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것(욘 4:10-11), 김덕선 목사
오늘 우리는 송원규 선교사, 이은영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선교사 파송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선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실 때 나타내는 반응입니다.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하지만 하나님께서 선교의 모든 사역을 행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송원규 선교사, 이은영 선교사 파송을 위해 이 자리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과연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뭐가 축하할 일인기?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 때문에 슬프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파송받는 두 분 선교사도 기뻐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파송하는 우리 모두도 함께 기뻐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단순히 축하할 일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빓립보서 2장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기 위하여 달려가는 경주와 같습니다. 선교를 위한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꺼리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는 선교지 선택으로 인하여 갈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나서 1장 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였고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해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이 생명의 위기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를 그 배에서 던짐으로 인해 배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바닷속에 풍덩 떨어지는 바로 그 장소에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고래밥이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눈물의 기도로 말미암아 다시 니느웨로 가게 됩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기 싫다고 다른 곳으로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다시 임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들어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무너진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성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려고 했던 것을 돌이키셨습니다. 이에 대해 선쇼사 요나는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요나서 4장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지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사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선교사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를 원했을까요? 선교사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니느웨 백성들이 재앙을 당하기를 원했습니다. 오히려 요나는 하나님께서 왜 이렇다 저랬다 하시느냐고 못마땅해 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다시스로 도망간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을 실 것을 자신이 알기 때문에 도망쳤다고 실토하고 있습니다. 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요나는 선교의 사명을 위해서 자기중심적인 경향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자기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 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자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대로 되는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 요나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자신의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3절) 요나는 성에 나가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고 했습니다. 아직도 요나의 마음속에는 니느웨가 망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백성을 살리시기를 원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사랑하셔서 박넝쿨을 준비하여 강렬한 햇빛을 가리워서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보내어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들었습니다. 개다가 하나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에 요나의 머리에 해가 비치자 요나는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8절). 요나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 조금만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말을 내뱉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찾아오셔서 왜 너가 박넝쿨로 인하여 성을 내느고 하십니다. 그때 요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성내어 주기까지 합당하나이다”(9절.)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렇게 밀씀하십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했던 이 넝쿨도 아겼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10-11절).
여기서 선교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자세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의 어떤 문제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을 나도 아끼는 그 중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 전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아끼시는 영혼들을 우리가 역시 그 영혼들을 아끼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요나의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놓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만을 축복하시고 다른 백성들은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구태여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온 세상을 구원시키려고 하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선교사 파송을 받는 송원규 교사, 이은영 선교사님 주 분은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을 함께 아끼시는 자가 되십시오. 선교사를 파송하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을 함께 아끼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너무나 구체적으로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에 속한 권세를 누가 체험할 수 있을까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가쳐 지키게 하는 사람입니다.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 현장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구체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체험하게 돱니다. 하나님깨서 두 분을 통해서 일하시게 될 것이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일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우리 다 함께 기도와 물질로 동역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