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 왜 안되는가?(마 5:23-24), 김덕선 목사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다툼과 분쟁의 불씨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나름대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화평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화평을 위한 노력은 이제 포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화평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잠언 29장 8절에는 “어리석은 자는 어디에서나 다투나 지혜로운 자는 화평 하느니라(Living Bible).”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화평합니다. 예수님은 ”화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화평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문제를 회피한다고 해서 화평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제들을 당당히 맞서기 보다는 회피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냥 “말하지 말자, 참자” 하고 지나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분쟁을 회피하거나 문제들로부터 달아나는 것은 결과적으로 화평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다음은 참는다고 해서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의 뜻대로 행하거나,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화평을 이루는 방법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끌려 다니며 살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지시나 원하는 대로 한다고 해서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적으로 앙금이 쌓여서 언젠가는 분노로 표출됩니다. 이와 같은 화평은 진정한 화평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화평할 수 있겠습니까?
1. 화해를 위해 만남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먼저 행동을 취하십시오. 마태복음 5장 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화목하기 위하여 기다리거나 미루지 마십시오. 화목을 위하여 당신이 먼저 행동을 취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왜 내가 먼저 화해해야 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신앙인이라면 상처를 받았던지 아니면 상처를 입혔든지 당신이 먼저 화해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시간이 오래가면 갈수록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화평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항상 먼저 화해의 노력을 시도합니다.
먼저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계획하십시오. 당신이 편리한 시간보다는 상대방이 편리한 시간을 택하십시오. 상대방이 먼저 말할 때가지 무조건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이 바쁘고, 피곤하며, 프레셰 받을 때를 피하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이 편리할 때 만남을 시도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화해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화해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먼저 당신이 만남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2. 상대방을 이해하십시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동정하는 마음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화해를 위해서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다면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십시오. 그가 하는 말로부터 무엇인가 배우게 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듣 다는 것은 당신이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에 대해서 알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들은 신경쓰려 하지 않습니다. 화해를 위한 출발점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상대방에게 관심을 보일 때,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말하기 전 상대방이 먼저 말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미안하다는 말과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며 슬픈 자들과 함께 슬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서로 화평하게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분이 여러분의 남편, 아내, 목회자, 성도, 그룹의 리더 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먼저 만남의 자리를 계획하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십시오.
다음으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집중시키십시오. 빌립보서 2장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돌아보아” 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스코포스(Scopos)” 입니다. 이 헬라어에서 만원경(telescope), 현미경(microscope), 청진기(stethoscope) 등의 단어들이 파생되었습니다. 헬라어 “스코포스”는 문자적으로 “초점을 맞추다” 또는 “관심을 집중시키다”를 의미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관심을 나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돌려야만 합니다. 즉 나의 상처, 나의 필요, 내가 원하는 것, 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필요, 상처,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으로 관심을 돌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상처를 입혔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상처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 안에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받은 상처의 이면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었을까?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것이 바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화가 나게 되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할 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그가 나에게 그런 말을... 어떻게 그가 나의 권리를 그렇게 무시해.... 어떻게 그가 나를 그렇게 비난해....” 사람은 화가 나면 이처럼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사고의 변화를 시도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상대방과 만남의 자리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하거나, 그저 덮어두거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십시오. 상대방의 필요가 무엇인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무엇인가?
분쟁이 주는 유익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쟁을 해결할 때 우리는 이전보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분쟁은 친밀함을 가져다주는 열쇠이기도 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툼이나 분쟁이 전혀 없다면 여러분은 항상 표면적인 문제들만 다루었지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차이점은 그저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문제와 분쟁을 긍정적으로 다루고 해결한다면 이는 서로를 더욱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서로가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문제에 대하여 말하십시오.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다만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십시오. 문제의 핵심을 언급하십시오. 문제의 주변을 언급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이며,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인지, 그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다루어야만 합니다. 나무를 캐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를 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변의 가시덤불을 아무리 파내도 정작 나무는 뽑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을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상대방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해야만 합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관계십을 원만하게 유지하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열쇠입니다. 서로를 속이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십에 상처를 줄뿐입니다. 성경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찌니(빌4:15Good News Bible)"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하거나 속이는 것 그 자체는 관계십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가장하고 무엇을 속이고 있는지 그 자체를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들을 가지고와서 저와 상담하거나 교인들 서로간의 문제들을 살펴보게 될 때 그들이 나에게 말하는 공통점 하나는 상대방이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다면 솔직하게 문제를 말하십시오. 그 순간 당신은 자유로워 질것입니다.
여러분이 솔직하게 “ 이 모임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십시오. 이것이 마찰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되겠지만 결국 솔직함은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솔직하고 정직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행하십시오. 그리고 관계십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설득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실을 말할 때에만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상처 주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빌 4:29/Good News Bible)” 라고 빌립보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툼을 해결하고 화해를 원한다면 어떤 말을 하든지 긍정적인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문제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관계를 위해서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공격적으로 말한다면 상대방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관계를 해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6가지 법칙(6C의 법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비교하지 마십시오(never Compare).
“왜 당신은 누구처럼 ..... 못하냐? 또는 당신은 .....와 똑같다”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한 언행이 될 수 없습니다.
2) 비난하지 마십시오(never Condemn).
절대로 “당신이 반드시 .... 해야만 했다, 또는 당신 자신이 창피한 줄 알아야만 한다, 당신이 전적으로 잘못이다”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상대방(너/당신)을 지적하여 말할 때 그 것은 비난으로 비쳐지게 됩니다. 여러분 당신이나 너를 우리로 바꾸십시오. ” “우리에게 .... 한 문제가 있다, 내 생각에 ..... .”
3) 명령하지 마십시오(never Command).
다툼을 일방적이고 강압적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내가 말 한대로 반드시 ....을 해” 여러분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인들입니다. 그 들을 성인으로 대해야만 합니다.
4) 도전적으로 말하지 마십시오(never Challenge).
사람을 위협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자” 마치 도전장을 내 던지는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이러한 행동은 관계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관계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무너트리는 행동일 뿐입니다.
5) 말을 끊지 마십시오(never Contradict).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서 끊지 마십시오. 당신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6) 혼동하지 마십시오(never Confuse)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들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근본적인 문제에 충실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위에서 언급한 6가지 사항을 실천한다면 여러분들은 문제를 다룰 때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문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최선을 다해 양보하십시오.
당신이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십시오. 서로의 공동점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시도하십시오. 당신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살피십시오. 서로의 타협점을 찾으십시오. 어떠한 형태의 관계이든 그 것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보입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시오(Good News Bible).” 야고보 3장 17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을 사랑하고 공손하며 대화하며 긍휼과 선한 행실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Living Bible).” 지혜는 화평을 사랑하고 공손합니다. 지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혜롭다면 여러분은 양보하고 협조할 것입니다. 양보하고 협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융통성이 없는 것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는 한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협조하는 마음을 소유하십시오.
야고보서 3장 18절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여러분이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화평의 씨를 심는다면 여러분은 평화롭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비융통성의 씨를 심는다면 여러분은 분쟁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양보의 씨를 심는다면 여러분은 인생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5. 화해 / 조화를 강조하십시오.
화해(reconciliation)와 단순한 해결(resolution) 사이에는 그 의미상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화해는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해결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르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5 가지 요소들을 통해서 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영적은사, 마음, 특별한 재능, 인성,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경험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치 눈송이처럼 아주 독특한 존재들입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관계십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은사와 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불쾌함 없이 의견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가 동일하지 않아도 화합과 단결 그리고 일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모든 것에 일치한다면 그 중 한사람은 필요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서로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성향을 소유한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관계십에 관심을 집중할 때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은 종종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일 때가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를 단절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해는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과 동의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바로 화목케 하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화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는 지금 여러분들에게 화목케 하는 사역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화목하려 시도한다면 그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면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화해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목회의 동역자 입니까? 자녀입니까? 친구입니까? 교회의 성도입니까? 남편 아니면 아내입니까? 혹시 여러분의 목회자 입니까?
인생에서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분쟁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화평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먼저 여러분 마음에 평화를 얻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하여 스스로를 조정할 수 있는 평화를 여러분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그 힘과 능력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가능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께 속한 평안의 능력을 주도록 간구하십시오.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은 화가 치밀어 올라올 때도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평안으로 채워져 있다면 그 순간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치약과 같이 언제든지 누르면 그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거처럼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평안으로 가득하다면 그 어떤 것이 여러분에게 압력을 가한다 해도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분의 평안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기심과 자랑으로 가득하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은 뻔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을 주목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베드로후서 1장 2절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님만이 파괴된 여러분의 관계를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잃어버린 마음의 평안을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분쟁과 미움과 다툼에서 여러분을 화해와 연합과 일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평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평안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득할 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과 평안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십니까? 저는 지금 휴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휴전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은 당신 자리에 서십시오. 나는 나의 위치에 서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세상의 큰 문제들을 해결하십시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잠시 휴전일 뿐입니다. 평화는 당신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찾아오게 됩니다. “예수님 내 인생에 들어오셔서 나에게 당신의 평안을 주시옵소서. 저를 인도하시고, 저를 지도하시며 당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저를 도와주시며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여러분은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화해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가 누구이든, 어떠한 문제이든 여러분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한 다는 것은 불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과 화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조용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전화하십시오. 만남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배운 것을 적용하십시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여러분이 이 일을 하시기전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그분이 주는 평안으로 채워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