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과의 소통(삼상 1:15), 김덕선 목

liefd 2024. 3.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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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달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하여 주신 설교의 주제는 소통입니다. 개인, 가정, 교회, 직장, 사회에서 소통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중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의 기술은 대화의 부족 때문에 올바른 대화의 부재 때문에 소통이 안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진정한 소통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 마음으로 공감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법은 부분적인 대안에 불과할 뿐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1. 왜 우리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막히게 되었을까요?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최고의 소통을 누리면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탄이 뱀을 통해서 하와에게 찾아와서 유혹하였습니다. 접근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가감함으로써 하와의 마음을 떠보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섞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곧 이어서 사탄은 하와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까봐 따먹지 말라고 했다고 속입니다. 

 

그래서 하와는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아내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인류는 소통의 부재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댑니다. 하와는 뱀이 나를 유혹해서 그만 따먹고 말았다고 핑계를 댑니다.

 

이때부터 뱀과 여자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소통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도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의 관계도 두려워하고 해치는 관계를 바뀌고 말았습니다. 동물과 식물의 관계도 서로 잡아먹는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벌레를 잡아 먹는 식물을 식충 식물이라고 합니다. 생물학에서 이를 먹고 먹히는 관계, 먹이사슬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소통의 부재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죄라고 하는 욕심이 들어가서 생긴 것입니다. 범죄한 이후에 인간에게 찾아온 현상은 서로에 대한 수치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죄는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의 패턴을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소통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회복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믿음의 가정,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라도 죄가 들어올 때 서로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자, 동생 아벨을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가정이라도, 예배드리는 현장이라도 죄가 들어오면 소통이 막혀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생각을 가감해서 생긴 것입니다. 대개 직장에서도 경영자의 지시 내용에 대해서 30%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70%는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영자들은 나머지 70%의 사람들과 소통을 위해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과의 소통에 성공했던 한나의 기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무척 사랑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자녀를 낳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아내, 브닌가가 있었는데 애를 낳지 못한다고 한나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괴로웠든지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위로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5-8).

 

자녀가 없다는 슬픔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지만 성전에 올라가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11절입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주의 여종을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해 주셔서 아들을 주시면 평생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의 도구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으로 바치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사무엘상 112-13절에 보면 한나가 하나님 앞에서 오랫동안 기도하였습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기도을 드렸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기도를 계속하는데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기 때문에 술에 취한 줄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엘리 제사장님!, 제가 포도주나 독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통하는 기도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십니까? 과연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서 통하는 기도를 하십니까? 그냥 우리의 기도가 천정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그런 형식적인 기도가 아닙니까?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해놓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628절입니다. “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2.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욥기 2221절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이 말씀은 엘리바스가 그의 친구 욥이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하고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이 속히 회복시켜 주신다고 합니다. 욥의 경우에는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고난이 닥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면 평안과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서운한 마음과 분노를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싶어하고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습관을 중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생활의 패턴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소통하시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9절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려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회목하게 하라는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불행은 하나님과의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언제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그분없이 살아간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16-17절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원수의 관계에서 화목의 관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3. 우리가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면 어떤 복을 누리게 될까요?

 

네 가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욥기 2226절입니다.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기 2227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을 네게 갚으리라.”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무엇을 결정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욥기 2228절입니다.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치리라.”

 

넷째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욥기 2229-30절입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죄 없는 자가 아니라도 건지시리니 네 손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건지심을 받으리라.”

 

인간의 모든 소통이 막히게 된 이유가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에 욕심에 생겨서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모든 소통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만약 한나가 자녀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매달렸다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과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것 때문에 불행해 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한나처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면 엘리 제사장, 즉 주의 종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이 너의 구한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씀을 한나가 그대로 믿고 나갈 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들 사무엘을 허락하셨을 때 한나는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바칩니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로 그대로 드릴 때 사무엘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아들 셋에 딸 둘 5남매를 더 주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 개인, 가정, 교회, 직장, 사회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소통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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