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이 너에게 계셔(스 3:14-19), 김덕선 목사

liefd 2024. 2. 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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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은혜를 사모하기 위해 이곳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막상 시작은 하였는데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시는 분도 있는 줄 압니다. 다같이 이렇게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됩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안될 것같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됩니다.

 

저희 교회에 남전도회 집사님들이 좋아하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도나를 도우시는 주 일어나 걸으라...저도 그 찬양을 좋아합니다. 왜 남전도회 집사님들이 좋아할까? 생각해 보니까? 나의 등 뒤에서 도우신다는 가사, 매일 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그 대목에 은혜를 받는 것같습니다. 사실 그 대목에 은혜를 받으면 안되는데 어쨌든 힘든 세상 가운데서 그 찬양을 부르면 가슴이 찡한 모양입니다.

 

저도 그 찬양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나의 등 뒤에서 도우시는 주라는 표현이 좀 아쉽니다. 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뒤에서 도우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뒤에서 도우시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찬송가 388장을 좋아합니다. 특히 3절에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벗은 형제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크신 팔을 벌리고 너를 도와주시려고 서서 기다리시니 너 어서 나오라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두 팔을 벌리시고 우리를 도우시려고 그분의 모습이 마치 눈 앞에 슬로우 모션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분 한분을, 찬양 사역에 수고하는 여러분을 두 손을 벌리시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계십니까? 막연히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시는 분이 안계십니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만나주시기를 그렇게 원하십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가장 행복해집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시기 원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만나시기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질 때 그 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신자의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헤로 인하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찬양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찬양한다는 것이 기적합니다. 간혹 우리는 그런 느낌을 받곤 합니다. 내가 지금 찬양을 하고 있지만 내가 지금 이러구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었는데 찬양 사역을 하겠다고 여기에 있으니 놀라운 기적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대책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신자는 대책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책을 세워 주실 줄 믿고 나서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문이고 자주 부르곤 하는 복음송입니다. 우리 뭔문에는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복음송 가사에는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나라가 멸망한지 이미 100년이 지났습니다. 남쪽 유다도 우상숭배로 인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고 말씀하셨을 까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대목입니다. 한 마디로 유다 백성들은 지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16절에 보면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권투 선수들이 링위에서 이리 저리 터지고 글로기 직전에 가더라도 절대로 손을 능러뜨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려운 상황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향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다루어가시는 방법을 이해할 때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물 컵이 있습니다. 컵의 윗부분 1/5을 남겨 놓고 물이 차 있습니다. 우리는 나머지 1/5을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컵을 흔들어 놓으십니다. 그릇에 남아 있던 물이 거의 쏟아지고 1/3만 남았습니다. 다시 컵의 물을 체워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그릇을 차버리십니다. 이제 물이 다 쏟아지고 빈 그릇만 남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채워달라고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더 이상 기도하고 싶은 마음 조차 생각지 않습니다. 바로 이 때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빈 그릇을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사렙다 과부의 밀가루의 원리가 여기에 적용됩니다.

 

우리 인생의 참된 기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드릴 때입니다. 역대상 291절부터 19절까지에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현이 몇번이나 나오는지 아십니까? 3절에 보면 내 하니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5절에 보면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6절 하반절에 보면 다 즐거이 드리되, 6절 하반절에 보면 드리고, 7절에 보면 드렸더라, 9절에 보면 즐거이 드림으로, 즐거이 드림이며, 14절에 보면 주께 드렸을 뿐이니라, 17절에 보면 이모든 것을 드렸사오니신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그 자체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것 자체로 인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드리기보다는 받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서도 자신이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축복의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만나지 못한채 교회의 문을 빠져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때 예배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예배에 더 많은 열정과 힘을 쏟아 붓게 되고 더욱 기쁨으로 예배드리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예배를 드리는 자는 찬양도 열심을 내지 않고 기도할 때에도 딴 생각을 하게 되고 주위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의 만남의 감격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습관적으로 공허한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예배드리는 시간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새롭고 귀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는 많이 드려도 자신의 삶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들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발생할 때 하나님께서 도움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되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 인생의 참된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예배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분과의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의 찬양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스바냐서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에도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첫 아기를 낳았을 때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고 나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이 되었을 때 내가 너로 인하여 여전히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까? 아니면 자녀들로 인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까? 다시 한번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런 심정으로 아이들을 격려하며 위로 해주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로 인하여 명성을 얻게 해 주십니다.

 

서로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당신을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을 때에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손자를 통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하십니다. 어떻습니까? 부모가 되었을 때 자녀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그 기쁨이 큽니까?

 

아니면 손자로 인하여 누리는 기쁨이 더 큽니까?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손자를 통해서 확인시켜 주십니다. 학우들이여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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