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원리 : 최선의 삶으로 나를 이끄실 것을 믿으라
사람이 형편이 좋을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고통스런 시련이 몰아 닥쳐 절망과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힐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시람들은 역경에 부딪히면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라면 자녀에게 어려움과 슬픔을 주시지 않을 거라고 결론짓는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 50:15)라고 말씀하신다.
당신은 이 약속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 분을 신뢰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최선을 위해 일하신다. 이 사실을 믿으면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의심하게 한다.
마귀는 “하나님이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라고 속삭인다.
마귀는 우리를 단련시키는 시련을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평화와 행복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는 증거와 같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역경과 시련이
하나님의 자녀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잘못을 간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성품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롭고, 완전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삶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일만 행하신다. 갈보리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롬 5:8).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사랑과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허락하시거나 행하시는 일은 모두 사랑의 표현이다.
따라서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해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늘 하나님의 선하심을 굳게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다
때로 시련에 부딪칠 때면 “주님의 지혜가 무한하신 줄은 잘 압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뭔가 실수하신 것 같아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파악하고 계신다. 또한 그것이 앞으로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결과까지 알고 계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상황 전체를 이해하신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분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은 무엇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지 아시고 적절한 행동을 하신다.
상황이 어떤 식으로 비치든지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하며 우리를 유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만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에 대하여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이 권능에 의해 통제된다. 하나님은 만사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빌라도가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말하자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요 19:10-11)라고 대답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작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크건 작건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신다.
그러면 비행기 추락사고, 화재, 테러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2002년 9.11테러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엇던 이유나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이 사는 곳에 쓰나미가 몰아닥쳐 17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된 이유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악의 현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삶의 불확실성을 알기 위해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사악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죄의 영향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완전한 뜻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은 악한 일로 인해 큰 고통이 발생하더라도 묵묵히 이를 허용하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가혹한 재난과 불행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 무엇이 궁극적인 유익을 줄 것인지를 알고 계신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믿음을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
때로 역경과 고난을 당하게 되면 ‘이런 일을 어떻게 선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큰 시련을 겪었는데도 나중에 그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를 알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롬 8:28).
따라서 어려운 일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구원자로 인정하고 온전히 복종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과 무한한 지혜와 절대적인 주권을 지닌 분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삶
성경은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진리 안에서 행하라, 성령 안에서 행하라, 사랑 안에서 행하라고 말한다.
골로새서 2장 6절은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이 항상 우리의 유익을 구하시며 언제나 옳은 일을 행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믿음으로 사는 방법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에 직면했을 때는 어떤 태도를 위해야 할까? 잠언 3장 5-6절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처하든지 거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우연의 일치는 없다. 시련과 슬픔을 겪을 때도 하나님은
상황을 은밀하게 섭리함으로써 우리를 궁극적으로 유익하게 하시며 소망을 주신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무엇보다도 그분이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근본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만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한다.
믿음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데서 생겨난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구체적인 축복을 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복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신다.
아무리 작은 믿음의 행위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간과하지 않으신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완벽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이해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신다.
하나님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에 풀이 죽어 때에도 그분은 즉시 우리를 안아 주시며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제자들은 옛생활로 돌아가려 했다. 그들은 다시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갈릴리 호수로
되돌아갔다(마 4:18, 요 21:3).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롬 8:1). 그리스도가 갈릴리 해변에
모습을 드러내시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즉시 세상 음성을 거절하고 믿음의 길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그들에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에 충실하셨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 이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했지만 그리스도는 그를 한 번도 부인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결점을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히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실 뿐이다.
그러면 믿음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는 열망은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열망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복종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표징이다.
특히 중요한 결정이나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복종은 더욱 빛이 난다.
하나님은 항상 복종하는 자에게 큰 복을 내려주신다.