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인간의 가치(막 5:1-20), 김덕선 목사

liefd 2024. 3. 1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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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회사에 나가서 연봉을 받는 액수에 따라 가치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유명한 탤런트는 한 번 출연하는데 수 천만원씩 받는 반면에 이름없는 엑스트라니 조연급 배우들은 추운 겨울에 실컷 고생하고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보수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야구선수나 축구 선수는 연봉을 수백만 달러씩 받는데 비해 인기가 떨어진 프로 선수들은 아무도 써 주는 사람이 없어 결국 음식 장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억의 연봉을 받는 사람의 가치가 수 천 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는 사람의 가치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는 그 사람의 명성입니다. 유명할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그래서 그만큼 많은 보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진정한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가끔 우리 주위에 어떤 사람은 쓰레기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완전히 버려져 다른 사람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버려진 상태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다 똑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명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에 따라 가치가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 앞에서 무한대입니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마귀에게 이 가치를 빼앗겨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가치를 살려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호수를 경계로 서편인 갈릴리 지방에서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호수 저편인 동쪽은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우상 숭배와 미신에 빠진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 이방인의 땅, 거라사 지방에 가신 것은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귀신들려 완전히 미친 사람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도 귀신들린 많은 사람을 만났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거라사에 귀신 들린 사람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미친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사람은 괴물이지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광인은 갈데까지 간 사람이었고 도저히 구제불능의 사람입니다.

 

본문 3-5절에 보면 이 사람은 완전히 미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로 무덤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일반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곳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사람은 얼마나 힘이 센지 모릅니다. 이 미친 사람은 너무 폭력적이어서 쇠고랑이나 쇠사슬을 잡아매어도 끊고 도망쳐 버리기 때문에 도저히 집에 가두어 둘 수가 없습니다. 또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자기 몸을 자해하여 피를 흘리기 때문에 도저히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미친 사람은 전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미친 사람은 어쩌면 빨리 죽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사람도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단지 마귀에게 붙잡혀 가치를 잃어버린 것인지 사탄의 세력을 좇아내기만 하면 이 사람도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과거에 죄 가운데서 방황하며 살았던 인생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이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우리 인생을 너무나도 보배롭고 가치있게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술에 취하거나 죄에 빠져 있을 때는 더욱 더 미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6-8절에 보면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방인의 땅에서 귀신들린 자와 대화를 나누십니다. 사실 귀신 들린 자와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고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과 대화를 나눈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미친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절을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을 합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필름이 끊긴 상태입니다. 사탄이 충돌질 하는 대로 달려가기도 하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사람을 때리거나 물어뜯기도 합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있는 악령이 그 사람을 통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세계의 한 부분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귀신이 공격적으로 나오려고 하다가 예수님의 권세에 눌려 땅에 엎드려집니다. 쇠고랑과 쇠사슬을 끊던 이 광인도 예수님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이만큼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마귀의 세력들은 모두 벌벌 떨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하고 가장 무서운 것이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에 들려서 미쳐있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귀신에게 명령을 내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귀신이 아주 괴로워서 예수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부탁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존재가 사탄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괴롭히냐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만 있을 것이지, 혹 있다 하더라도 이스라엘만 있을 것이지, 이방인의 땅까지 경계를 넘어와서 우리를 괴롭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마귀를 너무 편하게 대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에 사탄은 괴로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사탄을 괴롭게 해야 합니다. 자꾸 찬송을 부리고 성경도 큰 소리로 읽어야 합니다. 기도 소리도 높여 사탄이 견디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9-10절에 보면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에게 이름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제 정신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이 내 이름은 군대라고 했습니다. 원어로는 레게온, 큰 부대라는 뜻입니다. 대개 로마 군대에서 레기온은 6천 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로 치면 사단 병력의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한 사람 속에 이렇게 많은 귀신이 들어갈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에게는 귀신의 본부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들어와 충동질해서 죄짓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사람 속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않고 더 강한 귀신을 끌어들입니다.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것에 집착하게 만듭니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리라고 충고합니다. 절대로 은혜받지 못하게 합니다. 희생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귀신들은 이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귀신에게 최고의 성공은 사람 속에 들어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미 저주를 받았고 무저갱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죄짓게 만들고 함게 망하기 위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본문 11-13절에 보면 군대라는 이름을 가진 귀신은 옆에 돼지떼가 있는 것을 보고 예수님에게 그 돼지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허락하니까 귀신들이 나와 돼지떼에 들어가 이천 마리의 돼지가 한꺼번에 다 미쳐 호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이 귀신이 돼지 속에 들어가니 돼지들이 단 몇분도 참지 못하고 괴로워 다 죽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사람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 사람들이 술을 마시듯이 돼지나 개들이 술을 마신다면 불과 몇 주일가지 않아 다 죽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질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친 한 사람의 생명과 돼지 이천 마리의 생명과 바꾸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치게 음행하거나 술을 폭음하고 폭력을 휘두를 때는 그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신아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배척하고 이간시킬 때는 그 뒤에는 사탄의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미쳐 갈 데까지 간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귀신의 세력을 위협해서 결국에는 그 사람을 포기하고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떠나고 난 후에 보니 이 사람은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탄의 세력이 너무 강해 아무도 귀신의 세력을 좇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하심으로 이 귀신들린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돼지의 희생없이도 얼마든지 귀신을 내좇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악하게도 귀신은 대가를 요구했고 예수님은 돼지 이 천 마리와 이 광인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알코올 중독자라 사람을 때리고 인간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에는 어떤 사탄의 세력이나 나쁜 충동이나 죄의 습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동네 사람들이 앞으로 더 많은 귀신 들린 자들이 나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번에 군대 귀신 들린 한 사람 고치는 돼지 이천 마리가 죽었는데 앞으로 다른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는 개 오백 마리, 닭 삼천 마리 하는 식으로 죽는다면 자기들이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친 사람은 한 사람만 정신차려도 되니까 제발 예수님이 미친 사람들을 고치지 말고 가시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며 이기적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8-20절에 보면 귀신들렸다고 나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서 배를 타려고 합니다. 그는 다시 귀신이 들릴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귀신이 꼼짝 못한다는 거을 알았지만 예수님이 다시 떠나시면 그 귀신들이 몰려올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신 것은 완전한 치료이기 때문에 다시는 귀신이 들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들을 친척들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다시 사탄에게 지배당할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것은 귀신들이 그들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나 청소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자신 안에 있는 광기입니다. 자신이 흥분하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을 통치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피조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거라사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영혼 때문에 손해보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의 모둔 사람 속에는 광기가 있습니다. 특히 사탄은 현대인을 집단 광기나 이데올로가룰 통한 광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의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광인을 굴복시키고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아이가 귀신들려 간질을 일으켰을 때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 사회가 치유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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