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코리 텐붐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에수님께 나아가기에는 저는 너무나 형편없는 인간입니다”라고 고백한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돕기를 원하시고, 또 도우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일단 나아오라.
정말 놀라운 두 가지 소식이 무엇인가 아는가? 주님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며, 지금 당장이라도 죄를 주님께 가져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고백하는 순간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벗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죄를 짓는 즉시 주님께 나가는 습관을 가지라. 조금만 지체해도 사탄이 당신을 비난할 것이다.
하루는 작은 마을에 사는 한 남자가 신부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 제가 감자 세 자루를 훔쳤습니다. 남자의 고백이 끝나고 신부는 회개와 죄사함에 대애 이야기 했다. 고해성사를 모두 끝내고 신부가 물었다. 지금까지 훔친 감자 두 자라만 말했습니다. 세 자루를 훔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한 자루는 내일 훔칠 겁니다. 누구든 죄를 고백하는 자는 죄 짓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죄 사함을 얻지 못한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건너야 하는 다리를 부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즉시 용서해야 한다. 누가 우리에게 안 좋은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즉시 용서하면 사탄이 우리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 틈이 없다.
나는 당신에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주고 받는 인사말이다.
주님께 순복하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이 우리의 영원한 길잡이요 목자가 되신다.
하나님께 순복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취하시고 정결하게 하신다. 정결하게 하시기 전에 비우는 작업을 하신다. 비우신 후에는 채우시고, 채우신 후에는 사용하신다.
사탄은 우리가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을 전하고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고, 자신의 경험을 뽐내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거룩함은 우리 안의 예수 그리스도를 삶 가운데 나타내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바라본다. 우리 믿음이 큰지 작은지, 강한 지 약한 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야 할 대상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다. 다리 되신 주님이시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시다.
거룩함이란 죄인을 정결하게 하사 죄인의 본성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자비하시고 지속적인 개입입니다. 성령님의 개입으로 거룩하게 될 때 죄인은 비로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한 소녀가 어머니의 도자기 잔을 깨뜨렸다. 깨진 잔을 들고 무척 속상해 하는 소녀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정말 반성하고 있구나. 엄마가 용서할게. 이젠 깨진 조각은 쓰레기 통에 버리렴”. 다음 날 쓰레기통에서 깨진 찻잔을 본 소녀는 찻잔 조각들을 꺼내 어머니에게 들고 갔다. 엄마 제가 이 잔을 깨뜨렸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말했다. 그 조각들은 쓰레그통에 그냥 두렴. 이제부터 엄마가 용서해준 것만 생각해. 용서가 완성되었음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 그 소녀를 닮지 않았는가?
주 예수님을 삶 가운데 초청하고 그분의 용서를 받아들여 주님을 통해 거룩해지면 주님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주신다.
주님은 악순환의 사슬을 끊고 우리를 복된 선순환의 자리로 옮기신다.
성호화는 부흥을 위한 첫 걸음이다. 한 사람이 전조다 집시 스미스에게 물었다. “우리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으로 가서 분필을 집어 들고, 방바닥에 원을 하나 그리세요. 그 원 가운데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님 우리 교회에 부흥을 보내 주십시오. 그 부흥이 먼저 이 원 가운데 시작되기를 원합니다.“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을 입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이 되는 대신 하나님의 근심이 된다.
한 소매치기가 말했다. “전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전에는 일주일에 시계를 5, 60개 훔쳤는데 이제는 안그럽니다. 대 여섯 개만 훔칩니다. 이 사람은 틀렸다. 우리도 종종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고백하지 않은 죄,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는 아무리 작아도 버젓이 살아 숨쉬는 죄다.
전에는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성경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하나님이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사실은 아무도 못믿겠어요. 성령님이 책망하시는 죄에는 불신앙의 죄도 포함된다.
당신은 예수님이 지불하신 값에 합당한 가치를 그분께 드리고 있는가? 당신이 시계방에서 금줄이 달린 금시계를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시계방에서 금줄은 다른 곳에 몰래 숨기고 금시계만 당신에게 보냈다고 치자.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불하신 대가만큼의 가치를 하지 못하는 셈이다.
온전한 순복
왕상 20:1-4절에 보면 아합왕이 아람왕 벤하닷에게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항복, 온전한 순복이다. 강제수용소에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순복의 대상은 사랑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좋은 일을 다 행하고자 하신다. 끝없이 우리를 축복하기를 원하신다. 단 우리가 그분께 순복하기만 한다면.
염려는 접고 당신은 손을 주님의 손에 포개라.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고 예수님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고 마음 속에 들어와 주시기를 구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듭남의 기적을 행하신다. 그러나 거듭난 후에는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온전한 순복이 필요하다. 우리가 온전히 순복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사용하시는데 걸림돌이 된다.
전차는 하루 24시간 전기에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버스는 수시로 주유를 해 줘야 한다. 입으로는 우리를 사용하시라고 하면서 건성으로 주님께 우리를 드리면 우리는 버스같은 존재가 된다. 이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차처럼 잠시 잠깐의 끊입도 없이 전력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럴 때 힘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주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분의 돌보심 안에 게속 머누는 것이다.
때로는 온전한 순복을 두려워 할 때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 힘으로 우리 의지로 순복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행동, 모든 부분에서 우리 가운데 일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다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이끄시길 원하는 예수님의 강한 손에 우리의 약한 손을 포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주님께 내어드리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잘못된 부분을 제하기 위해 역사하신다.
하나님, 기꺼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원하는 마음을 주세요 .
지금까지 당신은 두려움과 자원하는 마음이 부족해 주님의 발목을 잡아 왔다.주님은 당신을 돕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드림으로써, 온전히 주님께 순복함으로써 주님을 향한 신뢰를 보이라.
바다 빈병을 던지면 이내 병 안에 바닷물이 가득찬다. 마찬가지로 온전한 순복 가운데 예수님 품에 우리 자신을 던지면 하나님의 사랑의 바닷물로 우리 안팎이 채워진다.
순복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시다.
주님은 우리가 온전히 순복할 수 있도록 돕기를 원하신다.
두려워 떨린다면 당신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 완전히 사로잡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빠져 있다.
한 부인이 극장에서 값비싼 브로치를 잃어버리고는 집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다은 날 아침 일찍 부인은 극장에 걸어 혹시 브로치가 분실물로 들어왔는지 물었다, 좌석 번호가 몇 번이었죠. 5열 2번이었습니다. 관리인이 다시 사물실로 돌아와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수화기를 끊어버린 것이다. 수화기를 너무 빨리 내려 놓지 마라. 당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으시다.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한 첫 단계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다(거듭남, 요 3:7). 지금까지 주님께 몇 번씩이나 순복했어요. 그러나 그 행복감이 두 주를 넘기지 못해요.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면 바라보는 대상을 바꿔야 한다. 당신 자신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의지해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조지 뮬러 이야기
아흔 번째 생일에 누군가 조지 뭘러에게 항상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온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두 가지 비결이 있지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날마다 깨끗한 양심을 지켜 왔다는 겁니다.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날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얻은 깨끗한 양심, 그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삶, 순복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두 가지 모습이다.
차를 부어 마시려면 잔을 비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우리 자신을 비웠을 때 우리를 채우시고 복 주신다.
왜 예수님이 저보다 강사님께 더 실질적으로 나타나시는 것까요? 형제님이 한번도 주님께 순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형제님이 주님께 순복하시면 이 아주 강력한 실체로 형제님께 그분을 계시하실 꺼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아신다. 그 고통과 슬픔을 안정한 주님의 손에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주님의 손에 맡기자.
지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되는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다.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이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지혜다. 이 두 번째 지혜가 가장 높은 지혜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실까? 오직 한 가지 충성됨이다. 사랑과 순종은 함께 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기도의 놀라운 점은 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세상을 떠나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C.S 루이스는 두 가지 위험을 경고한다.
삼촌 악마는 세상에서 활동하는 조카 악마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사람들이 우리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해라. 그게 첫째다. 하지만 만약 사람들이 우리 존재를 알게 되거든 우리에게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고, 우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말하게 만들어라.‘
다윗은 시편 103편 20절에서 천사를 말씀에 순종하는 종으로 묘사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은사와 책무를 받았다(욥 38:7, 눅 2:14).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천사들에게 기쁨이 된다.
천상의 피조물 가운데 그룹과 스랍이 있다(왕하19:15).
이 땅에서 일하는 천사들은 많은 경우 친근하고 이해심 많은 조력자의 모습이다(행 12:1-11). 천사들은 지금도 성경시대만큼이나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히브리서 1장 14절은 천사들이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보냄 받은 섬기는 영이라고 기록하고 한다.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창 19:12-13). 벨사살 왕이 볼 수 있도록 벽에 글자를 쓰는 실체도 천사의 손기락이었다. 가브라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나타나서 지혜와 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단 9장).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들은 , 먼저 스가랴에게, 다음은 마리아에게, 다음으로 요셉에게 전했다(눅2:11).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떠날 때에, 즉 우리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천사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와 동행한다.
중보는 어렵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의 풍차는 천천히 돌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다.
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을까?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주님께로 보내기 위해서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모세, 다윗, 바울은 한 때 살인자였으나 놀라운 하나님의 영웅이 되었다.
주 예수님 제 마음에 와 주세요라고 기도하자, 예수님이 오셨다(계 3:20).
우리는 왕의 자녀다. 우리는 아버지의 보물창고 열쇠를 지녔다. 이 보물창고에는 낮이나 밤이나 언제든지 우리가 쓸 수 있도록 보화가 준비되어 있다.
영생이 있다는 걸 전 믿어요. 하지만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면 때때로 무서워요.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에 악한 세력으로 보호해 주시리라고 주님께 기도해야 해요.
당신이 오늘 만난 그 사람, 그 아이가 충만한 수를 채우는 마지막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당신의 고난이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에수님이 우리 안에 게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있기에 우리가 어느 곳에 들어가면, 예수님도 함께 들어가신다.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