사도행전 전체를 한 본문으로 본다면 바울이 다메섹으로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난 사건은 세 번이나 반복된다(행 9, 22, 26장).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울의 메시지가 변증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유대인 청중이 갖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 대한 '반대와 의심'을 바울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켈러는 이것을 의심과 반대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라”.
바울은 유대인 청중처럼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기독교인을 박해하러가는 길에서 하늘로부터 '큰 빛'을 보고,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행 22:7).
바울은 그 음성이 자신이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행 22:8)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이 과거에 들었던 '하늘의 음성'을 청중에게 다시 들려 주는 이유는무엇인가?
청중이 가진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켈러는 이것을 ‘문화 담론의 기준선'(Baseline Culture Narrative)이라고 했다.'문화 담론의 기준선'이란 동시대를 살아가는 불신자 청중이 공통적으로가지고 있는 비성경적인 가치관을 말한다. 유대인 청중들이 가진 문화 담론의 기준선은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라' 이다.
바울은 예수를 박해하는 문화 담론을 가진 청중을 향해서 질문하고 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 (행 22:7).
21세기 청중이 가진 문화 담론의 기준선은 무엇인가?
'물질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학벌 제일주의' '다양성을 주장하며절대 진리를 거부하는 성향' 등이 문화 담론의 기준선이 될 수 있다. 변증설교는 청중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비성경적인 '문화 담론의 기준선'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는 문화 담론의 기준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21세기 문화 담론의 기준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말씀을 제시해야 한다(행 22:11~13)
바울의 변증설교의 구조와 변증 표현
1-2절 / 잘 설명된 단어, / "부형들아,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
3~5절/ 권위존중/ 길리기아 다소, 가말리엘의 문하율법의 엄한 교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내 증인, 공문
4-5절,19-20절 /의심과 반대를 이해함/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주를 믿는 사람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 내가 곁에 서서 찬성
6~9절/문화 담론의 기준선 확인/ 하느로부터 큰 빛"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누구시니이까?""나는 네게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10~15절, 22~23절"/ 복음으로 문화의 압박점을 제압/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6, 21절/ 복음의 삶의 초대/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어거스틴은 30년 이상의 가르침과 기독교 연구를 통해서 『기독교 교양」3권 후반부와 4권을(426 A.D.) 그가 죽기 3-4 년 전에 완성한다. 고대 수사학자인 키케로와 퀸틸리안에게 영향을 받은 『기독교 교양』 4권에서 그는발견한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설교를 단순한 선포가 아니라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키케로가 말한 웅변가의 세 가지 핵심 요소인 '가르침’(Teaches), ‘기쁨’(Delights), 그리고 '움직임'(Moves)을 설교자에게 적용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키케로의 수사학을 그대로 모방하지는 않았다.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며, 가르침의 방향은 청중에게 기쁨을 주며, 그들의 삶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변증해야 함을 주장한다.
약간의 의심도 없는 믿음은 마치 인간의 육체 속에 어떤 항체 기능도 없는 것과 같다(A faith without some doubts is like a human body without any antibodies in it). 2
변증 설교를 위한 6가지 건강한 실천 요소들
1. 친숙함, 사용 가능한 혹은 청중에게 잘 설명된 단어를 사용하라(Use accessible or well-explained vocabulary)
2. 귄위존중, 설교 강화를 위해 청중이 권위를 두는 가치를 존중하라(Employ Respected Authorities to Strengthen Your Theses)
3.의심과 반대, 의심과 반대 의견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라(Demonstrate an understanding of doubts and objectives)
4. 주장, 문화 담론의 기준선을 도전하기 위해서 확인하라(Affirm in order to challenge baseline culture narrative)
5.반박, 복음으로 문화의 압박점들을 제압하라(Gospel offers that push on the culture's pressure points)
6.결론, 복음의 삶으로 초대하라.(Call for gospel motivation)
켈러가 제시한 변증 설교를 위한 6가지 건강한 실천 요소들은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리스-로마 수사학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키케로(Cicero), 퀸틸리안(Quintilian) 등이 켈러와 유사한 요소들을 이미 말했다.
기독교의 문제 : 왜 그렇게 믿기 힘든가?
1.배타성 : 어떻게 한 종교에만 진리가 있는가?, 요일 4:1~10
2.고통 : 만약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많은 악이 존재하는가?,벧전 1:3~12
3.불의 : 기독교는 억압을 위한 도구가 아니었던가?,약 2:1~17
4.기독교의 하나님은 화난 심판자가 아닌가.눅 16:19~31
5.문자주의 : 성경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퇴보한 책이 아닌가?. 눅 1:1~4.24: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