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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주는 기쁨, 티모시 레인, 폴 트립

liefd 2024. 3. 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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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짧지만 중요한 이야기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만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관계를 사용하신다. 관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 안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신다. 그것은 오직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2. 불편해야 할 이유가 없다(22: 1-2)

 

C.S 루이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근간이 된다고 말한다. “이 땅의 그 어떤 사랑스러운 것보다 하나님을 다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이땅의 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는 하나님보다 그들을 더 살아하고,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섬겨왔다. 그러면 이 땅의 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그 나머지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가장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그 나머지 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관계를 보는 성경적 렌즈

1. 여러분은 관계를 위해 태어났다.

 

창세기 21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다. 단지 아담에게 배필이 필요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관계성 속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관계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2. 어렵지 않은 관계는 없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죄가 들어옴으로써 관계가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범죄를 시작함으로 서로 비난하는 죄를 저지르고, 4장에서는 형이 아우를 살해하는 죄를 짓는다.

 

3. 관계는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과 하와가 관계를 맺도록 하셨을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이다.

 

4. 관계에는 왕도가 없다.

 

우리는 아픔도 수고도 없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유용한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행동만 고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의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만이 모든 관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우리의 동기와 욕망을 매만지실 수 있는 것이다.

 

5. 관계가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갈등하는 관계 속에도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우리의 구원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관계에 변화를 일으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관계의 목적이 있다.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인간적인 연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오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게 되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친밀감이 회복된다.

 

6.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시각 또한 편협하다. 우리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한 일보다는 죄와 약점 그리고 실패를 주시한다.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된다.

 

7. 관계에 대해 성경은 확고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 버림받은 아들이 되시어 우리에게 진정한 회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본질적인 회복을 얻게 되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이를 근간으로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회복의 역사는 천국에서 완된다.

 

3.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분리와 몰입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 놓여 있다.

 

관계의 문제의 대부분은 아래의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해당한다.

 

1.절망적인 관계

 

한 사람은 분리지향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몰입지향적이다. 만일 이 두 사람이 휴가 계획을 세운다면 어떨까? 분리지향적인 사람은 가방에 책을 가득 넣을 테고, 몰입지향적인 사람은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분리지향적인 사람은 답답함을, 몰입지향적인 사람은 거절감을 느낀다.

 

2. 의존적 관계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가 몰입지향적이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에 휘둘리는 롤로코스트를 타게 된다. 서로에게 의존적이라 상대방이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켜주지 않으면 쉽사리 상처를 받는다.

 

3. 고립된 관계

 

두 사람 모두가 분리지향적일 경우 그들은 관계의 위험을 잘 알기에 항상 안전지대에만 있으려고 한다. 후가를 계획 할 때도 혼자 있는 시간에 비중을 둔다. 이러한 관계는 굉장히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안전성과 독립성을 추구하는 마음과 관계에 대한 간절함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공동체적 존재이기에 결속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며 공허감과 실망감에 휩싸인다.

 

이와 같이 관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마음과 기대치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관계를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닫기 원하실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나는 어떤 관계를 이뤄야 할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을 믿는다면 관계를 논할 때 수직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

미로슬로프 볼프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또한 하나님과 연합한 모든 이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삼위일체의 연합, 그 이상 완전한 것은 없다(17:20-26).

삼위일체, 인간 공동체를 위한 유일한 모델.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관계를 맺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자기중심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죄의 본질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 의식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친히 십자가를 담당하신 것이다.

 

4. (6:5-6)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시한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이 가장 궁극적인 가치이며 하나님은 그 다음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바로 죄이다(7:21-25).

관게란 본래 타자중심적인 것인데도 그와는 다르게 죄와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의도와 어긋난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다.

건강한 관계는 두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복종할 때 이뤄진다. 자기 자신이 욍이 되려는 생각으로는 결코 관계를 튼튼하게 세울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내게 악을 행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내와 오래 참음과 긍휼로 복수와 분노의 감정을 극복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바로 관게 속에서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물리치는 유일한 방법이다(6:8).

좋은 관계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의 잠재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결정된다.

 

5. 하나님의 계획(6:24)

 

에베소서 4장에 따르면 깊은 절망 속에서 관계로 말미암은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갈등은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임을 명심하라. 모든 갈등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고,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은혜의 통로가 된다.

 

6. 예배(3:9-12)

 

좋은 관계는 두 개의 주춧돌로 세워지는데, 그것은 바로 정체성과 예배이다. 나는 누구인가?(정체성)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삶에서 드러내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예배)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건강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했을 때 그릇된 반응을,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응을 보였다.

 

정체성을 망각하는 사건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사건, 아브라함과 사라가 인간의 방식대로 아이를 갖는 과정,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등이다.

물론 정체성을 잘 지켜 나간 인물들도 많다. 모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

우리가 실망하고 골치 아파하는 이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것을 다시 인간관계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예배는 정체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존경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배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선행조건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구세주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7. 대화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

우리의 말에는 역사하는 힘과 방향성이 있어 항상 그 결과물을 거두게 된다.

언어습관을 바꾸기 원한다면 우선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말로써 전하고 싶거든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오직 덕을 세우는데). 온전한 의사소통이란 이타적인 대화방식을 뜻한다.

 

문제를 고려하라(소용되는 대로). 우리는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고민이 무엇인지, 또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과정을 고려하라(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을 내용뿐 아니라 말을 전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관계란 사람의 행복을 위한 슅터가 아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현장임을 기억하라.

 

8. 장애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식이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 우리를 이끄신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역사하신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인가? 편안함, 즐거움, 인정, , 통제력, 용납? 이처럼 선한 동기가 이기적인 욕심으로 변질되면 갈등이 일어난다(4:1-3).

선하고 중요한 어떤 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나님은 관계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던 우리 자신을 발견케 하신다.

 

9. 용서(88:8-9)

 

진정한 용서를 실천하면 관계는 회복되고 성숙의 길을 향해 진일보한다.

용서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는 의지적인 행위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애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다.

 

빚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최소한 세 가지 약속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약속은 빚을 빌미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약속은 그가 저지른 잘못을 자꾸 상기시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여 원한을 풀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약속은 그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용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용서는 사건이며 과정이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해서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용서는 망각이 아니다. 예레미야 3134절에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이다.

 

수직적 용서와 수평적 용서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전자의 말씀에 따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용서를 베풀어야 할 것 같고, 후자의 말씀에 따르면 회개할 때에만 용서해줘야 할 것 같다. 두 말씀이 다 옳다. 용서의 두 가지 측면을 다루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 앞에서의 마음 자세를 뜻하고 있는데, 이 말씀의 맥락은 예배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누군가의 죄가 생각나거든 그 죄를 용서해야 한다.

 

후자는 수평적인 측면에서의 용서를 언급하고 있다.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인정할 때 용서할 수 있다.

용서를 실천할 때 겸손하고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괜찮아라고 대답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용서해 줄께라고 말해야 한다.

 

10. 희망(59:91-11)

관계의 어려움 속에는 우리의 성숙함과 행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어 있다. 인간관계는 단순히 서로 의지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서로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뜻에서 관계를 창조하셨다.

관계에서 실망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의 어려움 가운데 상대방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그리스도의 임재(46:1-3), 그리스도의 약속,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능력(2:20).

 

11. 부담감(42:3)

서로 헌신하라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12:10). 다른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하라는 뜻이다.

 

서로 존중하라 :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을 그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서로 용납하라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받으라(15:7).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면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린다.

 

서로 짐을 지라 :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괴로워할 대 그의 곁에서 문제를 해결하라.

 

서로 참으라 : 오래 참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누군가로 인해 자증이 나더라도 참으라는 말이다.

 

12. 자비( 3:15-17)

자비로운 관계는 주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이다(2:1-13). 자비란 무엇일까? 자비는 친절하게 공감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피로와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자비는 인내와 행위가 따르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비의 마음을 갖게 하는 세 가지 인격적인 자질이 있다.

긍휼 : 긍휼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여 돕고자하는 열정을 갖게 한다. 이는 자신의 어려움을 초월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보려는 마음이다.

 

용서 : 용서는 해를 끼친 사람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도 않는 것이다.

 

인내 : 인내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참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어려움을 당한 사람 곁에서 함께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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