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예화
요즘 사람들이 하는 조크가운데.. 매 맞고 사는 남편이야기가 있다. 매 맞은 남편들이 모였다.
40대 나는 아침밥해 달라고 하다가 맞았다.
50대 나는 언제 오냐고 묻다가 맞았다.
60대 나는 어디 가냐고 묻다가 맞았다.
70대 나는 얼씬 거린다고 맞았다.
80대..나는 왜 맞았는지..모르겠는데..아침에 눈 떴다고 맞았다 고 한다. 슬픈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독일에 마티 바덴(Marty Baden)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있다고 해서 극보수파에서 밀려나 젊은 시절에 고생 많이 한 정치가였습니다. 한 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의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밤새 도적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화가 잔뜩 나서 ‘어느 누가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 가게 하시다니’ 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때 친구 하나가 헌 신발을 빌려 주면서 그날이 마침 주일이라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마티는 마지못해 교회에 끌려갔습니다. 그때 교회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사람 가운데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정치가 마티 바덴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저기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고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발을 신을 수 없구나.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지만 그렇게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했으니….” 그로부터 마티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감사생활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할 것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에 크게 봉사하는 정치가로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은 다른 사람보다 나에게 세상 복을 많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가 아닙니다.
“질병 가운데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실직 가운데서 지금까지 사랑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죄 가운데서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거짓과 불의의 삶 가운데 있었는데도 나를 포기하지 않은 하나님께 감사하라.
화해와 용서없이 살아온 나인데도 나를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못나고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건강, 재능, 재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영원함이로다.“입니다
별로 배운 바가 없는 무식한 어떤 유대 어머니가 자식은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느냐 하면 늘 세 가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나는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그저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원망하는 사람하고는 놀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세 번째가 감사하는 사람과 친해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마디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3단계가 있습니다.
= 첫 번째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은혜를 받습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에 그 부모에게 생명을 받고,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 두 번째 단계는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구원과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가 조금 성숙해 지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도 마치 아이가 자라서 철이 들면 부모를 사랑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의가 있습니다.
= 세 번째 단계는 감사를 드리는 단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숙하게 되면 나에게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리는 성숙한 단계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각이 없으면 항상 불평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복을 받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고 보는 시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릅니다. 달라지면 내 마음에서 인색함이나 원망이나 불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감사함의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삶의 질이 나타나고 향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사하며 살아갈 때 기쁨이 주어지고 즐거움이 주어지고 행복한 삶이 만들어집니다. 그때 물질이 창고에 가득 없어도, 노루 같은 건강이 없어도 행복해집니다. 그때 너도 사랑하게 되고 누구를 만나도 반갑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일이 잘되고 일의 능률이 나타나고 일의 즐거움이 주어집니다. 그때 진정 일하는 즐거움이 주어지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 교수는 감사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밝혀보고 싶었습니다.
한 그룹에는 감사일지를 적게 했고 다른 그룹엔 그냥 지내게 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생활을 조사해 봤을 때 감사일지를 적은 그룹의 사람들이 더 정기적으로 운동을 했고 각종 신체 불편 증상들이 적었으며 학업이나 대인관계에서 개인적인 진보를 더 많이 나타냈습니다. 감사일지를 적었던 사람들이 또한 미래에 대해 더 낙관적이었고 삶에 대해 더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감사일지를 적었던 그룹이 혈압이 더 낮추어졌고 심전도에서 맥박이 더 규칙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의 위험이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감사하기 위해 잠시 삶의 속도를 줄이는 순간 몸의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뇌에서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평온과 기쁨을 담당하는 호르몬이 방출됩니다.
신체는 쿵푸 팬더가 도달했던 ‘내면의 평화(inner peace)’를 누릴 수 있어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게 됩니다. 둔탱이 쿵푸 팬더가 훈련으로 내면의 평화에 도달했던 것처럼 감사도 연습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정서로 분류됩니다. 촛불에 감사하면 등불을, 등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달빛에 감사하면 햇빛을, 햇빛에 감사하면 그 빛조차 필요치 않은 천국의 영광을 소유하게 된답니다.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는 주님께 늘 감사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시작하는 시편 136편은 마지막 절까지 한 구절 한 구절이 26가지의 감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비천한 우리를 기억해주심 감사, 우리를 대적에게서 건지심 감사,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니 감사, 모든 육체에게 일용할 양식 주심 감사, 달과 별들로 밤을 밝히심 감사, 그리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니 감사. 우리의 감사가 시인에 못 미친다고 지레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시편을 통틀어 감사시보다는 불평불만시가 두 배는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또 감사합니다. 애통함과 불만족으로 목소리를 높여도 안타까운 맘으로 귀 기울이시는 이가 우리 하나님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