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의 시험을 통과하라(약 4:1-3), 김덕선 목사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갈구하지만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저런 것들을 추구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끝없이 갈등을 일으키고 안정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래 인간에게 주신 마음은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자기를 최고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사람은 둘 중 하나를 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거나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거나?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의 동기를 시험해야 합니다. 과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인가? 아니면 영혼이 잘되기 위함인가?
우리가 늘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싸우고 남을 시기하는 마음에 빠지게 됩니다. 싸움과 다툼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왜 다툼이 생기는 것일까요? 다툼의 원인은 육체의 욕심 때문에 발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0절입니다.“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다툼은 자기만족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나는 것이 아니냐”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네가 죽느냐? 아니면 내가 사느냐?하는 경쟁적이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욕심을 품고 있을 때는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자기 뜻을 정해 놓고 욕심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의 동기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비추어서 잘못된 것은 언제든지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깊은 동기까지도 보십니다. 정욕대로 구하는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기도와 같이 본래 기도는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은 자기만족, 자기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나플레옹은 자기 어머니에게 칭찬듣기 위해서 유럽을 정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히틀러가 자기만족을 위해서 전 유럽을 전화 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의 근거는 자기 만족입니다.
이것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성격이 너무 달라서 많이 다투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은사를 많이 받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다툼이 많았습니다. 교회 안에도 다툼이 있습니다. 주님이 일을 하는데 왜 다툼이 있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 봉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그 봉사가 나를 위한 것인가, 주님을 위한 것인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만족을 위해서 하다 보면 나보다 잘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인생은 주변과 늘 불화합니다. 남이 잘하면 잘 해서 불안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깔보느라고 마음의 평정이 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생활하면서 성도들과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고 교회만 잘 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어떠한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봉사할 때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주님을 위한 것인가?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