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아무 낙이 없는 인생(전도서 4장), 김덕선 목사

liefd 2024. 3. 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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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에 낙()을 누리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네 종류의 사람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심령에 낙이 없으므로 한결같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성공하고 출세하면 무엇합니까?....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지면 무엇합니까?... 심령에 낙()이 없다면 인생이 힘듭니다. 

오늘 본문에는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 네 종류의 인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학대받는 인생(1-3)

 

먼저 13절에 보면 첫 번째의 사람은 ' 학대받는 인생' 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많은 학대를 받으며 산 것 같습니다. 학대를 받으며 사니까 무슨 심령에 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 종류의 인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해 아래 인생이 있는 곳에는 학대가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흔히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학대합니다.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무시합니다.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억누릅니다.

 

그런데 학대받는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니까,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하는 사람의 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권세를 휘두르며 학대합니다. 그러나 학대받는 자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두 눈에서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그런데 그 눈물을 닦아줄 위로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서 솔로몬은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무슨 말씀인가 하면.... 위로 받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3절에서는 심지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악은 아예 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것이 더 낫지 않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해 아래 인생은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참된 위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 인생은 어디에서 위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시편 121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 인생의 위로자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그분만이 위로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환난을 당하든지... 우리를 능히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2. 경쟁심에 사로잡힌 인생(46)

두 번째 종류의 인생은 46절에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마음속에 시기심, 다른 사람에 대한 경쟁심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시기와 경쟁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의 심령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4절 말씀을 보시면 이 사람이 가진 특징이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그랬는데, 이 사람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아주 열심히 일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라고 했습니다. 아주 재주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항상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열심히 수고해서 성공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라고 말씀했습니다.이 사람이 열심히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아서 성공을 했는데, 그 동기가 '이웃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바른 동기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 두 번째 인생은 옳지 못한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이웃 사람에 대한 시기가 있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웃이 잘되는 꼴을 보기 싫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짓밟기 위해서 무리하게 경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동기가 불순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들 결과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그런 성공을 기뻐하시겠습니까?.... 인간의 성공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만 진짜 성공한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삶도 헛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헛된 것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가 지나가는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바람은 잡히는게 아니지요.... 잡아도 잡아도 손에는 아 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사람과 경쟁해서 이겼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납니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또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또 그 사람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일이 끝이 없습니다.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경쟁이라는 것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어떤 삶인가 하면, 5절 말씀에 나타나는데....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남과 다투기 싫다고... 경쟁하기 싫다고... 손을 거두어 버리고 아예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이죠.... 이런 사람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본문에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우매자'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바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자기 살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일을 하지도 않는데 누가 먹을 것을 주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살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파멸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양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다 잘못입니다. 너무 경쟁의식에 사로잡히거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6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 사람은 그래도 한 손에 가득한 것이 있습니다.

 

우매자처럼 손을 거두고 굶어죽는 사람은 아닙니다. 필요하면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한 손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과도한 경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스트레스 받고... 그러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평온함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만드셨습니까?... 43:7절에 보면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려고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하여하라!" 했습니다.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일들... 공부를 하고, 사업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늘...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강... 우리 하나님만이 주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 평안이 비로소 우리 심령에 흘러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 말씀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3. 남과 어울릴 줄 모르는 인생(712)

세 번째 종류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너무 독립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자기가 제일인 줄 압니다. 뭐든지 자기 혼자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도 역시 평안이 있을 리 없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도 알고, 협력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남과 어물릴 줄 모르는 인생을 향하여 7절 말씀에 보면 헛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수고해도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지 8절 이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교회 가족들은 친척이나 가족들보다도 더 많이 만나고 가깝게 지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 일처럼 도와주고 같이 아파합니다. 주의 사랑으로 한 가족 된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기쁨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면, 이 사람에게는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라고 했습니다.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내도 없습니다. 아마 결혼하지도 않고 혼자만 잘 살고 출세하겠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오늘날 결혼하지 않고 사는 노처녀, 노총각들이 점점 늘어간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주장가운데 하나는 "혼자 지내니까 이렇게 편한데 뭐하러 결혼해서 구속을 받느냐?" 는 겁니다. 혼자만 잘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문의 이 사람은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동업해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또한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저 혼자서만 수고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불러서 같이 협력해서 일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그렇게 하는 진짜 이유가 8절에 나옵니다.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벌어놓은 부를 자기 혼자 다 독차지해도 양이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동업하면 나누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것을 나누기 싫어서, 자기 혼자 다 독차지하려고.... 그렇게 혼자만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허전한 마음이 되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 하고 말합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 봤자 누구를 위한 수고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고 노력을 해서 벌어 놓으면 누가 덕을 보느냐는 겁니다.... 결국 아무도 유익을 얻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많은 재산... 죽어서 다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그 재산을 물려줄 아들이나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재산을 관리해 줄 친구라든지 동업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의 수고를 통해서 유익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결과가 8절 끝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이것도 헛되어 무익한 노고로다...." 하고 말씀합니다. 아무도 유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헛된 것이요, 헛 수고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9절 이하에서 협력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같이 일하면 더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솔로몬은 한 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광야 길을 여행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광야 길은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져 있습니다. 그런 험한 길.... 더군다나 밤중에 여행하게 되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10절에 보니까,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했습니다.

 

밤중에 여행을 하다가 한 사람이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잘못해서 발을 삐었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그를 붙들어 일으켜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여행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아주 결정적으로 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뿐만아니라, 밤이 되면 광야는 일교차가 심합니다. 낮에는 아주 덥고, 밤에는 아주 춥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11절 말씀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아무리 두꺼운 옷을 껴입어도 그 추위를 혼자서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라면 등을 대거나 아니면 끌어안고 잔다면.... 체온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따뜻합니다.

 

이처럼 광야 길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그것이 12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이웃의 소중함을 알고 함께 협력하면서 더불어서 인생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해에 농사가 너무 잘 되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창고를 새로 짓고 곡식을 가득가득 쌓아 놓았습니다.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나누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혼자만 잘 살겠다고 잔뜩 쌓아놓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어리석은 농부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부르리니 그리하면 네가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이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는 벌어도.... 쓰지 않고 채워놓기만 하면 그 사람은 목적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됐으니 이리 와라!" 하고 하나님이 불러 가십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다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이웃을 위해서 많이 쓰는 것입니다.이 일은 끝이 없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꾸 주십니다. 누가복음 6:38절 말씀에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쌓아 놓을 때가 아니라, 나누어 줄 때, 혼자 갖을 때가 아니라 베풀어 줄 때...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안겨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값 있게 쓰면 되는 것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죽지 않아요....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소중히 여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현명한 성도가 되셔서 하나님께 넘치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세상 권력에 집착하는 인생(1316)

마지막 네 번째의 인생은 1316절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 보다 나으니...."여기에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왕입니다. 신분이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가난한 사람은 나이가 어린 소년이고, 왕은 나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만 살펴보면 왕이 월등히 낫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바꿔놓는 제 3의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가난하고 어린 소년은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왕은 둔하다고 했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의 단적인 예로써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가 하면 "간함을 받을 줄 모른다" 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세 지는 게 있다고 그럽니다.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고집'이라고 그럽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고집만 쎄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고정관념이 있어서... 분명히 자기가 틀렸는데도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드시면 이런 점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이 많은 이 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간함을 받을 줄 모른다" 고 그랬습니다. '간하다'는 말은 옳지 못한 일이나 잘못하는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진 임금은 충신이 간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 그는 지혜가 없는 왕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 사람의 위치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인하여 14절 말씀을 보면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음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는 나이 어린 젊은 소년을 말합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심지어는 옥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감옥에까지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역경들을 지혜로 극복하고 나중에 왕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왕, 지혜없는 왕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5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본즉 해 아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혜로운 소년이 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나이가 어린 소년이고,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워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웠던 소년도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서 또 둔해집니다.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 것입니다.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소년도 그 이전의 왕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마음은 이제 제 3의 또 다른 소년에게 쏠리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권력이라는 것도 역시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됩니까? 또다시 제 3의 소년, 4의 소년이 왕이 됩니다. 이것이 자꾸만 반복됩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가 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16절 말씀에 보면, "저희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했습니다.

 

인생의 권력, 인기, 명성 등은 다 헛된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에 우리가 어찌 우리의 인생을 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해 아래는 새 것이 없습니다. 위로가 없습니다. 낙이 없다는 말씀입니다.....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어디에 낙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까?....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하겠습니까?...

 

히브리서 13:8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주님만이 변치 않으시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안위하시는 분임을 말씀합니다. 환경이 변하고 세상이 끝이 나도 변함없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그 한 분만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헛되지 않고 의미있는 삶,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솔로몬은 전도서 4장에서 세상 사람들이 왜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는지를 네 종류의 인생을 가르키며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노년에.... 그가 지내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며 기록한 자기 고백적인 말씀입니다. 위로자 없이 학대받는 인생 경쟁심에 사로잡힌 인생 남과 어울릴 줄 모르는 물질주의 인생 권력에 집착하는 인생.... 이런 사람에게는 삶의 낙이 없습니다. 성도는 이런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삼고, 그분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권속들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충만해서.... 우리의 삶이 주안에서 더욱 더 행복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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