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
구원이란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과 고난들은 죽음의 증상들로 대개 인간이 겪는 최대의 악이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악과 고난에 짓눌려 있는 인생을 ‘죽은 자’라고 합니다. 죽음과 그 증상들인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죽음과 그 증상들인 악과 고난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왜 죽음에 걸리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죽음'(롬 6:23)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죄의 대가로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꼭 죽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죄라면 남을 증오하고, 악을 도모하는 등, 생각으로 짓는 죄, 남에게 욕하여 상처를 주고, 거짓말을 하며 해를 끼치는 말로 죄를 짓는 죄, 남을 때리고 남의 것을 빼앗는 행동으로 짓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생명의 영위를 위해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는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의존은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를 버린 결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한 데 있습니다. 인간의 자기를 주장하려는 의지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해 독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죽음의 증상들‘이라고 규정한 모든 악과 고난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여 그의 무한한 자원들을 계속 공급받기를 거부하고, 그에 대항하여 자기 주장을 함으로써 저가의 제한된 자원에 가주어 버리는 죄의 열매요 대가(삯)입니다.
자기 주장을 하려는 의지로 자기 생명의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땅에서 분리된 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죽지 않고 살수 있도록 하신 선한 의지(사랑)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을 저버리고, 악고 고난만을 가져다 주는 사탄에게 순종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의 동기는 스스로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사탄은 자기 주장을 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항상 충동질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즉 자신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닐가 도리어 사탄에게 순종하는 시탄의 종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죄로 인한 타락이요 죽음의 시작입니다.
죄의 본질인 자기 주장을 하려는 의지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고 그분과 갈등을 일으키며, 동시에 동료 인간들로부터 소외시키고, 그들과도 갈등을 일으킵니다.
죄는 삼중적인 소외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와, 이웃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진정한 자아로부터의 소외입니다.
2.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모든 종교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주의나 인류 문명에 대한 낙관론 같은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1, 2차 세계 대전은 이러한 낙관론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문명이 발달에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내재된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고 우주 밖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힘이 와야 합니다.
복음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3.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십자가와 부활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십자가를 설명하고, 부활은 십자가와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음 안에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이 예수님이 곧 우리를 위한 구원자라고 선언하셨음으로, 유독 이 사건만이 절대적인 구원의 사건입니다.
4.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해석의 성경적 범주들
신약 성경은 크게 네 가지 중요한 그림 언어를 사용하여 십자가에 나타난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
구약의 속죄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구원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덮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를 죄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갈 3:13; 신 21:23).
화해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덮고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버린 결과로 일어난 것이 화해입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 것입니다.
구속
옛날에 어떤 노예를 해방시키고자 한다면 그의 주인에게 노예에 대한 값을 치르고 그 노예를 사서 해방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에 대한 몸값을 치른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된 우리를 예수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사셔서 우리를 죄와 사탄과 율법과 죽음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막 10:45).
이 구속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 언약
새언약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새 언약은 이 세상을 청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영원히 내것으로 누리면서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위의 네 가지 사건을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 사건이라고 합니다.
5.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 적용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인간의 종교적 업적으로서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룬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다는 곧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조건입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롬 3:21-26)
구원의 사건을 어떻게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의 본질은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습니다. 이것이 선포된 복음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진리라고 받아들이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롬 6:3-11)
믿음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시키는 역할을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믿음의 내용을 극으로 표시한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 연합되고 그의 부활에 연합된 사건을 극으로 나타낸 것이 세례입니다.
주관적 구원사건에 대한 성경의 은유들
의인됨
과거의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 의인됨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예수님 안에 우리가 내포되어서 그의 됨됨이에 우리가 내포되어서 그의 됨됨이에 우리가 참예하게 되고, 그가 하신 일이 우리가 한 일이 된다고 했습니다.
의인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관계, 하나님께 스스로를 여는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무한한 힘으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곧 의인입니다.
바울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인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자기 주장을 통하여 자기의 제한된 자원으로 자기를 수양해서 율법을 지켜 이룰 수 있습니까?
화해함
하나님과 인간은 적대하는 관계였는데 이제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팜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주관적인 평안함이 유래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됨
하나님의 아들 됨은 가족관계에서 오는 그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됨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니엘 7장 13절 이하와 이사야 42장 6절과 49장 8절과 53장의 예언을 성취하는 분으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적인 죽음으로 하고 새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이 가져다주시는 영생이란 근본적으로 신적인 삶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의 됨됨이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된 그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영생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이며 시간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원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삶에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 죽고 새로운 삶으로 부활했다는 구원의 실재를 말합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은 옛 존재와 같이 스스로를 하나님께 닫아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래의 뜻대로 하나님께 열린 존재로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 구원의 종말론적인 구조, 이미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부활은 사탄의 등뼈를 꺾은 사건입니다. 등뼈가 부러진 사탄은 언제 꼼짝 못하게 됩니까?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고전 15:25).
전쟁의 결판이 난 날(D-Day)과 전쟁이 끝나 승리가 완성된 날(V-day)까지 사이에는 얼마간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등뼈를 부러뜨리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승리의 날까지는 시간이 남습니다. 승리의 날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첫 열매는 받고 (아직)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는 자로서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자원으로 살아가는 삶의 실재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결국 순종이 없는 믿음, 윤리가 포함되지 않은 믿음, 이것이 곧 미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다른 말로 하면, 이 악한 세상에서 이 세상의 정신과 그 가치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를 주장하는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을 받아들인 새 사람이 이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구원의 현재입니다. 구원의 현재는 이미 과거에 구원을 받은 우리가 현재에 의인으로서 스스로 재확인하는, 즉 이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천명하고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에 죽은 자기 주장하는 엣사람이 실제로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이 성화의 과정 곧 십자가를 지고 옛사람이 죽어가며 새로운 사람이 날로 새롭게 되어가는 과정이 종결되어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참예하게 되고(롬 6:5) 예수님의 영광된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입니다. 구원의 미래입니다.
7. 예정과 지키심
예정교리는 성경대로 믿음의 현재라는 시점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진 현재에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정된 은헤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믿음 자체가 선물입니다.
예정 교리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가르쳐 주고 신뢰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