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 훈련 교재
|. 청지기 생활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청지기란 주인의 재산을 맡아 주인의 지시대로 그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제직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일을 맡은 청지기이다. "청지기"란 말이 신약에 열 번쯤 기록되었는데 '경리사' 또는 '관리인'이란 뜻이 있다.
청지기란 본시 미천한 직업으로 영국에서는 돼지우리 같은 곳을 지키는 직책을 스튜어드(Steward)라고 했고, 우리 나라에서는 높은 벼슬아치의 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 돌보는 사람을 청지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대가 변천함에 따라 청지기란 말에도 변화가 생겨 오늘에는 항공회사나 호텔이나 빌딩 같은 곳에서 재산과 사람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더욱 예수께서 청지기 교훈을 주신 이후로는 점점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마 10:8, 눅 12:42).
1. 성경에 나타난 청지기
성경에는 청지기에 관한 교훈이 많다. 아브라함의 집에도 이삭의 집에도 청지기가 있었고 (창 24:2, 26:32),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청지기로 봉사했다(창 29:15-18).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다가(창 39:4 공동번역)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창 41:41).
신약에는 헤롯의 집에 청지기가 있었고 (눅 8:3), 포도원 비유에 청지기가 삯을 주는 이야기가 있고(마 20:8), 문서까지 고칠 권리를 맡은 청지기 비유도 있다(눅 16:1-8). 청지기 중에는 선한 청지기도 있지만 악한 청지기도 있다. 본시 청지기는 재산과 사람을 맡은 자이지만 바울은 진리를 맡은 자를 청지기라고 생각하여 충성을 요구했다(고전 4:1, 딤전 1:12).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따라 관리할 의무와 주인에게 유리하도록 처리할 책임과 맡은 일이 잘 되도록 보호할 권리도 있다.
(1) 구약의 청지기
1) 청지기는 주인에게 신임을 받은 자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고 청지기 엘리에셀에게 모든 권한을 맡겨 먼 나라로 보낸 것을 보면 (창 24:2-4) 청지기는 주인에게 신임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신임을 받아 주인의 일을 맡은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을 위해 성실하게 일을 했다(창 24:56).
2) 청지기는 주인의 대리자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청지기가 되어 주인의 소유를 전부 맡아 주인을 대리하여 주관하였으니(창 39:4-5) 청지기는 주인의 대리자이다. 그 직무상에 엄연히 주인이 있으나 맡은 일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주인의 대리자이다.
3) 청지기는 교양이 높은 사람이다.
바벨론 나라에 느브갓네살 임금 때 환관이 있었다. 환관은 지금의 청지기와 같은 사람이다. 환관이 왕자와 귀인들을 맡아 교육하였으니(단 1:8-20), 청지기는 교양이 높고 지성이 풍부하여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청지기는 남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므로 교양이 높아야 한다.
(2) 신약의 청지기
1) 청지기는 재산 관리자이다.
예수의 비유 중에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장부를 마음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재산 관리자였다는 뜻이다(눅 16:1-8). 그러므로 청지기는 맡은 재산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잘 관리한 책임이 있다(마 25:14-30).
교회의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겨 주신 물질과 정신적 소유를 관리하는 자이다.
2) 청지기는 충성된 자이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라고 하면서 관리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충성이라 했다(고전 4:1-2).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겼다(딤전 1:12)고 했다. 그러므로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와 태만으로 문책을 당하게 된다(눅 16:1-8).
* 충성된 청지기의 네 가지 원칙
첫째, 작은 일에 잘했는가? (눅 19:17)
둘째, 남이 보지 않을 때도 열심히 일했는가? (마 6:6)
셋째, 삯을 생각지 않고 일했는가? (마 20:1-16)
넷째, 끝까지 일을 잘했는가? (계 2:10)
3) 청지기는 봉사자이다.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청지기는 맡은 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이다. 맡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는 청지기는 악하고 게으른 청지기이다. 하나님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일을 찾아 봉사하는 청지기는 자기도 복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준다. 샘물은 퍼서 쓸수록 솟아나고 기계는 사용할수록 유연해지듯 사람은 일을 할수록 능률이 높아진다.
2. 청지기직의 원리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으로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시다. 인간은 청지기로 맡은 자이며 관리자이며 보관자이다. 하나님은 최상의 주권자로서 인간을 신실한 청지기로 삼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해 일을 하여야 한다.
(1) 주인이신 하나님
인간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해야 한다. 주인 없는 청지기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섭리하신다.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 세계의 주인이시다.
1) 창조주 하나님
인간은 있는 재료를 가지고 어떤 것을 만드는 기술자는 될 수 있지만,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우주는 스스로 있는 것도 아니요 진화되어 천지 만물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므로 우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2) 소유주 하나님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며,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다(시 24:1). 만물이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 산천초목과 들짐승도 하나님의 것이요(시 50:10-12), 은도 내 것, 금도 내 것이라 (학 2:8) 하였으니 지하자원도 하나님의 것이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셈하라는 때가 있다(눅 16:2). 하나님은 자기 것을 도로 찾으시는 날이 있으니 그 날은 심판의 날이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3) 섭리자 하나님
섭리란 역사 세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아래 다스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비록 작은 일이라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이 관리하시며 운영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곳에 이르고(렘 23:23, 시107:23-24), 모든 사건과 행사에까지 이르고 있고 (시 75:7), 전쟁의 승리와 패전에 까지도 관계하시고 (삼상 11:3), 심지어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는 일도 하신다(마 6:30).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섭리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리며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2)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
인간은 시간과 재능과 물질적 소유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셨다는 확신 아래 모든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께 봉사해야 한다.
1) 청지기는 모든 것을 맡은 자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창 2:1.5).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을 맡기사 두 가지 일을 하게 하셨으니,
첫째는 관리하는 일이요, 둘째는 보호하는 일이다.
위탁받은 청지기는 주인이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위탁받은 것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회수해 갈 수도 있다. 필요에 의해 맡겼던 것이므로 필요에 따라 다시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지기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마 25:28) 고 하신다.
2) 청지기는 맡은 것의 보관자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인간은 그것을 관리하며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청지기는 맡은 것뿐이므로 결국 모든 것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그러므로 "내 것"이란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소홀히 할 수 없음은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3) 청지기는 맡은 것의 관리자이다.
청지기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관리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정과 욕심을 막을 수 있다.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는 주인의 목적과 방침에 따라 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맡은 것을 자기 것처럼 함부로 남용해도 안된다. 만일 주인에게 유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두었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라"(마 25:27)는 책망을 받게 된다
3. 청지기직의 정신
청지기가 개인 생활이나 교회 생활에서 그 직책을 잘 감당하려면 청지기 직에 대한 철저한 정신이 요구된다. 청지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정신과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1) 감사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전 15:9-10)
청지기직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고 온갖 좋은 것을 다 주셨으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전 4:17). "네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약 1:17), 우리의 자녀, 건강, 재산, 재능,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 봉사하여야 한다.
(2) 사랑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딤전 1:12-14)
한국 교회의 잘못된 사상은 맡은 자와 맡긴 자의 관계라는 생각이다. 맡은 자는 목사요 맡긴 자는 장로라는 생각이나, 목사는 주인이요 장로와 교회는 심부름꾼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교회의 직분은 모두 하나님과 교회의 봉사자일 뿐이다.
청지기는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으로 맡은 자이다. 주인과 청지기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교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마 22: 37-40).
(3) 충성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눅 12:36)
진실하고 충성된 청지기는 주인만을 위해 일한다. 맡겨 주신 주인을 위해 일한다는 정신이 없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될 수 없다. 주인이 엄연히 있기때문에 위탁받은 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따라 주인을 위해 일하여야 한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한다.
* 청지기의 기본 정신 일곱 가지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상의 주권자이다.
2) 하나님은 인간을 이 세상에서 그의 신실한 청지기로 두셨다.
3)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요 지배자요 소유자이시다.
4)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위탁받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5) 청지기는 언제나 자기 직책에 대해서 하나님께 셈할 수 있어야 한다.
6) 청지기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7) 청지기직의 큰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II. 교회의 관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엡 1:23). 신자들은 각각 그 지체이다(고전 12:27). 그러므로 교회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체이므로 교회의 제직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하여야 한다. 보다 능동적이며 효과있게 교회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직들이 교회의 사명과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1. 교회의 조직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조직 체제를 가진다. 교회의 조직과 운영체계나 관리 직책은 성경적 권위에 근거하지만 시대의 요구와 문명의 변천에 따라 그 직책과 운영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직은 옷과 같아서 몸에 맞는 옷이 보기도 좋고 활동에도 편한 것처럼 교회 조직도 그 교회 상황에 맞게 고쳐 가는 것이 교회 발전에 열쇠가 된다. 너무 필요 이상의 복잡한 조직은 교회 성장에 방해가 되기 쉽다.
(1) 조직의 기능
조직은 어떤 일을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
1) 조직이란?
조직은 공동 목적을 위하여 공동 작업을 수행하도록 기구화된 것이 조직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공동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
조직이 아무리 잘되었어도 일하는 제직의 기능이 부족하거나 열심과 충성이 부족하면 효과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누구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2) 조직의 원리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직에는 네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 최소한의 노력과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노력과 비용을 허비하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할 때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겠으냐?"(눅 14:28)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둘째, 주어진 목적을 가장 짧은 시간에 완수 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에 작전이 잘못되면 많은 군대를 가지고도 적은 군인에게 패전한다. 작전을 잘하면 단기간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눅 14:31).
셋째, 조직에는 지휘. 통제. 감독의 계통이 수립되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그의 몸이요 성도들은 지체들이다. 머리와 몸과 지체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섬기는 제직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휘와 교회의 처리 기관인 당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행 20:28).
넷째, 조직에는 인간관계가 바로 되어야 한다.
기계 조직에도 어느 한 부분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기계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하물며 교회는 인간들의 조직체이므로 인간의 융화가 잘 되어야 한다. 서로 돕고 아끼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어야 교회는 성장할 수 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전 12:15)고 말하면 그 몸이나 지체는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바울은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같이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같이 즐거워한다" (고전 12:26) 라고 교회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했다.
(2) 교회의 최초 조직
예수께서 12사도를 택하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교회 설립을 말씀하셨더니 사도행전 6장에서 교회를 최초로 조직하게 되었다.
1) 교회의 조직의 동기
사도행전 6장은 교회 조직의 원형으로 네 가지 조직의 동기를 찾을 수 있다.
(1) 교인이 증가하기 때문에.
" 제자들이 점점 많아졌다" (행 6:1) 는 것이 교회 조직의 동기이다. 점점 많아지는 교인을 관리하게 위해 조직이 필요했다. 교인 수가 적으면 조직 없이도 진행할 수 있지만 날마다 증가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조직 없이 관리하거나 훈련할 수가 없다.
(2)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자기네 과부들이 매일 구제하는 일에 소홀히 여김을 받는다고 불평을 말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로 습관과 생활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불평이 생긴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유식한 자와 무식한 자 사이에 이 지방 사람과 저 지방 사람을 사이를 마귀는 항상 엿보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조직이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교회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3) 직무를 분담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3-4) 하였으니 사무 분담을 위해 조직하였다.
집사들은 구제를 맡고 사도들은 기도와 전도를 맡아 교회를 봉사했다. 교회 조직은 치리가 목적이 아니라 많은 교인들의 화목과 구제 잘 하자는 것과 전도 잘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4) 단체 훈련이 부족하면 마귀가 틈을 타고 교회의 분열 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최초 교회 조직을 보면 사도들이 의견을 제안하고(행 6:4) 교인들이 그 의견을 듣고 7집사를 택하였으니(행 6:5) 결정권은 교인들에게 있었다.
사도의 말에 복종해서가 아니라 "온 무리가 사도의 말을 기뻐하여"(행 6:5) 집사를 택하였으니, 장로교회의 공동의회의 출발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발표하고 교인은 이에 기뻐 순종하는 것이 교회의 정치요 여기에 민주정신이 나타난다.
2) 교회의 조직의 실제
교회가 여러 세기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그 조직과 운영 방식이 변화되어 종교 개혁 이후 모든 교회의 조직과 운영에 유사성과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는 장로교회의 조직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
3) 교회의 회의
교회에는 공동의회와 제직회의 회의가 있어서 교회의 일을 의결한다.
(1) 공동의회: 공동의회는 교회 최고의 의결 기관으로 정기회와 임시회로 모인다. 공동의회는 그 교회의 무흠 세례교인을 회원으로 조직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한다.
첫째, 당회에서 제시한 사항.
둘째, 교회의 예산 및 결산.
셋째, 교회 직원의 선거.
넷째, 상회가 지시한 사항.
공동의회는 당회 결의로 당회장이 소집하되 일시, 장소, 안건을 한 주일 전에 교회에 알려야 한다. 명시된 사항이 아닌 것은 다수결로 결정한다. 공동의회 회장은 당회장이 되고, 서기는 당회 서기가 겸한다. 공동의회의 결의는 교회 전체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므로 교인은 책임있게 출석하고 결의는 신중히 하되 일단 결정된 사항은 순종해야 한다.
(2) 제직회 : 제직회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교역자들을 회원으로 조직한다. 회장은 당회장이 되고 서기 회계 등은 당회에서 임명하거나 본회에서 선택한다. 제직회는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예산의 집행과 수입, 지출, 예산. 구제비의 수입과 지출 및 특별 헌금의 취급과 그 밖의 교회 일을 의논한다.
제직회 소집은 회장이 한다. 제직 과반수가 소집을 요청할 때도 소집하지만 교회 마다 기간을 정해서 의논한다. 제직회는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각 부서를 두어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다.
4) 교회의 치리회 : 교회를 다스리는 당회, 노회, 총회를 치리회라고 한다. 교회의 입법, 사법, 행정의 세 기능을 치리회가 맡고 있는데 모든 치리회는 목사, 장로로 조직한다. 장로회 정치에 기본 치리회는 당회이다. 그러나 교회를 설립하거나 당회를 조직하는 권한은 노회에 있으므로 장로회 정치의 중심은 노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 교회를 지교회라고 부른다. 총회는 교회의 최고 치리회이다.
(1) 당회
당회 조직은 지교회 목사와 장로로 조직하는데, 세례교인 25인 이상을 요한다. 당회에 장로 2인이 있으면 목사 1인과 장로 1인으로 성수가 되고, 장로 3인이 있으면 목사 1인과 장로 과반수의 출석으로 성수가 된다. 당회장은 지교회 시무목사가 된다.
당회의 직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회의 직무는 영적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니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사랑으로 보살핀다.
둘째, 입교한 부모를 권하여 그들의 어린 자녀로 유아세례를 받게 하며, 교인들의 입회와 퇴회, 학습과 입교할 자를 문답하여 명부에 올리는 일,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제명도 한다.
셋째, 예배와 성례 거행에 봉사한다. 목사가 없을 때에는 노회에서 다른 목사를 청하여 설교하게 하며 성례를 집례케 한다.
넷째, 장로, 집사 ,권사를 임직하는 일을 한다. 지교회에서 선출된 장로나 집사, 권사를 6개월 이상 교육하여 장로는 노회의 승인과 노회의 시험을 통과한 후에 임직하고 집사와 권사는 당회가 시험한 후에 임직한다.
다섯째, 권징하는 일에 봉사한다. 범과자에 대하여 먼저 교인들로 말미암아 마 18:15-16의 말씀대로 실행한 후 당회는 그 범죄자와 증인을 불러 사랑으로 심사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본교회 회원이 아닌 자라도 증인이 될 수 있다. 범죄한 증거가 명백할 때는 죄의 정도에 따라 권계, 견책, 수찬 정지, 제명, 출교를 하며. 회개하는 자를 해벌한다.
여섯째, 영적 유익을 도모하고 교회의 각 기관을 사랑으로 감독하며, 교회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교인를 심방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과 주일학교를 주관하며, 전도회와 면려회와 각 기관을 사랑으로 감독하고, 구역 권찰회를 통하여 교회의 영적 부흥을 장려한다.
일곱째, 노회에 총대를 파송하며 청원과 보고서를 보내고, 노회에 피송할 총대는 될 수 있는 대로 윤번으로 선정히며 노회를 상대한 청원과 보고는 질서대로 되기 위하여 서식으로 한다.
당회의 권한은 예배모범에 의거하여 예배의식 관할에 봉사하고, 모든 회집 시간과 처소를 작정하며, 교회의 토지와 가옥을 관리한다.
(2) 노회
노회는 일정 구역 안에 있는 시무 목사 5인 이상과 각 당회에서 총대로 세례교인 2백명 미만이면 1인, 2백명 이상 5백명 미만이면 2인, 5백명 이상이면 3인씩 파송하는 장로로 조직된다. 노회는 소속 목사와 각 당회에서 파송한 장로로 조직한다.
노회는 구역 안에 있는 각 교회와 소속 기관 및 단체를 관리하고 목사에 관한 사항과 교회에서 장로 선택과 임직 및 전도사와 장로의 자격을 고시한다.
노회는 개최 한달 전에 소집 통지를 하고 모이되 시무 목사 과반수와 총대 장로 과반수가 출석하여야 개최할 수 있다.
노회는 예정된 장소와 일시에 본 노회에 속한 회원중 다른 지교회 목사 3인, 장로가 3인 이상이 회집하면 개회한다.
(3) 총회
총회는 각 노회에서 동수로 파송한 총대 목사와 총대 장로로 조직한다. 파송 비율은 두 당회장 목사, 장로 각 1인씩으로 하되, 한 당회에서 목사, 장로 각 1인 이상 총대가 될 수 없다. 각 노회는 총회 2개월 전에 총대 명단을 총회 서기에게 송달해야 한다.
총회가 예정한 일시와 장소에 교단 산하 노회들의 과반수와 총대 목사. 장로 과반수가 출석하면 개회할 성수가 되어 일반 회무를 처리한다.
총회의 직무는 소속 각 치리회와 교회의 소속 기관 및 단체를 총괄한다. 교회 헌법을 해석할 전권이 있고, 목사 자격 고시와 선교 사업, 교육 사업, 사회 사 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계획 실천한다.
총회는 1년에 한 번씩 모이되 총회장은 총회 두달 전에 소집 공고를 하여야 한다.
총회는 모든 교회들 또는 노회의 단합을 위하여 필요한 일에 봉사하며, 논쟁을 가뎌올 치리 문제들은 노회 자원에서 해결하도록 한다. 총회는 성경에 의하여 교회헌법(신조, 요리문답,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을 해석하며, 교리와 권징에 관한 논쟁점을 해석하는 데 봉사한다.
총회는 노회에서 합법적으로 문의한 교리문제를 해명한다. 총회는 노회를 설립, 불립, 합병하며, 노회의 구역을 정하는 일에 봉사하되 해당 노회와 협의해야 한다. 총회는 강도사의 자격을 고시하고, 규칙에 의하여 다른 교단 교회들과 연락하며, 그 교회들과 더불어 성결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힘쓴다.
4) 교회의 각 기관
교회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 기관을 둔다. 교인들의 교육을 위하여 교회학교를 두되 어린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 장년을 따로 구분해서 교회학교를 운영 관리한다.
전도하는 단체로 남전도회, 여전도회가 있다. 교회의 예배를 위해 찬양대도 있고, 그밖에 성도의 교제를 위해 각각 단체를 조직한다.
제직은 어느 기관에든지 가입해서 성도의 교제와 신앙의 훈련과 봉사를 해야 한다.교회의 모든 기관은 당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각 기관의 재정 출납은 1년에 한 번 이상 당회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2. 교회의 목적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와 성도의 교제와 이웃을 위한 봉사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다. 교회에는 먼저 신자들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교제를 가지는 예배가 있고 신자들 사이에 은혜의 떡을 나누며 함께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성도의 교제가 있고, 신자가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이웃에서의 봉사가 있다.
(1) 하나님께 예배
1) 예배의 본질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 혹 만남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가지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예배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셔서 그의 백성인 교인과 교제하시고, 만나시는 것이며, 예배는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영어로 서비스(service)라고 부른다.
2) 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손으로 만든 우상이나 나무나 돌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예배의 대상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다.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시며, 우주와 인류의 문명을 섭리하시며 지도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예배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 즉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3) 예배의 목적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에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교회의 건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고전 14:26).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자들이 정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모여 그의 영광과 그에 대한 복종을 드리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인간 중심적 생활을 하나님 중심적 생활로 고치는 행위이며, 세상에 끌려 해이해진 심령을 깨끗이 닦는 동시에 신령한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시간이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설교가 있고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헌금과 찬송이 있다.
(2) 성도의 교제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단체이다.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 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인하여 사죄함을 받고 성별되어 주의 자녀된 신자들이 교제하는 것이 교회이다.
1)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성도의 교제는 예수의 사랑과 진실이 기초가 되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교제가 성립되므로 사랑의 교제요 서로 도와주려는 신앙의 교제이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찬미를 부르며 복음 진리에 아멘으로 화답하므로 성도의 교제가 성립된다. 이것이 없으면 줄기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말라 버리게 된다.
2) 성도의 교제는 교회 중심이어야 한다.
신자가 교회의 공동 예배에 참석하며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교제의 중심이다. 교회에는 여러 기관들이 있다. 이러한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므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신앙이 성장하게 된다.
성도의 교제는 같은 교회의 신자만 아니라 여행 중에 만나는 세계의 모든 신자들과도 한 몸의 지체로서 교제하여야 한다. 성도의 교제가 끼리끼리 모이는 그룹이 되어 배타적이 되면 교회 생활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 중심의 교제는 질서와 순결을 보존하기 위해 사랑과 이해로 연결되어야 한다.
(3) 이웃을 위한 봉사
교회는 이웃을 위해 봉사할 책임이 있다.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하였으니,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는 그들이 처한 사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므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행 4:34)고 하였다.
교회는 사회의 빈곤과 세계의 평화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가지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민 공동체인 사회와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 삼아 섬기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위한 단체이므로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땅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3. 교회의 관리
교회의 최초 조직은 단순하였으나 여러 세계를 거치는 동안 교회의 구조는 다양해졌다. 교회는 그 조직 구조의 관리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의 구조는 민주적인 구조이지만 행정 기능의 약체로 비능률적이기 쉽다.
늘어나는 소그룹 관리, 새신자의 육성, 교회학교의 관리, 청지기 훈련과 관리, 재정 출납의 조정 및 교회 재산의 관리 등을 위해 의무와 권리가 공평하게 분배되며 새로운 업무를 지도해야 한다.
(1) 조직 관리
교회의 조직은 조정과 통제의 기능이 잘 조화된 조직으로 이것을 그리스도의 몸(엡 1:23) 이라고 했다. 교회의 조직은 여러 종류의 사람으로 구성되어 몸의 지체와 같이 여러 가지 직임을 맡고 있다. 몸은 하나이나 여러 지체가 있듯 교회에는 사도, 선지자, 교사, 병 고치는 은사, 다스리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고전 12:8).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 지체가 서로 존경하며 돕고 머리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제직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서로 협력하고 의지하며 존경하며 각각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관리가 잘 되어야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다.
(2) 인사 관리
교회는 많은 인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적 자원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모든 교인들은 교회 봉사를 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기 재능을 주셨으며 또 그 재능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는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인들의 재능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일을 맡겨 교회 안에서의 의무와 권리의 분배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교인들의 관심과 요구를 분별하지 못하고는 효과적인 인사 운영이나 합리적인 인사 행정을 하기가 어렵다. 인사 관리를 계획 추진할 때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내력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사람의 능력이나 개성을 하루아침에 형성될 수 없는 것같이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고치어도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효과적인 인사 체제를 세워야 한다. 인사 관리는 교회 사업과 활동을 수행할 사람들을 지도, 통합을 잘하여야 한다.
(3) 재정 관리
교회는 영적 집단인 동시에 사회적인 집단이므로 경제 문제에 끊임없이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 활동도 재정의 뒷받침이 없이는 그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 교회의 임무와 기능을 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이 재정을 효과적으로 취급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정 관리가 잘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재정 관리는 예산안 작성과 그 예산안에 대한 조정 및 통계 기능 결산과 회계 감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산이란 일정 기간 동안 교회의 수입 및 지출의 예정액 또는 계획안으로 교회의 임무와 기능 수행에 필요한 활동 범위를 반영시킨 표시로 교회 재정 관리의 지침이다. 예산안은 교회 안의 각 부서나 기관이 사업 계획서와 함께 필요한 예산안을 제출하여 심의 조정한 후에 예산안 초안이 작성된다. 제직회에서 통과된 예산안은 공동의회에서 심의하여 확정된다.
예산 집행은 적자를 방지하고 잉여금을 내면 성공적인 예산 집행이라 생각하지만 교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예산인이 집행되어야 한다. 예산과 결산의 관리가 잘 되어야 교회는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III. 제직의 자세
믿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제직이 되었다는 것보다는 어떤 제직이 되었나가 더 중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제자리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제 자리를 알고 제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인은 교인의 자리가 있고 제직은 제직의 자리가 있다.
교인은 예배 참석과 헌금과 치리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감당하는 교인들 중에서 선택받은 사람이 제직이다. 그러면 제직이 지켜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저마다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자기의 자리를 지킬때 교회는 질서가 잡히고 바르게 성장하게 된다.
1. 제직의 신앙적 자세
(1) 주의 날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사 58:13-14)
초대 교회는 안식 후 첫날은 주의 날(계 1 :10)이라고 부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다(행 20:7).
1) 주의 날은 어떤 날인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으니 주의 날은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주일 아침 부활하셨으니 주의 날은 부활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요, 주의 날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로 주신 날이므로 안식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다. 주의 부활은 천지 창조보다 중대한 의의를 가졌기 때문에 일요일은 "주의 날" "주일" 또는 "성일"이라고 부르면서 기쁨과 감사와 축복으로 지키게 되었다.
(1) 주의 날은 예배의 날이다.
주의 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현재 계시다는 확신 기쁨을 나타내는 날이다. 주의 날은 휴식만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성별된 날이다. 주의 날을 존중히 여기지 않거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제직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주의 날은 예배의 날이다.
(2) 주의 날은 선행의 날이다.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막 2:17),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막 12:12)하셨으니 주의 날은 선행의 날이 되어야 한다.
제직들은 주의 날에 슬픔에 잠겨 있는 자, 병으로 신음하는 자, 실패한 자, 옥에 갇혀 있는 자를 방문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 주의 날에 선행도 다른 날의 선행과 같다고 생각할는지는 모르나 세속적 목적으로 하는 선행보다. 주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는 선행은 가장 효과 있고 보람 있는 일이 된다.
2) 주의 날을 어떻게 지킬까?
주의 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이웃을 위해 선행을 하는 날이므로 개인적인 모든 일을 스스로 쉬고 육신 사업을 정돈하고 예배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1) 주의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주의 날에는 세상 일에서 떠나 쉬며 일체의 오락에서 떠나야 한다(사 58: 13-14) 팔고 사는 일이나 거래하는 일체의 일을 그만두고 (느 13:15-22), 모든 시간을 예배드리는 일에만 사용하여야 한다(렘 10:25, 신6:6-7, 욥 1:5, 삼하 6:18- 20, 벧전 3:7,행 10:22).
(2) 주의 날을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한다.
주의 날은 거룩한 날이므로 귀중한 날이요 또 영혼이 소생함을 얻는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주의 날은 하나님이 천지 창
조하시고 쉬신 날이므로 존귀한 날이다. 주의 날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시고 쉬신 날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므로 중한 날이다. 예배 없이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깨닫고 주의 날을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한다.
(3) 주의 날을 기쁜 날로 지켜야 한다.
주의 날은 죄악의 고통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고 하늘의 위로 받으며 기쁘게 지키는 날이다. 과거의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 기뻐하는 날이 주의 날이므로 이날은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겁게 찬송하여야 한다.
(2) 예배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 (요 4:24)
교회의 유일한 기능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다. 예배란 하나님께 무릎끓고 경배드리는 일이다. 시인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여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5) 고 노래하였다.
1) 예배의 대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의 하나님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우리의 예배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 즉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요 4:24).
2) 예배의 목적
개혁교회에서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는가? 교인들이 예배를 통해 믿음, 사랑, 소망, 용서, 겸손 등이 함양되어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덕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제직은 예배를 존중히 여겨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3) 예배의 준비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마음과 육체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몸을 깨끗한 옷을 입고 단정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 예배자는 적어도 예배 시간 10분 전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초대를 기다려야 한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이기 때문에 지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배는 죄인이 자기 죄를 깨닫고 엎드려 자복하는 마음과 복종하는 진실한 행동이 따라야 한다.
예배의 좌석은 앞자리부터 차례로 앉아야 하며, 안내를 맡으면 예배 30분 전에 나와야 예배 분위기를 경건하게 하기 위하여 문을 단속하고, 어린이들을 살피며, 잡음이 나지않게 하여야 한다. 안내 위원은 그 주일 주간의 모든 예배와 집회의 안내를 겸손한 마음과 친절한 행동으로 하여야 한다. 헌금 봉사를 맡은 제직은 복장과 화장은 단정하고 덕스럽게 하되 기도하는 마음과 경건한 모습으로 돌리고, 예배후 헌금함을 회계에게 인계하여야 한다. 헌금 위원은 그 주간의 모든 헌금에 책임을 진다.
예배자는 교회에 출석함으로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를 때 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힘차게 부르고, 기도할 때 기도를 같이하며, 설교할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배의 모든 순서에 정성을 다해 참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3)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 (계22:18-19)
1) 성경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신앙과 행위의 기준이 되는 복음의 진리이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라고 하신 말씀은 육신이 육의 양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신령한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인간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의로 교육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제직은 성경의 애독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애독할 이유는
첫째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한다(요 20:31).
둘째, 성경을 통해서만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다(시 119:111).
셋째, 성경은 신자에게 빛을 주며 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시 119:105).
성경을 애독하는 정신은
첫째, 언제나 거룩한 마음과 기대하는 정성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둘째, 기쁘게 가르침을 받을 마음과 복종할 정신으로 읽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고자 힘쓰며 읽어야 한다.
성경 애독의 방법은
첫째, 성경은 매일 읽어야 한다.
둘째, 성경은 기도하며 읽고 읽으면서도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깨닫게 된다.
셋째,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 구절을 풀려고 하거나 단지 지식으로만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쉽다.
넷째, 성경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복종하며 내 전부를 맡겨 버리는 태도로 읽어야 한다.
다섯째, 성경은 내 자신의 믿음과 덕을 높이는 한편 남의 믿음과 덕도 높이기 위하여 내 경험을 살려 말씀을 전파하여야 한다.
2) 설교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
설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설교를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설교도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생각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하여 중점을 두고 잇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해 말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라"(살전 2:13) 고 했다.
설교가 설교답다는 것은 말하는 기술이나 설교자의 종교적 사상도 아니고 설교자의 설득력도 아니다. 참된 설교가 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여질 때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의 교훈이므로 믿으려는 겸손한 마음과 그대로 행하려는 태도로 들어야 한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우리가 어찌 할꼬" 하는 제직들이 봉사하는 교회는 부흥한다.
설교를 듣는 자세는
첫째, 내 자신이 복음의 말씀 앞에서 죄인임을 자인하여야 한다.
둘째, 상한 내 심령을 고치려는 겸허하고도 간절한 심정이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사명과 과제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설교를 듣는 태도는
첫째, 성경 본문을 찾아 살피면서 들어야 한다.
둘째, 설교자를 바라보면서 다른 곳을 보지 않아야 한다.
셋째, 설교의 메시지를 자기 생활에 반영시켜 자기의 것으로 받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설교를 들은 후에는
첫째, 의문이나거나 이해되지 않은 점은 조용한 시간에 설교자를 직접 찾아 지도를 받아야 한다.
둘째, 설교를 통한 느낌과 소감을 간증하며 설교자와 인격적인 교재를 가지면서 교회 생활에 힘을 써야 한다.
2. 제직의 정신적 자세
(1) 주인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 5:2)
교회의 신령상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교회의 조직 주인은 세례교인들이다. 세례교인이 공동의회의 회원이 되어 교회의 일을 의결하고 처리한다. 교회의 행정상 주인은 목사이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나 국민들이 투표하여 세운 대통령이 그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이 목사는 세례교인이 모인 공동의회에서 투표를 받아 그 교회의 목사가 되어 그 교회의 행정을 맡아 일한다.
제직들은 세례교인 중에서 선택받아 교회를 봉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주인의 정신으로 일하여야 한다.
주인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1) 책임질 줄 아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일의 책임을 맡은 자이다. 주인은 일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감당할 책임이 있다. 일이 잘 되어도 주인의 책임이요 일이 잘 안되어도 주인의 책임이다. 교회의 주인된 제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되 맡은 자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벧전 5:23).
2) 일을 위해 일하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삯을 위해 일하는 자기 아니라 일을 위해 일하는 자이다. 주인과 종의 차이가 무엇인가? 종은 삯을 위해 일하지만 주인은 일을 위해 일한다. 종은 억지로 할 수 없어 일하지만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
제직은 칭찬이나 대접을 기대하고 일하는 자가 아니라 맡은 일이 잘되기 위해 일하는 자이다. 제직의 제일의 관심은 보수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러나 제직들도 “베드로처럼" 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마 19:27)의 질문을 하게 된다. 교회를 섬기는 즐거움, 이웃을 봉사하는 즐거움은 일하는 제직들이 받는 보수이다.
모세는 미디안 들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40년간을 하루같이 양떼를 치되 삯도 없이 충성을 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충성했으므로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히 3:5). 제직은 삯을 위해 일하는 청지기가 아니라 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이다.
(2) 봉사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 4:10)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하였으니 제직은 봉사의 정신으로 일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다. 어떤 제직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제직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어떤 정신으로 사용하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1) 봉사는 보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을 받을 때만 충성하거나 보상이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다. 이러한 사람은 일이 축복이거나 기쁨이 되기보다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 된다. 사람이 보상만을 위해 일하게 되면 품꾼에 불과하다. 일이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므로 축복이 고역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보상에 얽매이지 말고 봉사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2) 봉사는 의무에 매여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의무에만 매여 일하는 사람도 일의 기쁨이나 보람을 맛보기란 어렵다. 의무나 책임이 나쁠 것은 없으나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순전히 의무감 때문에 한다면 일이 딱딱해지고 분위기가 굳어진다. 그러나 맡은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제직으로서 봉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봉사 정신으로 일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된다.
3) 봉사는 주께 하듯 하는 생활이다 (엡 6:7).
하나님은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맡은 일을 할 때 주께 하듯 하는 것이 봉사이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일이니 영광으로 알고 일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니 정성을 다해 일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고 도리어 즐거운 봉사가 된다.
제직이 봉사 정신으로 일하려면
첫째, 협동 정신이 있어야 한다.
교인 사이에서나 제직 사이에 서로 양보하고 양해하는 협동정신이 없이는 교회에서 봉사할 수가 없다. 나와 조금 다르지만 서로 양보하고 협조할 줄 알아야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같이 봉사할 수 있다. 교회나 세계를 위한 봉사에는 꼭 같은 원리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로, 오래 참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좋은 일을 해도 난관이 반드시 있다. 이러한 난관이 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극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봉사 생활이 좌우된다. 백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 정신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자가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나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1) 하였으니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디어 성공하기까지 더욱 힘써야 한다.
(3) 모범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딤전 4:12)
일꾼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범이 되려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범이 되는 일꾼이란 구경꾼처럼 방관자도 아니요, 말꾼처럼 말만 하는 자도 아니요, 싸움꾼처럼 불평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된 일꾼이다.
교회 일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일의 방법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사람들은 독주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급하다고 하나님보다 앞서도 안되고 피곤하다고 하나님보다 뒤져도 안된다. 일 마다, 걸음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2) 그 직책이 훼방하지 않도록 힘쓰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하기도 쉽고 남에게 오해를 받게도 된다. 그러나 제직은 그 직책이 훼방 당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나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이 없이 힘써야 한다. 바울이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았다"(고후 6:3) 고 했다.
섣불리 잘한답시고 마구 돌아다니며 할 것, 못할 것 함부로 손댈 것도 아니요, 잘한다고 하는 일이 도리어 하나님의 일꾼은 되기도 어렵고 된다고 하더라도 일하기가 어렵고, 일한다고 하더라도 모범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지 말고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3. 제직의 헌신적 자세
(1) 희생을 각오하는 마음의 자세 (롬 1 2:1-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하였으니 제직은 예수의 희생정신을 본받아 소금처럼 녹아져 다른 이를 유익하게 하여야 한다. 제직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희생과 사랑의 정신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직책이다(요 11:1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는 정신으로 예수를 위해 아낌없는 헌신자가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믿음이요 희생이다. 수고는 내가 먼저 하고 영광은 주께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희생도 감수하지 않고서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1) 최선을 다하는 자세 (행 23:1)
바울은 공회에서 신문을 받을 때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 고 고백하였으니,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전도자이다.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일하는 일꾼이 참된 일꾼이요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다.
예수님의 두 아들 비유가 있다(마 21:28-31). 잘 믿노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 맏아들이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맏아들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묶어 남의 어깨에 메우고 자기들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 23:4-5)이기 때문에 희생 없는 외식주의를 신랄히 비판하여 "화가 있으라"고 일곱 차례나 지적하였 (마23:13-15).
그러므로 희생 없는 헌신은 외식이요, 외식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교회의 제직은 존귀 영광 모든 권세를 홀로 주께 돌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만 붙잡는 희생정신으로 오로지 교회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2)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자세 (마 6:33)
무슨 일이나 먼저 할 일과 다음에 할 일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마 6:33).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생활을 하려면 믿는 마음 즉 확신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하였으니 교회의 일꾼은 먼저 하나님을 앞세워야 한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길을 걸어도 일을 해도 항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살았다.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다. 어떻게 보면 자아도 주체성도 목적도 꿈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이다. 제직은 항상 나보다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여야 진정 바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 가정에서의 헌신적 자세 (눅 19:9)
가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다. 가정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모여 나를 이루는 것이며, 크리스챤의 가정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가 곧 천국이 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크리스챤의 가정들은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하고 특별히 제직들은 가정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개인 신앙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개인 구원만 아니라 가정의 구원을 중요시하여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눅 19:9)고 했다.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 한 개인인 동시에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자기 가족 전부가 그리스도를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힘쓸 책임이 있다.
1) 신앙을 중심한 가정 생활
크리스챤의 가정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부부 관계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 원리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가정이란 육신의 요람이요, 정신의 안식처이다. 가정의 불화로 만사를 망쳐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따뜻해야 하고 애정과 행복이 넘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예배는 중요하다. 서양 주택은 파이여 플레이스(Fire Place)가 중심이요, 일본 가정은 도꾜노 마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크리스챤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챤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가정마다 예배드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감사하는 생활도 배우고 서로 양보하며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담력도 얻게 된다. 가정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2) 모범적인 가정생활
교회의 일군인 제직이 교회에서는 칭찬받으면서도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교회에서 훌륭한 제직이 가정에서도 훌륭한 제직이 되려면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
참된 행복은 희망과 쾌락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맡은 바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는 데 있다. 땀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수록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힘드는 일을 나의 의무로 알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제직 된 사람이 가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솔선수범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이 은연중에 높아질 것이며 사랑과 기쁨이 가득 찬 가정이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자의 아내 된 제직들은 베드로의 교훈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 3: 1-6) 하셨다. 그러므로 제직인 아내의 행위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교회 직분을 맡기 전보다 더 겸손하고 더 순복하고 더 착하고 깨끗하며 진실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3) 교회에서의 헌신적 자세 (행 2:43-47)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집단이다. 교회는 신자가 하나님과 신비적 교제를 가지고 신자들 간에도 사랑의 친교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며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곳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엡 1:23)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신자들이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적 산 조직체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선택받은 직원들은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책임이 있다.
1) 힘써 모이는 생활
교회의 특징은 힘써 모이는 데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고 했다. 제직이 교회를 위한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하는 데 우선 집회 때마다 열심히 참석함으로써 작은 등불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예배 시간보다 일찍 출석하여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집회만이 아니라 부흥회나 수련회 같은 특수 집회는 물론 제직회에도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훌륭한 헌신의 생활이다.
기독교는 본질상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기를 강조한다. 신자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부터 모이기를 열심하였고(마 18:20,행 2:46-47)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마 18:20). 그러므로 교회의 모임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요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따라서 모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전 14:12-40). 그러므로 모임에서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직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힘써야 한다.
2) 선교를 위한 생활
주 예수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교회는 예배와 교육을 통해 내적으로 제직들이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뜨거운 선교적 사명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선교적 사명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기 때문에 선교를 위한 생활은 크리스챤 공동체의 꼭 지켜야 할 일이다.
교회는 모이는 기능만 아니라 흩어져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교회가 병들고 허약한 자와 위로와 도움을 바라는 대중을 위해 그들의 상처를 고쳐주는 봉사적 기능을 다하여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주도적으로 할 때에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지원 선교사가 된 제직들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복음의 빛을 비추어 줄 때 교회에 무관심한 주민들이라도 자기들의 삶의 요구를 교회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지역 사회의 핵(center)이 되어 개인의 문제나 지역의 문제가 교회에서는 논의되고 교회에서 해결될 때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감당할 때 선교는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제직들은 선교의 책임을 위해 뜨거운 가슴과 불타는 심정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 이해관계나 경제 제일주의의 풍토를 벗어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4. 제직의 헌금을 드리는 자세
헌금은 감사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전체 생활을 드리는 감사의 표로서 예배를 통하여 바치는 제물이다.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신앙 고백의 실제적인 행위이다.
헌금은 주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다.
헌금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나타내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아까와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다(고후 9:7).
헌금은 헌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의무를 다하기 위한 실천행위의 하나이다. 헌금만이 헌신의 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금은 헌신을 나타내는데 매우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헌금은 보답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 일부로서 드리는 예배 행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참여하는 정신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제직은 각종 소득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정신으로 헌금해야 한다.
(1) 헌금의 원리(잠 3:9)
1) 헌금의 성격적 원리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그 보답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렸고 (창 14:20),
야곱은 벧엘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하였다(창 28:22).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서 봉헌자와 레위인이 함게 먹으며 즐거워하였으니(신 14:22-29) 친교를 위한 봉헌이었다. 매 3 년마다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 26:12) 하였으니 헌금은 구제 사업과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주어서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았으니(민 18: 21,6-28) 헌금은 성직자의 보수로 사용되었고, 성전관리와 종교 행사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헌물되었다(느 10:32-39).
예언자 시대에도 헌금과 헌물을 하였고 (암 4:4, 말 3:8-10). 예수님 시대에도 헌금 하였고 (막 12:17, 눅 21:1-4, 눅 12:21) 초대 교회에서도 구제와 봉사를 위해 헌금했다(고후 8:1-5,9:1-15, 행 24:17,롬 15:26-27).
2) 헌금에 대한 바울의 교훈
(1)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하였으니 헌금은 자발적으로 전 수입과 헌금 액수와의 비율을 정하여 드려야 한다. 헌금은 잘 관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고후 9:7, 11, 13). 헌금은 자신의 소득의 일부를 바쳐서 헌신을 구체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바쳐진 헌금의 액수보다 돈궤에 남겨진 금액을 보고 계신다"는 말이 있다.
두 렙돈을 바침으로 생활비가 제로가 된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누구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자기들의 넉넉한 데서 돈을 넣었으나 이 여인은 구차한 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눅 21:1-4)고 하셨다.
(2) 헌금은 규칙적으로 계획적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고전 16:2, 고후 8:6, 9:5).
헌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다"(고후 9:7) 다른 선한 일과 같이 헌금도 각자가 자기의 기준에서 규율 있게 해야 한다. 헌금은 예산과 계획에 맞추어서 바쳐야 한다. 성소의 성막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헌물이 남았을 때에 중지되었다( 출36:5-7).
반대로 예산액이 부족하면 추가가 재촉하였다(대하 36:5-7). 예산 초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초과는 주님의 축복의 표시이다(대하 31:10). 그러나 여러 가지 모금에 즈음하여 이만한 예산이면 자기의 "가져온 예물"과 "수입"이면 어느 정도의 필요한지라 고 생각할 수 있는 계획성이 필요하다. "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라는 격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후 9:6). 인색함이 없는 후한 헌금이 되어야 한다. 많은 추수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종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2) 헌금의 표준
어느 종교 의식이든 공통적인 것은 노래와 춤과 헌물이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상 앞에 보은과 감사의 생각을 물질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는가?
1) 구약의 시대의 십일조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 저들의 전 수입의 십일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아브라함은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승하였을 때 축복해 주는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 (창 14:1-20).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하다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창 28:22) 고 약속하였다.
레위기에는 땅의 십분의 일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실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 분의 일을 곧 곡식이나 나무 과일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도 여호와의 것 (례 20:30-32)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그 규정이 일정하지 않아 일년 수확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신 12:6-19, 14:22-27)와 3년마다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드리는 십일조 (신 14:28-29, 26:12-15)가 있었다.
말라기는 구약 최후의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라(말 3:8)고 지적하였다.
2) 신약 시대의 헌금
예수님께서는 단 두 번 십일조를 언급하셨는데, 하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이고 (눅 18:12), 또 다른 하나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책에서이다(마 23:23).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의도를 두고 학자들 간에는 의견이 있으나 " 과부가 자신의 소유를 다 바친 연보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사실(눅 21:4)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헌금 행위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교회 활동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가난한 교회도 후원해야 한다고 하였다(고후 8:1-5, 9:12- 13).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바치는 헌금을 칭찬하고 있다 (고후 9:7).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금전적 보조받기를 거절했다(행 18:3, 고후 11:7 -10, 고전 9:18). 그러면서도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고전 9:14)라고 주장하였다 (고전 9:7).
성경학자들은 교회가 다음 몇 가지 계획을 발전시킬 만한 근거가 신약 성경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얻은 대로 수입에 비례하는 내는 헌금.
둘째, 정규적으로 주일 헌금.
셋째, 처음 작정한 대로 헌금하기.
넷째, 즐거이 하는 헌금.
다섯째, 타인의 곤궁을 돌보려는 의무감에서 하는 헌금.
여섯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온 마음을 다 바치는 헌금.
이상의 여러 가지 조건과 얻은 대로 저축했다가 바치는 헌금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3) 십일조 헌금의 필요성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라고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라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 지도와 안내를 받아야 한다.
둘째,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가 있을 뿐 아니라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할 의무가 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하는 습관을 갖지 않으면 청지기 직분에 심각한 위험을 받게 된다. 교인을 돌보아야 할 목회자는 주 안에서 성장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십일조 헌금을 역설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받기 위해 낸다는 사상이다. 축복은 어떤 보상은 아니다.
둘째, 금전의 십일조만이 제일이 아니다. 청지기는 십일조를 냄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재능과 시간과 노력도 바쳐야 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눅 12:48).
(3) 헌금의 관리 ( 요 12:5-6)
바울은 "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하였으니, 교회 헌금을 맡은 관리자가 충성해야 한다. 가롯 유다는 돈을 맡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한 불의한 청지기이였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교
회의 재정을 맡아 다스리는 관리자이면 경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깍쟁이 근성을 가져서는 안된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결산보고가 해야 한다는 의식을 기지고 돈을 써야 한다.
주인의 달란트를 받아 땅을 파고 감추어 둔 종은 한 푼도 쓰지 않았으나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고 책망을 받았다(마 25:26).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저축만 하고 사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적이라고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눅 12:20).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관리자가 경쟁만을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딤전 6:17). 재정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
교회라는 곳은 비용을 들이는 곳이다"고 어떤 신학자가 말했다. 교회는 어떻게 돈을 적게 들여서 운영할까가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훌륭하게 경비를 사용할까를 생각하여야 한다.
2) 교인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결의 기관인 공동의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교회의 재정은 교인 총의인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예산안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헌금자의 뜻에 반하여 그 이외의 용도에 관리자가 임으로 지출되어서는 안된다.
즉 예산안을 대폭으로 수정함에는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예산이 결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정된 헌금은 용도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재정부원이나 회계는 자신이 헌금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다른 교인들이 정성으로 드린 헌금을 취급하는 관리자가 헌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헌금을 취급할 자격이 없다. 교역자의 생활비는 사례금이나 구호가 아니다. 교역자는 그것을 받을 권리를 가지면 (고전 9:1-14).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갈 6:6) 인색함이 없이 드려야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왕하 4:9-10).
3) 헌금은 분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바울은 관리자로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또 헌금자가 안심하고 헌금을 위탁하도록 하기 위해 여려 가지 배려를 했다. 고린도 교회 대외 봉사비를 모금하기 위해 디도와 다른 한 사람을 추가해서 파견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고후 8:20-21)라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송금할 때도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게 가리라"(고전 16:4-6).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서" 보내었다(행 11 : 30) 이렇게 충실한 관리가 보증됨으로 안심하고 헌금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은 지출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물품 구입 등은 가능하면 두 사람이 맡아야 한다. 매달 제직회에 보고하며 연말에는 반드시 감사를 받아야 한다.
Ⅳ. 집 사
1. 집사의 기원
집사(deacon)이라는 말은 헬라어" 디아코노스(Diaconsos)"에서 왔다. 디아코노스란 말이 헬라어 성경에는 30회 사용되었으나, 1611년 번역된 영어 성경에는 5회만 집사(deacon)라고 번역되었다.
디아코노스란 말이 집사 (deacon)이라고 번역되지 않았을 때에는 일꾼(minister) 또는 종 (servant)으로 번역되었다. "디아코노스"란 "먼지를 통해서"라는 뜻이다. 이 말의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먼지를 일으킨다는 개념은 종이 자기 주인을 섬기거나 시중들기 위해 서두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집사의 기원은 사도행전 6장에서 공궤를 일삼는 사람으로 일곱 사람을 선택한 것이 최초의 집사의 시작이다.
초대 교회 교인들 중에는 돌보아야 할 형제와 과부된 자매가 있었다. 사도들이 그들을 돌보아야 하겠지만 교인들의 증가로 일곱 명을 선출한 것이 집사이다. 그들은 재무와 구제 업무를 맡아 사도들을 도와 일하는 보조자들이다. 이들은 높은 자격이 필요했고 안수도 받은 일꾼이다(행 6:6). 이들이 자기 직무를 잘 처리하므로 교회의 친교 정신은 회복되었고 복음 전파는 계속되고 교회는 축복을 받아 크게 성장했다(행 6:7). 이러한 원리는 오늘에도 변함이 없이 집사는 목사의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도록 목사의 보조자가 되어야 한다.
2. 집사의 구분
집사는 안수로 임직되는 항존적이다. 이들을 안수 집사 또는 장립 집사라고 부른다. 안수 집사 외에 서리 집사가 있는데 임기 1년에 임시직이다.
집사 직무는 안수 집사나 서리 집사의 구분이 없으나 선택하는 과정이 다르다. 안수 집사 공동의회에서 선택하여 당회의 시취를 거쳐 안수하므로 임직하지만, 서리 집사는 당회에서 선택하여 임명한다. 기간은 1년이다.
집사 자격도 안수 집사는 30세 이상의 남자 무흠 세례교인으로 5년을 경과한 자라고 규정하지만 서리 집사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서리 집사는 임시직이므로 해마다 임명하여야 한다.
서리 집사는 임기 1년의 임시직이지만 계속 임명하기 때문에 항존적 같은 느낌마저 있다. 서리 집사 임명은 신중해야 한다.
3. 집사의 자격
사도행전 6장과 디모데전서 3장에 집사의 자격이 기록되어 있다. 믿을 만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행 6:3 새 번역)이라고 했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재정을 맡을 사람이므로 특별히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모데전서에서는 근엄하고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고 과음하지 않고 부정한 일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리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에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어야 하며 (딤전 3:8-9),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 자녀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딤전 3:12)고 했다. 집사는 교회에 있어서 모범적 신자이어야 한다. 집사로서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면 교인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게 된다.
초기 교회의 집사 선택은 사도들의 지명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선거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고 기도하고 안수하였으니 (행 6:5-6) 집사직은 종신적이다. 본교단 헌법에 의하면 집사의 자격은 신실한 믿음과 지혜를 겸비한 30세 이상된 남신자로서 흠없이 5년 이상 된 자로(단 타교단에서 온 장립집사는 흠 없이 3년 경과된 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 행위가 복음에 합당하며, 그의 생활이 다른 사람이 모범이 될 만하고 특히 재정 처리에 진실한 자이어야 한다. 봉사적 의무는 일반 신자가 마땅히 행할 것인바 집사된 자는 더욱 그러하다(딤전 3:8-12).
4. 집사의 직무
사도행전에 의하면 집사의 직무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섬기는 일에만 힘쓰도록 교회의 다른 일을 봉사하여 사도들을 돕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매일 구제하는 일이었다(행 6:1). 그러나 집사는 구제하는 일과 먹이는 일만 (행 6:2 새번역)하지 않고 영적 지도자로 활약하였으니 스데반과 빌립은 전도자로 봉사한 집사이다.
집사들이 교인을 섬기는 일이나(행 6:1-2), 사도들이 말씀을 섬기는 일이나(행 6:1-2), 사도들이 말씀을 섬기는 일이나(행 6:4) 다같은 봉사이다. 그러나 집사의 봉사와 목사의 봉사의 내용은 다른 봉사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사도들의 기도와 선교의 협력자로 선택받은 봉사wk이다. 사도행전 이외에는 집사의 직무를 기록된 바가 없고 디모데전서에도 집사의 자격을 썼을 뿐이다.
본교단 장로회 정치에는 집사의 직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집사의 직무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며, 환자와 갇힌 자와 과부와 고아와 모든 환난당한 자들을 위문하되 제직회의 결의에 따라 행하며, 교회에서 책정된 구제비와 일반 재정을 수납지출한다(행 6:2-3). 집사의 직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제직회 회원이 되어 교회를 봉사한다.
집사는 예배 시간에 참석하고 제직회에도 참석해야 한다. 어떤 집사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직회에는 참석치 않는다. 집사가 제직회에 참석치 않고서는 교회를 바르게 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집사는 제직회에 참석하여 각 부서 보고를 듣고 새로운 계획을 검토하여야 한다. 교회를 바르게 봉사할 수가 있다.
(2) 헌금을 수납한다.
집사의 직무 중의 하나가 헌금을 수납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헌금 중에는 교인들이 드린 십일조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서 어찌 감히 성도들이 드린 십일조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과 교우들이 함께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집사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3) 구제에 관한 일을 한다.
집사는 구제의 일을 맡아 보는 자이다. 그러한 직무를 맡은 집사가 자신이 구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덕이 안된다. 물론 천재지변으로 어려운 형편이 될 수도 있지만 집사가 항상 구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교회 발전에 큰 지장이 된다.
그러므로 집사는 노력과 근면으로 생업을 일으켜야 하며 혹 빈궁한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교회부터 구제받을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
집사의 직무를 잘 감당하려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목사의 좋은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집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목사의 목회 방침에 협력자가 되는 것이다. 집사의 지나친 열심히 목회 방침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도 하고 또 목회 방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목회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집사는 목사의 목회 방침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목사에게 결점이 있으면 사랑으로 일으켜 주면서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집사는 목사의 목회 방침에 좋은 협력자가 될 뿐만 아니라 목사의 경제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해야 한다.
둘째, 집사는 교인의 모범자가 되어야 한다.
집사는 교회 생활과 가정생활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하되 시간을 지키며 전도와 기도 생활에 본이 되어야 한다. 집사가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면 목사의 좋은 협조자가 되고 교인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
집사는 자기 가족을 주께로 인도하며 가정 기도회를 보며 자녀들도 신앙 생활에 열심을 내도록 해야 한다. 한나는 아들을 신앙으로 교육하여 잘 되는 집이 되었다. 집사직은 명예직이 아니라 신앙을 위해 힘쓰라고 택함을 받은 성직이다.
셋째, 집사는 교회 재정의 좋은 관리자이어야 한다.
집사는 구제 사업과 기타 교회 재정을 살림꾼으로 부름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물질에 대하여 바른 생각을 가져야 헌금 관리를 잘 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다 하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내 것 네 것이 구분이 명확한 것이 당연하지만 신앙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인간은 그의 것을 맡은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교회 재정을 맡은 집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 발전을 위해 관리하여야 한다. 특별히 회계 집사는 교회 재정에 대해 책임을 맡고 있다. 교회 회계는 분명하게 하되 매달 제직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교회 재산은 교인들의 기도와 신앙의
표현으로 이룩된 것이므로 손실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 재산에 변동이 있을 때에는 교회원 전체의 승인이 필요하다.
목사의 생활비는 목사와 그 가족의 생활만 아니라 목사의 목회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목회에 지장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목사의 생활비는 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이 아니라 교회 봉사를 위해 특별히 부름받은 자에 대한 응답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넷째, 집사는 교인의 좋은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는 문제를 지니고 있는 교인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목사와 상담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이때 집사가 그 교인의 친구가 되어 주면 그 사람을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 유익하다. 그러므로 집사들이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여 교인 사이에 친목을 도모하면서 교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집사가 교인을 사랑으로 대하면 집사는 신임을 받게 되고 교회는 발전하게 된다.
어느 목회자는 집사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첫째, 교회의 영적 일치와 평화 유지에 열심할 것.
둘째, 목사를 도와 선교와 교회 발전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쓸 것.
셋째, 교인들의 육적 요구와 영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교인 간의 친목유지에 노력할 것.
넷째, 성령과 성경의 교훈(마 18:15-17,고후 13:1, 살전 5:12-14)에 순종하여 교인을 훈련하며 지도할 것.
다섯째, 집사는 목사와 교인 사이의 가교가 되어 재정을 맡아 교회를 봉사하여 교회와 목사의 보조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교회의 사명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엡 4:12) 이다. 집사도 이 일을 위해 부름받은 자이다. 모든 집사가 다 지도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사명을 자각하고 노력하여 교회 성장에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5. 집사의 사임
서리집사는 1년 임기의 임시적이므로 1년이 자동적으로 해직된다. 서리 집사가 특별히 명심할 점은 첫째, 임기가 1년뿐이므로 한해 동안 충성을 다해야 한다.
둘째, 다음 해 다시 서리 집사로 선정이 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서리 집사가 계속 선정되므로 항존직처럼 되기 쉽다. 집사의 직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집사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사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수 집사는 항존직이므로 정년 때까지 계속 시무한다. 그러나 다음의 경우에는 정년 전이라도 사임 또는 사직할 수 있다.
(1) 사 임
집사가 집사 시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는 시무를 자진 사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단이나 악행은 없을지라도 교인 반수 이상이 시무를 원치 않을 때에는 당회의 결의로 사임을 권고할 수 있다.
(2) 사 직
집사가 범법을 하지 아니하였으나 노혼하거나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한 줄 알면 자신이 사직할 수 있고 또 당회의 결의로 그 사직을 권고할 수 있다.
V. 권 사
1. 권사의 유래
장로회 정치에 권사 제도를 선정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헌 법상 권사 제도가 있기 전부터 교인 심방과 전도에 봉사하는 여자 일꾼을 권사 라고 불렀다.
오래동안 교회 일에 충성하는 나이 많은 여집사를 당회에서 권사라는 직명을 부 여하여 교회를 봉사케 하였다. 이렇게 권사를 당회에서 임명하므로 다른 여집사 보다 직위상 높은 위치에 있는 직분으로 여겼고, 권사 자신도 지도자로서의 자 세와 명예를 지니는 직책으로 인식하여 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장로회 헌법에 권사를 항존직으로 규정한 후부터 공동의회에서 선택하고 취임케 하므로 권사가 또 하나의 영광스러운 직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교회는 권사를 보호 육성하여야 미래의 교회를 위해서 좋은 전통을 수립할 수 있다.
2. 권사의 자격
본 교단에서는 권사의 자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여신자 중 45세 이상된 입교인으로서 흠없이 5년 이상 집사로서 교회에 봉사하고, 공동의회에서 투표하여 투표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은 자로 당회에서 6개월 이상 교육하고 실시한 시험에 합격한 자이다. 단 다른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이명하여 온 자는 흠없이 3년 이상 경과한 후 피선될 수 있다.
3. 권사의 임직
권사가 임직되기까지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선 거
장로는 세례 교인 25명에 한 명의 비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집사나 권사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 그러므로 권사는 당회에서 적당한 인원수를 작정하여 공동의회에서 선거한다.
(2) 임 직
권사의 임직은 당회가 주관하며 임직 절차는 장로의 경우와 같으나 안수는 없다. 권사의 임직을 취임식이라고 한다.
4. 권사의 직무
권사의 직무는 다음과 같다.
. 제직회 회원이 된다.
. 교역자를 도와 궁핍한 자와 환란을 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한다.
.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힘쓴다.
권사가 그 직무를 잘 감당하려면 다음과 몇 가지를 힘써야 한다.
(1) 교역자를 잘 도와야 한다.
권사는 서리 집사로 오랫동안 봉사한 사람이나 전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여신도 중에도 지도급 인물 중에서 선출되는 일이 많다. 이러한 위치에 있는 권사가 교역자에게 잘 협조하지 않으면 교회 전체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권사는 교역자를 도와 교회를 봉사하는 직책이지 교역자를 지배하거나 괴롭히기 위한 직책이 아니다. 겐그리아 교회의 뵈뵈처럼 (롬 16:2) 권사는 교역자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권사가 수행하여야 할 엄연한 직책이다.
(2) 심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교우 중에 가난한 환란을 당한 형제를 심방하여 위로하는 일은 권사가 해야 할 직무이다. 심방도 교역자를 도와주기 위한 심방이어야 한다.
교회는 권사를 선거할 때 이러한 일들을 감당할 만한 적임자를 선출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만한 열심과 덕망과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다. 1년이 가도 심방 한번 못하는 권사는 사실 존재 의미가 없다. 권사직은 명예직이거나 장식품이 아니라 봉사하여야 할 직책이다.
(3) 덕망이 있어야 한다.
권사는 교역자의 보호자일 뿐 아니라 교우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롬 16:2). 초신자. 낙심자. 병약자. 실패자, 불우아. 행운아. 노약자 등 여려 모양의 사람들을 위한 보호자가 될 수 있을 때 권사의 임무인 심방은 효과적인 것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권사의 심방이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오는 부덕이 되기 쉽다.
권사의 심방이 교역자에게 도움이 되고 교우들에게 덕이 되기 위해 다음 몇 가지에 조심해야 한다.
첫째, 물질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권사가 심방을 통해 교인들과 가까와진 것을 기화로 교인들에게 금전을 차용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한 시일에 반납한다고 해도 덕이 안되고 더구나 기일내에 갚지 못하면 교회가 받는 손상은 너무나 크다.
둘째, 정신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권사가 심방하면서 이집 저집의 말을 옮겨 교인 사이의 이간을 붙이거나 이말 저말을 퍼뜨려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은 정신적인 가해 행위이다.
그러므로 심방을 임무로 하는 권사는 특히 이런 점에 주의하여 교회와 교인들에게 덕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셋째, 신앙적인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새 한국 교회의 신앙 체계가 크게 흔들려 혼란 상태가 된 것은 부녀들 때문이라는 책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권사는 특히 이런 점에 조심해서 부덕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입신. 투시. 진동 등의 이상한 신앙 상태를 예수와 그의 십자가 이상으로 선전하여 순진한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사람은 신앙적인 가해자이다. 신앙적인 가해는 다른 어떤 가해 행위보다도 가장 무서운 죄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5. 교회가 바라는 권사상
(1) 어머니로서의 권사
어머니 없는 가정은 쓸쓸한 가정이다. 어머니의 직무를 감당할 직원이 없는 교회도 쓸쓸한 교회이다. 목사와 장로가 아버지와 같다면 권사는 어머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에게서는 사랑을 맛본다. 권사는 교회에서 사랑의 직책을 감당하는 어머니이기를 바란다. 제직과 교인 사이 또는 교역자와 제직 사이에서 권사는 사랑과 화목의 역할을 하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어머니이다. 무슨 일에나 어머니의 손길이 요구되고 어떤 때에나 어머니의 수고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권사는 교인들의 요구에 응해 주는 동시에 어려운 일을 사랑과 이해심으로 해결해 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2) 봉사자로서의 권사
교회의 직분은 봉사하기 위한 직책이다. 권사는 보다 더 나타나지 않는 봉사의 역할이 요구된다. 그러나 권사가 봉사를 많이 해도 대접과 존경은 따르지 않기가 쉽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수고와 봉사를 많이 해도 칭찬과 명예는 아버지가 독차지하게 되듯 교회에서도 권사의 수고와 노력이 많으나 칭찬보다는 원망과 시비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권사의 봉사는 교회의 성장과 교인 융화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예수의 제자 중에 여자가 한 사람도 없으나 예수와 그 일행을 도운 여자들은 많다. 그들 중에는 다양한 계층이지만 화합 단결하여 예수의 전도 사업의 봉사자가 되었다(눅 8:1-3). 오늘의 권사들도 합심 단결하여 교회에 봉사하여야 한다.
(3) 협력자로서의 권사
권사는 종신적으로 취임을 거행하면서 교회 앞에 서약하였다. 그러므로 목사와 협동하여 교인들의 협력자로서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협력이란 세심한 주의와 통찰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교인들 중에 가난한 자. 병든자. 시험 당한 자를 돌아보고 그 사정을 목사에게 알리고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겐그리아 교회의 뵈뵈처럼 교역자들에게만 아니라 교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브리스길라는 교회를 위해 수고한 여자 일꾼이요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고 바울은 협력한 일꾼이다. 오늘의 권사도 뵈뵈와 브리스길라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
(4) 전도자로서의 권사
한국의 복음이 일찍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듯이 가정을 향해 복음을 전하여야 할 사명이 너무나 크고 넓다. 교인의 심방이나 새신자 전도를 교역자에게만 맡겨서는 안된다. 권사들이 새 신자 육성과 병자 방문들을 맡아야 한다.
세상 생활에 쪼들리던 교우들이 웃음으로 찾아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권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와 같은 권사들의 위로와 격려는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보다 몇 배 깊은 감화가 된다. 믿음의 바른 길을 가르쳐 주며 위로를 나눠주는 권사이기를 교인들은 바라고 있다.
VI. 제직회의 운영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당회와 제직회를 조직하 여 운영한다. 제직은 교회 발전과 성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봉사하여야 한다.
1. 제직의 사명과 자각
(1) 제직의 사명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합당하게 형성되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제직은 교인들 중에서 선택받은 자이다.
신약 성경에는 사도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7명의 집사를 선택하여 사도들이 안수하여 새 임무를 맡기었다(행 6:1-6), 여기에서 교회 직원의 원형을 엿볼 수 있다.
에베소 4장 11-13절에는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하였다.
여기에 기록된 교회의 활동을 요약하면
첫째, 봉사요
둘째, 건설이요
세째, 일치요
넷째, 완성을 목표한 전진이요
다섯째, 그리스도를 목표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곳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활동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의 활동이 바른가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유지하며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 교회 안에 직원을 세웠으니 모든 신도 중에서 선택받은 장로와 집사의 활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제직은 교회를 위한 순수한 봉사가 요구된다. 순수한 봉사란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봉사가 아니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 교회에 나타나지 않는다.
(2) 제직의 자각
교회 제직은 공동의회에서 기도로써 선택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자기 한 개인의 의견에 따라 행동하는 자가 아니라 교인들 전체의 의사를 반영하여야 한다. 제직은 목회를 돕는 봉사자임을 깊이 인식하고 교회의 헌법과 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교회의 일치, 순결, 평화, 발전을 위해 기도하며 그것을 힘써야 한다. 교회의 공동의회에서 선택받은 것은 인간의 의사에 의하여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선택받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에 의한 선택이 선행되어 있다는 것을 자작하여야 한다. 제직이 되어 목사와 함께 교회를 봉사하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제직으로 부름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성실한 응답으로 봉사할 자각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힘을 과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부르심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야 한다.
2. 계획의 수립
제직들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회의 미래상을 그리고 그 미래상을 실현하기 위해 물질적 자원과 미리 수립하여야 한다. 장기 계획을 뒷받침할 단기 계획도 있어야 한다.
"망대를 세우고자 계획하면 먼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 족할는지 그 비용을 예산사지 않겠느냐? 일만의 군인으로 이만의 군대를 이기리려면 먼저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려 보아야 한다" (눅 14:28-31)고 하였다.
(1) 좋은 계획을 만들도록 힘쓰라
좋은 계획이 있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두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여러 방면에서 연구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첫째, 1년에 한 두 차례 교역자들도 조용히 장소에 가서 교회의 장래를 위한 연구회를 갖도록 하여야 한다. 교역자가 누구보다도 교회의 현재와 장래를 알고 있다.
둘째, 제직들들 몇 개 분과로 나누어 어떤 주제를 주어 연구 보고케 하는 것이 유익하다. 교회의 인력 수급 계획에 의해 인력을 개발하고 특정한 직책에 대한 훈련을 시켜 적재적소에 등용하여야 한다.
셋째, 담당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다. 적성에 맞고 기능이 있는 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한 자리에 너무 오래 있으면 타성이 생기고 자기주장이 강하게 된다. 한 두해 맡았다가 자리를 바꾸는 것이 새롭고 열심있게 일할 수 있다.
(2) 성장과 발전에 초점을 맞추라
교회의 성장과 발전은 전도와 친교와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제직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서 헌신하여야 한다.
첫째, 제직 전체가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어야 한다.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교회가 전도 전략을 세우려 할 때 유의할 점은 증거의 핵심은 그리스도요. 증거의 매개체는 교회요. 증거의 성공비결은 성령임을 명심하고 전 제직이 전도에 동원되어야 한다.
둘째, 제직 전체가 친교에 협력해야 한다. 현대 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다. 공동체 의식의 획복을 위해 친교의 역할은 중요하다. 전교인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에 참여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직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개개인의 인격을 존중해 주면서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서로 얼굴을 대하고 대화 혹은 의사소통에 잘되게 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셋째, 교육을 통해 교회 갱신이 되어야 한다. 교회 전체가 하나의 활동적인 공동체일 때에 교회는 가장 힘차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고 성장한다. 교인을 성숙한 크리스챤으로 기르기 위한 성경 교육이 요구된다. 제직 훈련을 통해 제직 의식, 교회 의식, 자기의식 등의 의식 훈련과 제직의 임무와 자세 등의 기본 훈련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제도화된 사회에 처해 있는 교회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체의 행정 정비는 물론 교회 사업의 종합적인 계획과 그 사업의 조정 그리고 방대한 자료 수집과 그 자료의 효율적인 응용을 위해서는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제직들의 적절한 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3. 제직회의 운영
(1) 제직회의 조직
지교회 당회원과 집사를 합하여 제직회를 조직한다. 제직회장은 당회장이 겸하고, 서기와 회계를 선정한다. 당회는 각각 그 형편에 의하여 제직회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교역자와 궈사 및 서리집사에게 제직회원권을 줄 수 있다.
(2) 제직회의 소집
제직회의 소집은 제직회장이 제직회 소집을 필요로 인정할 때 또는 제직 과반수 이상의 소집 요청이 있을 때 소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마다 거의 매달 첫 주일에 정기적으로 제직회가 모이고 있다. 제직회 개최 성수는 제직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최된다.
(3) 제직회의 재정 처리와 기타 사항
제직회는 교회에서 위임하는 금전을 관리한다(행 6:3-5). 구제와 교회 경비에 관한 사무와 금전 출납을 처리하되, 회계집사로 하여금 회의 결의에 의하여 금전을 출납케 한다. 매년말 공동의회에 1년간의 결과 상황과 일반 수지 결산을 보고하며, 다음해의 예산안을 편성 보고하여 회의 통과를 받으며, 회계집사는 장부를 감사 받는다.
(4) 제직회의 회의
매월 1회 또는 1년에 사회 이상 정기회로 모이며, 임시회는 당회장이 필요할 때와 회원 3부의 1이상이 요청할 때 당회장이 소집한다.
VII. 제직의 신앙 생활
제직은 하나님 앞에 선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제직의 신앙생활은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므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여야 한다(빌 1:27).
제직들 중에는 열심도 있고 봉사도 잘하는 것 같으면서도 교인들 사이에 덕을 세우지 못하거나 신령상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이가 있다. 뚜렷하게 범죄는 아니라 하더라도 한 두 가지의 결함이나 독특한 성격 때문에 제직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분도 있다.
그러므로 "흠 잡힐 데 없는 순진한 사람이 되어 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빌 2:15)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전 10:31) 살도록 힘써야 한다.
1. 제직의 개인생활
기도하는 생활과 성경 읽는 생활과 전도하는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3대 의무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일이요 성경 읽는 일은 자신에게 대한 일이요, 전도는 이웃에게 대한 일이다. 이 세 가지는 신앙생활 성장의 기본 요소로서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서 신앙이 성장할 수가 없다.
(1) 제직의 기도생활
찬송을 부르는 일과 (행 2:47) 기도하는 일과 (눅 11:1-2), 성경 읽는 일과(행 17:11) 그리스도인이 은혜받는 세 가지 길이다. 그 중에도 기도하는 일은 찬송을 부르는 일이나 성경 읽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가 기도라는 통로로써 시작되기 때문이다.
제직 중에는 공중 앞에서 기도하라는 지명을 받으면 기도하기를 주저하는 이도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개인적으로 은밀히 기도하지만 제직이라면 공중 앞에서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정치가인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진다는 왕의 엄명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다(단 6:10).
1)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내가 믿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가지는 하나의 대화이다. 기독교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우리와 같이 살아 계시는 인격자로서의 하나님이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하나님에 대한 물음이요 요청이요 간구이다.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강요와 억지 쓰는 것을 기도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의 주장과 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물음이다.
기도의 주제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의 은사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나의 사정을 고하고 내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의 문제에 대하여 사정을 아뢴다. 그 다음에 이러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나는 이렇게 해 주시기를 바라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기도는 언제든지 공동적인 기도이어야 한다. 개인이 드리는 기도가 있지만 개인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의 가정, 이웃, 교회, 나라를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그 나라의 이 땅 위에 건설되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도자나 개인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2) 기도하는 자세
옛날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일한 사람들의 성격, 재능, 지위, 경험이 각각 다르지만 놀랍게도 공통된 점은 어느 누구든지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삼상 12:23)고 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은 기도이다.
기도하는 자가 가질 태도가 있다.
첫째, 참마음으로 기도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부터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히 10:22)고 했다.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들으신다.
둘째, 믿고 기도하라.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을 것이라"(마 21:22)고 말씀하셨다.
셋째, 인내로써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하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예수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하셨다(눅 18:1-7).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인내성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모든 일을 전환시키며 변화하는 원동력이다.
3) 어떻게 기도할까?
예수님은 기도할 때 위선자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다(마 6:5-6)
첫째,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였고, 바울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의 근원이 되시는 아버지께 기도하였다(엡 6:14).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전능자이다.
둘째, 회개하고 기도하라.
우리의 기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죄를 고백하여야 한다. 야고보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약 5:16).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죄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아니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네가 제단에 드리려 할 때에 형제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은 것이 생각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나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 그리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마 5:23-24)하엿으니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잘못된 것을 자복하여야 한다.
셋째, 기도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가 없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 중에는 예수님을 제쳐 놓고 직접 하나님과 만나 대화한다고 한다. 그러한 생각은 잘못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서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5:16)고 하셨다.
4) 언제 기도할까?
예수님과 바울은 언제든지 기도하라고 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 멸망이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구원이라면 우리는 언제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기도를 해야 한다.
첫째, 항상 기도하라.
바울은 "깨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라"(골 4:2),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였고, 예수님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마 18:1)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마 7:7) 고 하셨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셨고, 이른 새벽에도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셨고, 이른 새벽에도 기도하셨고 금식 기도를 하셨고,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도하였고, 기도로 도와주기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제직들은 언제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환란 때에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요 도우심을 구하는 간구라면 어려운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시작하시면서 금식 기도하셨고 병을 고치실 때마다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앞두고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셨다. 바울도 전도하다가 핍박을 당할 때 기도했고, 옥중에서도 기도했고, 풍랑 중에도 기도했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고 시인은 노래했고, 이사야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고 하였다.
기도는 하나님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란이나 시험을 당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셋째,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라.
유대인들은 저녁. 아침. 정오 이렇게 하루에 세 차례는 기도의 시간이다. 시인은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고 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
사했고(단 6:10),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였다(행 3:1). 예수님도 오히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으니(막 1:35).
제직들은 하루에 몇 차례 기도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실시하는 새벽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여야 한다.
제직들이 공중을 대표하여 기도할 때 너무 길게 기도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자기 혼자의 기도라면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겠으나 공중 예배 때 기도는 너무 길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2) 제직의 성경 읽는 생활
신앙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일은 성경 읽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쉬지 않고 숨 쉬고 하루 세 번 음식을 먹음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신자는 숨 쉬는 것 같은 기도와 음식과 같은 성경 읽기로써 신앙이 성장한다.
신자들중에 신앙생활에 생기를 잃거나 열심이 식어가는가? 그 원인은 마음의 양식인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시인이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쇠잔하였다"(시 102:4) 고 탄식한 것은 성경 읽지 않는 신자의 모습이다.
신앙의 사람이요 고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죠지 뮬러는 "나는 54년의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기쁨이 더했고 성경은 나에게 있어서 항상 새로운 책과 같이 신선했다"고 하였다. 그는 "신자와 생활에 열심이 없는 것은 성경 읽는 열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 성경은 어떤 책인가?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기원과 편성의 순서 또는 그의 과정이나 원어 등을 자세히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경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성경은 기독교의 유일한 경전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라고 하면 흔히 신약 성경을 생각하지만 구약 성경도 다같이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제직들 중에도 구약 성경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분들이 있다. 구약 성경책은 왜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까 하고 어떤 신자에게 질문을 했더니"구약성경은 무거워서" 하기에, 설교자가 "그러나 죄의 무거운 것을 생각하면 가볍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하나님 자신이 자기 자신을 인류에게 계시하고자 하여 진리를 가르치고 책망하고 의로 교육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둘째.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구약 39권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쓴 것으로 천지 창조의 일로부터 시작하여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볼 수 있게 편찬되었다. 각 책을 통해 오리라는 메시야, 즉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신약 27권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후에 쓴 것으로 그리스도 탄생의 예고로부터 그의 탄생과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 강림, 교회의 탄생과 그의 발전과 그리고 사도들의 전도와 편지에 및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기간에 40여 명이 사람이 쓴 책이지만 통일성이 있다는 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성경 연구가 성행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성경에 대해 학문적 연구에 그치고 성경이 전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등한해서는 안된다.
셋째, 성경은 매일의 영의 양식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항상 축복을 받았고, 그 말씀을 잊고 등한히 할 때는 재앙을 받았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지키며 밤이나 낮이나 그 말씀을 묵상하였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날마 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 17:11).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 40년 동안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을 걷어 매일의 양식을 삼았다 (출 16장).
우리들은 영의 양식을 위하여 매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일 주일분의 음식을 한 끼에 다 먹을 수 없음같이 영의 양식도 한 번에 많이 먹어 둘 수는 없기 때문에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2) 성경을 어떻게 읽을까?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다.
첫째, 성경은 차례대로 읽는 것이 좋다.
한 차례 통독이 끝나면 전에 읽으면서 표해 두었던 부분을 고요히 묵상하면서 두 번 세 번 읽으면 뜻밖의 성경의 뜻을 잘 깨닫게 된다. 구약은 나무와 뿌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신약을 꽃과 열매라고 한다면 신약을 더 많이 읽을 필요가 있으나 구약도 결코 소홀히 읽어서는 안된다.
둘째, 성경은 매일 읽는 것이 좋다.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다고 한다. 하루의 황금과 같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다." 내가 세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시 88:13)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였다. 조용한 아침 한 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살과 피를 삼았고 승리하셨다. 12세 때 성전에서 선생들중에 앉으사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었고 (눅 2:46-47), 광야 시험 중에도 세 번이나 성경 말씀으로 승리하셨고(신 8:3,6:16-13), 나사렛 회당에서도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다.
(3) 제직의 전도하는 생활
전도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지상 명형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고전 9:16) 고 말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딤후 4:2)고 하였다. 전도는 제직의 책임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영광이요 즐거운 일이다.
(1) 전도의 대상
전도의 책임은 교역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직은 언제나 전도에 불타서 가족에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제직은 자기 가족을 먼저 전도하여야 한다. 믿지 않는 부모나 자녀를 주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제직의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정을 복음화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제직은 자기 직장에 파송 받은 전도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직장 전도는 말과 혀로보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 직장 전도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고 있지만 실망하지 않고 끈기 있게 계속하면 의외로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
2) 전도의 방법
전도의 방법은 여러 가지 있으나 그 중에도 빌립과 같이 개인 전도가 첫째 가는 전도 방법이다. 빌립은 자기 고향 사람 나다나엘을 주께로 인도했듯이 친구나 이웃을 찾아 그리스도를 전하여야 한다.
전도 방법에는 문서 전도도 있다. 전도지나 전도용 책자를 우송하거나 직접 전달하여 전도할 수 있다.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나 교도소 같은 곳에 문서 전도를 하면 전도에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도 방법에는 노방 전도도 있다. 길에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다. 혼자서나 혹은 짝을 지어 조직적으로 가두 전도를 해도 좋다. 교회에 다소간 관심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신앙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겔 3: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겔 3:7). 전도는 신자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책임이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사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주 예수는 복음 선교를 위하여 성경을 주시며 땅 끝까지 증인 되라고 하셨으니 제직은 누구나 전도인이 되어야 한다.
2. 제직의 가정생활
한국에는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와 자녀가 모여 사는 집보다는 관계가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한다. 영어의 홈(home)이란 경건한 청교도들의 후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의 신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은 데서 시작된 말이다. 페스탈로치는 "기독교의 특산물은 국가가 아니라 가정이다. 오늘 문명 세계에 있어서 홈(home)이라 고 일컫는 것은 특히 기독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1) 가정 예배를 드리자
예수님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제직들은가정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제직들은 가정 제단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고 신앙을 생활화하는 장소이어야 한다.
스펄젼은 "많은 원수가 있어서 제단의 불을 끄려고 한다. 그러나 그림자 뒤에 감추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제단에 기름을 부어 더욱더 이 불길을 일으켜 준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성경의 나무를 더하고 기도의 바람을 보태어 제단의 불이 영원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가정 예배는 가정 화평의 원천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온 가족이 제단 앞에 엎드려 예배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예배는 간단히 진행하되 가족들이 교대로 예배를 사회할 수도 있고 순서는 그 가정의 형편에 적합하도록 할 것이다.
(2) 가정을 교육의 장소로 삼자
가정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 복잡한 문제가 있다. 그 중에도 가족 중 어느 한 사람이 신자일 때 여러 가지 반대가 있다. 비난과 박해를 견디며 가족을 구원하려면 먼저 믿는 가족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온 가족이 믿고 그리스도가 가정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가정의 영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가정 예배를 드리되 먼저 믿는 부모나 가족이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한다. 사랑과 화평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족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감화시키는 일은 먼저 믿는 가족의 책임이다. 이것은 사실 어느 한 가족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하여야 한다.
어린이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음식에 관심이 있듯이 가족의 영혼을 위해 영양가 있는 생명의 말씀을 공급해야 한다. 가족들이 마음을 다하여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봉사에 참석하게 해야 한다. 가장은 그 가정의 교역자임을 인식하고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가정이 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루디아는 자기 집을 전도하는 장소로 제공하여 그 집안이 다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행 16:14-15). 가정은 교육과 전도의 두 가지 사명을 지니고 있다. 가정을 전도 장소로 제공되는 것은 특별 축복이다. 초대 교회의 집회는 개인 집에서 시작되었으나(행 12:12), 빌립보에는 루디아의 집(행 16:40), 에베소에는 아굴라의 집(고전 16:16), 라오디게아에는 눔바의 집(골 4:15)이 전도 장소로 제공되었다. 가정이 그리스도를 중심삼아 신앙 훈련 장소가 되고 교육하는 장소가 되고 복음 전파하는 장소가 될 때 가정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3) 가정을 화평의 장소로 삼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의 제물이 되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나누어진 장벽을 헐어 버리고 하나로 만들었다. 제직이 된 사람은 한 가정의 화평을 이룩하는 제물이 되어야 한다.
가정을 화평의 장소로 삼으려면 다음 몇 가지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가족의 심령에 천국을 이룩하자.
심령 속에서 사탄을 내쫓고 그리스도를 모셔 들여 주님이 심령을 지배하면 천국을 소유한 것이다. 구약에 욥의 가정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가정에 화평을 잃어버리지 않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 마음속에 기도하는 마음과 성령이 주신 평화가 그 심령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욥 2:7-10) 제직은 자기 가정을 화평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가족 한사람 한 사람의 심령에 천국을 이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가족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자.
가정의 화평은 사랑으로만 이룩할 수 있다. 주님은 이웃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하물며 한 가족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할 수 없겠는가?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되 지식을 따라 사랑해야 한다(벧전 3:7).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에 대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아내의 남편에 대한 지식이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 지식과 (골 3:18), 아름답게 단장해야 할 지식이다(벧전 3:5), 복종이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하라는 것이다. 아내가 복종하면 믿지 않는 남편이라도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벧전 3:1)고 하였다. 아름답게 단장한다는 것은 마음에 숨은 사랑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는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벧전 3:3-4).
남편의 아내에 대한 지식은 아내는 연약한 그릇임을 알아야 하는 것과 (벧전 3:7) 괴롭게 하지 말고(골 3:19) 극진히 사랑해야 한다 (엡 5:25) 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심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어 천국 가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도와주고 위로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예민한 것이 아내이므로 외로와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두어 사랑하되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불화로 인한 난폭한 언사와 행동으로 아내를 괴롭혀서는 가정의 화평을 도모할 수가 없다.
남편은 범사에 아내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딛 2:7)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육적 생활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청지기로서 범사에 본을 보여야 한다. 주부들은 교회의 집사가 되기 전에 어디까지나 현모양처로서의 사명이 주께서 맡겨 주신 것이다. 또한 남자들은 교회의 제직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다. 가정에서 제직으로서의 본을 보이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 교회에서 충실한 제직이 된다.
3. 제직의 사회 생활
제직은 하늘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사회의 한 시민이다. 제직은 이중의 시민으로 하늘나라 시민의 책임과 의무가 있는 동시에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도 있다. 시민 공동체인 사회와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중심에는 사회성이란 공통성이 있다. 만일 제직이 사회성을 무시할 때 맛잃은 소금이요 빛을 비출 수 없는 등잔불이 될 것이다.
(1) 제직과 직업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의 생활 수단으로 생업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직업의 귀천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2:28)고 하였으니 노동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1) 직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편이어야 한다.
칼빈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받은 하나님의 기구이며, 직업은 그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편이지 목적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본업이요 직업은 그를 추진하기 위한 부업이며, 또 직업을 통해 주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
바울의 직업관을 보면
첫째, 형제의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을 하라고 했다(살후 3:8).
둘째,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엡 4:28, 살후 3:12).
셋째, 경건한 마음을 유지하가 위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을즉 족한 줄 알라고 강조하였다(딤전 6:6-8)
2) 직업은 신앙생활에 덕스러워야 한다.
제직이 무슨 직업이나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으나 주님의 영광을 위한 직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므로(고전 6:12) 신앙 생활에 덕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제직이 사회에 해가 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이라 해도 신앙 생활에 덕이 되지 않으면 그러한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가령 술 장사나 담배를 파는 직업 등은 덕을 세우는 데 유익하지 못하므로 삼가야 한다.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지장이 되는 직업이라면 아무리 수익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 직업을 전환해야 한다.
3) 직업에 충실하여야 한다.
제직은 직업에 대하여 성실하고 근면하여야 한다. 성경에 "종된 이들이여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실을 다하라"(엡 6:5)고 가르쳤고, "작은 일에 신실한 자가 큰일에도 신실하다"고 했다. "때를 따라 정한 양식을 주는 신실하고 슬기있는 관리인이 누구겠느냐?"(눅 12:42) 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은 진실성이 있는 자의 직업이나 직장을 축복하실 것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출 20:9)는 계명을 따라 제직은 자기 직업을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잠 10:4)는 교훈과 같이 직업을 위해 부지런한 자를 하나님은 도와주신다.
4) 직업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업으로 알아야 한다.
제직은 자기의 직업을 주님이 맡겨 주신 소명으로 알고 주님께 부끄러움이 없는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과 같이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한다"(빌 1:21) 는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일을 위하거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업을 하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일하는 자이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주님을 위한 일이요 복음 증거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일을 하든지 기쁨과 감사로써 일할 수 있다.
제직들은 직업관을 성경적인 입장에서 바로 가져야 하며 직업을 선택하거나 경영할 때 주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힘써야 한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위해 힘쓰는 직업인에게 의식주를 넉넉하게 채워 주실 것이다(마 6:33).
(2) 제직과 언어 생활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을 하는 축복을 주셨다. 그러나 맡은 사람에게 유익한 면도
있지만 위험하고 두려운 면도 많다는 것이다(약 3:8,시 57:4, 잠 21:23). 그러한 의미에서 말을 조심해야 될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제직은 물질과 시간으로 교회를 봉사하지만 혀와 말로써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골 4:6)고 하였다.
1) 하지 않아야 할 말 다섯 가지
첫째, 거짓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엡 4:25).
거짓말은 습관이 되기 쉬운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한 말이라고 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남의 험담은 말하지 말라(엡 5:4).
"두루 다니며 험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창 11:13) 하였으니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면서 고치도록 권면하는 것이 험담으로 폭로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셋째, 형제에게 이간이 될 말은 하지 말라(잠 16:18).
제직은 모든 사람으로 화목케 해야 할 책임이 있다(막 9:50, 살전 5:13). 화목의 사명이 있는 제직이 이간하는 행위는 주님의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중에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를 미워하신다(잠6:19)고 하셨다.
넷째, 자기를 자랑하는 말을 하지 말라(시12:3).
언어생활에서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자기 자랑이다. "자랑은 악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라"(시12:3)하였고, 바울은 자랑하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였다(롬 1:30). 아무리 충성을 다하는 제직이라도 자기를 자랑하는 입술로 그 공을 소멸해 버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되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고 하였다.(빌 3:3).
다섯째, 불평이나 원망이나 말을 하지 말라(시 37:1)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불평이나 불만을 토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악을 생하는 자로 인하여도 불평하는 것은 죄가 된다(시 37:1). 우리는 상대방을 불평하고 원망하려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교양과 지성이 필요하다. 바울은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상대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를 기록하였다"(고전 10:10-11)고 하였다.
불평이나 원망은 이해심이 없거나 교만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누추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엡5:4) 고 하였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불평이나 원망은 해소된다.
2) 해야 할 말 다섯 가지
말조심이란 무조건 함구하는 데에만 있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바른 말은 꼭 해야 할 때가 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 11)라고 하였으니 해야 할 말이 있다.
첫째,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라(마 5:37).
형제가 억울하게 송사를 당하거나 모함을 당할 때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려면 용기도 있어야 하지만 진실성도 있어야 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는 먹으리라"(잠 18:21)고 지혜자는 말하였다.
둘째, 참된 것을 말하라(엡 4:25).
우리 사회에는 거짓말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불신 사회의 불신 풍조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간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혜가 됨이니라"(엡 4:25)고 바울은 주장하였다.
셋째, 덕을 세우는 데는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라(엡 4:29).
제직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 보람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여야 한다. 이웃의 마음을 괴롭히는 말을 하거나 오해될 말을 삼가야 한다. 덕은 외롭지 않다고 한다. 들어서 흐뭇하고 기분이 상괘한 말을 하는 제직이 되어야 한다.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넷째, 형제를 위로하는 말을 하라(살전 4:18).
제직은 독한 말로 형제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되고 넘어져 가는 자를 위로와 격려의 말로 붙들어 주어야 한다. 마음이 상한 자나 고난 당한 자를 위로할 뿐 아니라 지옥으로 달려가는 형제에게 위로가 될 말을 하는 제직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것과 죽은 자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고 하였다.
다섯째,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라(살전 5:13).
비평이나 책망은 형제에 낙심시키고 일을 그르치기 쉽다. 형제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먼저 잘한 것을 칭찬하여 선한 일을 의욕을 일으켜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시기심이나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형제가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앞서가는 사람을 발맞추어 칭찬과 격려로 힘을 북돋워 준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는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3) 제직과 금전 관계
제직이 금전 관계가 분명치 않으므로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때가 많다. 특히 제직들 사이에 금전 거래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갈등과 시비가 일어나 분쟁의 불씨가 되는 일이 있다.
물질의 시험은 제직들을 넘어뜨리고 교회의 성장을 둔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아무리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이므로 물질의 시험을 당하면 영혼까지 비뚤어지고 교회 봉사도 그 중심을 잃어버려 넘어진다. 아간 한 사람의 물질에 대한 불투명한 행위 때문에 이스라엘 전 군대가 실패한 사실이나, 게하시의 탐욕 때문에 받은 벌이나, 아나니야 부부의 욕심으로 받은 징계를 생각하면 금전 관계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 수 있다.
1) 제물에 대한 바른 태도
재물이나 물질에 대한 잘못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이원론적 사고로 영적인 높은 세계와 물질적인 낮은 세계가 있어서 물질의 악하고 신령한 것은 선하다는 영지주의(Gnosticism)가 있고, 둘째, 유물주의는 물질과 마음 존재와 사고의 관계에 있어서 물질 및 존재를 마음 및 사고보다 중요시하는 사상으로 물질을 생의 중심으로 삼아 재물을 제일로 아는 생각이 있다.
재물 자체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쓰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물질생활과 신앙생활은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물질생활도 신앙생활의 일부임을 확신하고 경건하게 맡아서 바르게 사용하여야 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딤전 6:10) "돈을 위하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 주께서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겠고 버리지도 않겠다"(히 13:5) 고 하셨으니, 돈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금전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 "남의 빚의 보증이 되지 말라"(잠 22:26) 하였으니 의무와 책임을 바르게 할 때 재물은 필요한 것이다. 남을 돕기 위하여, 서로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유를 즐기기 위하여 금전은 필요하다. 금전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한 달란트 맡은 종처럼 땅에 묻어 두지 말고 증식시켜야 한다 (마 25:27). 부자처럼 낭비해도 안된다(눅 16:19).
그러므로 금전에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돈은 옳게 벌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면 하나님의 징계가 뒤따르게 된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한다"(출 23:5) 고 하였다.
둘째, 돈을 바르게 쓰라.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지만 쓰는 것은 더 중요하다. 예수는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6:20) 하였으니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 재물을 바르게 쓰는 방법이다.
그러면 재물을 하늘에 쌓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일이요 (말 3:9-12), 둘째, 연보하는 것이요 (잠3:9-10), 셋째, 구제하는 것이다(잠19:17).
2) 금전은 주고받는 일이 분명해야 한다.
금전 거래를 해보아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금전 거래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인간 우정도 무너지고 신앙생활도 잘못된다.
첫째, 주는 일이 분명해야 한다.
돈 거래에는 즐거운 때도 있지만 마음 상하는 때가 많다. 처지에 따라 다르지만 돈을 꾸어 줄 때는 기한 내에 가져올 것을 기대하지 말고 주어야 하고, 상대방이 갚지 못하면 거저 주겠다는 생각으로 주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빌린 돈은 기한 내에 반드시 갚아야 하며, 갚지 못할 경우라면 미리 채권자에게 양해를 구하여야 한다. 금전 거래는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용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시 37:21) 하였고 "만일 갚은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잠 22:27) 는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둘째, 받는 일도 분명하여야 한다.
받을 것을 등한히 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유익한 것이 못된다. 받을 것은 받고 도와 줄 일이 있으면 그 후에 도와주어 금전 거래는 분명히 하여야 한다. 받을 것을 분명히 않는 사람은 줄 것에도 분명히 않는 사람은 줄 것에도 분명치 못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성경은 보증을 서는 일에 대한 교훈이 많다.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된다"(잠 17:18).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다"(잠 11:15).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잠 22:26-27)고 하였다. 이러한 교훈은 보증을 서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보증을 섰을 때는 갚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직은 돈거래가 분명하여야 자신과 교회 생활에 은혜가 될 것이다.
Ⅷ. 소그룹 관리와 심방
한국 교회는 친교가 잘 안된다고 걱정을 하는데 중요한 원인은 교회가 너무 커져서 교인들이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인들이 서로 은사를 나누거나 섬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교회 안에는 은사의 봉사를 주고 받는 소그룹들이 자연히 발생하게 되고 그 그룹들 사이에 친교가 원만치 못하면 교회 안에 파벌 싸움이 생기기 쉽다. 신도들이 그룹을 만들어서 친교를 누린다고 해도 어떤 방법으로 친교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은혜의 교제와 봉사가 없이 다만 모여서 먹고 마시는 정도라면 교회의 친교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소그룹의 조직과 그 관리와 심방이 필요하게 된다.
1. 소그룹 관리
(1) 소그룹 조직의 중요성
소그룹 조직이란 교회 안에 작은 교회의 조직을 말한다. 소그룹은 연령별이나 은사별이나 지역별로 조직하여 예배드리고 친교하고 서로 돕고 섬길 수 있는 조직이다.
교회가 옳게 성장하려면 그리스도의 전체가 된 성도끼리 서로 친교하며 융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그룹 운영은 건전한 성도의 교제를 기초한 목회 방식이어야 한다.
히브리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잘이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고 하였다. 바울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윽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고 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살아 있는 예수님의 몸인 이상 교회는 세포 조직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며 세포 분열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세포는 소그룹 조직이다. 소그룹은 예배 친교 봉사 등의 자체 활동을 통해서 살아 움직이고 또 성장하게 된다
이와같이 소그룹 조직은 교회 성장에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런데 소그룹의 여러 가지 문제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목회자 자신이 조심할 뿐 아니라 소그룹 안에서 누구나 특권이 의식이나 독선적인 행위를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성경의 운동력에 깊이 의존해야 한다. 소그룹장들은 예수의 몸을 관리하는 중대한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고 열심으로 소그룹을 성장시켜 주님 앞에 칭찬받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2) 소그룹의 목적과 기능
소그룹 관리는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기쁨으로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위로하고 인도하여 믿음의 성장을 도와주고 불신앙의 도전과 모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협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소그룹 관리의 분명한 목적으로 다음 네 가지 상황을 들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모인다.
크리스챤의 일상생활은 하나님은 예배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그룹의 첫째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진 중요한 행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다.
둘째, 말씀을 나누기 위해 모인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구역이 모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셋째, 친교를 위해 모인다.
교회의 성장은 교회 안의 친교의 성패에 달렸다. 친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먼저 일체의 계급이나 지위 의식이나 차별 의식이 없어야 한다. 친교는 단순한 애정이나 말로 성취되지 않는다. 서로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통하여 친교가 이루어지며 이 봉사와 섬김이 곧 구역의 목적이다. 어쨌든 소그룹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친교가 없이는 구역의 성장을 기대할 수가 있다.
넷째, 전도하기 위해 모인다.
소그룹은 전도의 전초 기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소그룹 모임에는 반드시 새로운 사람을 인도하여 함께 예배드리며 친교를 가져야 한다. 이웃 사람을 소그룹 모임에 초청하여 예배에 참석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이웃에 병들거나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방문하고 위로하며 기도하여 사랑을 베풀어 그들로 주의 교훈을 따르도록 인도하여야 한다.
소그룹 관리의 초점은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데 있으며 이 초점에 맞도록 교육과 훈련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기쁘지 않고서는 남을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소그룹장들은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고 모든 소그룹원들로 하여금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롬 14:17) 성령의 은사가 강조되어야 한다.
소그룹 관리는 교인들의 출석 독려 정도의 활동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교인 들로 기쁨으로 교회 생활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며 교회 생활을 통한 봉사자가 되도록 육성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먼저 평신도 지도자가 훈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소그룹장들은 다음 몇 가지 교육 과정은 이수하여야 한다.
* 예배 모범 * 그룹 성경 공부법 * 성도의 교제법
* 개인 전도법 * 새신자 육성법 * 청지기론 * 구역 행정
(3) 소그룹원들의 사명과 책임
소그룹 안에는 소그룹장과 소그룹원들이 있어서 목회자를 도와 직접 교인들과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소그룹원들의 사명과 책임은 중하다.
소그룹원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교육과 훈련만으로는 되지 않는 천부적인 자질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그룹 관리에 적합한 사람이 선택되어야 한다.
1) 소그룹원들의 사명
소그룹장은 소그룹 안에 있는 양 무리를 돌보는 선한 목자의 사명이 있다(요 10:11-15,마 10:6-8). 소그룹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복음의 사신이며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이다 (고전 4:1-2, 고후 5:20, 벧전 4:10). 그러므로 소그룹원들은 선한 파수꾼이며 (겔 3:17) 복음과 교회를 위해 부지런하고 성실한 전령이어야 한다(사52:7).
2) 소그룹원의 직무
소그룹장은 소그룹을 책임지고 총괄적으로 돌보며 구역 심방 때 예배를 인도하여야 한다. 매주 소그룹으로부터 교우들에 대한 형편과 심방 결과를 보고 받으며 특별한 사항이 있을 때에는 교역자에게 보고하여야 한다.
소그룹장은 매주 책임 맡은 교우 가정을 심방하며 그 결과를 목회자에게 보고한다.
권사는 교역자를 도와 가난하거나 병든 자와 새신자를 심방하며 소그룹장이 유고시에는 이를 대리하여야 한다. 소그룹을 잘 돌보려면 먼저 자신이 주일을 잘 지키면서 소그룹이나 가정에서 예배를 중요시하는 생활을 보여야 한다.
2. 심 방
(1) 심방의 정의
심방이란 하나님의 일로서 그의 양무리를 돌보는 것이다. 심방이란 "방문하다", "돌아본다", "권고한다"란 뜻이 있다. 예수께서는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으니(마 9:35) 그의 제자 된 그리스도인도 병든 자와 약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심방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시고 권고하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역사에서 시작되었다(창 16:5-9).
그러므로 심방은 목회자나 소그룹장이나 장로들이나 권사들이 교우들을 찾아가 위로하며 권면과 친교를 통하여 신앙 성장을 도와주는 일이다. 교우들의 가정과 개인이 지닌 문제를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해결해 주고 위로와 희망과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해 주는 일이 심방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잘돌아 보는 것이 심방이다 (행 7:23).
바울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14)고 하였다. 잠언 기자는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의 마음을 두라"고 하였다 (잠 27:23).
(2) 심방의 목적
심방을 통해서 교우들의 사정과 형편을 파악해서 주님의 양 무리를 잘 먹일 수 있도록 돌아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요 21:15).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도와주고 격려 하여야 한다.
심방은 하나님을 백성인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돌보아 주며 (행 7:23) 약한 교우와 환란 중에 있는 교우를 돌보아 주는 일이다(마 25:36, 약 1:27). 환란이나 시험 중에 있는 교우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고 권면하는 일이 심방이다(행 11:23, 24:22).
심방은 교회의 인력 개발과 동원을 효과적으로 도우며 불신자에게 전도할 기회 를 마련하며 교우들의 상화 협조와 친교를 원만하게 마련하는 데 있다. 소그룹원들과 교인 사이의 신앙적으로 접촉이 잘되면 교인의 신앙은 향상되고 소그룹원들은 사랑받는 일군이 된다. 소그룹 식구들의 신앙적인 형편이나 육신적인 사정을 잘 파악하는 것이 심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인들을 바로 지도하고 육성시킬 수 있다.
(3) 심방의 종류
1) 대심방
교역자와 함께 전도회나 책임자들이 연 1회나 2회 시행한다.
2) 월심방
매월 정한 주간에 소그룹 책임자들이 함께 심방한다.
3) 주간 심방
매 주간에 각 권사들이 맡은 세대를 돌아 본다.
4) 환자 심방
구역에 환자가 발생하면 구역 책임자들이 심방한 후에 교역자에게 알린다.
5) 특별 심방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 교역자와 함께 심방한다.
6) 전도 심방
불신자나 불신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 심방한다.
7) 전화 심방
가정 방문이 어렵거나 낮시간에 만날 수 없는 가정은 전화로 신앙을 격려
하며 위로하는 심방을 한다.
8) 서신 심방
가정 방문이나 전화 심방도 불가능한 교우에게 서신으로 심방한다.
(4) 심방의 준비
심방할 가정이나 교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되 사전에 연락하여야 한다. 심방 할 가정이나 교유의 형펀을 심방 카드나 교적부 등으로 파악하여 최선의 심방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대심방 때에는 심방 일정을 전도회원에 알리고 심방할 가정의 차례와 시간 등을 미리 계획하여야 한다. 월 심방 때에는 구역장은 구역 명부를 지참하고 필요한 사항을 수정하거나 기입 보충하여야 한다. 전도회장은 예배 인도할 준비를 충분히 하여야 한다. 성경, 찬송가는 물론 기도 준비도 하고 예의를 갖춘 단정하고 아담한 옷차림으로 심방하여야 한다.
심방 때 예배를 드리게 되면 집에 있는 가족이 전원 참석하도록 그 가정 식구를 중심으로 자리를 정하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는 간단하게 드려야 한다. 감명 깊은 권면과 정성어린 기도는 그 가정에 깊은 감화를 주게 된다.
(5) 심방자의 유의할 점
1) 심방자가 힘써야 할 일
경건한 신앙생활에 힘써 교우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성경 연구에 항상 힘쓰며 교사의 입장에서 구역 교우를 가르치며 친구의 입장에서 도와주며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여야 한다.
심방 후에 각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며 특히 문제가 있는 가정을 위해 계속 기도하여야 한다.
2) 심방자가 삼가야 할 일
서로 시간을 잘 지키고 한 가정에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자신의 곤고한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개인의 사업을 선전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 간의 금전 거래는 절대로 삼가야 한다.
3) 심방자가 지켜야 할 일
용모는 깨끗이 복장은 단정히 하며 예의는 바르게 행동은 친절해야 한다. 심방을 가면 그 가정에 관심을 쏟고 그 가정의 사정을 잘 듣고 신앙적으로 지도하되 그 가정의 약점은 덮어 주어야 한다. 심방할 때 대화는 언제든지 건설적이어야 하며 덕되는 말만 하여야 한다. 주인이 없을 경우에는 방문 쪽지를 남겨두고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