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전도서 6장), 김덕선 목사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다 누리면서 한 가지 중한 것 공통적인 관심사인 폐단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기대가 싹 허물어지는 그러한 때가 있단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금전적 손실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를 소유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주신 복을 누리느냐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분의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1.주신 물질과 명예를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2절).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다 받았습니다. 돈도 명예도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 가진 것 같았는데 보니까 누리지를 못합니다. 돈은 벌었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쌓아 놓았다가 그대로 인생을 마치고 맙니다. 명예도 많이 얻었으나 누리지 못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재물과 명예를 그로 누리지 못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물질과 명예를 누릴 자격이 없기에 주님이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관리능력이 없으니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그래도 안되면 부도처리하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가진 자는 더 많이 얻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많이 버십시오,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많이 쓰십시오"
이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도적이 오고 좀이 쓸고 충이 먹어 없어집니다. 주신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물질과 명예를 얻었을 때 청지기 의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3절).
명예도 재물도 건강도 아무것는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부귀와 영화를 가진 사람이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또 자녀를 일 백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 장수함이나 다산으로 자녀를 많이 둔 것 자체로는 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백 자녀를 둘만큼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건강도 주셨습니다. 또 장수의 복도 받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무리 오래 산들 마음속에 평안히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입니다.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서 공경을 받고 효도를 받아야지요. 죽었는데 그 몸 하나 제대로 거두어서 장사지내 줄 자녀가 없다면 일백 자녀를 두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가 저보다 평안함이라." 낙태된 자가 더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 아래서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폐단, 당해야 하는 불행을 낙태된 자는 겪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솔로몬은 6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천 년의 갑절은 얼마입니까? 2천 년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였습니다. 그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2천 년은 므두셀라가 산 것의 두 배가 넘는 기간입니다. 그처럼 오래 산다고 한들 낙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건강의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장수의 복을 주시기 원합니다. 자녀의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에 더해서 평강의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3.자족하는 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7절)
현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만족하며 평안과 낙을 누리는 것이 헛된 욕심을 좇아 방황하며 근심하여 평안과 안식을 잃어버린 것 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이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인생이 이것뿐이라면 이것도 헛되다고 한 것은 현재의 삶에서 만족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임을 전도자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과 안식은 모든 복의 근원이시고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먹어야 삽니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먹어야 합니다. 지혜 자도 먹어야 하고, 우매자도 먹어야 합니다(8절). 부자도 먹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먹어야 하고, 누구나 다 먹어야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식욕은 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8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인생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이 사람은 비록 가난하지만 인생 앞에서 행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지혜롭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혜자가 아무리 자기의 지혜를 다 짜내고 아무리 고생하고 수고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쥔들 그것이 무엇이 그리 유익하냐는 것입니다. 또다시 다른 욕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소유해서 손에 쥐고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낫기는 낫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입니다(삭월세-전세방-열세평아파트, 화장실 두개짜리 아파트). 또 다른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마음속에 비로소 참된 만족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길이 바로 내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에 두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야 합니다(10절).
무엇이든지 그 이름이 오래 전부터 칭한바가 되었다는 것은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나 그 특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물은 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그 존재의 특성까지도 다 규정하셨는데, 인생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규정하시고 주권 적으로 섭리해 나가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계획과 섭리가 다 하나님께 예정되어 있고, 그대로 주권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자기보다 강한 자와 다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다 주장하시는 하나님과 다툴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행하는 것 자체가 망할 수밖에 없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때에 비로소 겸손히 나오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강한 자의 편이 되어, 순종하는 삶이 지혜자의 삶입니다. 이분만이 인간의 한계를 다 아시고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 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 6:12).
인생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말씀합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모든 인생을 지으시고 지금도 계획 가운데 섭리하시므로 다 아시는 하나님 외에 누가 알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세상 눈으로 보이는 것, 욕심을 추구하는 삶,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 말고, 오늘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능히 즐겁게 누리게도 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찾고, 이 하나님으로만 만족해야합니다.
땅의 것들로 만족하려고 하면 결국은 허무와 근심과 슬픔을 당할 뿐입니다. 전능자시고 전지하신 하나님 한 분만이 그림자 같은 허무한 생명의 모든 날 가운데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고 능히 누리게도 하셔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낙을 누리도록 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우리의 신 후사까지 다 아시고 책임지실 분입니다.
강한 자와 누가 다투겠습니까? 이 분을 알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 분 편이 되어 사는 것이 지혜 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생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something to do," 뭔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두 번째로, "someone to love," 누군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고,
세 번째로, "something to hope for," 뭔가 바라는, 기대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해 아래 이 세계에 집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해 위의 세계, 영원한 세계를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바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기쁨 이 만족 이 자유 안에서 사는 것이 주신 분복을 누리면서 사는 인생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