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의 소통(창 27:1-12), 김덕선 목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삼대에 걸쳐서 믿음의 가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닉 네임이 붙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4장 5절입니다.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아브라함의 가문은 하나님과의 소통이 잘 되는 가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일에 성공한 가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9절입니다. “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삭과 야곱도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계승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부부 간의 잘못된 소통으로 여러 번 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으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합의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지만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소통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가나안 땅에 또 흉년으로 인해 이삭이 그랄에 있는 블레셋 아비멜렉에게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여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 위하여 부부가 서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서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개입이 없었더라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1. 가정에서의 잘못된 소통
오늘 본문에서도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그런데 어머니 리브가는 누구에게 축복 기도를 받고 싶어했을까요? 본문 10절입니다.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받게 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축복해 주고 싶어하셨을까요? 창세기 25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내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리브가는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래도 에서가 형이고 야곱이 동생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게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잘 알면서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약속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아버지 이삭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내 리브가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남편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경에는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황적으로 볼 때 리브가가 이삭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전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나중에 에서가 뒤늦게 별미를 이삭에게 와서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이삭이 너는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아들 에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이삭이 심히 크께 떨었습니다(33절). 이삭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장자 에서에게 축복을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축복해 주고자 했던 것인데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고 말앗던 사실을 깨닫고 너무 놀라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리브라가 이삭에게 찾아 가서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기를 원하시는데 기도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부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 또한 에서를 축복하고 싶은 데 리브가에게 당신 생각은 어떤가? 라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과 리브가 부부는 평소에 영적인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야곱과 에서, 즉 형제간에도 영적인 소통이 잘 아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기질이 너무 달랐기 때문에 대화가 잘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평소에 부부가 자녀들을 편애했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불편하였을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27-28절입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이와 같이 부부가 소통이 돠지 않으면 자녀들 간에도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부부가 자녀들을 편애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자녀들끼리 관계가 나빠집니다. 더구나 결혼한 이후에 자녀를 하나 이상 낳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소통의 단절로 결국에는 야곱과 에서가 서로 원수가 되고 맙니다. 창세기 27장 41절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이로 인해 리브가는 하루 아침에 두 자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혀 야곱을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보냅니다. 창세기 27장 45절입니다.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이와 같이 가정에서 소통의 부재는 속임과 미움과 살인과 떠남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에서가 성질이 급하기 때문에 몇 일 지나면 풀어질 줄 알았는데 그것이 최소한 20년 이상 응어리 맺힌 채 좀처럼 풀리지 않게 됩니다. 특히 가정에서 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에서처럼 다른 서운한 것 때문에 오히려 부모의 근심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창세기 27장 46절입니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실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 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에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그런데 가정에서 부부가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자녀들이 소통을 잘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손자들 간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깁니다. 가정에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이 대물림이 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야곱 역시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에게 편애함으로 채색 옷을 지어 입히고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합니다. 이로 인해 그의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나중에는 죽일려고 하는 계획까지 세우게 됩니다.
창세기 37장 3-4절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향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이와 같이 부모가 자녀를 편애하면 자녀들 간에 서로 편안하게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가정에서 소통이 막히게 됩니다.
가정에서 소통이 막히게 되면 밖에 나가서도 사회에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아버 야곱의 부탁을 받고 형들을 찾아 갔는데 멀리서 동생이 오는 것을 보고 요셉을 죽일려고 합니다( 창37:18). 대개 집 안에서는 형제들이 싸우다가도 밖에 나가면 하나가 되는데 소통이 안되면 밖에 나가서도 서로 원수가 됩니다. 소통이 안되는 가정에서 자란 형제들은 문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맡깁니다. 창세기 42장 22절입니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2. 가정에서의 올바른 소통
1)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 주장, 방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러 가기 전에 사자를 보내어 동태를 살펴보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주인의 형 에서가 당신을 만나려고 400명을 거느리고 여기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각 떼를 분산시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예물을 먼저 보내어 형 에서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창세기 32장 20절입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래도 야곱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밤에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때에 자기만 홀로 남아서 천사와 씨름하기까지 간절히 기도합니다.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당신을 보내드릴 수 없다고 고집합니다. 결국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칩니다. 즉 야곱의 자신의 모든 주장, 생각, 방법을 다 내려놓게 하십니다.
결국 에서는 그의 동생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물론 그 배후에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주셨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수단과 방법과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만져 주실 때 가능합니다.
2) 진정한 소통은 서로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합니다.
또한 가정에서의 소통은 서로가 잘못했을 때 그것을 지혜롭게 풀어 가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걸복걸하는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13년이 지난 후에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자기 형들이 애굽에 식량을 사러 왔다가 서로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일부러 꼬이는 과정을 통해 과거에 그들이 잘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베냐민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유다가 동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게 됩니다. 형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밝히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서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건을 해석할 때에 단순한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요셉은 과거에 자신이 당한 억울한 사건, 시간, 손해 등에 대해서 묶이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받은 상처나 자신이 형들을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하는 그런 문제로 인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소통의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상대방이 나에게 입힌 상처와 피해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 해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섭섭함 때문에 소통이 막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힘들고 마음이 상한 가운데서도 내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위치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50장 1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셨나니.”내가 모든 것의 최종 판단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3) 진정한 소통은 용서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창세기 50장 20절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해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어 주셔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상황을 해석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유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계속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안심시키는 위로의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들뿐만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까지도 기르겠다고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창 50:21).
이것이 진정한 용서와 소통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