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뼈들이 살아 춤추게 하라, 토니 에반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 쓸모도 없고 아무 열정도 없이 그저 애처로움만 자아내며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참혹한 뼈들에 불과했던 것이다(겔 37:11). 우리 가족이나 우리 교회, 우리나라의 영적 상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당시 유대인들은 포로 생활 속에서 극심한 영적 공허감과 메마름과 절망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영적 메마름과 실의와 단절은 그들에게 있어 이미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명령하셨다.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 37:4). 에스겔은 큰 소리로 그 뼈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든 뼈들이 서로 달라붙으며 원래 붙어 있어야 할 다른 뼈들과 정확히 연결되었다. 그 뼈들은 힘줄로 덮였고, 그 힘줄은 살로 덮였으며, 그 살은 가죽으로 덮였다.
하지만 아직도 그 속에는 생기가 없었다(겔 37:8).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 37:9). 에스겔 선지자는 다시 한 번 순종했다.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겔 37:10).
하나님은 다시 한 번 그분의 말씀에 충실하셨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 37:10). 이 약속은 모두 부활과 회복에 관한 내용이었다(겔 37:12-13). 이 약속은 또한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참된 생명에 관한 약속이었다. 이것이 회복될 때 너희는 나 여호와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며, 하나님은 그 기적을 약속하셨다. 모든 희망이 버려진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회복의 기적 말이다. 우리 동네 발리는 고물에서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버린 잡종사니가 곧 일어날 기적이라고 정말로 인식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속적으로 메말라 있다면, 무언가 영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분리와 단절과 거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겔 36:18, 6:9, 14:5).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싹 마른 뼈들로 가득 찬 골짜기 같았던 이유는 그들의 불순종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고, 그 거리가 메마름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명황성은 태양으로부터 아홉 번째로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으로 무언가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곳이 결코 아니다.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에 만족하고 있다.
만약 당신의 마음속에 감사가 거의 없다면, 메마름이 일상이고 춤추는 것이 예외의 경우라면, 바로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거리를 초래한 것이 바로 불순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지어 은밀히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게속해서 여호와의 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가고, 날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영적으로 그렇게 밋밋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딘가에 우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상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을 갖다 놓으려고 시도하는 어떤 것이다. 우상 숭배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당신이 그 분 이외에 다른 쪽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상 숭배는 오직 주님께만 속해 있는 첫사랑을 다른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계 2;4). 우리가 주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그분을 최우선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첫사랑이란 그것은 우선순위와 관련되어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요소는 열정이다. 그것은 불같은 사랑인 것이다. 그것은 최근 사랑에 빠진 남녀 간의 정열과 같다. 타오르는 불꽃이 거기 있을 때는 그 불꽃이 바로 매뉴얼이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그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힘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그 분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요 14:15).
우리는 그분의 영광에 흠뻑 젖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한다. 당신은 메마른 상태에 오래 있었는가? 메마름의 원인은 거리에 있고, 그 거리는 불순종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불순종을 찾아내 제거함으로써 정결케 되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로 되돌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바꿔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들 속에 자신의 영을 두어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겔 11:19-20, 36:25-27).
새 마음과 새 영 배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바로 새 언약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분의 뜻에 순종하면 사는데 필요한 능력과 동기를 모두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나와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새 언약이자 계약이기도 하다. 그 새 언약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바로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다.
불순종이 거리를 가져 오고 다시 메마름으로 이어질 때, 치료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말씀뿐이다(겔 37:4). 그래서 에스겔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던 것들이 연결되었던 것이다.
성경 말고도 필요한 것이 또 있다.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겔 37:9). 에스겔이 그 명령대로 했을 때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났던 것이다(겔 37:10).
만약 당신이 지속적으로 메말라 있고 당신 속에 생기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당신 속에 없거나, 아니면 그분이 당신 속에 존재하기는 하시지만 당신이 성령의 지배에 따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활동하지 않고 계신 것이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당신을 살리는 것이며, 오직 성령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다(요 7:38-39, 10:10).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 성령께 순종함으로써 말씀을 삶에 적용한다면, 당신은 살아날 수 있고, 다시 기뻐할 수 있으며, 다시 춤출 수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천상의 현실과 하늘의 관점을 당신의 삶과 가슴과 마음에 불어넣어줄 성령의 강력한 바람이다.
부활하신 구세주를 믿는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세 가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첫 번째 선물은 가장 명백하고 극적인 것으로서, 바로 생명의 선물이다.
두 번째 선물은 자유의 선물이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야말로 참된 자유이다(눅 4:18, 요 8:36).
세 번째 선물은 사랑의 선물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이미 생명과 자유뿐만 아니라 사랑까지 제공해 주신다. 그분은 당신에게 사랑을 주기 원하신다.
당신의 열적인 열정을 회복하라
당신은 지금 굶주려 있는가?
목사님, 저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시간을 찾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그는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굶주림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정말 배고플 때는 식사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당신의 삶 까지도 조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굶주림은 영적인 열정의 필수 조건이다.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것처럼 당신이 절박해질 때는 필사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삭개오는 내면적으로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용서에 굶주려 있었다. 당시에 대부분의 군중들은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에 굶주려 있을 뿐, 예수님 자체에 굶주려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느끼는 공허감의 정도는 충만함의 정도를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채우실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너무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굶주릴수록, 그분과 더 친밀해진다. 당신은 그분과 더 친밀해질수록 더 많은 용량을 갖추게 된다. 당신은 더 많은 용량을 갖출수록 더 많은 능력과 열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그분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 울부짖는 절박함으로 그분께 의지하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의미 있는 우정과 친밀한 관계의 중심에는 항상 의사소통 능력이 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기도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순간들조차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하루 종일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과 의논하는 그런 친밀한 교제를 습관을 익히라.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와 함께 대화하실까? 그것이 바로 묵상이다. 묵상은 그분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각 개인에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적용하신다.
당신은 지금 다가가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절박할 정도로 주님께 굶주려 있고, 기도를 통해 그 굶주림을 그분께 가져간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그분 곁으로 다가 오라는 그분의 분명한 초대를 듣게 될 것이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 자신의 이해를 일깨우고 자극하기 위한 것이며, 그분의 대답을 듣기 전에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당신은 지금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당신이 무언가에 대하여 열정을 품고 있을 때, 그 값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다. 구약에서 희생제물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데는 분명 대가가 있었다(삼하 24:24).
당신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분의 임재와 능력에 굶주려 있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위해 계속 간구하는 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경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왜 그분을 향한 우리의 굶주림을 시험하시는 걸까? 우리 삶의 열정이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지, 단지 그분의 축복과 선물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시험의 시간은 축복의 시간 다음에 온다(창 2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왜일까? 당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영역에서 시험을 당할 때만, 당신이 정말로 누구를 사랑하는 자 알게 되기 때문이다(마 6:33).
당신은 지금 인내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는 말이 죄의 유혹과 관련해서는 사실이다(고전 10:13).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과 스트레스, 무거운 짐 등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실 때가 정말로 찾아온다. 그런 때는 하나님이 당신을 깨뜨리고자 하시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때때로 하나님이 그 고통을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그분이 당신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려고 시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벧전 4:12-13).
시편 기자는 자신의 메마름을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공급해주시는 회복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는 참된 영적 현실을 진솔하게 추구하기 위하여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시 42:1). 하나님의 축복이나 그분의 선물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절망의 한 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을성과 인내심으로 하나님을 기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시 42:6).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말과 가치는 티백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신은 티백이 뜨거운 물속에 놓여지게 될 때 그 맛이 얼마나 강한지 보기만 해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전화기를 들고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면, 하나님은 무엇보다 그분의 성품에 대한 보다 나은 시각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힘의 회복은 당신이 얼마나 지쳐 있든지 상관없이 당신의 것이다(사 40:31).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적인 성실함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분을 굳게 믿고, 그분이 결국 당신을 위해 마련해 주실 돌파구를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호와를 앙망함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그분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게 우리를 들어 올리신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상승기류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리고 기다리라(시 27:14). 당신이 기다려야 하는 만큼 오랫동안 인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들은 계속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된다.
당신은 지금 경배하고 있는가?
사진술에서 최고의 작품은 암실에서 생겨난다. 음화가 양화로 바뀌는 곳은 바로 암실이다. 하나님이 어두움 속에서 우리로부터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경배다.
당신이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다면 당신의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 모든 것이 공평하지 못할 때, 모든 것이 잘못되기만 할 뿐 좋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한밤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갔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당신을 변화시킨다.
첫째로 어둠 속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당신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당신의 상황으로부터 당신을 들어올릴 것이다.
둘째로 어두움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당신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상황도 바꿔놓을 수 있다.
바로 그 감옥이 세워져 있는 기초를 지진이 휠쓸고 갔던 것이다.
당신이 어둠 속에서 경배할 때 일어나는 세 번째 현상은 다른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이다(행 16:25).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행 16:26). 욥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하나님의 충분한 설명을 결코 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분께 경배했다(욥 23:10). 하박국은 자신의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 진정한 경배로 하나님께 나아갔던 성경 속의 또 다른 인물이다(합 1:2, 3:17-19).
당신은 지금 선포하고 있는가?
혈루증으로 고침 받은 여인에 대해 주님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신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에 대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보다 더 담대한 증인이 될 때, 당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분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회복시키시는 그분의 기적이 당신에게 살아 있는 현장이 될 것이다.
춤추는 삶으로 가는 길
열심을 내고 회개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계 3:19). 당신이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을 때, 혹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공급받기 위해 다른 당신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기대를 걸고 있을 때, 혹은 삶의 공허감을 채우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에게 의지할 때 그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다.
당신이 고속도로로 따라 운전하다가 갑자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출구를 찾아야 한다.
참회의 순간이다. 브레이크를 밟고 그 길에서 빠져 나옴으로써 나와야 한다. 고가도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진입 차선은 회복을 상징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그분께 문을 열어드리는 것뿐이다. 성령의 바람이 불 것이고, 전에는 생명이 없던 곳에 갑자기 생명이, 다시 말해 에너지와 생기와 활력과 목적과 성취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분을 신뢰하라. 당신을 향한 그분의 약속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간 다음, 그것을 붙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