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세상에서 온전한 아이로 키우기, 칩 잉그램
성공보다 거룩을 추구하는 아이로 키워라.
왜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가치관이 자신이 가르치고자 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을까?
대답은 이것이다.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고, 올바른 자녀 양육은 이 시대의 문화의 흐름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 아이의 친구들 중 많은 아이들은 옳고 그름의 차이를 배운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 역시 그것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현실타협이라는 유혹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상대성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결과로 도덕의 혼돈을 낳았다. 세상은 변했다. 불확실하고 폭력적이며 두렵고 불완전하다.
당신의 아이가 이런 흉악하고 부패한 세상에서 경건하고 순수하며 책임감 있는 젊은이로 자라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답은 ‘예스’다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영아살해의 위협, 난잡한 주신제, 근친상간, 수간, 만연하는 강신술 등이 일상인 한복판에서 요셉, 모세, 다니엘처럼 경건한 자녀들을 길러 내셨다.
혹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버턴을 눌러서 서로를 미치도록 화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온전한 자녀로 키우기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엡 6:4). 아이들을 지나치게 나무라고 필요 이상으로 몰아세우지 마라.
아이가 가능한 쉽게 하나님의 교훈과 법도를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양육하라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격려하라는 것이다.
아이에게 당신이 그를 믿는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이 그의 성품을 믿고 있으며, 스스로 그 지뢰를 피해 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줘라. 생존의 기술을 가르쳐 주라. 단순히 외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적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라
첫 번째 원칙 : 뚜렷한 목표를 세우라
자녀에 대한 부모의 목표는 아이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다(롬8:29).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처럼 자비롭고 예수님처럼 절제되어 있으며 예수님처럼 이타심이 많고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순결한 것,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닮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핵심이다.
당신의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꿈은 그들의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행복에 이르는 하나님의 방법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롬 8:29).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 양육의 궁극적 목표다.
아이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자라가는 데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깊고도 참된 기쁨에서 솟아나는 행복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원칙 : 말한 대로 실천하라
효과적인 자녀양육은 우리가 말한 대로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아이는 우리가 한 말에 의해 자기의 삶을 형성하지 않는다. 아이는 우리의 태도의 날카로운 관찰자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 최초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 모델이다. 아이에 대한 요구는 그것이 우리의 성품이나 생활방식과 일치할 때에만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4-16)
당신이 모형이 되어야 아이가 자라서 그리스도와 같이 행동하고 보고 생각하고 생활하고 말하고 기도하는 것이 목표라면 아이를 위해 모범이 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당신은 아이가 닮게 될 이미지를 가진 모형이다.
아이는 당신이 한 말대로가 아니라 당신이 한 행동대로 할 것이다.
긍정적이고 도덕적이며 책임감 있는 역할모델에게 노출된 아이는 긍정적이고 도적적이며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당신이 먼저 아이에게 바라는 그 모습이 되어야 한다.
물론 부모가 완벽해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구나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당신이 성공을 어떻게 다루는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 주어라. 당신은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다.
성품은 가르쳐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붙들리는 것이다. 아이는 역할 모델에 의해 형성되고, 그 역할모델은 언제나 부모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