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서 읽는 유대인 5 천년사
아담과 이브는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물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유태인 남자들은 여자가 건네주는 사과를 받아먹지 않는다. 바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때문이다.
1999년 2월 이란 서북쪽의 쿠르드족 본거지이자 아제르바이잔과의 접경지에서 에덴 동산의 위치를 발견했다는 영국인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은 이렇게 말한다.
유태인들은 아담이 기원전 3761년에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 2000년 가울은 아담이 흑으로 만들어진 5751년째가 된다.
노아의 방주가 머무른 아라랏산은 터키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아라랏산은 해발 5165미터의 고산으로서 얼음이 뒤덮여 있다.
정말로 최근 이스라엘의 발굴에서 아브라함 시대의 가나안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종교 의식용으로 죽여 그 유해를 담았던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3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대인들은 매년 봄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에 먹는 무교병 맛짜, 맛자는 5대 곡물(밀, 호밀, 보리, 귀리 및 스펠트) 중에서 한 가지를 가루로 내어 물에 반죽한 지 18분 이내에 구운 비스켓 같은 모양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을 향해 역사적 대이동을 시작한다. 무리의 구성원으로 포함되는 노약자, 어린아이 및 양떼를 생각하면 아무리 걸음을 재촉한다 하더라도 하루 20킬로 이상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동맹 조약에서 따온 십계명
동맹조약의 내용은 대왕의 이름, 직위, 및 공직 등을 나열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로부터 인도해 온 너희의 신, 주님이다.”라는 출애굽기의 구절에서 동맹조약의 비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십계명의 “너희는 ...을 하라, 너희는 ...을 하지 말라”는 명령적 어투는 군주와 봉신의 조약문에도 계속 사용된다. 조약문의 “남의 땅 영역을 탐내지 말라”는 구절은 성경의 너희는 네 이웃집을 탐내지 말라.“와 비슷하다.
십계명의 돌판을 법궤에 넣어 안전 보존을 꾀한 것과 마찬가지로 봉신들과의 조약들은 성소에 보존되었다.
심지어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매 7년마다 그것을 낭독해야 하는 것처럼 동맹조약문도 정기적으로 봉신과들의 조약들은 성소에 보존되었다. 매7년마다 그것을 낭독해야 하는 것처럼 동맹조약문도 정기적으로 봉신과 그 백성들 앞에서 낭독되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200년경에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진입할 당시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 이어져 가는 과도기였다.
실제로 그들은 가나안 땅 진입 초기에 평지 대신 산악에 정착했다고 한다.
당시 바다의 민족 블레셋인들이 철제병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청동기 졍기 부대를 격퇴하여 일거에 가나안 중부까지 상륙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 보관을 위해 세웠던 예루살렘 북쪽의 실로 신전도 블레셋인들의 손에 의해 불태워졌다.
다윗은 왕도 예루살렘을 거점으로 하여 영토를 남쪽, 동쪽 그리고 북쪽으로 확장해 간다. 특히 남쪽의 에돔 왕국을 복속시킨 것은 군사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에서 큰 이익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동(銅)과 철강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침공한 지 200여년 만에 정식 이스라엘 민족 국가가 출현한 것이다.
현대 사마리아인은 모두 합쳐 560명에 불과하다. 이중 절반은 그들의 성소가 있는 세겜의 그리심 산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텔아비브 남쪽 훌론에 살고 있다.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함으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재건까지 약 2500년을 유태인 방랑시대라고 한다.
가나안은 유다왕국 멸망 이후 한때 유다로 불리다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요단 강 서편의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헤롯 대왕의 사후 팔레스타인은 그의 세 아들이 갈릴리, 사마리아, 유다 및 남부의 이두메를 분할 통치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은 얼마라 펠레스타인을 다시 직접 통치권에 재편입하여 총독을 파견했다.
팔레스타인의 각 지역중 반로마 분위기가 가장 강했던 것은 갈릴리 지역이었다.
당시에 사두개파가 유대종파의 우익을 대변하는 것처럼에세네파는 좌익을 대변했다. 바리새인은 중간적 위치를 대변했다.
디아스포라 수칙-모든 유태인은 서로가 보호자이고, 그들은 모두 형제들이다.
랍비 율법이 안식일(사밧)에 금지한 활동
결혼, 보트 타는 행위
악기 연주
물건을 사고 피는 행위
전깃불을 켜거나 끄는 행위(초정통파 유태인 아파트 단지의 엘리베아트는 가동이 중단되지만 대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전깃불이 켜진다.
TV, 전화 및 라디오를 포함한 각종 전기장치를 켜고 끄는 행위(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낮에 정통파 유태인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은 결례일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안식일에 사용이 금지된 도구를 만지는 행위(금지된 도구, 각종 공구, 필기도구, 각종 전기기계 또는 기계, 촛불 , 성냥, 돈지갑)
사밧 외출 제한(차량 금지는 물론이고 도보조차 1킬로 이상 외출금지)
유태인의 작명법
유태인 남자 아이는 생후 8일째 할례를 마친 다음 이름을 짓는다. 여자 아이는 시나구그에서 아버지가 산모와 아이와 건강을 축복하도록 호출할 때 이름을 얻게 된다. 유태인들은 이름을 지을 때 죽은 부모의 이름을 따오기도 했다.
탈무드는 구약 성경 속에서 율법을 뽑아내어 정리한 미쉬나와 미쉬나를 보다 상세하게 해석한 그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유태인 교육 사상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아이들을 교육시켜 읽고 쓸 줄 알게 하라.
교육 원칙은 그룹 지도와 동시에 철저한 개인지도 병행한다.
책을 읽을 때는 눈으로만 읽지 말고 큰 소리로 읽을 것.
유태인 전통적인 자녀 교육 순서
아멘-축복-비브리어 토라-탈무드-도덕과 법-신비사상-쓰기-예술
아버지가 아이에게 축복할 때 아이는 아멘이라는 대답을 먼저 하도록 가르친다.
미쉬나 해설은 613가지 율법을 만들어낸다. 유테인들이 준수해야 할 248가지의 권장 율법과 365가지의 금지 율법이 있다.
1344년 터키 지역에서 발병하여 유럽 전역으로 번져 주민 1/3을 몰사시킨 흑사병이 유태인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유태인들은 12세기부터 15세기 사이 서구 각국으로부터 추방을 당한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요소와 경제적 요소가 복합적이다.
게토의 역사는 중세 유럽의 상업도시인 베니스에서 시작된다. 1509년 독일에서 이주해온 일단의 유대인들이 그동안 집입이 불가능했던 베니스에서의 정착 허락을 얻었다,
동구에 유태인들이 처음 진출한 시기는 기원전 1세기이다. 오늘의 그리스와 타키의 해변가에 유태인 거주 지역이 있었다.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음식
근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레 11:44)
식사가능 음식: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짐승의 고기(소, 양 사슴 등)와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를 먹을 것, 가금류(닭, 칠면조 오리 등)
식사 금지 음식: 새김질을 못하거나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낙타, 돼지, 토끼 등),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오징어, 새우, 조개류 등), 가금류(독수리, 타조, 올빼미 등)
시오니즘 태동
시오니즘이란 과거 이스라엘 땅에 유태 민족의 독립국가 재건을 위한 운동이라는 뜻이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성경 이름 속의 하나이다.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
세계 2차 대전 중 유럽에 살고 있던 유태인 600만명이 가스실에서 죽었다.
그러면 히틀러는 왜 유태인을 몰살하려 했을까? 그 배경은 1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태인들은 1차 대전만 하더라도 러시아와 싸우고 있던 독일을 편들었다.
유태인들은 1917년 러시아 짜르 왕정을 정복시킨 볼세비키 혁명에 대거 가담했다. 공산주의 군재인 붉은 군대를 조직, 1925년까지 군을 직접 통솔하면서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레닌 다음의 2인자 레온 트로즈키도 유태인이었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유태인을 속죄양으로 삼았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정치에 이용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 1933년 히믈러가 총리에 임명되자 마자 곧장 반유태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1939년부터 45년까지 희생당한 유태인의 수는 나라별로 대략 폴란드 300만, 구소련 120만, 루마니아 35만, 헝가리 30만, 체코 27만, 독일 18만, 리투아니아 13만, 화란 10만, 프랑스 9만, 그리고 그리스, 유고 및 오스트리아 각각 6만이었다.
유태인들의 사망 당일 매장
유태인 전통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그날 매장한다. 그 이유는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이탈할 때 빛으로 형성된 또 다른 몸에 감싸이기 전에는 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시신이 매장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을 경우, 영혼은 고통을 받고 불길한 악령이 시신 위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악령은 한 밤에 영혼이 없는 시신을 찾아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매장하는 것이 고인을 위한 길이라고 한다.
오늘의 이스라엘
국토면적이 우리나라의 1/5이다. 인구는 1998년 600만명을 넘었다. 이중 유태인은 470만면, 비유태인은 130만 여명이다. 1인단 국민소득은 16500달러이다. 한해 수출은 200억달러, 수입은 280억달러, 최대수출산업은 다이아몬드 가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