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인간이란 무엇인가?

liefd 2024. 3. 1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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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

 

인간은 누구이며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무엇을 기다리며, 무엇이 인간을 기다리는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네가 누구냐고 질문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희랍의 현인 탈레스의 말과 같이 인간이 아는 것은 모르는 것뿐이다라는 표현이 옳다.

 

히틀러의 전범자 재판정에 비누 한 상자가 증거물로 제시되었다. 그 비누 상자에는 순 유대인의 지방으로 만든 비누라는 상표가 붙어 있었다. 인간들은 이 비누 앞에서 인간이 무엇이냐하고 질문해 보아야 한다.

 

일본인들의 생체 실험에 사용된 마루타앞에서 인간이 과연 무엇인가! 물어 보고 대답해야 할 자가 바로 사람 자신이다. 동물원의 원숭이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조상을 찾았다고 기뻐하며, 원숭이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 다윈을 깨워서 물어 보아야 한다. 아니면 모세와 같이 내가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이십니까?(3:11)하며 을 향하여 물어 보게 된다.

 

인간은 많은 것을 연구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 스스로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인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이것을 정확하게 알 사람은 아무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가장 잘 아는 분은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다. 인간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으며 무엇을 위해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기록한 책을 통해서 아는 길이 제일 현명하다. 그래서 성경책에 계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한다.

 

첫째, 인간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다(1:26). 그래서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질문에 답한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1:26-28).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으므로 다른 피조물과 유일하게 구별된다. 인간에게는 신의 형상이 있으므로 人權神權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학대하거나 살육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는 것과 같다.

 

셋째,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었으되 혼연일체가 되어 나누지 못한다. 육은 ''으로, 영은 하나님의 생기로 되었기 때문에 사람은 동물과도 구별되고 하나님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이다(2:7).

 

넷째, 인간은 우주 만물의 관리자이다(1:28). 우주 만물은 창조주의 소유이나, 만물의 관리는 인간에게 맡기셨다. 관리자는 주인의 뜻대로 관리해야 한다.

 

다섯째, 인간은 남녀 양성으로 되어 있다(1:27). 인간은 남자와 여자를 합하여 인간이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며 상호 협력해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여섯째, 인간은 책임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하였느냐?고 질문하신다(3:9). 가인아 네 형제 아벨이 어디 있느냐하시며 책임을 추궁하신다(4:9).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나, 인간 앞에서나 자연 앞에서나, 자신에게나, 역사 앞에 책임적인 존재로 세워졌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인간만이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그의 형제와 자연과 역사의 파수꾼이다.

 

일곱째, 인간은 죄인이다(3:1-7, 5:8).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받았다.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는 자유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 자유를 남용하여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고침을 받아야 바르게 살 수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2. 인간의 기원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하나는 창조론 이고 또 하나는 진화론이다. 사람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의 기원부터 알아야 하겠다.

 

1) 생명의 기원

옛날 사람들은 대체로 造物主가 생명을 만들었다는 막연한 원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옛날부터 모든 생물들이 저절로 생긴 것이라는 자연발생설을 믿고 있었다. 먼지나 진흙이나 썩은 물질에서 벌레나 곤충이 나오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연발생설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대석학이 자연발생설을 주장했으니 감히 반대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박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시조인 뷔퐁(1707-1788)은 약 2만년 전에 원시 바다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우연히 생겨나서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그후 동식물 학자 라마르크(1744-1829)동물 철학이나 다윈(1809-1882)종의 기원도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기초로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세균학자인 파스퇴르(1822-1895)는 공기 중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을 발견해서 벌레나 곤충 등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실험을 통해서 증명하였다. 그래서 그는 생명은 오직 생명에서만 생겨났다는 주장을 함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정면으로 공박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세상에는 우연히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2) 사람의 기원

 

첫째로, 사람이 원숭이의 후손이냐? 하나님의 자녀냐? 하는 문제를 놓고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간에 오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만약에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인간은 짐승에 불과하며, 가정은 작은 동물원과 같고, 이 세상은 거대한 동물원과 같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원리를 따라 상대방을 잡아먹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라고 하는 동물적인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 사상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도덕이나 윤리가 필요 없고, 진선미를 추구하는 문화생활도 필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다윈의 진화론 위에 세워진 인류 문명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적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의 허구성과 거짓됨이 만천하에 속속 증명됨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이것을 바로 고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당장 무너뜨리면 현대 사회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 중에서 소진화(小進化)는 인정하되, 대진화(大進化)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소진화는 같은 안에서는 진보라는 개념은 발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진화는 에서 에로의 탈바꿈도 뜻하는 것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개들 중에 여러 종류가 있고, 소중에서 여러 종류가 생기지마는 개가 소가 되고 소가 개가되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대진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먼지에서부터 우연히 자연 발생한 생명체가 진화해서 된 존재라고 하는 진화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둘째로, 사람은 창조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사람의 기원에 대한 근거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생명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으며, 특별히 사람을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26-27, 2:7).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것과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전에 계획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닮게 지으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3. 하나님의 형상

 

1)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성경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중요한 기록들이 많다(1:26,27 9:6 고전 11:7 3:9 3:10). 특별히 창 1:26에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누구 누구이며 [형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복수로 나타낸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 서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가 되어 계신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존엄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을 택할 때 복수를 사용하는 히브리인들의 언어 관습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일컫는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성, 자유, 사랑을 말하는 능력, 양심, 판단력, 정의감, 용기, 선함 등등을 말한다.

 

최근의 신학자들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의 관계]로 혼연일체가 되셔서 존재하심과 같이 인간도 사랑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 세 가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관계가 사랑으로 유지되면 번영과 행복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하며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나 종래 이 세 가지 사랑의 관계를 바로 유지하지 못함으로써 실낙원이라는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2) 타락한 인간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형상

 

그렇다면 타락 이후의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졌을까? 아니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을까? 조금 남아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주장에 의하면 자연 은사(이성, 양심, 분별력, 정의감, 사랑, 용기 등)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반해 초자연 은사(神知識 神意順從 영생 얻을 가능성등)만 상실했다고 한다.

 

둘째로, 개혁 교회는 대체로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고 본다. 마르틴 루터와 그의 제자들은 전적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요한 칼빈과 그의 제자들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의 형상]이 거의 파괴되었지만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형상의 조각이 남아 있어서, 거기서 하나님의 지식이나 영광이 나타나며 그것이 또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죄를 통해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9:6 고전 11:7 3:9).

 

셋째로, 최근의 신학자들이 [관계]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을 보면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됨으로써 모든 관계가 잘못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곧 낙원에서의 추방이요 온 인류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관계가 끊어지거나 잘못되면 불행이 따른다고 한다. 신인 관계가 잘못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관계는 맺고 있기는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고 아우를 죽인 카인에게 표를 주셔서 생명을 보존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카인 속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하시고 아무도 가인을 죽이거나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 [사랑의 관계]이든 [미움의 관계]이든 아직도 관계 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리해 보면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다.

인간은 타락하여 신의 형상을 거의 잃고 말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신의 형상만으로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존귀하다.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짓밟아서는 안된다. 인간을 짓밟는 행위는 하나님께 그같이 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4.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

 

인간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 온갖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노력이 있었고 의학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죄와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사람은 없었다.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다.

 

1)

인간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노여워하신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반드시 징벌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노여움은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도 복음의 중요한 내용이다. 자식의 죄를 보고도 징계하지 않는 부모는 참 부모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사랑의 관계와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는 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이 법칙이 무너지면 이 세상은 난장판이 되고 당장에 파멸이 온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과 같이, 죄를 심으면 형벌을 거두게 되어 있다. 이 법칙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죄를 많이 범하면 자신에게든지 3,4대에 이르기까지 그 죄의 해독이 내려가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일 천대에 이르기까지 복을 받게 된다(2계명).

 

죄에 대한 형벌은 다양하다. 첫째는 양심의 가책이고, 둘째는 부모나 스승이나 이웃이나 공동체와 국가권력에 의해서 벌을 받는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벌을 내리기도 하나 인간의 형벌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심판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죄에 대한 최고의 형벌은 사망이다(6:25). 그렇다면 인생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

 

2) 죽음에 대해서

죽음은 모든 생명체의 소멸성이라는 차원에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죽음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동식물과 같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유한한 피조물임에 틀림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가운데 있는 것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자연의 법칙으로만 돌릴 수 없는 까닭이 있다. 그것이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동식물은 죽음을 모르기에 고통도, 죽음의 의미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임종하는 순간까지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한다.

 

첫째, 인간의 죽음은 창조 질서에 포함된 것이다. 인간은 영원 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정해져 있는 죽음을 바르게 인식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과욕을 버려야 한다. 이러한 창조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땅 위에서 과욕을 부리다가 [개죽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되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어떤 이는 진리를 위해 순교하고 어떤 이는 나라를 위해 순국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애를 무의미하게 버리지 않고 뜻있게 살고 뜻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自殺)만은 절대로 용서되지 않는 죄악이다. 자신의 생명이든 타인의 생명이든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에 속한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고 관계를 끊어 놓았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죄의 삯이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리스도는 끊어진 神人관계를 회복하신 중보자이시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면하게 된다(5:24).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인간을 가장 바르게 아는 것이다.

 

5. 총체적 인간

 

인간은 개인이면서도 사회인이요,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육신을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 우리 인류는 기나긴 역사의 여정을 탐구해 왔지만 인간 스스로가 풀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 생각하는 二分法, 으로 나누는 三分法이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영과 육을 억지로 나누지 말고 통일체로 보자는 총체적 인간이해론이 있다.

 

우리가 사물을 연구할 때 분석적인 방법도 있지만 종합하는 방법도 있다. 지나치게 분석하다가 보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때도 있다. 특별히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분석적인 태도보다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더욱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1:28)는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자료가 창세기 27절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생명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육체와 영]을 지으셨다는 것을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을 []을 불어넣으신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힘을 [육체와 영]에 함께 주심으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히브리인들은 [영과 육]을 나누지 않고, 전인적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영과 육은 분리될 수 없고 서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육이 없는 영은 생각할 수 없고 영이 없는 육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범해 온 오류 중에 육신을 저급하고 죄악된 것으로, 영혼은 고결하고 거룩한 것으로 생각해 온 전통은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성서적인 것이라기 보다, 이교 적인 요소가 기독교 안으로 들어온 것일 뿐이다. 사람이 죄를 범한다고 할 때 육체만이 죄를 범하거나 육체만이 악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보다는 오히려 [마음]에서 일만 악한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이 죄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육체는 어떤 의미에서 중성적이다. 고대로 부터 지금까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인간 이해를 쉽게 돕는다는 생각에서 인간의 기본 구성 요소를 [영혼과 육신]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거나 [영과 혼과 몸]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따로 따로 나누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고, 이어서 향락주의나, 고행주의가 다시 나올 수도 있으며 영혼 지상 주의의 신비주의가 성행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였다는 말씀 안에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똑같이 포함되어 있다. 영혼이나 정신이나 마음이나 육신이 구별되기는 하지만 이 모든 표현들은 全人的 표현이지, 인간의 구성 요소를 나누겠다는 의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명기 65절 말씀이나, 마태복음 2237절 말씀이나,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의 모든 표현들이 인간의 구성 요소를 구분할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 또는 [영과 혼과 몸]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전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함께 구원하신다. 이 세상을 다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영과 육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인간,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인간, 땅위에 살면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시간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도 함께 구원하신다. 이 세상을 다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영과 육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인간,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인간, 땅위에 살면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시간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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