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 예화
성화 중에 홀맨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우리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성화이다. 그 그림에는 한 사람이 등불을 들고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것으로 보이는 문 밖에 서 있다. 그 문 주변에는 덩굴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어서 그 문이 오랫동안 닫혀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그 문은 바깥에서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그러니까 이 집에 등불을 들고 들어가려 하지만 손잡이가 없어서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이다. 정말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방법이 없다.
빛이란 내 자신이 곧 빛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빛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태양과 같고 우리는 달과 같아서 일차적인 태양의 빛을 받아 우리는 반사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 : 14-15), 이 말씀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빛의 개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등경 위에 둔다'고 하는, 등경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보통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이 창문은 아주 높이 달려 있어 해만 지면 집 안은 깜깜하여 이 때에 불을 켜서 높은 곳에 두어 온 방 안을 비추게 됨을 지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가옥에는 등경(등잔을 걸어놓는 기구)이 부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 예수님은 좀 더 극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시기를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자가 어디 있느냐, 즉 등불을 덮어두는 사람은 없고 어디나 높은 곳에 두어 모든 것을 비추게 하듯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분이 높임을 받는 그런 위치에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기독교인임을 나타내고 신앙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서는 지금까지보다 좀더 적극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은 생명이요,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를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인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우리의 의로운 행동을 보고 세상이 우리를 빛으로 본다고 말씀했습니다.
조지 바나라고 하는 리서치 센터가 미국에 있습니다. 주로 기독교계를 대상으로 해서 여론 조사를 많이 하고 또 상당히 신빙도가 높은 기관입니다. 거기에서 내 놓은 데이터 중에 굉장히 가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에 있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 비해 40% 이상의 격차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직이라는 것을 예로 들면 이렇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 백 명을 모아 놓고 그 가운데서 정직한 사람이 20명이 나왔다고 합시다. 정직한 사람 불신자 중에 20명이 있어요.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백 명 모아 놓고 그 가운데서 정직한 사람이 몇 명 나와야 됩니까? 40%의 격차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면, 적어도 몇 명이 정직해야 합니까? 80명, 90명이 정직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이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사를 해 보니까 그 정도의 수치가 나오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과 '착한 행실'과 '아버지께 영광'이라는 이 세 단어를 연결하면, 빛이라는 것은 착한 행실을 말하고, 그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햇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에 달이 지구에 빛을 비추어 주므로,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비추는 것처럼, 바로 빛은 그리스도시고, 그리스도이신 빛이 우리에게 와서 나타나는 빛은 착한 행실이고, 그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빛의 삶을 살고 있는가? 빛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엡 5:7)."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9)."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 5:10.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0)고 말씀 하셨습니다.
착한 행실은 빛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착한 것인가? 사람들에게 온유한가? 겸손한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당시에 인민군 수중에 들어 가있고, 팔미도 등대의 불을 완전히 꺼버렸기 때문에 켜지지 않으면, 상륙 작전은 밤에 감행 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캐나다, 호주의 7만5천명의 연합군과 261척의 함정이 상륙하기에는 등대 하나가 결정을 해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7월에 Blue Hearts 작전을 세웠습니다. 미군이 적의 남하를 저지 하지 못해 취소되었지만, 맥아더 장군은 인천 상륙 작전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Chromite라는 이름 아래 한국인 세 명, 미국인 세 명을 특공대로 그 섬에 보내게 됩니다. KLO 켈로 부대라고 하는 이 특수 부대가 최규봉씨를 대장으로 해서 이 조그만 섬을 탈환, 등대를 장악 하게 됩니다.
9월10일에 등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9월15일 00:00시에 등대를 밝히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등대까지 올라가 적과 싸워 등대를 점령하고 보니, 등대에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불을 켜는 반사경의 전선이 나사가 풀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261척의 배와 7만5천의 군인이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 불이 켜져야만 항로를 찾아서 상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존하고 계신 당시의 부대장 최규봉 옹은 당시에 청년이었는데, 나사를 찾는데 3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3시간 만에 등대를 다시 고쳐서 불을 밝히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밖에 나가 철조망에 성조기를 게양했습니다. 팔미도를 애타게 바라보던 연합군 함대가 등대의 불빛을 본 것은 1시간 40분 늦은 2시20분 이었다고 합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맥아더 장군은 등대의 불빛과 성조기를 확인하자, 인천 앞바다로 진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7개국 연합군의 함대는 서슴없이 등대의 불빛을 받아가면서 위치를 확인하고,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하게 됩니다. 9월28일에 서울이 다시 수복이 되고, 한국이 살아 나게 된 것입니다. 이 등대의 빛이 없었다면 상륙 작전은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빛은 물질의 근본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빛을 기초로 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없으면 어떤 물질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순서를 보면 제일 먼저 빛이 있으라 하십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을 먼저 창조하시고 빛으로 인해 다른 것이 생겨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덴마크입니다. 미국에서는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그런데 그 두 장소를 보면 덴마크는 어찌나 사람 살기가 좋은지 지상천국이라고 불리고,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는 도시가 시애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좋기로 유명한 곳에서 자살률이 높은지 그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세계에서 일조량이 가장 적은 곳입니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6개월 이상 계속되므로 자연 발생적으로 사람들이 우울증이 많이 생겨 그렇게 자살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왜 세상의 빛이라 하셨는가? 세상에는 빛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밝힐 것은 빛을 비취면 어둠은 자연히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소리 없이 물러갑니다. 빛만 비취면 됩니다. 캄캄한 밤, 사막의 길을 갈지라도 자동차에 두 줄기 빛만 꺼지지 아니하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습니다. 캄캄한 동굴 속일지라도 손에든 전등불 하나만 잃어버리지 아니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링컨 대통령의 기도문 중에 제일 유명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All Mighty God heavenly Father give us little more light.”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링컨이 남북 전쟁을 하면서 어둠의 세력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칠흑같이 어두운 밤으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길이 어딘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끔가다 번갯불이 반짝반짝 하면 그 틈에 길을 보고 “아! 여기 있다!”라고 하면서 몇 발자국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의 기도문 가운데 “하나님이여! 조금만 더 빛을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갈 수 있겠나이다.”라는 것이 아주 유명해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는 길에 좀 더 밝은 주님의 빛이 주어지시기를 소원하며 나의 빛이 필요한 세상에 내가 있음으로 주님의 빛을 반사 작용시킴으로 나로 인한 밝은 세상 만들기, 나로 인해서 밝은 교회 만들기! 이게 바로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또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은 오늘도 자신이 빛이 되시고 그 빛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반사하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 네가 있음으로 교회가 밝아지고 사회가 밝아지고 가정이 밝아지고 인류가 밝아지는 작은 불빛이 되라. 나는 끊임없이 너에게 주겠다. 너는 반사해라.” 이 진리를 잘 깨닫고 우리가 처한 사역의 현장에서 빛을 비추는 지혜로운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어떠한 빛을 비출 것인가? 그리스도의 교회된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의 책임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 13: 12절에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에 갑옷을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예수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엡 5: 7에서는 “너희는 어두움에 속한자가 아니라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고 하였습니다.
빛의 자녀된 우리는 어떠한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세상을 치유하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어둠속에 진리를 비추는 소망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 어느 곳에 교통경찰이 있었는데 관광을 온 교인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러 가는데 경찰에게 묻기를 이근처에 어디에 교회가 있습니까? 물으니까 저 골목으로 돌아가면 교회가 나올 것입니다. 하고 소개를 하드랍니다. 조금가다 보니까 가까운 데에도 교회가 있는데 골목을 돌아 먼곳의 교회를 소개해주어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길에 교통경찰에게 다시 물었다는 것입니다. 왜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는데 굳이 먼곳에 교회를 소개했느냐고 물으니까 교통 경찰이 하는말이 나는 교회를 잘 모르지만 그 교회 교인들은 얼굴이 밝고 나에게 친절히 인사를 하는것을 보니 그곳 교회가 좋은 것 같이 보였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