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때가 있다(전 3:1-14), 김덕선 목사
사람이 언제 변화됩니까?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날 때입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왕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전도자로 바뀔 수 있을까요?
그 결정적인 이유가 전도서 3장 1-2절입니다. 해 아래 속한 모든 것이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게서 창조하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심판하실 때가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히 9:27).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하여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하! 이 땅에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이 땅에 속한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직 저 땅에 속한 것만이 영원한 것이구나!
전도서 3장 17절에서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다면 그 목적대로 심판하싫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반드시 그 목적대로 심판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가 언제일까요? 전도서 12장 1-2절에 나오는 인류의 종말, 7절에 개인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즉 개인의 종말이든, 인류의 종말이든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 행한 일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곤고한 날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전 12:1-2).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솔로몬이 날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죽은 후에는 선악간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는 순간 이제 그의 마음에 천국을 사모하기 시작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즉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천국을 확실히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될까요?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어떤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해도 그 마음에 아쉬운 것이 남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에게 이러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마치 솔로몬이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깨닥을 때입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죽은 후에는 선악간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믿음의 결국이 영혼의 구원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솔로몬은 다시 전도서 3장 11-1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영원을 사모하게 된 솔로몬은 이 땅에 살아갈 때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선”은 창조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영원을 서모하는 자라면, 곧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라면 선을 행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과 행복으로 여길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합니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합니까? 교회를 화목케 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가난한 형제를 도와주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어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전도서 3장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 또한 알았도다.” 이전에는 솔로몬이 자기의 부와 명예와 권세와 지혜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자신의 수고로 얻은 분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살펴 본 후에 솔로몬은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심령의 낙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과 지혜, 명철, 부귀영화와 같은 육신의 낙 또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같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로몬은 이제 그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3장 13-1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지혜, 명철, 부귀, 명예, 권력을 주신 것은 내 육신의 즐거움이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즉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모든 것들을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쓰고 있습니까? 혹 아직도 썩어질 육신을 위하여 그것들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좋든 싫든 우리의 의사와 관게없이 우리는 기껏해야 50여년 후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 자신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것이니 오직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0:31).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우리에게 괴로움입니까? 아니면 행복한 일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에게 묻는 다면 한결같이 세상에서 잠시 죄악을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받고 고난당하는 것을 더 큰 행복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두 믿음의 결국이 육체의 구원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