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믿으면 뭐가 달라지는가?(출 6:6-8), 김덕선 목사

liefd 2024. 2. 2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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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다 보면 언제나 부딪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믿으면 뭐가 달라지는가?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고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 정말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축복을 주셨지만 마음 상하는 일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69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렣 백성들에게 세 가지 축복의 약속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의 상함과 역사의 혹독함을 인하여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일은 죄사함의 구원의 받을 때로 있습니다. 또한 환경의 구원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상할 때 우리는 비교를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주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믿음으로 잘 받아들였습니다. 출애굽기 431-3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의 말을 전해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의 생산량을 채우라고 했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아십니까?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불평하면서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마음이 상했습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이 고달프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믿는다고 달라지는 뭐가 있느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에 도착했을 때 애굽에서 나온 지 45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에서 그들이 잘 먹었던 때를 생각하며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또 다시 과거에 애급에 있을 때와 현재 광야에 있을 때와 비교합니다.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출애굽기 16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에서 불편한 것과 애굽에서 좋았던 것을 비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애굽에서 불편했던 것과 지금 광야에서 행복했던 것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포로 생활에서 지금 광야의 자유생활과 비교하면서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민수기 16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은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더 이상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을 믿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과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8:18). 과연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와같이 믿으면 뭐가 달라지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때 우리가 정말 잘 해야 합니다. 현재의 고통과 과거의 자랑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통과 과거의 상처를 비교하지도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언제나 비교하십시오. 현재의 고통과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비교하십시오. 또한 우리가 믿으면 뭐가 달라지는가? 라는 질문이 생길 때 당장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결국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출애굽기 6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 번째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맹세한 땅이 어디를 가리킬까요? 히브리서 118-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장막에 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10절에 보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란 어디를 말할까요? 요한복음 141-3절에 보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는 처소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11-2절에 보면 이곳은 바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세 번째 언약은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유다서 13-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광야교회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믿지 않는 자는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죄사함의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73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했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생활을 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다서 15절에 보면 이런 이스라엘 백성 중에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310-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구원이라고 고백하였지만 말씀이 미혹되어 말씀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믿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히브리서 318절에 보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할 것입니다. 만약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2:14-26). 히브리서 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화합지 않는 자는 안식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히브리서 43절에 보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안식에 들어가고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사건이 창조시대, 에덴동산에서부터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믿는다고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낙심하십니까? 육신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육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영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아직까지 믿음으로 고백한다고 하면서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죄사함의 구원을 체험하여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언약을 지킴으로 환경의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결국이 무엇인지 거기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영혼의 구원의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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