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김덕선 칼럼 모음집

liefd 2024. 2. 2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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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과 부스러기

 

어떤 헬라인 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절하실 뿐 아니라 모욕과 상처를 주는 말을 하십니다.

떡이 있으면 자녀에게 먼저 주지 개에게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자는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자녀와 개를 구별하고 떡과 부스러기를 구별하는 이 여인에게 매우 놀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라는 떡보다는 오직 개들이 찾는 돈, 명예, 병 치유 같은 부스러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 이방인 여인의 믿음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는 말씀으로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여인은 말씀의 능력()과 딸의 치유(부스러기), 두 가지를 모두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부스러기에만 관심을 가지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떡을 받을 만한 자녀다운 모습을 갖추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삶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선택과 축복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의 자유'를 받았지만 그런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는 생명과 복이요, 다른 하나는 사망과 화()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이 계속 되는데 어디서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천국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이 세상의 고난 뿐 아니라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을 잘하기를 원하십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회복시켜 주십니다.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선택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 장래에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소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셔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는 생명과 복이요, 다른 하나는 사망과 화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면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나증에 천국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이 세상에서도 화를 당하고 나중에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이 계속되는데 어디서 보내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였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택을 잘하기를 원하십니다.

생명과 복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과거에 실패로 인한 아픔과 손실의 충격으로 인해 위축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깨닫고 돌아오기만 하면 회복시켜 주십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형편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 장래에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소망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실패했을 때

 

실직, 부도, , 파산, 신용불량 등 심각한 경제상황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우리는 가장 먼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개 이런 현실에서는 억울한 생각도 들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현실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때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면 철저하게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복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방송, 인터넷 등에서 전문가나 실패를 극복한 경험자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먼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패한 상태에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재산을 모두 잃었다 하더라도 욥과 같이 하나님이 기회를 다시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당장 불편한 상황과 장애요인이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

 

지금 많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나요?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인가요?

 

이처럼 현실적으로는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나의 앞날이 주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비교적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에는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들리고 불안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신앙의 훈련 과정을 통과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원하십니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신앙의 훈련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믿고 기다리면 여러분에게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인생의 안내자

 

우리 인생은 여행과 같습니다.

어떤 안내자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행복한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불행의 한숨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안내자를 만나야 할까요?

다른 곳에서 찾지 마십시오.

바로 성경이 그 답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하고 회복시켜 줍니다.

 

성경은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인생의 등대입니다.

인생은 칠흑 같은 밤에 바위와 돌이 많은 산길을 걷는 것과 같지만, 주의 말씀은 내 발을 비추는 등이요 내 길을 비추는 빛과 같아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우리가 복 있는 사람이고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기쁨과 희망이 넘치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과의의 올바른 관계와 복 있는 삶, 형통하는 삶의 비밀을 알려 주는 인생의 참된 안내자요 매뉴얼인 성경을 항상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회복

 

, 보증, 과다한 소비와 투기로 인한 경제적 위기나 형제자매나 부모자식간의 불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흔들리는 가정의 모습들을 많이 듣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부분 외에도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 저출산 등의 사회적 변화도 가정위기의 주요한 원인입니다.

 

숨가쁘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 없이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 남편의 역할입니다.

 

아버지가 가장의 권위를 회복함으로써 자녀를 바르게 인도하고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남편이 변해야 가정이 변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가정 회복의 열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정을 세우고 지켜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가정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에 가정이 든든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들이 아름답게 회복되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37: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선은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삶,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말합니다.

사랑의 감동을 끼치는 삶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축복된 삶입니다.

 

선을 행하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시편 371절 말씀입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우리 주위에는 잘못 살아가는 사람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내가 왜 이렇게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하냐고 불평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 잘 사는 모습을 보며 투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면서 그러한 이들로 인해 결코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불평하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선을 행하면서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실망감 극복하기

 

실망감은 기대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생기는 것으로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입니다.

 

실망감을 빨리 떨쳐내지 않으면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도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망감은 '분열된 마음'을 만듭니다.

마음이 분열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또 실망감은 '기도하지 않는 생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실망감이 낙심으로 발전하면 대부분 기도생활을 멈추는 사례를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실망감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치명적인 결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실망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당신의 상황을 알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실망스런 상황이 올 때 분노하고 좌절할 것인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맡길 것인지를 잘 선택하면 됩니다.

 

, 실망이 인생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실망감은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더욱 고정하고 더 큰 복을 받을 준비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바탕으로 상황을 받아 들이되 내일에 대한 희망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면, 실망감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가정의 회복

 

오늘날 가정의 문제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부부의 사랑이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해 실망하고 신뢰를 잃어버릴 때 부부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줍니다.

 

가족 내 이기주의와 편애도 원인입니다. 야곱의 이기주의로 형 에서와 원수가 되었고,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형들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불행이 생긴 것입니다.

 

또한 물질에 지혜롭지 못해서, 즉 빚을 지거나, 보증을 잘못 서거나, 과소비와 어리석은 투기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습니다.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남편 역할의 회복, 아버지 역할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의 회복의 열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을 세우고 지켜 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정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에 가정이 든든하게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모든 가정들이 회복되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소원합니다.

 

힐링

 

며칠 전 아침, 다른 한 분과 함께 교회 정원을 둘러 보고 있던 교회 옆 식당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사장님이 이런 인사를 건넵니다.

목사님, 교회 마당에 있는꽃을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손님들을 자주 데려 옵니다.”

 

우리 교회가 누군가에게 마음의 여유와 회복을 주는 곳이라는 기쁨으로 마당을 쓸고 벤치를 물걸레로 닦으면서, 지저분한 영아부실 외벽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장식도 하고 외부인들도 자주 이용하는 화장실을 좀 더 예쁘게 꾸미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정한 힐링입니다.

우리 교회가 저런 감각적인 힐링과 더불어 진정한 힐링은 주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힐링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섬기고 품을 때 진정한 '힐링 처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기만 하면 힐링이 되고 예배에 참석하면 힐링이 되고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교회, 우리 예람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도록 모두 함께 노력하면 참 좋겠습니다.

 

교회 분위기가 좋아야 합니다

 

분위기가 좋은 공동체는 구성원 개인의 삶도 의미있게 변화시키듯, 교회의 좋은 분위기는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의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특히 어렵고 힘든 사람은 더욱 잘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서로에게 관심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잘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약간의 불편한 것이 있더라도 감사한 것을 찾아 먼저 나누면 관계가 부드러워집니다.

 

서로를 위한 기도의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는 사랑과 관심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때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한 사람이 세 사람 이상을 위해 기도해 주도록 합시다.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합니다.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나누는 모습이 많아야 합니다.

인사는 내가 먼저, 친절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복음 안에서 깊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방식이 아닌 성경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분위기 좋은 교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 봅시다.

 

원망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원망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불만을 품고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비난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상대가 변화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는 원망과 불평의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평, 원망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출애굽기 16, 1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는 것과 마실 물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원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신다는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했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한 것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편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원망, 불평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지금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감정의 치유

 

감정의 치유는 상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주목하기보다 하나님을 주목함으로 그 상처가 우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235절에서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오늘날의 언어로는 "하나님, 내게 부어 주시는 벅찬 은혜로 나의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상으로 주신 넘치는 은혜로 인해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한 가족임을 인정해 주셨다는 것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바로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과는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족으로 받아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흔들림 없는 고백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윗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학교나 회사에서 윗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아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 관계를 끊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노력해 보기를 권합니다.

 

못마땅한 부분이 보이고 윗사람이 나를 책망하고 야단 칠 때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욕 하지 마십시오.

 

윗사람과 전화를 걸거나 대화를 나눌 때 감정을 이기지 못해 전화를 끊거나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불손한 자세를 보였다면 어렵더라도 먼저 화해의 시간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윗사람의 지시는 다소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일단은 순종하고 나중에 이렇게 하면 어떨지 건의를 드리십시오.

그러나 부당한 지시를 할 때는 반박의사를 표현하되 논리와 예의를 갖추고 하십시오. 그래야 당신의 말에 힘이 생깁니다.

 

그 분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 주고 그 분의 장점을 찾아보도록 노력하고 작은 고마움에도 감사의 표현을 해 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하면 윗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했는데 윗사람이 마음을 열지 않더라도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그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만족을 돈이나 친구에서 찾고 있습니다.

큰 집, 비싼 승용차, 많은 재산이 있어도 참된 민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참된 만족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보다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이 없는 삶이 최상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시련에는 그런 목적이 있는 것이지요.

가장 훌륭한 삶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깊이 알고 깨닫는데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존재이며 위대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혼합하여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하나님도 우리 삶의 즐거운 일, 괴로운 일들을 조합하여 우리를 뛰어난 걸작품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영광과 신비를 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항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자의 브랜드

 

신자의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베드로후서를 보겠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벧후 2:9)

 

이 말씀처럼 신자의 브랜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건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는 큰 어려움이 닥쳐도 반드시 구원해 주시지만 '경건치 않은 자'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의로운 롯은 구원을 받았지만 그의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에 대하여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경건치 아니한 자'를 말합니다.(벧후 2:5~6)

'경건치 아니한 자'는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생활을 적당하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도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경건한 자'입니까, '경건치 않은, 불의한 자'입니까?

이제 우리는 경건한 자로서 거룩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험에 잘 들지 않는 사람

 

무엇을 요구하는 태도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은 시험에 잘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보면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잘 들지 않는 사람은 받기 보다는 드리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으면 절대로 시험에 드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는 데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시험에 잘 빠지지만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시험 드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도 경험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 하면서 시험에 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누가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됩시다.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며 시험을 이기는 자가 됩시다.

감당치 못할 시험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나갑시다.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당신은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어떤 면에서 옛사람이고, 어떤 면에서 새사람입니까?

교회를 나온 이후부터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을 계속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부분은 무엇인까요?

 

우리는 예수 믿고 난 이후의 옛사람과 새사람의 관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옛사람과 새사람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려는 갈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갈등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의 갈등과 혼돈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는 옛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반드시 공격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드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옛사람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반복해서 실천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의에 대해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이제 옛사람을 벗고 날마다 새사람을 입읍시다.

성령으로 날마다 새로운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가 됩시다.

자신을 의의 병기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도구로 드리도록 합시다.

 

장래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원하십니다.

 

순종은 우리를 구속하고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장래에 베풀어 주실 은혜를 위함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으로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고, 기도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가까이 계심을 깨닫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현재의 고통 때문에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흔들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장래에 주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신 세 가지 사건, 곧 창조, 구속, 인도의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조의 사건은 인생의 참된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가는데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구속의 사건은 우리를 무겁게 옭아매는 죄를 십자가 사건을 통해 단번에 영원히 속량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인도의 사건은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출생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인도하심 안에서 이루어져 왔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머리는 예수로 꽉 차 있어요."

 

지난 주 수요일 아침에 이재완 집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몇 달 전 심방 갔을 때 계속 눈을 감고 주무시는 듯 하시다가도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송을 부를 때 입술로 따라 하시던 모습을 보고 믿음의 의식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기도 했는데, 참 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믿어져야 성경이 믿어지겠는데 그것이 안 믿어진다고 안타까와 하시다가 어느 날, 이제는 믿어 진다며 어린 아이 같이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또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했는데 나는 영생의 확신이 없다시며 진지한 고민을 하시다가, 어느 새벽에 말씀 묵상하시면서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낙산사 바닷가에서 주여 우리에게 선교의 비전을 주십시오.”라고 뜨겁게 기도하시던 모습도 생생합니다.

 

어느 날,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하신 말씀은 지금도 바로 옆에서 말씀하시듯 귓전을 맴돌고 있습니다.

목사님!, 내 머리 속에는 예수로 꽉 차 있습니다.”

 

살아가면 갈수록

 

살아가면 갈수록 아쉬움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삶의 순간 순간을 즐겼는데 이제는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고 걱정부터 합니다.

해야 할 역할도 있고 들어갈 돈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는데다가 후유증까지 겹치면 아쉬움이 더 커지곤 합니다.

 

젊었을 때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이제는 자신에 대해 아쉬움이 더 커져 갑니다.

내가 더 잘하고 더 참고, 더 사랑했어야 했는데...

하나님, 왜 이렇게 살아가면 갈수록 아쉬움이 커지도록 만드셨나요?

 

전도서 311-12절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사람들이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쉬움이 커지는 것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이해해야 합니다.

매순간 기뻐하고 선을 행하며 낙을 누리면서 살아갑시다.

 

짐 엘리어트가 말했습니다.

결코 잃어 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지킬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절대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내가 너로 인하여

 

정말 힘든 상황에서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3:17)라는 말씀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은 나의 실적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주셨는지와 상관없이 그 분으로 인하여 기뻐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다는 그 자체로 인하여 즐거워하면 좋겠습니다.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하나님인 여호와가 내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악의 상황의 가운데에 오셔서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로 인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늘 기억하면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좋은 관계를 위한 키워드

 

좋은 관계는 정체성과 예배라는 두 개의 주춧돌 위에 세워집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 가고 그 분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스마엘을 낳는 사건 등은 정체성의 망각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위기를 맞는 사례들입니다.

반면에 모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 등은 올바른 정체성을 가진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갈 때 바르게 정립됩니다.

정체성과 예배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존경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배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선행 조건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정체성과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가는 곳마다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됩시다.

 

사람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라

 

예수님은 만나는 상대에 따라 권면하는 '예언자적'으로 접근하시고, 때로는 귀 기울여 들어 주며 죄를 고백하도록 하는 '제사장적'인 모습으로 다가서기도 하셨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이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예언자적'인 접근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향하여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 예입니다.

 

'제사장적'인 접근이란, 죄를 짓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며, 그들의 심정을 공감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을 향해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런 접근방법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죄를 깨닫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는 예언자적으로, 이미 죄를 깨닫고 나온 여인에게는 용서와 화해와 위로의 제사장적인 모습으로 대하셨습니다.

 

우리도 상대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JPT를 아십니까?

 

JJoyJ"항상 기뻐하라", PPrayP"쉬지 말고 기도하라", TThanksT"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JPT는 우리 예람가족들이 체질화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도 모르게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기뻐하기를 원하셔',

또 많은 염려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하나님께서는 염려 대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어',

또한 모든 게 짜증스럽고 불평이 앞설 때도 '이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 아니야.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어'라고 외치며 하나님께로 빨리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기쁨의 모드, 기도의 모드, 감사의 모드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메모리입니다.

감사의 용량이 클수록 은혜의 용량이 큰 사람이며 축복의 용량이 큰 사람입니다.

최고의 감사가 최상의 생활이요. 최상의 축복입니다.

 

예람가족이 갖춰야 할 특징은 JPT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세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람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람교회 창립 35주년을 맞으며

 

교회 창립 35주년을 맞이하며 그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할 뿐입니다.

 

28년 전 교회에 부임했을 때는 장로님 일곱 분 권사님 40분과 함께 교회를 섬겼는데 그 분들의 특별한 사랑과 섬김을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지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한 세대는 가고 다른 세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예람의 소중한 성도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 되게 해 달라는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주님 하나님의 눈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시선이 따라 가게 하옵소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셨던 주님처럼 우리 또한 낮은 곳에서 주님 마음 품게 하옵소서.

올라 간 높이보다 헤쳐 나온 깊이를 바라 보는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이면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 들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만 바라보는 교회,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잘 나가는 교회가 아니라 잘 쓰임 받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이 모두가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두려움 극복하기

 

사람은 예기치 못한 좌절과 시련이 닥치면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앞길을 가로 막고, 패배감이 먹구름처럼 몰려 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 미래를 향해 자신있게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어 집니다.

가족의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직, 이혼,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지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엄습하는 두려움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면 도와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마비시킵니다. 두려움은 삶의 활력과 기쁨과 평화와 희망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침몰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스며들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람의 식구들과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설렘 가득 안고...

 

어렸을 때는 추석이 되면 새 신발 신고, 새 옷 입고, 용돈도 받고, 학교에 안 가도 된다는 것 때문에 얼마나 신났는지 모릅니다.

 

결혼 후에는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는 것 때문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직접 맷돌에 갈아서 만든 노르스럼한 빈대떡, 이북 만두, 된장으로 만든 게장 찜...

지금도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습니다.

 

이제 양가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신 후에 맞는 추석은 더 이상 나 자신 때문에 설레지 않는 것을 보면 설렘의 대상도 시간이 가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자녀들이 모처럼 쉬는 모습을 본다는 것, 대화의 폭이 넓어지고 함께 나누는 시간 자체가 설렙니다.

설렘은 지식이나 소유의 차원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의 차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연휴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아쉬운 시간이 또 찾아오겠지요.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쉬움은 영원을 사모하는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해서 설렘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요.

 

마음 가득 설렘이 있는 추석 명절 보내세요.

 

진정한 행복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요?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을 부릴 때 행복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연애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행복해 합니다.

중년이 지나면 비록 만나지는 못해도 옛 친구와 전화통화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손주들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손주들의 사진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젊은 사람들은 이해 못 할 겁니다.

 

그러면, 목회자와 성도는 언제 행복할까요?

 

그렇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과 함께일 때 행복하고 성도들은 목회자 앞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때는 하나님 앞에 있을 때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을 가지며 살아가는 성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너무 바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마다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회복하는 예람의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최고의 행복자가 될 것입니다

 

신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는 것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분명한 삶의 목표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어떠해야 할까요?

 

성도들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살려 주신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역시 주님을 사랑하고 기쁨이 되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헛되고 허망한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 누릴 것 다 누려 본 솔로몬이 내린 결론입니다.

당해 보고 돌이키는 인생이 아니라 미리 알아서 분별하는 인생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판단력이 있으면 인생의 참된 목적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 결국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인생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순종은 옵션이 아니고 필수

 

신앙생활 하면서 기도, 말씀 읽기, 전도, 봉사가 좋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는 그 좋은 것을 즐겨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갈등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때이며, 축복받을 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여호와를 완전히 순종하는 자가 됩시다.

완전한 순종은 나를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꽉 채우고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순종은 옵션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순종은 99%가 아니라 100%가 되어야 합니다.

불순종의 1%가 순종의 99%를 삼켜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순종하며 살아 왔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끝까지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해가 되는 것만 순종하지 마시고 이해할 수 없어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나 라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매력적인 기독교인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하던 맥스웰 선교사는 그 곳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마을마다 언어가 달라 새로운 마을에 들어갈 때마다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마을의 힌두교인에게 말 좀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주고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상관하지 않을 테니 말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힌두교인이 거절하더랍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싫습니다.”라는 이유로 말입니다.

 

이 사람과 만나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되고, 이 사람과 대화하면 누구에게나 닮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사람.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지금까지 알고 지내 온 많은 사람 중에 아직 나 닮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머물든, 모든 사람이 나를 만나기를 원하고 나와 같아지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적인 기독교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고난과 기쁨

 

의사이자 유명한 기독교 상담자인 폴 투르니에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통해 그가 체험한 슬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논리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고 나면서부터 모순된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큰 슬픔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괴로움과 기쁨은 모두 기독교 본질의 특성입니다.

기쁨과 고난은 함께 옵니다.

미국의 선교사 E.스탠리 존스는 "역경을 이용하라.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당신 목표로 삶아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간증으로 바꾸라." 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기쁨이 사라지면 힘도 사라집니다.

고난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진정한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또 삶 속에서 어떤 것에 집착하면 그것이 비록 선한 것일지라도, 바로 그것이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기쁨을 소유하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포기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에 그리스도의 집을...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집으로 만드는 첫 단계입니다.

 

마음의 서재에 주님을 초청하세요.

서재의 선반에서 유익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며 참되지 못한 것들을 전부 치우고, 그 자리에 성경을 꽂으십시오.

 

주방에 주님을 모셔 들이십시오.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음식을 원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십시오.

 

다음은 거실에 주님을 모셔서 날마다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당신의 작업실에 모셔 들이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자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 당신의 집 전체 명의를 이전해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 이렇게 부탁하십시오.

 

"주님, 여기에 제 존재와 모든 소유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저의 집을 운영하여 주십시오.

저는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있겠습니다.

이제 주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부족해도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이 와 닿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잘 생기고 쭉쭉 뻗은 나무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베어져서 사람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꾸불꾸불하고 못생긴 나무들은 별 쓸모가 없어서 오히려 산에 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푸른 산과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 없이 약한 우리들이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를 찾고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고 당신은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누가 당신을 높여 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당신 때문에 누군가 높아지게 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유익을 끼치고 세상의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깨진 독 같은 인간이 채워질 수 있는 방법은 호수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가장 믿음이 큰 사람은 자기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 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한 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예람맨이 됩시다.

 

세 개의 눈

 

사람은 세 개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 하고, 남들이 나를 싫어하지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 눈이지요.

 

또 하나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나는 불행하고 비참하며 쓸모가 없고 내가 하는 일은 늘 꼬인다는 식의 부정적인 눈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 눈이 가장 정확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눈, 그 관점으로 결론을 내리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비중이 다른 두 눈보다 현저히 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장 난 부분을 가장 잘 아시고 고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는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눈으로 살아가는 예람맨이 됩시다.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때도 많습니다.

상황이 나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을 참고 이기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삶의 고통 중에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생깁니다.

다른 사람들의 악한 언행 때문에 증오에 빠지면 나의 일상 뿐 아니라 신앙까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증오에 빠지지 않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의 악한 행동까지도 주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화()와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생의 좋은 것과 축복으로 여길 대상을 주관하듯이 어려움과 고통도 주관하십니다.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견디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당신을 무한한 사랑으로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의 삶을 아름답게 끝맺기 위해 견뎌야 합니다.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요?

 

우리가 아무리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더라도 그 마음에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가 뭔가를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가 아직 연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또 그가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그것이 나에게 분노로 남아 이를 다스리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랑하지 못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에게 아가페 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지식에 근거해야 합니다.

무지한 사랑은 후회와 상처로 남게 됩니다.

무조건 잘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를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계속 충전받게 됩니다.

이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가페적인 사랑이 당신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아버지와 아들, 성령,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등 세 위()로 계신 하나님이 결국 한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위에 계신 하나님, 안에 계신 하나님, 옆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 모두 세상의 창조와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십니다.

 

우리가 삼위일체를 이해하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시각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며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터치한다는 것이지요.

 

이 사명 감당을 위해 우리는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의로 적셔야 할 것입니다.

 

자신과의 대화, 이렇게 하라

 

사람들은 남과의 대화를 매우 중요시하면서 정작 자신과의 대화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과의 대화야말로 대인관계의 출발점이 됩니다.

시편 103편은 올바른 자기 대화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마음을 다하여 그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의 기본이 됩니다.

주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행하신 것과 받은 복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 생각지 않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질 때, 그 분의 축복과 은혜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때를 하나님을 붙드는 기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이 단계를 잘 통과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펼쳐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당신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끝까지 지키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를 잘 할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어느 병원 엘리베이터 벽에 부착된 성경 구절이 기억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언제 보아도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 인해 고통과 신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 그 자체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만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황이 좋아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사는 문제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최악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우리에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두려움보다는 희망과 설렘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Change Again(변화,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라십니다.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암울하고 절망적인 환경도 변화시키고 그 가운데 소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던 그 능력으로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릭 웨렌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세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도구는 성경입니다.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도구는 성령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거룩한 열망과 새로운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세 번째 도구는 환경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자세를 갖추기만 한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하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우리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아니며 환경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미루는 습관입니다.

 

변화를 시도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미루지 마시고 지금 시작하세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우리는 평소에도 종종 그렇지만 특히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마치 불신자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며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시련을 통해 주님 앞에 나가 기도할 때 정신을 차립니다.

그제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이 중요한 사실이 왜 우리가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만 떠오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악한 영들이 복음과 진리를 잊어 버리도록 우리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 기도할 때 다시 하늘이 열리며 진리와 감동이 기억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늘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든지 악한 영들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내 생각이 육신의 생각인지 영의 생각인지 분별해야 하고, 만약 육신의 생각에 빠져 있으면 영의 생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신의 생각을 그대로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꼭 점검해야 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동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관리하고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하나님은 자격 있는 사람에게만 꿈을 주시고 미래를 보장해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가정환경, 성적, 외모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다 알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변함없이 끝까지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까지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도 함께 보고 계십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에 받은 상처와 아픔까지도 은사와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우리의 결과,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지금 내 모습이 초라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대기의 먼지와 같이 아무 쓸모없는 존재같이 여겨진다 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으면 우리의 상처와 불행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바뀐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만남의 복

 

만남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계속해서 베풀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스타일의 대부분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남을 피한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만남, 가족들과의 만남, 성도들과의 만남, 직원들과의 만남,

심지어 우연한 만남 자체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만남의 복은 한 쪽만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잘 해야 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쪽이나 사랑을 받아 들이는 서로 간에 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만남의 관계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 들일 줄 아는 만남이 중요합니다.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건을 전제하지 않고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도움을 준 사람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환대를 은혜로 받아 들인 룻이 그 본보기입니다.

 

은혜를 아는 것이 인격입니다.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만남입니다.

 

필리핀 CMC 헌당예배

 

한국의 혹한과 필리핀의 더운 여름을 넘나 들며 56일의 필리핀 헌당예배 일정을 잘 다녀왔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여 선교사님 가정에서 손수 만든 아이스크림, 열대 과일 등을 곁들인 즐겁고 맛있는 식사 대접을 받았고 좋은 숙소와 해변에 앉아 넓은 바다를 실컷 바라보는 행복도 누렸습니다.

 

토요일 헌당예배를 앞두고 풍선으로 성전 장식을 하는 김효순 집사님의 섬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으며 환한 표정으로 봉사하는 예림이는 완전히 딴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파송교회의 목사님과 구역장들의 화기애애한 모습과 선교사님을 잘 섬기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CMC 청년들과 맥도날드에 갔는데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하였습니다.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는 70 여 명의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이어서 120 여 명이 참석한 어른예배, 헌당식 행사 등의 일정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그저 감사만 연발했습니다.

모든 행사 후 서로를 축복하며 포옹하는 시간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감사와 섬김, 행복과 감동이 넘치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보고 왔습니다

 

불안한 세상에서 평안 누리기

 

성경은 불안한 세상 가운데서도 세 가지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는 '영적 평안'입니다.

 

둘째는 '정서적인 평안'으로, 하나님과 화평의 결과로 주시는 평안입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는 '관계적 평안'입니다.

 

사람들이 겪는 심각한 문제 중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대립과 갈등과 비판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평안을 깨뜨리는 가장 큰 요소는 죄책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고백하면 바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때 평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더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할 때, 그리고 평안을 위해 기도할 때 평강을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가 고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감당이 안 되는 사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 생각만 해도 짜증 나고 분노가 치미는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런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해하려고 하지 마시고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십시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서하십시오.

 

그런데 용서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용서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에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요.

제대로 된 용서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어떻게 할까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질 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관점이 생겨납니다.

새로운 가치관이 생깁니다.

새로운 욕구가 생깁니다.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용서하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쓴뿌리를 가진 사람을 받아들일 때 당신의 용량이 커집니다.

 

 

인생의 안내자

 

미국 남북전쟁 당시 케티즈버그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링컨의 모습은 지휘관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장교들이 링컨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국가의 내일이 불확실한데 어떻게 이렇게 평온할 수 있습니까?"

링컨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성경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국가의 미래를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우리가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안내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어둠에서 빛으로 안내합니다.

성경을 읽는 순간 방황의 인생이 끝나고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 빛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주의 말씀은 칠흑 같은 밤에 내 발을 비추는 등이고 내 길을 비추는 빛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참된 안내자요 삶의 지침을 제공해 주는 매뉴얼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단순한 결심보다 성경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새해에 복을 많이 받으라고 인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고통에 대한 바른 이해

 

목사이자 유명한 작가인 랜디알콘은 "행복"이라는 그의 책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우리의 고통을 보고만 계실까? 문제는 성경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의 답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노코멘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의 이유를 인간에게 알려 주시지 않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고통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원한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은 고통 이상의 선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애매한 고통을 당할 때, 십자가의 주님을 생각하며 참으면 아름다운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19, 21).

 

고통은 불행이 아니라 위장된 축복입니다.

고통은 축복의 확성기입니다.

 

베스트 신자

 

베스트 신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고 자신을 깨끗이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입니다.

, 그리스도의 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신자를 말합니다.

 

베스트 신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사랑하는 삶,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창조의 목적대로, 구원의 목적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신 목적을 위해 기도하고 놀라운 응답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또한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베풀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베스트 신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을 목표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표는 단순히 성공이나 명예나 권세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육신의 욕구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베스트 신자의 모습입니다.

 

 

사람의 인격 형성

 

사람의 인격은 가정, 사회 구성원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데 가정은 특히 중요합니다.

 

강하고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충동적인 감정 폭발, 우울 또는 아이처럼 위축되는 경향이 많으며, 두려움을 조장하거나 맹목적이고 압도적인 사랑을 베풀어 자녀를 조종하려고 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속박감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알콜 중독자의 자녀들은 자라서도 사람을 신뢰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족의 죽음, 부모의 이혼, 별거 또한 자녀들에게 엄청난 상실과 깊은 불안을 던져 줍니다.

 

유년 시절의 언어, 감정, 신체, 성적 폭력은 자녀의 자존감을 상실케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자포자기에 빠지게 합니다.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는 상황을 매우 어색하고, 두렵게 느끼기까지 하죠.

 

반면에 자유주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배우지 못합니다.

 

사람의 인격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의 균형 속에서 올바로 형성됩니다.

자녀의 인격 형성기에 이를 기억하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고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복지관의 가치 회복

 

고령화 사회 구조에서 연세 드신 분들을 위해 복지관을 운영하는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단체나 기관에 비해 아직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인데 이는 교회가 기독교 복지관 운영 수익금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요금을 낮추지 못하고,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게 실버타운이나 복지관 이용은 그림의 떡이 되는 것입니다.

 

수익으로 선교와 구제를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교회가 본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수익금에 의존하면 사회적인 이미지도 좋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기독교 복지관이 본연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수익금으로 선교 구제하려는 마인드를 바꾸어야 합니다.

어려운 가정의 비용 부담을 덜어 주고 사랑의 감동을 끼치게 되면 그 자체가 구제가 되고 선교의 계기가 됩니다.

 

또한 노회나 총회에서 정책적인 지원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부와 나눔에 대한 기독교인의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의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어떤 부족함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모든 걸 가져야 한다는 믿음이 인생을 지옥의 무한 궤도에 빠지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경끄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해 주는 단순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애쓰지 마, 노력하지 마, 신경 쓰지 마."라고 합니다.

많은 공감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경을 끄고 싶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입니다.

신경을 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고 다만 신경을 덜 쓰는 것은 가능합니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하면 신경이 더 쓰이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어쩌면 신경 끄기의 기술보다는 신경 쓰기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신경을 써야 할 곳에 신경을 덜 쓰고, 신경을 덜 써야 할 곳에 신경을 다 써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둠을 극복하고 빛으로 나오려고 할 것이 아니라 빛으로 나오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육체의 소욕에 굴복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소욕을 좇으면 육체의 소욕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그렇지 않은 일에는 신경 끄기의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자신을 부인하고 남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라는 말을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을 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며,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우리 사회는 올바른 자존감을 갖기가 매우 어려운 환경입니다.

부자, 고학력, 또는 외모가 나름 괜찮고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며 새로운 가치들을 배우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다음 세대까지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가치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그 형상이 회복되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와졌다는 확신에 찬 자존감을 말하며, 변하지 않고 견고합니다.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의 자존감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서 건전한 자존감을 가지고 나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 12일간 작은 교회활성화 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어렵고 힘든 목회 현장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 사모님들을 대할 때마다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 늘 고민이 됩니다.

저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도 막상 내 자신과 사역을 돌아볼 때 나눌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을 발견하고, 안타까움 마음으로 더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겐 아무 것도 나눌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도와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세요."

이런 간절한 기도로 행사를 마치고 나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사역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목사님, 사모님과의 나눔은 늘 도전과 감동의 시간입니다.

도저히 참석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금식 기도하며 오게 되어 좋아하시는 사모님, 상처를 많이 주는 성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이는 목사님, 세례 받고 좋아하시는 8091세 할아버지 성도님 이야기와 요양병원에 가시면 예배드릴 수 없으니 찬송가를 외우게 하신다는 목사님...

안타깝고 애틋한 섬김의 사연과 표정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믿음의 꿈은 이루어진다

 

필리핀 CMC교회의 청년 6명과 문권익 선교사님 식구 4명이 한국을 방문 중입니다.

비자 발급과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았을텐데 믿음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힘든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 일정동안 이들을 위해 좋은 믿음의 추억을 만드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한국 도착하는 날 새벽에 인청공함으로 픽업 가는 섬김이 무척 행복했고 설악산을 가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에 숙소 예약을 해 줄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숙소에서의 조식을 대접하겠다는 분.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분의 말씀이 그렇게 감동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남은 특별한 관계, 감동의 관계, 섬김의 관계임을 새삼 느낍니다.

 

부산에서 일정을 보내고 있을그들의 설렘에 가득 찬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번 주에는 서울, 설악산 일정이 있고 56일 오후예배를 우리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를 나눕니다.

 

이 청년들이 CMC교회의 귀한 일꾼 되기를 기대하며 이들이 한국에서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추억 만들기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가정은 서로에게 요구하기보다는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가정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가치는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를 섬기고 다른 사람을 잘 섬길 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의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봅니다.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그 주님의 시선으로 식구들을 바라 보며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가까운 데서부터 파문이 이는 것처럼 사랑은 가장 가까운 가정으로부터 멀리까지 퍼져 나가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

가정에서 서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깨달을 때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항상 감사하며 서로를 귀하게 바라보는 그 자체입니다.

예람의 모든 가정들이 이런 행복한 가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와 딸

 

자녀 결혼식에서는 엄마가 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빠가 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딸을 결혼시키는 목회자 아빠가 더 그러합니다.

 

아빠, 아버지가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딸을 떠나 보내는 허전함, 남들처럼 잘 해 주지 못한 목회자 아빠로서의 미안함, 힘든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것에 대한 애틋함 등 여러 이유가 많겠지만 못다한 사랑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아들이나 딸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딸과 함께 있는 동안에 사랑의 감동 스토리를 많이 엮어 가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에 대한 기억은 힘들고 고달픈 현재의 삶을 이겨내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우리나라 정서 상 특히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가 있나요?

자녀들에게 사랑의 감동을 끼치는 부모가 됩시다.

 

특히,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을 둔 아버지인가요?

무뚝뚝, 근엄 이런 것이 아버지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딸에게 사랑의 감동을 끼치는 아버지가 됩시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요즘 학교 뿐 아니라 교회 주일학교서도 가르침의 즐거움은 커녕 오히려 지쳐가는 교사들이 많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사의 역할을 기쁨으로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일학교 교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을 학생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좀처럼 변화되지 않고 말을 잘 안 듣는 학생까지도 주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고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교사는 가르치기 이전에 학생들이 교사를 좋아하고 따를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파커 J. 파머는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가만 이야기했지 가르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고 지적합니다.

학생들은 교사를 좋아하지 않으면 가르치는 내용도 싫어하게 됩니다.

학생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 주며 학생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본을 보여주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소원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줄 알되 변치 않는 불변의 원칙을 고수하는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이런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주일학교 교사님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바램대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축복된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은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3:12~13)

 

살면서 기뻐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삶이며,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일을 통해서도 낙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선을 행하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37:1)

 

우리 주위에는 잘못 살아가는 사람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을 행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나고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 그들 때문에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불평하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판단과 처리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선을 행하면서 항상 기뻐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

 

신자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자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더 이상 우리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의 최고의 축복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는 것을 경험하는 것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다 지나가고 맙니다.

 

세상에 있는 신자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와 같습니다.

물속에서 살지만 물이 깃털 속으로 침투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 방송, 음악, 책 그리고 특히 광고를 통해 세상의 기준과 사고방식의 도전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신경쓰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들에 동화됩니다.

 

예람의 성도들이여!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도피하거나 동화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자랑하지 않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만을 자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고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기를 소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세 가지 '()'로 계시는 아버지와 아들, 성령,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곧 한 분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축도 시간에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주기도문 시간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위에 계신 하나님, 안에 계신 하나님, 옆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삼위일체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런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며 다스리는 것입니다.

타락한 문화에 구속의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의로 적셔야 합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행동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새로운 얼굴 보이게 해주세요

 

하나님 이번 주에 새로운 얼굴이 보이게 해주세요."

언제부턴가 이런 기도를 합니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 주는 한 분 한 분도 매우 감사하지만, 생각지 않은 성도가 교회에 들어오면 그 반가움도 대단합니다.

 

교회 부흥을 두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때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전도의 소망을 품고 목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애쓰기를 소망합니다.

 

우선, 9월 셋째 주일 창립 기념예배 때까지 20명 전도를 목표로 해 봅시다.

교회 다니지 않는 자녀들, 전도 대상자들, 장기 결석자, 떠나 간 성도들을 대상으로 모든 기관이 5명 이상 등록을 목표로 영혼 구원의 마음을 불붙여 봅시다.

 

다음, 추수감사절, 성탄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는 연말에 20명 이상 전도의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기관별로 전도대상자들을 두고 기도하며 지역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전도 전략을 세웁시다.

 

이를 위해, 다니고 싶은 교회가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각자가 '나부터'라는 사명감으로 마음을 열고 아름다운 인격과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노력합시다.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함께 하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기독교 병원의 사명

 

초기 한국의 기독교 병원들은 수익금으로 전도하고 개척교회를 돕는 것을 큰 미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 병원은 인술을 펴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가난한 환자, 다른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환자를 치료해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푸는 일을 실천해야 하는 의료기관입니다.

 

그런데 병원이 전도비 충당을 위해 혹은 신학교나 기독교 기관을 돕기 위해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푸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많은 기독교 병원들이 일반병원이나 다름 없이 가난한 환자는 받기를 꺼리끼나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교회나 선교 기관이 병원으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교회역사에서 그런 예는 없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병원을 도와야 합니다.

교회가 기금을 조성하고 기독교 병원이나 일반 병원으로 하여금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독병원의 수익금은 병원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순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병원'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입니다.

 

매 주 한 번은 교회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은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영적인 중환자와 같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어 있는 성도들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답답하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데이트 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당신에게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굳이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더욱 진하게 느끼고 성도간의 교감과 하나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신자는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살아가는 영적인 중환자일 뿐 아니라 가짜 신자입니다.

 

죄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미국의 한 대학연구소에서 동물의 지능 한계를 알아보려고 동물 중 가장 지능이 발달한 침팬지 한 마리에게 수화를 가르쳤습니다.

온갖 노력 끝에 침팬지가 처음으로 한 수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제발 놓아 주세요."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죄의 종노릇하며 더럽고 악한 생각과 말, 행동을 주저없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을 하면서 참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속박과 억압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사단의 사슬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빠삐용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여러 번 시도 끝에 악마의 섬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탈출 전에 친구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친구는 거절합니다.

주인공이 조류의 흐름을 이용해 악마의 섬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여 자유를 얻었다고 외칠 때 남아 있던 친구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네가 탈출에 성공해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너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야."

 

비록 우리가 겉으로는 잘 먹고 잘 살아도 내면의 자유가 없으면 그것은 사단의 감옥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내미신 손을 외면하지 말고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대한 신자의 바른 태도

 

신자들은 세상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적입니까?

 

어떤 사람이 한 신자 가정에 심방을 갔다가 벽에 걸려 있는 가족 사진을 보았습니다.

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어떻게 신자가 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냐며 '세상적'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세상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만을 보고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신자라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신자는 오리와 같습니다.

물에서 살지만 물이 깃털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기독교 윤리와 배치되는 많은 것들이 노래, 영화, ,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흔드는 이때, 단지 듣기 좋고 보기 좋다고 하여 아무 생각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것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많이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경계하고 묻고 확인하십시오.

 

세상 속에서 살되 '세상' 되지 말고 세상을 다스리는 예람인이 되도록 합시다.

 

고난 속에서 축복을 풀어내려면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고난'이라고 표현하지만 믿는 자들은 '축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고난 속에 감추어 놓으실까요?

 

그 고난을 통해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은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성숙시키고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브루스 윌킨스 목사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보면 천국에 간 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존이 베드로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 구경을 하다가 허름한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그 창고에는 존이 세상에 있는 동안 기도하면 주시려고 하셨지만 기도하지 않아서 주시지 않은 기도 응답 목록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고난을 극복할 지혜와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기도하면 모든 고난과 악을 다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메모리

 

'신자'가 되면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기도가 식사기도일 것입니다.

식사 준비를 해 주신 분께도 감사드리지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기도가 기본이라는 것을 압니다.

또 바라던 일이 이루어 지거나 힘든 일이 해결될 때도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경제적인 지불을 하거나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뭔가를 얻었을 때는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일 해서 번 돈으로 샀고, 내가 열심히 연구해서 쟁취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경제와 지식, 기술이 발달하면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고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똑똑하기는 한데 부모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지식보다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세대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메모리입니다.

 

신자의 삶 속에서 감사의 용량이 큰 사람일수록 은혜의 용량이 큰 사람이며 축복의 용량이 큰 사람입니다.

 

내 삶의 가장 깊은 두려움

 

내 삶의 가장 깊은 두려움이 무엇일까요?

'거부'입니다.

실패한 후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에게, 때로는 하나님에게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부'보다 더 큰 두려움이 있습니다.

'거부 당할 두려움'과 동반되어 오는 '수치심'입니다.

내가 실패한 후 거부당했을 때 느끼는 수치심 말입니다.

 

이 수치심은, 실패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실패자야'라는 정체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심각합니다.

수치심을 급증시키는 세 가지는 침묵, 비밀, 비판입니다.

나의 약함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스스로의 침묵, 남에게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 실패한 나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런 수치심을 느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먼저 자신을 약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그래야만 용기가 생기고 삶에 대한 목적의식도 분명해집니다.

공감은 수치심의 해독제입니다.

 

다음은 더 큰 실패가 없거나 상처받지 않을 보장이 없더라도 온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남들이 실패했을 때 그들을 감싸 아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불확실성과 불안과 스트레스가 있을 때 특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용기 있는 크리스천

 

용기 있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새롭게 도전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는 많은 위험을 각오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스캇 베이더는 "용기는 두려움에 직면하여 옳고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용기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크리스천들은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갑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할 때 지금 당장 내개 도움이 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용기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현재의 많은 도전이 아니라 인생의 큰 그림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자기가 아니라 먼 미래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바라봅니다.

하늘의 시각을 갖는 것이 우리의 미래와 가족을 지키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각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는 언제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비굴하게 타협하며 누리는 안정과 성공은 한 순간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세상에 휩쓸려 살지 않는 용기에는 하나님께서 넘치게 주시는 진정한 평안은 영원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추석 보내기

 

또 다시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선물 한 가득 안고 고향으로 향하는 자녀들,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의 설레는 얼굴, 그런가 하면 가족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바쁜 일상으로 가족간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아쉬운 모습들도 많지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추석의 모습도 많이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추석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명절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가족 친지가 모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명절 보내기'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많이 만드세요.

자녀들 이야기, 바삐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들은 물론이고 어렸을 때의 추억은 최고의 이야기 꺼리가 될 것입니다.

 

나와 내 자녀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헤아려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선물이든, 맛있는 식사든, 짧은 여행이든.

 

밝고 환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은 얼굴에 잠시 스쳐가는 미세한 표정 하나로 자식들의 삶의 모습을 읽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조금 더 많이 사랑하고, 조금 더 섬기는 모습으로 분위기 메이커, 감동 메이커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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